3-91 공병우 최종 자판에 얽힌 문제와 오해

차례

(1) 공병우 세벌식이란?

  공병우 세벌식은 1949년에 시제품이 나온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에 처음 쓰였고 셈틀에서도 가장 널리 쓰이는 세벌식 한글 자판의 배열 방식이다. 첫소리를 오른쪽에, 가운뎃소리(홀소리)를 왼손 가운데, 끝소리(받침)를 맨 왼쪽에 두는 것을 뼈대로 한다.

공병우 3벌식 자판의 짜임새
공병우 자판의 짜임새 (3-2012 자판)

  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줄여서 ‘공병우 자판’, ‘공 자판’, '공세벌 자판'으로도 불린다. 좁게 보면 ‘공병우 자판’은 공병우 세벌식의 창안자인 공병우가 만든 자판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공병우’라는 이름이 한글 자판 배열 방식을 이르는 두루이름씨(보통명사)로 쓰이고 있어서 ‘공병우 자판’은 만든 사람에 관계 없이 ‘공병우 세벌식’이라는 한글 배열 방식을 따르는 한글 자판들을 두루 가리킨다.

  1980년대까지는 널리 쓰이는 세벌식 자판이 공병우식뿐이어서 세벌식 자판을 달리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는 카스·소리자바를 비롯한 속기 기계에 쓰이는 세벌식 자판과 안마태 세벌식 자판처럼 공병우식이 아닌 세벌식 배열이 나오고 있으므로, 이제는 세벌식 자판도 계열을 가려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2) 3-91 자판이 나온 배경

  '공병우 최종 자판'은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창안자인 공병우 박사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일반 보급용 세벌식 자판 배열이다. 1991년에 발표되었으므로 3-91 자판으로 불린다. 1990년대에 공병우가 세운 사설 단체인 한글문화원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배열이기도 하다.

  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1948년에 나온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에서 비롯하여 전신 타자기(텔레타이프), 식자기(모노타이프, 라이노타이프 등) 등에 쓰이는 자판으로도 응용되었다. 1980년대에는 셈틀(컴퓨터)에서 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쓸 수 있게 구현한 입력기와 글틀(워드프로세서)이 나오기에 이른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는 매우 다양한 한글 기기가 나왔다가 사라진 때였다. 수동 타자기가 널리 쓰이던 가운데 전동 타자기가 드물게 쓰였고, 전자식 타자기와 ‘르모’를 비롯한 문서 전용기(워드프로세서) 제품이 한글 기기 시장을 파고 들었다. 그러나 이들도 곧이어 아래아한글과 같은 글틀을 쓸 수 있게 된 셈틀에 밀려나야 했다.주1

  3-91 자판이 만들어진 배경도 이와 같은 한글 기기 시장의 형편과 얽혀 있다. 공병우는 1980년대에 셈틀(컴퓨터)에서 세벌식 배열을 연구하면서 타자기에서도 함께 쓸 수 있는 한글 배열을 꾀하였다. 그 때에는 수동/전동/전자 방식으로 만들어진 한글 기기가 다양하게 나오고 있었으므로, 한 가지 한글 배열 방식으로 여러 기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 큰 이점이 될 수 있었다. 또 여러 기기에서 같은 타자법으로 쓸 수 있는 자판 배열을 만들 수 있는 한글 배열 방식은 공병우 세벌식뿐이었다. 그 최종 결과물인 3-91 자판은 수동식/전자식 타자기와 셈틀에서 모두 쓸 수 있는 한글 배열을 목표로 삼았다.

3-91 자판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매킨토시 세벌식)

  그래서 3-91 자판에서는 수동 타자기 설계를 의식한 배열 요소와 셈틀 자판에 맞는 배열 특성을 함께 볼 수 있다. 받침 배열에서 ㄲ·ㄺ·ㅈ의 자리는 수동 타자기에 맞춘 특징이라고 볼 수 있고, 자주 쓰이는 괄호인 손톱묶음 ( )이 새끼 손가락 자리에 들어간 것은 글쇠 누르는 힘이 덜 드는 셈틀 자판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배열이다.  매킨토시 환경에서 선택 글쇠(option key)를 써서 넣는 기호 확장 배열과 수동식 타자기와 전자식 타자기에 맞춘 배열을 따로 제안하기도 하였다.주2

  3-91 자판은 나오자마자 지금처럼 널리 쓰이는 세벌식 배열이 되지는 않았다. 1990년대 초의 셈틀 시장은 요즈음 흔히 쓰이는 셈틀로 이어진 IBM 계열 PC의 점유율이 높았고, 애플 계열인 매킨토시의 비중은 낮았다. IBM 계열 PC에서는 도스(DOS) 운영체제에서 주로 3-90 자판이 쓰였지만, 3-91 자판은 거의 매킨토시에서만 쓰였으므로 처음에는 쓰는 사람이 드물었다. 3-91 자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두 자판을 모두 지원한 윈도(Windows) 운영체제가 널리 쓰인 뒤의 일이다.


(3) 3-91 자판이 다른 공병우식 셈틀 배열과 다른 특징

  공병우 세벌식 계열 자판 가운데 하나인 3-91 자판은 앞서 나왔던 3-90 자판을 비롯한 공병우 자판들과 다른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요즘한글에 쓰이는 모든 겹받침을 두었다. 이렇게 하면 전자식 타자기에서 한글 낱소리를 바로 찍는 직결식 처리를 할 수 있고, 수동 타자기에서 겹받침을 찍을 때에 군손질을 줄일 수 있다. 요즘한글의 모든 겹받침을 둔 자판 배열은 1950년대 초까지 쓰인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에 쓰였다가 사라졌고, 3-91 자판으로 다시 등장한 셈이 되었다. 요즘한글에 쓰이는 모든 겹받침을 넣은 수동식 공병우 타자기는 나온 적이 없다.1950년대 초에 쓰인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에 받침이 많이 들어갔지만 ㄿ만은 들어가지 않았다. (2016.11.1. 내용 고침)

  두째로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이 매우 다르고, 들어간 기호들의 종류가 다르다. 더하기 부호(+)와 마침표(.)와 쉼표(,)를 뺀 기호들의 자리가 쿼티, 드보락을 비롯한 영문 자판들과 다르다. 참고표(※)나 가운뎃점(·)처럼 한글 문장에서 잘 쓰이는 기호도 들어가 있다. 기호들의 자리도 한글을 치기 편하게 배치한 흔적이 보인다. 그 대신 영문 자판에 있는 `, @, #, ^, &, _, [, ], {, } 따위가 빠져 있다.

  세째로 두 줄짜리 숫자 배열을 쓰고 있다. 이 숫자 배열은 1950년대 후반 이후의 공병우 타자기에서 많이 쓰였다. 오른쪽 숫자판과 비슷한 3-90 자판의 3줄 숫자 배열과 달리, 3-91 자판의 숫자 배열은 손가락을 위아래로 많이 움직이지 않으며 손가락을 더 골고루 쓰는 특징이 있다. 숫자와 함께 자주 쓰이는 +, - , *, /, % 따위 기호들을 오른손쪽 윗글 자리에 들어갔고, 마침표(.)와 쉼표(,)도 윗글 자리도 같은 기호를 넣는다. 이로써 숫자와 함께 자주 쓰이는 기호들을 치기 좋게 하였다.

  네째로 3-91 자판에는 @, #, $, &처럼 사무용으로 쓰일 만한 기호들이 빠지고 참고표(※)나 가운뎃점(·)처럼 한글 문서에 자주 나올 수 있는 기호가 들어가 있다. 이에 관한 것은 다음 글마디에서 자세히 이야기한다.

  다섯째로 3-91 자판은 셈틀 자판이면서 수동 타자기 설계도 함께 헤아렸다. 수동 타자기 설계에 관한 것은 뒤에서 자세히 살펴 본다.


(4) 문장용 타자기와 3-91 자판

  3-91 자판에는 @, $, &처럼 사무 문서에 자주 쓰일 수 있는 기호가 빠져 있다. 하지만 열고 닫는 큰따옴표(“ ”), 참고표(※), 가운뎃점(·)이 들어가 있어서 한글 문장을 칠 때를 배려했음을 알 수 있다.

  한글 문장 치기를 배려한 세벌식 배열은 3-91 자판이 처음이 아니다. 수동 타자기 가운데도 문장용 타자기 또는 문인용 타자기로 불린 공병우 타자기가 있었다.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는 1970년대에 소설가 정을병님이 제안한 자판 배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무렵까지 공병우 타자기는 사무용이어서 작가들이 자주 쓰는 기호들을 많이 담지 못했다. 문장용 타자기 자판은 사무에 쓰이는 기호를 줄이고 〈  〉「  」가운뎃점(·) 같은 기호들과 ㄵ 같은 겹받침을 더 넣어서 소설이나 언론 기사 같은 글을 쓰는 문인과 기자들이 쓰게 좋게 하였다.주3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 자판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

  3-91 자판은 @, $, &처럼 사무에 쓰이는 기호들이 빠져 있고, 열고 닫는 따옴표처럼 문인들에게 필요한 기호들이 더 들어 있는 점이 문장용 타자기 자판과 비슷하다. 이를 주목한다면 3-91 자판은 문장용 타자기 자판의 후속판이라고 볼 수 있다.


(5) 수동 타자기 설계를 헤아린 3-91 자판의 배열 요소

  3-91 자판이 수동 타자기 설계를 헤아렸다는 증거는 특히 받침 배열에서 두드러진다. 이를 이해하려면,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의 작동 방식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영문 수동 타자기는 로마자와 숫자·기호가 들어간 글쇠 모두가 움직글쇠이다. 움직글쇠는 눌렀을 때에 활자를 찍기 전이나 찍은 뒤에 종이가 놓인 둥글대(platen)가 움직이는 글쇠를 이른다. 하지만 한글은 첫소리와 가운뎃소리(홀소리)와 끝소리(받침)를 한 낱내로 모아써야 하므로, 한글 수동 타자기는 둥글대가 움직이지 않은 채로 찍히는 안움직글쇠를 둔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흔히 쓰인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는 첫소리와 가운뎃소리(홀소리)가 움직 글쇠에 들어갔고, 겹홀소리에 쓰는 ㅗ·ㅜ와 받침은 안움직글쇠에 들어갔다. 이 설계를 따른다면, 받침과 홀소리는 한 글쇠에 들어가지 않아야 좋다.

  3-91 자판에서 자주 쓰이는 받침인 ㄲ·ㄺ·ㅈ이 맨 윗줄에 들어간 것이 이 때문이다. 그 동안 흔히 쓰인 공병우 수동 타자기의 틀에서는 3-91 자판의 ㄳ·ㄻ·ㄼ·ㄽ·ㅀ·ㅋ처럼 홀소리와 한 글쇠에 들어간 받침을 바른 자리에 찍기가 까다롭다. 3-91 자판을 쓴 수동 타자기는 끝내 나오지 않아서 어떤 방식으로 타자기를 만들고자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받침 ㄲ·ㄺ·ㅈ을 굳이 받침 자리에 놓인 것으로 미루어 보면 3-91 자판은 흔히 쓰였던 공병우 수동 타자기 방식으로 설계하는 것을 의식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수동 타자기 설계 문제는 다음 글마디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물음표(?)의 자리도 안움직글쇠 자리인 오른쪽 ㅗ 자리를 피하여 움직글쇠로 옮겼다고 볼 수 있다. 3-91 자판에서는 느낌표(!)가 물음표보다 덜 쓰인다고 보고 느낌표를 안움직글쇠 자리(오른쪽 ㅗ 자리)에 넣은 셈이다.

  겹홀소리를 만들 때에 쓰는 ㅗ·ㅜ를 따로 둔 것은 공병우 수동 타자기의 움직/안움직 글쇠 구성이 초창기 방식과 달라지면서 나타난 요소이다.주4 그렇더라도 전자식 기기에서도 ㅗ·ㅜ가 오른쪽에 따로 있으면 좋은 점이 많다. 겹홀소리를 칠 때에 왼손 타수를 줄여 왼손에서 일어나는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를 줄이면서 두 손을 번갈아 쓰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3-90 자판과 3-91 자판의 홀소리 배열을 따를 때에는 ㅗ·ㅜ 글쇠가 두 개씩 있는 것을 이용하여 3-2011 자판에서 처음 시도한 특수기호 확장 배열을 덧붙일 수도 있다.


(6) 3-91 자판으로 쓸모 있는 수동 타자기를 만들 수 있을까?

  공병우 자판을 쓰는 이들 사이에서는 3-91 자판이 한글 기계화와 전산화와 함께 이룰 수 있는 배열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3-91 자판으로 쓸 만한 수동 타자기를 만들려면 넘어야 할 문제가 많다. 거기다가 3-91 자판을 쓴 수동 타자기가 나온 적이 없어서 얼마나 쓸모 있는 제품이 나올 수 있는지는 이론만으로 장담하기 어렵다.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에 겹받침 활자가 많이 들어가면, 겹받침을 만들어 칠 때의 군손질을 줄일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요즘한글의 모든 겹받침을 갖춘 3-91 자판의 특징을 수동 타자기에 반영할 수 있을지가 큰 골칫거리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움직/안움직 글쇠 처리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흔히 쓰였던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 설계를 단순하게만 따른다면, 3-91 자판에서 홀소리와 한 글쇠에 들어가는 ㄳ·ㄵ·ㄻ·ㄼ·ㄽ·ㅀ·ㄾ·ㄿ·ㅋ 받침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나온 적은 있다. 1970년대 초에 처음 나왔던 한·영 겸용 타자기는 영문 로마자가 한글 받침 자리에 걸쳐 들어갔다. 이 배열을 구현하려면 한글 받침 자리 글쇠가 로마자를 찍는 상태에서는 움직글쇠로 구실하고 받침을 찍을 때는 안움직 글쇠로 구실하게 하게 해야 했으므로, 복잡한 움직/안움직 글쇠 장치와 휘어진 막대 활자가 들어갔다.

  하지만 이렇게 타자기를 만들려면 생산 과정이 복잡해져서 더 숙련된 기술자와 더 많은 생산비가 필요했고, 고장이 잦아져 제품 수명이 짧아지는 문제도 있었다. 더구나 휘어진 활자에서 찍히는 글씨가 흐렸고, 휘어진 활자가 서로 부딛혀 깨질 확률도 있어서 공병우 타자기의 특징인 쌍초점 방식의 이점이 사라지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그 뒤의 공병우 한·영 타자기는 받침 자리를 피하여 영문 배열을 놓는 방법으로 타자기를 간단한 설계하는 쪽으로 바뀌었다.주5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정교한 움직/안움직 글쇠 장치를 써서 3-91 자판을 쓰는 수동 타자기는 만들더라도 글씨가 흐리거나 유지·보수가 쉽지 않은 부품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대안으로 홀소리와 받침을 모두 안움직글쇠로 찍는 방법이 있다. 이는 1950년대 초까지 쓰인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의 방식이다. 3-91 자판은 왼쪽 글쇠에 거의 홀소리와 받침이 차지하고 있는 점이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 자판과 비슷하여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의 방식대로 수동 타자기를 만들기에 알맞다.

  초창기 방식을 따를 때에도 몇몇 기호들이 걸린다. 왼쪽 ㅜ에 들어간 물음표(?)와 오른쪽 ㅗ에 들어간 느낌표(!)가 안움직글쇠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안움직글쇠에 들어간 기호는 치기 전과 후에 사이띄개를 눌러 주어야 해서 쓰기 번거롭다. 주6

3-91 자판 수동식(기계식) 타자기 배열
3-91 자판의 수동 타자기 배열 (공병우, 『한글과 나 · 공병우』, 1994)
3-91 자판 전자식 타자기 배열
3-91 자판의 전자식 타자기 배열 (공병우, 『한글과 나 · 공병우』》, 1994)

  3-91 자판은 셈틀(컴퓨터), 기계식 타자기, 전자식 타자기에 각기 맞춘 3가지 배열이 제안되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3-91 자판 배열은 셈틀에 맞춘 배열이다. 위와 같은 3-91 자판 배열을 쓴 기계식(수동) 타자기와 전자식 타자기는 실제 제품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나온 공병우 타자기는 3-90 자판을 바탕으로 한 수동 타자기 제품이었다.

 [얽힌 글 :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다섯째 세대〉(http://pat.im/962)]

  이처럼 3-91 자판을 쓴 수동 타자기를 쓸모 있게 만들려면 한글뿐만 아니라 기호에 얽힌 문제도 슬기롭게 풀 수 있어야 한다. 흔히 한글 타자기 설계는 한글 쪽만 바라보기 쉽지만, 쓸모 있는 한글 기기를 만들고자 할 때에는 기호 배열도 만만하지 않은 복병이 되곤 한다. 적어도 기호 때문에 셈틀에서 쓰는 3-91 자판을 그대로 타자기에 쓰기는 어렵다. 이론으로 따진다면 3-91 자판과 비슷한 배열을 쓰는 수동 타자기는 나올 수 있지만, 3-91 자판과 똑같은 배열을 수동 타자기에서 아무 문제 없이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91 자판을 쓴 수동 타자기가 얼마나 편리하고 쓸모 있을지도 실물이 없이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쓸모 있는 타자기라면 글씨체와 치는 방식 모두 타자기를 쓰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겠지만, 이 두 가지가 다 좋은 한글 수동 타자기는 나오지 못했다. 한글 수동 타자기는 자판 배열에 따라 글씨체가 달라질 수도 있을 만큼, 두 가지가 설계 요소로서 얽혀 있다. 공병우 수동 타자기는 줄곧 들쭉날쭉한 글씨체가 약점으로 꼽혔지만, 글쇠를 치는 방법은 타자기를 치는 사람에게 가장 편했다. 안움직글쇠에 들어간 기호를 치거나 홑받침으로 겹받침을 조합해야 치는 때가 아니면 셈틀에서 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글을 칠 수 있다. 그러므로 3-91 자판을 쓴 수동 타자기를 만든다면, 앞서 나온 공병우 수동 타자기처럼 편하고 빠르게 칠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공병우 타자기의 약점이었던 글씨체는 수동 타자기의 틀에서는 쉽게 개선하기 어려울 요소이고, 어떻게든 글씨체 문제를 개선할 수 없다면 실용성이 높다고 평가받기 어렵다.

  글쓴이는 3-91 자판을 조금 고친 꼴로 전자식 타자기나 문서 전용기는 쓸모 있게 만들 수는 있다고 본다. 아래와 같은 3-2011 직결식 자판처럼 요즘한글의 모든 겹받침을 넣으면서 특수기호 확장안을 넣는다면, 직결식 처리를 할 수 있으면서 일반 타자기보다 많은 기호를 넣을 수 있어서 편리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이런 배열은 글쇠를 눈으로 보고 쓸 수 있는 기기에서 써야 편리하게 쓸 수 있는데, 이제는 드물게 쓰이는 표준 두벌식 배열 전자식 타자기마저 언제 시장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형편이어서 세벌식 자판을 쓰는 전용 기기 개발은 시장 수요에만 기대서는 바라기 어려울 것 같다.

세벌식 3-2011 직결식 자판의 특수기호 확장안
3-2011 직결식 자판 (특수기호 확장안)

(7) 3-91 자판은 왜 존중받을까?

  3-91 자판이 공병우 자판을 쓰는 이들 사이에서 존중 받는 것은 다음 까닭들 때문인 것 같다.

① 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창안하고 실용화한 공병우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배열임
② 타자기와 비슷한 배열 방식을 이어감
③ 한글문화원에서 내놓은 배열 가운데 한글을 가장 매끄럽게 치기 좋음
④ 배열 이름에 ‘최종’이 들어가 있음

  ‘공병우’라는 한 사람이 한글 세벌식 자판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1947년에 한글 타자기 연구에 뛰어들어 199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널리 쓰인 세벌식 자판에 ‘공병우’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이 한 사람이 꾸준히 연구와 개발을 주도해 왔다. 소설가 정을병님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문장용 타자기 자판이나 한글문화원의 연구원이었던 박흥호님의 주도로 만들어진 3-90 자판처럼 다른 이가 공병우식 자판 배열 연구에 이바지한 예는 있었지만, 한글 자판 배열 연구에 그토록 오래 매달린 사람은 없었다. 그런 공로만 보더라도 ‘공병우’라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3-91 자판은 크게 존중받을 만하다. 이는 공병우 자판을 쓰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이 3-90 자판보다 3-91 자판을 더 정통성 있게 바라보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3-91 자판이 타자기에서 쓰인 배열 방식을 이어간 것도 높이 볼 수 있다. 앞에서 본 것처럼 3-91 자판을 그대로 써서 수동 타자기를 만들기는 쉽지 않겠지만, 수동 타자기에서 쓰인 한글 배열 방식이 셈틀에서도 통하는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이제는 그다지 뜻을 둘 수 없게 되었지만, 1980~1990년대처럼 한글 입력 도구로 수동 기기와 전자 기기가 함께 쓰이던 때에는 타자기와 셈틀에서 함께 쓸 수 있는 한글 배열의 매력이 높았다.

  1990년대까지 나온 공병우 자판 가운데 가장 한글을 매끄럽게 칠 수 있는 배열이라는 점은 3-91 자판의 권위를 높이는 요인이다. 그 동안 공병우 자판은 홀소리와 받침 쪽에서 글쇠 자리가 숱하게 바뀌었는데, 3-90 자판에 이어 3-91 자판에 이르러서 많은 홀소리와 받침들이 자리가 잡혔다고 볼 수 있다. 3-91 자판의 매끄럽게 치기 좋게 다듬어진 한글 배열은 3-90 자판을 쓰다가 3-91 자판으로 바꾸어 쓰는 이가 많게 한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기호 배열도 영문 자판에 얽매이지 않고 한글 문장을 치기 좋게 놓으려 한 것도 훌륭한 점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 공병우 자판에 대한 개선안을 연구할 때에 3-91 자판에서 좋은 취지로 본받을 만한 점이 많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세벌식 최종'처럼 여러 운영체제의 입력기에서 흔히 불리는 이름에 들어간 '최종'이 공병우식 배열들의 품질에 대한 오해를 일으키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이에 관한 문제를 다음 글마디에서 더 살펴 본다.


(8) 3-91 자판의 겹받침/기호 배열 문제

  모든 자판 배열이 완벽할 수는 없듯이, 3-91 자판 배열에도 나쁜 면은 있다.

  공병우 세벌식의 가장 큰 약점은 먼저 홀소리와 받침이 있는 왼손 쪽에 있다. 오른쪽에 넓게 있는 첫닿소리 자리에 비하면 홀소리와 받침 자리는 비좁아서 한 손가락이 많은 낱소리를 맡고 있다. 이 때문에 홑받침을 따로 쳐서 겹받침을 칠 때에는 같은 손가락을 거듭 쓸 때가 잦을 수밖에 없다. 이 거듭치기를 막으려고, 공병우 자판들에는 ㄲ·ㄶㄺ·ㄻ·ㅀ처럼 자주 쓰이는 겹받침이 따로 들어가 있다.

  왼손 타수를 줄여 공병우 세벌식의 약점을 가리려면 겹받침은 어느 만큼 들어가야 좋지만, 3-91 자판처럼 요즘한글에 들어가는 모든 겹받침이 들어가는 배열은 처음 익히는 이뿐만 아니라 익숙하게 쓰는 이에게도 어려움이 있다. 3-91 자판을 쓰는 이들은 거의가 글쇠 배열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자판을 치는 형편이어서, ㄽ·ㄾ·ㄿ처럼 매우 드물게 쓰이는 겹받침을 만나면 어느 자리에 있는지 떠올리지 못하여 헤매기 쉽다. 겹받침이 많이 들어갈수록 배열이 복잡하고 어렵게 보여서 많은 사람들이 공병우 자판을 익히려는 뜻을 꺾기 쉽다.

  기호 쪽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3-91 자판은 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매우 달라서 처음 익히는 이뿐만 아니라 잘 익혀 쓰는 이에게도 어렵다. 영문 배열과 오가며 쓸 때에는 한글/영문 상태에서 서로 다른 기호 자리를 떠올리는 일이 큰 스트레스를 일으키곤 한다.

  3-91 자판에서 빼기 부호(-)나 큰따옴표(")와 같은 기호는 치기 좋은 자리에 놓여 있지만, 작은따옴표(')이나 쌍점(:) 등은 썩 좋지 않은 자리에 있다. 같음표(=), 머무름표(;) 같은 기호들의 자리는 3-91 자판을 쓰는 많은 이들이 자리를 어색하게 느껴서 영문 자판 배열에서 넣을 때가 많다. 또 @, #, $, ^, &, [, ]처럼 문서나 대화 등에 자주 쓰일 수 있는 기호들이 빠져 있는 것은 요즈음에 볼 때에 큰 결함이다.

  3-91 자판이 한글 문장을 치기 좋게 기호를 두려 한 취지는 좋으나, 기호 배열에서 일관성은 잘 살리지 못하여 기호들의 자리를 익히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자리가 어색한 기호들과 아예 빠진 영문 자판의 기호들 때문에 3-91 자판을 쓰는 이들은 멀쩡히 들어 있는 숫자·기호까지 영문 배열에 넣는 버릇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3-91 자판을 실무용으로 잘 쓰려면 적어도 특수기호 확장안이 필요한 형편이다.

   3-91 자판은 기호들을 많이 쓰지 않는 작업만 할 때에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수식이나 명령어를 쓸 때도 있는 실무 작업에 쓰기에는 맞지 않다. 처음 익히는 이는 3-90 자판이나 3-2012 자판처럼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이 비슷한 세벌식 배열을 실무용으로 익혀야 바람직하다. 3-91 자판이 취향에 맞다면 3-2011 자판처럼 3-91 자판의 취지를 많이 따른 수정안에 관심을 돌려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9) '따봉'을 떠올리게 하는 3-91 자판의 이름 문제

  3-91 자판의 본래 이름인 ‘공병우 최종 자판’은 공병우가 내놓은 마지막 자판 배열을 뜻한다. 하지만 이 이름이 ‘세벌식 최종’과 같은 꼴로 바뀌어 불리면서 3-91 자판이 ‘공병우 세벌식’뿐만 아니라 모든 계열의 세벌식 배열 가운데 으뜸이라는 오해까지 일으키고 있다. ‘최종’이 강조된 이름은 사람들이 덮어놓고 3-91 자판이 가장 나은 세벌식 배열이라고 여기게 한다.

  3-91 자판에 붙은 ‘최종’은 앞서 나온 3-90 자판을 밀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3-90 자판은 영문 쿼티 자판과 비슷한 기호 배열을 앞세워 3-91 자판보다 편리하게 쓰였으나, 이제는 3-91 자판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3-91 자판에 붙은 ‘최종’이 3-90 자판보다 훌륭하게 보이는 요인이 되었고, 3-90 자판을 쓰던 이들에게도 3-91 자판으로 바꿔 쓰게 하도록 자극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공병우 자판을 오래 쓴 이들이 주로 3-91 자판을 내세우는 분위기도 공병우 자판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3-90 자판을 먼저 알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3-90 자판 (390 자판)
3-90 자판 (IBM 세벌식)

  3-90 자판은 겹받침이 적고 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비슷하여 적응하기 쉽지만, 3-91 자판은 겹받침이 많고 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매우 달라서 처음에 익히기 어렵다. 그래서 3-90 자판을 먼저 익히면 나중에 3-91 자판으로 바꾸어 쓰기가 더 쉽지만, 3-91 자판을 바로 익히려 하면 많은 겹받침과 낯선 기호 배열과 함께 씨름하기 버거워서 익히기를 포기할 확률이 높다. 특히 3-91 자판의 기호 배열이 일으키는 스트레스는 3-91 자판에 적응하고 나서도 공병우 자판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두벌식 자판으로 돌아가게 하는 요인이 될 만큼 심각한 문제이다.

  1990년대 초에는 도스(DOS)가 운영체제로 쓰이는 IBM 계열 PC에서 거의 3-90 자판이 쓰였고, 3-91 자판은 매킨토시 등에서 드물게 쓰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3-90 자판을 먼저 익혔고, 나중에 취향에 따라 3-91 자판으로 바꾸어 쓰기도 하였다. 그래서 3-90 자판이든 3-91 자판이든 공병우 자판을 쓰는 사람이 많이 늘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는 어려운 3-91 자판을 바로 익히는 이들의 비율이 늘면서, 3-91 자판을 익힌 이들의 비율은 늘었지만 공병우 자판에 안착한 사람들의 전체 수는 크게 늘지 못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IME 2010 한글 입력기 설정
윈도 IME 2010의 한글 입력기 설정 창
  윈도(Windows)를 비롯한 많은 한글 입력기에는 3-91 자판이 '세벌식 최종', '세벌식 최종 자판'과 같은 이름으로 들어가 있다. 3-90 자판이 기호 배열 때문에 더 두루 쓰기 좋은 세벌식 자판이지만, 이런 설정 창을 본 사람은 3-90 자판보다 '세벌식 최종 자판'으로 들어간 배열이 더 좋게 보여서 3-90 자판에는 관심을 두기 어렵다.

  그런 부작용이 있는데도 세벌식 자판을 익히려는 사람들이 3-91 자판에 매달리는 것은 ‘최종’이라는 이름이 남기는 인상 때문일 것이다. ‘최종’이 붙은 배열 이름 때문에 3-91 자판이 으뜸이며 대표안이라는 선입견이 남기 마련이다. 더구나 지금은 두 자판을 함께 보급했던 1990년대의 한글문화원처럼 공병우 자판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단체의 활동을 바랄 수 없어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 오해를 풀어 밝히기가 쉽지 않다.

  비슷한 문제를 염려하여 상표법에서는 ‘최고’, ‘베스트’, ‘나이스’처럼 수요자가 상품의 품질을 오해하게 하는 말이 붙은 상표를 등록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때문에 1990년에 롯데칠성음료가 ‘델몬트 따봉 주스’라는 상표를 출원하고 야심차게 TV 광고까지 했다가, ‘매우 좋음’이라는 뜻이 널리 알려진 브라질말 ‘따봉’ 때문에 상표 등록을 거절당했던 예가 있다.





  1989년에 방송된 롯데칠성음료의 델몬트 오렌지 주스 TV 광고는 '따봉'이라는 브라질 말(에스파냐 말)을 넣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이 광고를 통하여 '매우 좋음'이라는 뜻으로 알려진 '따봉'은 한국 사람들 누구나 즐겨 쓰는 말로 번졌다. 그런데 정작 '따봉'에 열광한 사람들이 광고에 나온 주스 제품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광고는 실패 사례로 꼽히고 있다. 그래서 롯데칠성음료는 '델몬트 따봉 주스'라는 상표를 등록하여 광고 실패를 만회하고자 야심차게 TV 광고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따봉'의 뜻이 너무 잘 알려진 탓에 '델몬트 따봉 주스'는 특허청으로부터 등록이 거절되었다. 만약 '따봉'을 넣은 제품 이름이 등록 상표로 인정받았다면, 롯데칠성음료는 조미료 시장의 '미원'처럼 과일 주스 시장을 휘어잡았을 것이고 다른 경쟁사들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자판 배열 이름을 꼭 상표법을 헤아려 지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종’처럼 사람들의 오해를 일으키는 이름은 피해야 옳다. 나중에 더 개선한 자판 배열을 만들더라도 100년 뒤에도 ‘최종’이라고 불릴 배열이 가로막으면 널리 쓰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3-91 자판의 이름이 일으키는 문제 때문에 공병우 자판의 역사가 더 일찍 끝날지도 모른다. 이는 평생을 한글 기계화에 힘을 쏟으며 자판 배열 개량에 힘썼던 공병우 박사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다.

  3-91 자판 이름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면, 이제부터라도 공병우 자판을 쓰는 이들 사이에서 오해를 일으키지 않는 이름으로 바꾸어 부를 필요가 있다. 발표한 해(1991년)를 딴 ‘3-91 자판’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고, 굳이 본래 이름을 살리려면 ‘3-91 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부르는 쪽이 바람직할 것이다. 아니면 배열 특징에 따른 쓰임새를 강조하여 ‘3-91 문장용 자판’으로 부르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세벌식 최종’이라는 이름은 공병우식뿐만 아니라 안마태식을 비롯한 계열이 다른 세벌식 자판까지 아울러 보게 하는 이름이어서 형평에 맞지 않다.


(10) 3-91 자판은 일반 보급용 최종안으로 나왔을까?

(2012.12.28 덧붙임)

  3-91 자판의 배열 이름인 '공병우 최종 자판'의 '최종'이 어떤 뜻에서 붙었든, 공병우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3-91 자판을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최종' 완결판으로 여기는 일이 잦다. 3-91 자판의 설계자인 공병우 박사가 어떤 뜻에서 이 배열을 보급하려 했는지 바로 알고 싶다면, 3-91 자판이 막 보급되던 때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초에 한글문화원은 자판에 붙이는 딱지를 나누어 주는 방법으로 3-90 자판과 3-91 자판을 모두 보급헜다. 3-90 자판은 IBM 계열 PC에서 도스 응용 풀그림을 통하여 3-90 자판을 쓰였다. 윈도(Windows) 운영체제가 널리 쓰이기 전까지는 IBM 계열 PC에서는 도스 풀그림들이 3-90 자판을 각기 지원해야 했다. 매킨토시에서는 운영체제의 여러 응용 풀그림이 3-91 자판을 함께 쓸 수 있는 입력기를 한글문화원이 개발하여 보급했다. 도스 환경에서 3-91 자판을 쓰려면 사용자 정의 자판을 만든다든지 하는 사용자의 작업이 필요했고, 도스판으로 시작한 아래아한글·이야기·한메타자교사 같은 풀그림은 윈도판이 나온 1990년대 후반에도 3-91 자판 지원이 늦었다.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쓸 수 있는 입력기가 널리 쓰이게 된 것도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

3-91 공병우 최종 자판 딱지
한글문화원이 나누어 준 3-91 배열 딱지를 붙인 자판
  공병우 박사가 한글문화원을 운영하던 1995년까지는 3-91 자판 배열을 글쇠에 배열을 새긴 자판 제품이 나오지 않았다. 1990년대 초에 한글문화원은 위 사진처럼 글쇠 위에 붙여 쓰는 딱지(스티커)를 우편으로 나누어 주는 방법으로 3-90 자판과 3-91 자판을 함께 보급했다.

  세벌식 자판 진영에서의 공병우 박사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1990년대 초에 3-91 자판을 도스 풀그림에서 쓰게 하거나 딱지가 아닌 글쇠에 배열이 찍힌 자판 제품으로 3-91 자판을 보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 박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3-90 자판은 IBM 계열에서 쓰고 3-91 자판은 매킨토시 같은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에서 쓴다는 원칙이 처음에는 잘 지켜졌다. 글쓴이는 그 까닭을 이렇게 짐작한다.

  먼저 공병우 박사는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인 매킨토시에 익숙했다. 매킨토시에서 입력기·글틀·글꼴을 개발한 개발자였지만, 도스 운영체제처럼 그래픽 환경이 아닌 환경에서 명령어를 쳐서 셈틀을 쓰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분이다. 하지만 3-91 자판과 같은 배열을 도스에서 쓸 때에 사용자들이 어떤 문제를 겪을지는 알고 있었으므로, 3-90 자판을 만드는 일을 지원하고 셈틀 계열을 나누어 3-90 자판을 3-91 자판과 함께 보급하고자 하였다.

  또 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표준화하는 과제가 있었다. 1990년대 초에는 3-90 자판이 보급되면서 타자기를 쓸 적보다 공병우 자판을 쓰는 이가 크게 늘었고, 공병우 자판을 쓰는 이들에게서 나오는 좋은 평가는 세벌식 자판을 표준 배열로 지정할 것을 요구하는 여론을 일으켰다. 그래서 세벌식 표준안 연구를 통하여 3-90 자판과 3-91 자판에 이은 개선안을 한 번 더 마련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었고, 검증이 필요한 과감한 실험은 되도록 표준안을 마련하는 단계가 되기 전에 마칠 필요가 있었다.

  3-91 자판에는 지난날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한 부분이 있다. 3-91 자판에서 자주 쓰이는 손톱묶음 ( )과 같은 기호가 오른쪽 새끼 손가락의 자리에 들어 있는 모습은 글쇠 누르는 힘이 많이 들었던 수동 타자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특징이다. 이런 요소가 3-91 자판이 널리 쓰이기 전에는 얼마나 좋고 나쁠지 여러 사람에게 검증받을 기회가 없었다. 3-91 자판을 '최종안'으로 보지 않는다면, 새로 시도한 3-91 자판의 배열 요소는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좋으면 그대로 두고 나쁘면 다음 개선안에서 고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글쓴이는 3-91 자판을 '일반 보급용 최종안'이 아니라 '공병우 개인의 최종안'으로 나왔다고 본다. 3-91 자판을 내놓을 무렵의 공병우 박사는 여든을 훌쩍 넘겨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였던 만큼, 그 때까지 배열 작업을 해 왔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공 박사는 그 뒤에도 공병우 자판에 대한 보완 작업과 표준화 논의가 다른 이들의 손에서 더 이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11) 3-91 자판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3-91 자판이 발표되었던 1991년은 아직 3-90 자판을 익히는 공병우 자판 사용자가 한창 늘어나던 때였다. 셈틀에 쓰인 일반 보급용 배열만 따진다면 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아직 초창기 단계나 다름없었으므로, 더 늘어난 사용자들의 의견을 모아서 언젠가는 더 개선할 배열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더 앞서 나왔던 3-89 자판의 문제점은 3-91 자판처럼 영문 자판과 매우 다른 기호 배열에 있었다. 3-90 자판은 기호 배열을 영문 자판과 비슷하게 맞추고 겹받침 수를 줄인 덕분에 명령어를 많이 쓰는 도스 사용자들이 편리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3-91 자판은 3-89 자판의 기호와 겹받침 문제를 다시 살려 놓은 꼴이 되었다. 따라서 3-91 자판에 대한 개선안에서는 기호 배열의 문제를 꼭 풀어야 한다.

3-2011 자판 (기본안)
3-2011 자판 (기본 배열)
세벌식 3-2011 자판 특수기호 확장안
3-2011 자판 (특수기호 확장안)

  아직 유력한 단체가 만들었거나 인정한 3-91 자판의 개선안은 없지만, 3-91 자판의 배열 취지를 살리는 수정안으로 글쓴이가 제안한 3-2011 자판이 있다. 겹받침 수를 줄여 @·#·$·&를 비롯한 사무에 쓰이는 기호를 더 넣었고, 자주 쓰이지 않는 기호는 되도록 영문 쿼티 자판과 같은 자리에 두고자 하였다. 3-91 자판보다 더 쉽고 익히고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기호 배열에서 일관성을 살리고자 하였다. 또한 겹홀소리에 쓰는 홀소리를 두 개씩 둔 공병우 세벌식의 틀을 응용하여 기본 배열에 두지 못한 더욱 많은 기호들을 손쉽게 넣을 수 있는 특수기호 확장 배열을 두었다.

3-91 자판의 특수기호 확장 배열 예시안
3-91 자판의 특수기호 확장안 (예시안)

  위 배열처럼 3-91 자판의 바탕 배열을 그대로 두고 3-2011 자판에서 쓴 것과 같은 특수기호 확장안을 덧붙이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바탕 배열의 문제점을 그대로 두고 확장 배열로만 땜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특수기호 확장 배열은 글쇠에 찍어서 쓰기 어려우므로 외워 쓰기 쉬운 꼴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확장 배열은 영문 쿼티 배열을 따라야 해서 3-91 자판의 기본 배열 취지와 어긋난다.

  3-91 자판 또는 이에 대한 개선안은 대표안이 아닌 응용안으로서 취향에 맞는 사람들이 골라 쓰게 해야 한다. 3-91 자판을 아무리 잘 고치더라도 처음 익히려는 이에게는 어렵기 때문이다.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이 비슷한 3-90 자판이나 3-2012 자판주7이 일반 보급용 배열로서 널리 쓰여야, 3-91 자판이나 3-2011 자판 같은 문장용 배열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쓰일 수 있다. 많은 세벌식 자판 사용자들이 자판 배열을 눈으로 보며 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다는 점을 헤아린다면, 일반 보급용 세벌식 배열로 조금이라도 더 익히기 쉬운 배열을 권장해야 한다.

세벌식 3-2012 자판 (기본 배열)
3-2012 자판 (기본 배열)

  3-91 자판의 한글 배열은 앞서 나온 공병우 자판 배열보다 잘 다듬어져 있어서 뒤이어 나올 공병우 자판 개선안의 좋은 밑바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3-91 자판의 기호 배열은 취지를 잘 살리지 못한 면이 있으므로, 이를 어떻게 편리한 쪽으로 바꾸어 갈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3-91 자판은 더 검토하여 고칠 수 있는 과도기형 배열에 가까운 만큼, 앞으로 공병우 자판이 널리 쓰이는 일은 새로운 개선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주석〉
  1. 그래서 이 무렵에 비싼 돈을 들여 타자기나 문서 전용기를 샀던 사람들은 기기가 너무 빨리 고물이 되어버리는 일을 흔히 겪었다. back
  2.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다섯째 세대(http://pat.im/962)에서 3-91 자판의 선택 글쇠를 쓰는 기호 확장 배열과 수동식/전자식 타자기 배열을 소개하였다. back
  3.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에 관한 내용을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3. 세째 세대(http://pat.im/960)에 설명하였다. back
  4.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에는 홀소리가 안움직글쇠에 들어갔으나 그 뒤에는 홀소리가 움직글쇠에 들어갔다. 그래서 겹홀소리를 만들 때에 쓰는 ㅗ·ㅜ를 따로 안움직글쇠 자리에 둘 필요가 생겼다. back
  5. 한·영 타자기의 이러한 설계 문제 때문에 공병우 타자기는 세째 세대 배열에 이어 네째 세대 배열로 한글 배열이 바뀌었다. back
  6. 셈틀 배열에는 오른쪽 ㅜ 자리에 들어간 작은따옴표(')도 문제 삼을 수 있는데, 3-91 자판의 기계식 타자기 배열에는 작은따옴표가 아예 빠져 있다. back
  7. 3-2012 자판은 영문 자판과의 호환성을 높인 3-90 자판의 취지를 살리고자 한 개선안이지만, 숫자와 받침 배열은 3-91 자판을 많이 따랐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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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벌 2012/12/26 07:3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한글과 나 공병우 1994 이런 책은 어디서 보셨나요?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어려울텐데...
    3-91 수동타자기도 있었나보죠?

    "세벌식최종"이라는 용어는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용어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쓰고 계셔서 바꾸기 쉽지 않을 듯하네요. "공병우세벌식최종" 또는 "391자판"등오로 부르면 좋을텐데...

    • 팥알 2012/12/26 10: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한글과 나 공병우》는 한글문화원에서 설문조사에 답한 사람에게 나누어 준 소책자입니다.
      한글문화원이 나누어 준 다른 소책자에 여러 사람의 글이 모여 있는 것과 달리, 공병우 박사님의 짧은 글들이 모여 있고 공한체를 비롯한 세벌체로 쓰여 있습니다.
      공병우 박사님의 글은 '남산에 끌려 갔던 이야기'처럼 자서전이나 다른 한글문화원 소책자에 나왔던 글을 짤막하게 다시 실은 듯한 내용이 많고(아마 PC 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글인 듯), 마지막에 3가지 3-91 자판 배열이 나와 있는 것이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귀중한 자료 같습니다.
      세벌님은 세벌식 자판 위키를 만드는 분이니,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혹시 개인적으로 사본을 만들면 세벌님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3-91 자판을 쓴 타자기는 보지 못했고, 3-90 자판과 비슷한 배열을 쓴 수동 타자기를 세종대왕기념관에서 보고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제품 사진으로도 보았습니다.

      3-91 자판 이름은 이미 널리 쓰이는 이름을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관심 있거나 연구하는 사람들끼리라도 바꾸어 부른다면 언젠가 좋은 쪽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자판이 언제 나왔는지만 잘 알려진다면, '최종'이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사람들이 알게 될 테니까요.

  2. 명랑소녀 2012/12/26 07: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안녕하세요, 이메일 주고받았던 박한철입니다.
    좋은 글입니다. 팥알님 말씀대로 3-91 의 기호 배치는 따를 점도 있지만 오늘날 자판 생활에서 개선할 점이 많다고 봅니다. 지난번 보여 드린 제 자판을 보며 생각해 보니 한글 자판에서 {}` \| 는 거의 쓰이지 않으므로 이 정도를 포기하면 ㄹㅍ,ㄹㅌ,ㄹㅅ 을 제외한 모든 받침을 싣고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ㄲ 과 ㄱㅅ을 다시 넣었죠. 그러고 보니 시작은 3-2012 였지만 결국은 3-2011 과 비슷한 자판이 되더랍니다. 물론 저는 영문 자판의 기호 배치도 바꾸었지만요.

    말씀하신 대로 3-91 기호 배치의 문제는 자주 쓰이지만 편하지 않은 배치 ( ': 등), 쿼티와 이질적인 배치 (=; 등), 없는 기호 ( []#^$@& 등) 가 있겠습니다. 없는 기호는 채워넣을 수 있고 불편한 위치는 편한 데로 옮기면 되겠지만 쿼티와 이질적인 기호 배치는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죠. =나 ;은 자주 나오지 않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잘 쓰이지 않을수록 쿼티에 가깝게 배치한다는 의견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아무튼, 제 지금 자판은 3-2011 과 통하는 데가 있으며 {}` 가 없고 ㄹㅌ,ㄹㅍ,ㄹㅅ이 없습니다. 세로선 |을 빼고 가운뎃점을 넣으면 3-2011 과 가진 글쇠가 같아지겠지만 일단 가운뎃점은 확장 글쇠에 두었습니다. \| 을 빼고 <>을 거기로 옮겨서 ,.을 숫자와 같이 쓰기 편하게 하는 3-91 의 장점을 살려 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어차피 소숫점과 반점을 섞어 숫자를 쓰는 일이 거의 없고 한글 자판에서 \| 를 입력하는 일도 거의 없어서 아무래도 좋은 상황입니다. 글쇠 몇 개를 포기한다고 생각하니 자판 설계에 여유가 생겼군요.

    • 팥알 2012/12/26 13:2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3-91 자판이 일반 보급용으로는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더라도, 자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실험 정신을 일깨우는 건 좋은 점이었다고 봅니다.

      3-91 자판에서 기호들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떠올리는 어렵다는 점은 큰 문제라고 봅니다. 따옴표는 따옴표끼리 괄호는 괄호끼리 어느 한 쪽에 쓰임새에 따라 끼리끼리 붙어 있으면 손가락이 쉽게 나갈 텐데, 이리저리 흩어져 있어서 한글 타자까지 둔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2011 자판에서 이런 점을 정말 잘 헤아려 기호들을 두려 했는데, 아마 3-91 자판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이 볼 때에 3-2011 자판의 기호 배열도 낯설고 어렵기는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3-91 자판이나 3-2011 자판처럼 기호 배열을 영문 자판과 다르게 만든 배열은 일반 보급용은 아니더라도 취향에 맞는 사람이 골라 쓰는 배열이 되면 좋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일반 보급용 배열을 아무리 잘 만들더라도 모든 사람의 필요에 정확히 맞출 수는 없으니, 딱 한 사람에게 맞추었거나 실험성이 강하다고 하여 자판 배열을 나쁘게 여길 수 없겠더군요. 차 운전하는 장애인 한 사람을 배려하려고 법을 바꾸기도 하는 세상이니까요.

      영문 자판의 기호 배열까지 바꾸는 일은 제가 생각이 못 미쳤던 데인데, 이런 부분까지 시도하시는 것이 놀랍습니다. 쿼티 자판의 기호 배열은 셈틀에서 자판을 배운 세대들이 거스르기 어려운데, 박한철님이 시도하고 있는 기호 배치는 저와 다른 연구자들에게 큰 자극이 될 듯합니다.

  3. 명랑소녀 2012/12/26 18:0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http://pat.im/963 처럼 그 동안 시도되었던 세벌식 자판의 다른 배치들을 총망라한 자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세사모에 특백님이 올린 배열은 모든 겹받침을 망라하고 3-90과 비슷한 숫자 배열을 가졌지만 한글 배치가 매우 이질적이죠. 다른 사람이 구상한 자판을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거기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때가 많거든요.

    • 팥알 2012/12/27 09:2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제가 올린 글에는 거의 정통 공병우 세벌식만 다루었고, 색다른 공병우 세벌식 배열이나 계열이 다른 세벌식 배열은 다루지 못했습니다.
      다른 배열과도 비교·분석한다고 생각만 하면서 시간이 가고 있네요.
      틈틈이 정리해서 언젠가(?)는 글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꼭 세벌식이 아니더라도 논문으로 나온 건 김국 교수가 제안한 두벌식/세벌식 배열이 꽤 있고, 타자기에 쓰인 배열도 참 다양했지요.

      제가 세벌식 모임에 처음 가입한 건 지금 다음 카페로 있는 세벌식 사랑 모임이 처음이어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중반의 다른 세벌식 모임에서 일어난 일에는 어둡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sebul.org 주소를 쓰는 세벌식 모임에서도 어느 회원님이 새로운 배열을 제안한 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자료가 남아 있었다면 참고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료 보존이 되지 않아서 아쉽네요.

      특백님이 제안한 배열은 낯설지만 익혀 쓰면 쓸 만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 명랑소녀 2012/12/26 18: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리고 세벌식 사용자의 양 극단적인 심리, 즉 모든 겹받침이 있어야 한다와 모든 기호를 포함해야 한다는 둘 다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3-91 사용자들 가운데에는 모든 겹받침을 포함해야 기계화할 수 있다는 식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팥알님 글을 보고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요. 물론 직결식 등의 문제는 있지만 글쇠가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ㄹㅅ,ㄹㅍ,ㄹㅌ의 삼대장은 정말 드물어서 충분히 뺄 만하다고 봅니다. 또한 기호를 빼면 안된다는 사람은, 한글 상태에서 |\`{}을 얼마나 쳐왔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마 ㄹㅅ 보다 드물 겁니다. 참고로 `는 어포스트러피'가 아니라 grave accent 로써 서양에서만 쓰이는 문자입니다. 작은따옴표는 '로만 쳐야 합니다.

    • 팥알 2012/12/27 14:1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grave accent(`)는 따옴표인지 강세 기호인지 헷갈렸는데, 강세 기호군요. 덕분에 이제야 머릿속에서 개념이 바로 섰습니다. 사전 찾아보니 grave accent가 '저(低) 악센트'라고 나오는데, 우리 글에서는 잘 쓰지 않다 보니 우리말로 뭐라고 부를지도 마땅하지 않아 보입니다. 날개셋의 사용자 정의 조합 기능을 쓴다면 어학용으로 써먹을 수 있겠지만, 일반인은 알고 있어도 쓸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래아한글에서는 grave accent를 누르면 가운뎃점(·)으로 나오더군요. 그 자리에 다른 기호를 넣거나 잘 안 쓰는 기호를 상용구로 쓰는 차원에서 활용할 수는 있겠습니다.

      요즈음 나오는 책에서는 ㄽ·ㄾ·ㄿ을 몇 권을 뒤져도 보지 못할 때가 있네요. 타자기 같은 전용 기기를 만들거나 모아치기 효과를 아주 높이려고 한다면 모르지만, 일반인들이 널리 쓰는 자판에 기호를 줄이면서 이렇게 드물게 나오는 겹받침까지 넣는 건 희생이 너무 큽니다. 3-91 자판을 쓰다가 ㄽ·ㄾ·ㄿ이 어디 있는지 잊어서 이리저리 글쇠 누르며 찾는 건 저만 걲은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2000년대 들어 공병우 자판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3-91 자판은 대표안처럼 되었지만, 공병우 박사님은 3-91 자판을 스스로 내놓는 최종안으로 보았지 일반 보급용 최종안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만약 공 박사님이 일반 보급용 배열로 밀고자 했다면 글쇠에 3-91 배열이 찍힌 자판 제품이 일찍 나왔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3-91 자판을 딱지로만 보급했던 걸로 미루어 보면, 누구 손에서든 다음에 만들어질 개선안을 염두에 두셨던 것 같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셈틀 계열에 따라 나뉘었던 3-90 자판과 3-91 자판의 문제점을 보완할 필요도 있고, 세벌식 자판 표준화를 이루는 문제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을 헤아려서 '공병우 최종'이라는 배열과 배열 이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