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이 된 세벌식? - (13) 매킨토시의 3-90 자판과 한 코드

1) 3-90 자판을 쓰기 어려웠던 옛 매킨토시 환경

  1바이트 부호계가 쓰이던 1990년대의 클래식 매킨토시 환경에서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세벌식 입력'은 요즈음의 운영체제들에서 쓰이는 입력 도구들과 성격이 비슷하다. 엘렉스컴퓨터가 먼저 개발한 매킨토시용 한글 수단인 '완성형 입력'을 두벌식 자판이 아닌 3-91 자판으로 쓸 수 있게 고친 판이 '세벌식 입력'이었다. KS 완성형 부호계를 쓰는 탓에 '세벌식 입력'으로 '똠'이나 '펲' 같은 한글을 조합할 수 없었지만, 글꼴을 따로 깔지 않고 이미 나와 있는 매킨토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었다. KS 완성형 부호계는 그 무렵에 국내 정보통신망에서 표준 부호계로 가장 흔히 쓰였으므로, 한글 조합에 제약이 있더라도 바깥 세상과 소통하는 일에는 '세벌식 입력'을 쓰는 방법이 편할 수 있었다.

  '공병우 직결식'은 직결식 글꼴을 따로 깔아서 한글을 넣고 나타내는 방식이다. KS 완성형이나 상용 조합형 같은 2바이트 한글 표현 방식이 널리 쓰이던 1980~1990년대에 공병우 직결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작동 원리부터 생소했다. 공병우 직결식으로 넣은 글은 처음에 거의 매킨토시 환경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똑딱이 나온 뒤에 제2 공병우 직결식으로 넣은 글은 다른 한글 부호계를 바꾸어 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3-90 자판 (IBM-3-90 자판)
[그림 22-1] 3-90 자판 (IBM-3-90 자판)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매킨토시 세벌식 자판)
[그림 22-2]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매킨토시 세벌식 자판)

  그런데 3-90 자판은 1990년대의 매킨토시 환경에서 쓰기 어려웠다. '세벌식 입력' 같은 입력 도구에서 3-90 자판을 지원하지 않았고, 3-90 자판으로 쓸 수 있게 나온 매킨토시 프로그램이나 공병우 직결식 글꼴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쓰려는 수요가 없지는 않았다. 모든 컴퓨터 기종들을 통틀어 따진다면, 199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공세벌식 자판 가운데 3-90 자판을 쓰려는 수요가 3-91 자판을 쓰려는 수요보다 오히려 더 많을 수 있었다. 아래와 같은 상황이 맞물려 1980~1990년대에 3-91 자판이 주로 쓰인 매킨토시 기종보다 3-90 자판이 주로 쓰인 IBM PC 호환 기종이 훨씬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 사무실과 공공 기관의 업무용 또는 교육용 컴퓨터로 IBM PC 호환 기종이 주로 보급됨
  • IBM PC 호환 기종에서 한글을 다룬 프로그램들은 업무용 프로그램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서로 경쟁하며 기능을 발전시켜 나감
  • IBM PC 호환 기종에서 3-90 자판을 글쇠 자리부터 익힐 수 있게 돕는 타자 연습 프로그램들이 여러 종류가 나왔지만, 3-91 자판을 배려한 타자 연습 프로그램은 어느 기종에서도 나오지 않음
  • 애플 매킨토시 기종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못함
  • 매킨토시 기종에서 한글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았고, IBM PC 호환 기종보다 한글을 다루는 기능이 더디게 발전함

  매킨토시는 일찍부터 사람들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그래픽 기반 화면과 뛰어난 문자 입출력 기능을 운영체제 차원에서 갖추었다. 전자 출판이나 글꼴 제작 같은 전문 작업에 쓰이는 몇몇 매킨토시 응용 프로그램들 때문에 고집스럽게 매킨토시를 쓰는 분야들도 있었다. 하지만 매킨토시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접할 수 있었거나 큰 관심을 끈 컴퓨터 기종이 아니었다. 공공 기관의 전산실처럼 여러 대 컴퓨터가 들어가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IBM PC 호환 기종 컴퓨터들이 자리를 차지했지만, 매킨토시 기종은 구경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중앙대학교 전산실 및 도서관 사진
[그림 22-3] 중앙대학교 전산실 및 도서관 사진
  • 사진 제목 : 중앙대학교 전산실 및 도서관
  • 촬영일 : 1992년 09월 21일
  • 촬영장소 : 대한민국 서울 중앙대학교
  • 사진 설명
    참석자 : 중앙대학교 학생들
    중앙대학교 전산실 및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촬영하였다.
  • 사진 가져온 곳 : e영상역사관 국가기록사진

  위의 중앙대학교 전산실 사진을 보면, 컴퓨터들의 글쇠판 옆에 마우스가 없다. 이 모습만 보아도 이 전산실에 놓인 컴퓨터들이 명령어 기반 운영체제인 도스(DOS)를 쓰던 IBM PC 호환 기종임을 알 수 있다.

  이 무렵에 전산실에 드나들었을 사람들이 모두 마우스를 몰랐을 리는 없었고, 쓸 수만 있으면 마우스를 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렵에 공공 장소에 놓인 IBM PC 호환 기종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쓰는 일에는 걸리는 점들이 있었다.

  요즈음의 마우스들은 USB 단자에 꽂고 조금 기다리거나 PS/2 단자에 꽂고 운영체제를 다시 시작하면 별다른 설치 작업을 하지 않아도 마우스가 작동한다. 하지만 도스 환경에서 직렬 단자(시리얼 포트)에 꽃아 쓰던 옛 마우스들은 구동 프로그램을 따로 띄워야 쓸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도스에 기본으로 들어간 마우스 구동 프로그램을 쓸 수도 있었지만, 마우스 구동 프로그램이 들어가지 않은 옛 판 도스를 쓰거나 도스에서 지원하지 않은 마우스를 쓴다면 마우스 제품 상자 속에 든 플로피 디스크에서 구동 프로그램을 꺼내 써야 했다. 한때는 마우스 값도 비쌌고 AS를 받기도 어려운 외국산 제품들이 흔했으므로, 마우스 구동 프로그램이 든 디스크가 상하거나 사라진 것 때문에 울고 웃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전산실 컴퓨터에 마우스가 달려 있어도 그림의 떡이 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무렵에 쓰인 공용 컴퓨터들은 본체에 하드 디스크 같은 붙박이 저장 장치가 없는 경우가 흔했고,주1 랜 디스크(LAN disk)로도 불린 네트워크 디스크 기능을 갖춘 곳이 드물었다. 요즈음의 웹(web)과 비슷한 구실을 하던 PC 통신망이 있었어도 유료로 운영되거나 전화선으로 전화 요금을 내고 접속해야 해서 공용 전산실에서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그런 환경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사람은 플로피 디스크를 가지고 다니며 운영체제부터 띄워서 써야 할 수 있었고, 마우스를 쓸 수 있게 프로그램을 갖추고 설정하는 일도 마우스를 쓰려는 사람이 챙겨야 할 수 있었다. 마우스를 제대로 쓸 수 있는 도스 프로그램이 많지도 않았으므로, 마우스를 쓰려고 애쓰기보다 마우스 없이 컴퓨터를 다루는 상황을 받아들이는 쪽이 마음 편할 수 있던 때였다.

  위 사진처럼 마우스 없는 컴퓨터 앞에 사람들이 자판에 손을 올려놓고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은 사진을 찍으려고 연출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저 무렵에는 저런 모습으로 마우스 없이 작업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IBM PC 호환 기종에서 꾸준히 쓰이는 업무용 프로그램들은 단축 글쇠 기능을 점점 발전시켰는데, 빠른 작업 속도를 바라는 곳에서는 일부러 마우스를 쓰지 말고 단축 글쇠 기능을 쓰도록 훈련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매킨토시 기종은 일찌감치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가 쓰인 덕분에 마우스를 쓰는 편의를 크게 누릴 수 있었다.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에 마우스가 없다면, 프로그램을 손쉽게 띄우는 것부터 정교한 그래픽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크게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그 점 때문에 매킨토시에 익숙한 사람의 눈에는 마우스 없이 IBM PC 호환 기종을 다루는 사람이 프로그램을 짜는 개발자처럼 특수한 일을 하는 사람처럼 비칠 만도 했다.주2

  하지만 IBM PC 호환 기종을 쓰던 사람들 모두가 프로그램 개발 같은 특수한 작업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보석글'이나 '하나워드' 같은 프로그램주3을 쓰는 문서 작업이나 '로터스 1-2-3(Lotus 1-2-3)' 같은 프로그램주4을 쓰는 표 계산 작업을 많이 할 수도 있었다.주5 다만 프로그램을 띄우거나 프로그램의 설정 내용을 바꾸는 과정에까지 명령어를 넣는 모습이 그런 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특이하게 비칠 수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에 IBM PC 호환 기종에서도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인 '윈도우(Windows)'가 널리 자리잡은 뒤에는 어느 기종이든 탁상 컴퓨터에서 마우스를 쓰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에 IBM PC 호환 기종 환경에서 흔히 쓰인 운영체제인 도스(DOS)는 명령어 기반 운영체제였다. 까만 바탕에 뜻 모를 하얀 영문 글씨가 나오는 도스 화면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낯섦을 넘어 두려움을 안기기도 했다. 도스에서 프로그램을 쓰려고 명령어를 넣는 과정은 아무리 간단하게 줄이더라도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IBM PC 호환 기종을 쓰는 사람이 늘면서 도스를 쓰는 사람도 덩달아 늘어났다. 이 덕분에 한글 입출력 기능을 담은 도스 응용 프로그램들이 시장 수요에 맞추어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타자 연습 프로그램인 '한메타자교사'와 문서 편집 프로그램인 'ᄒᆞᆫ글'처럼 3-90 자판을 보급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했던 이름난 응용 프로그램들이 모두 처음에는 도스 환경에서 개발된 프로그램들이었다. 모든 도스 프로그램들이 3-90 자판을 지원하지는 않았지만, 민간 시장에서 인기를 끈 프로그램들은 3-90 자판을 표준 두벌식 자판과 함께 지원하는 경우가 흔했다.

'한메타자교사 3.0'의 3-90 자판 글쇠 자리 연습 화면
[그림 22-4] '한메타자교사 3.0'의 3-90 자판 글쇠 자리 연습 화면

  그러나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은 1990년대에 타자 연습 프로그램을 통해서 익힐 수 없었다. 글쇠 자리 연습만 못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 연습 프로그램 안에서 3-91 자판을 쓸 수 없었다. 윈도우(Windows) 3.1에서는 3-91 자판을 '공자판'이라는 이름으로 지원했으므로 3-91 자판을 쓸 수 있는 윈도우 판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 나올 수도 있어 보였지만, 한메타자교사와 한컴타자연습은 윈도우 판에서도 도스 판과 비슷한 자체 한글 처리와 한글 자판 지원을 고수하여 세벌식 자판들 가운데는 3-90 자판만 쓸 수 있었다.

  3-91 자판은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이 매우 다르고 겹받침이 많아서 3-90 자판보다 적응하는 데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타자 연습 프로그램의 도움이 더 절실하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는 타자 연습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3-91 자판을 익힐 수 없었으니, 3-91 자판을 곧바로 익히기보다는 타자 연습 프로그램들이 지원하는 3-90 자판에 적응하고 나서 3-91 자판으로 바꾸어 쓰는 방법이 수월했다.

  이 때문에 3-90 자판을 쓰다가 매킨토시를 접한 사람들의 수는 매킨토시에서 3-91 자판을 쓰던 사람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을 수는 없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매킨토시에서도 IBM PC 호환 기종에서처럼 3-90 자판을 쓰려는 수요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매킨토시 환경에서 3-90 자판을 널리 쓰는 일에는 단순히 수요/공급 논리로만 따지기 어려운 속사정이 끼어 있었다.

  위 글들에서 살핀 내용들처럼, '기종 간 글자판 통일'을 목표로 세웠던 공병우는 1992년부터 IBM PC 호환 기종에도 3-91 자판을 보급하려고 해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단념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병우는 손수 쓰고 있던 매킨토시 기종에서 공병우 직결식과 3-91 자판을 보급하는 일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공병우는 한글 관련 프로그램 시장이 일어나던 1980년대부터 관련 업계의 고객 또는 후원자로서 프로그램 개발자들과 인연을 맺어 왔다. 공병우와 인연이 있던 개발자나 개발사라면, 당장 큰 이익을 내기 어려울 수 있는 매킨토시 프로그램 시장에서 굳이 공병우의 뜻에 어긋날지 모를 일을 일부러 벌이기는 껄끄러운 면이 있었다. 차라리 수요가 훨씬 더 많은 IBM PC 호환 기종의 프로그램 시장에 더 집중하는 것이 껄끄러운 일을 만들지 않고 실익을 더 챙기는 길이 될 수 있었다.주6

2) 한 코드로 3-90 자판 쓰기

  이런 사정들이 겹쳐서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쓰는 일은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길을 뚫어야 할 문제처럼 남아 있었다. 그런 때에 '한 코드'가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쓸 길을 여는 실마리가 될 수 있었다. '한 코드 방식'은 3-91 자판으로 쓰는 때에도 ㅘ · ㅝ 같은 겹홀소리를 홑낱자로 조합하게 하였으므로, 이를 응용한다면 겹받침을 다 갖추지 않은 3-90 자판으로도 모든 겹받침을 조합할 수 있었다.

  아래는 1995년 3월 18일에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에 올라왔던 '한 코드로 3-90 자판을 쓸 수 있게 하는 KCHR 자원을 담은 자료'의 설명문이다.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쓸 수 있게 하는 '390 키보드 스크립트' 자료 설명
[그림 22-5]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쓸 수 있게 하는 '390 키보드 스크립트' 자료 설명

390 키보드 스크립트

95/03/18 08:42 | 조회수 18    

무명씨
첨부파일 : 390.sit

직결식 한글 시스템용 IBM 390자판 스크립트를 자료실에 올립니다.
예전에 오한중님께서 만든 것을 제가 수정하여 올립니다.
코드는 한코드를 사용하였습니다. 자료실에 있는 3벌체 한코드를 다운
받으셔서 사용하시면 됩니다.(GenevaHan 등) 폰트를 설치하시고 이
스크립트 화일을 시스템 폴더로 드래그 하신다음 사용하시면 됩니다.
사실 직결식 시스템에서 390자판을 구현하는데는 많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제가 수정을 보면서 390자판과 완전 호환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데드 키를 세 개나 추가로 집어넣어야

했습니다.(기존의 매킨토시용 직결식 세벌식의 데드 키는 두 개
입니다) 아쉬우나마 필요하신 분들이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데드키dead key란 키를 눌렀을 때 곧바로 문자를 발생시키지 않는
키를 말합니다. 기존 매킨토시용 세벌식에서의 데드키는 영문키보드
<9>와 에 배당되어 있는 글자인데... 예를 들어 <와>라는 글자를
찍을 때 초성 <이응> 다음에 <오>를 찍으면 화면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아>를 찍게 되면 비로소
<와>라는 글자가 완성됩니다. 영문상태에서 를 찍 고나서
를 타이핑 하게 되면 우물라우트를 가진 u자가 찍히는 데, 이때
키가 바로 데드 키입니다. 매킨토시 시스템의 이벤트
매니저가 이 일을 해 주는데, 이를 이용하면 세벌체의 경우 복잡한
한글 오토마타를 거치지 않고도 한글을 출력할 수 있는 잇점이
있습니다.
한글 시스템에 이 데드키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몹시 불편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키가 눌려졌는지 눌려지지 않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 때문입니다. 기존 매킨토시용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경우는 실제 사용상 별 무리가 없는데.. . 이 390스크립트는 사용할 때
불편하게 느껴질 수 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매킨토시용 세벌식
자판의 경우는 모든 쌍받침을 하나의 키로 표현할 수 있는데,
390자판에서는 5개의 쌍받침의 경우 조합을 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각각 <앉, 핥, 삯, 리을+시옷, 리을+피읖>의
쌍받침인데... 이 때문에 390 직결식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용 빈도가
높은 <니은> <기역> <리을>의 받침을 데드 키로 설정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받침을 찍을 때 당장은 화면상에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가 않습니다. 이점 양지하 시기 바랍니다. 숙련된 사용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으나, 타이핑이 느리신 분이나, 자판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은 몹시 불편할 수가 있습니다.
세종입력기 다음버전에서는 아마도 390자판이 지원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390자판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이 스크립트로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한코드로 작성된 한글문서는 톡탁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완성형이나
조합형, 또는 공병우 세벌식 코드로 변환해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이만...

  위는 매킨토시에서 한 코드 방식과 3-90 자판으로 한글을 넣는 수단을 담은 자료(390.slt)의 설명문이다. 한 코드 방식으로 3-90 자판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KCHR 자원이 '390.slt'에 묶여서 담겨 있었다.

'390 키보드 스크립트'에 담긴 아랫글 기본 자판 배열과 한 코드
[그림 22-6] '390 키보드 스크립트'에 담긴 아랫글 기본 자판 배열과 한 코드
'390 키보드 스크립트'에 담긴 윗글 기본 자판 배열과 한 코드
[그림 22-7] '390 키보드 스크립트'에 담긴 윗글 기본 자판 배열과 한 코드

  3-91 자판에는 겹받침 ㄳ · ㄵ · ㄼ · ㄽ · ㄾ · ㄿ이 따로 들어가 있지만, 3-90 자판에는 이 겹받침들이 따로 없다. 아래의 움직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이 KCHR 자원에는 받침 ㄱ · ㄴ · ㄹ 자리를 멈춤 글쇠(dead key)로 쓰는 조합 규칙을 넣어서 3-90 자판에 없는 겹받침들을 홑낱자로 조합하여 넣을 수 있게 하였다.

'390 키보드 스크립트'에 담긴 받침 조합 규칙 (움직그림)
[그림 22-8] '390 키보드 스크립트'에 담긴 받침 조합 규칙 (움직그림)
3-90 자판 KCHR 자원에 들어간 겹받침 조합 규칙
멈춤 글쇠 조합 글쇠 조합된 겹받침
ᅟᅠᆨ ᅟᅠᆺ ᅟᅠᆪ
ᅟᅠᆫ ᅟᅠᆽ ᅟᅠᆬ
ᅟᅠᆯ ᅟᅠᆺ ᅟᅠᆳ
ᅟᅠᇀ ᅟᅠᆴ
ᅟᅠᇁ ᅟᅠᆵ
'390 키보드 스크립트'로 몫 · 앉 · 돐 · 닲 · 핥 조합하기 (한글 시스템 7.5 키캡, 글꼴: GenevaHan)
[그림 22-9] '390 키보드 스크립트'로 몫 · 앉 · 돐 · 닲 · 핥 조합하기 (한글 시스템 7.5 키캡, 글꼴: GenevaHan)

  위의 움직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이 KCHR 자원으로 3-90 자판을 쓰면 몫 · 앉 · 돐 · 닲 · 핥에 들어간 겹받침 ㄳ · ㄵ · ㄽ · ㄾ · ㄿ을 홑받침 2개로 조합하여 넣을 수 있다. 조합 처리가 끝난 겹받침은 부호값이 하나로 합쳐진다.주7 하지만 않 · 넓 · 없에 들어간 겹받침 ㄶ · ㄼ · ㅄ 따위는 조합 규칙이 들어가지 않아서 홑낱자 2개로 조합하여 넣을 수 없었다.

  • 몫 : ᄆᅠ → 모 → 모 → 몫
  • 앉 : ᄋᅠ → 아 → 아 → 앉
  • 핥 : ᄒᅠ → 하 → 하 → 핥

  자료 설명에 나온 대로, 멈춤 글쇠로 쓰이는 받침 ㄱ · ㄴ · ㄹ을 넣으면 낱자가 바로 들어가지 않고 다음 낱자를 들어간 뒤에야 바뀌는 것은 화면을 보는 사람에게 매우 거슬릴 수도 있는 문제였다. 앞의 글 표준이 된 세벌식? - (10) 첫가끝 조합형을 닮아 간 '제2 공병우 직결식(https://pat.im/1190)의 그림 19-21에서처럼 옛 매킨토시 환경에서 유럽어에 쓰이는 발음 구별 기호는 멈춤 글쇠로 지정하더라도 모습이 잘 나왔다. 하지만 유럽어에서 쓰이는 발음 구별 기호와 부호값이 다른 문자를 멈춤 글쇠로 지정하면, 그 문자가 바로 나오지 않고 다음 글쇠를 누른 다음에야 조합된 결과만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3-90 자판을 담은 이 KCHR 자원은 실무에 쓸 수 있으려면 더 보완해야 할 자료였다. 3-90 자판에 따로 들어 있지 않은 겹받침 ㄼ을 'ㄹ+ㅂ'으로 조합하는 규칙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3-90 자판 스크립트를 담은 이 자료는 필요한 낱자 조합 규칙(ㄹ+ㅂ→ㄼ)이 빠져 있었고 이를 보완한 개선판이 더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게 실제로 쓰였을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매킨토시 환경에서 공병우 직결식에 가까운 원리로 3-90 자판을 쓰는 방법을 보여 준 것은 눈여겨 볼 만 하다. 멈춤 글쇠(dead key)를 쓰는 것 때문에 직결식답지 않게 낱자가 바로 보이지 않는 문제는 있었지만, 공병우 직결식으로 쓰지 못했던 3-90 자판을 한 코드 방식으로는 쓸 수 있었음을 이 자료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공병우 직결식 또는 공병우 직결식을 응용한 매킨토시 입력 방안들이 담긴 자판 배열 목록 (3-90, Han, Han-x, KongHangeul)
[그림 22-10] 공병우 직결식 또는 공병우 직결식을 응용한 매킨토시 입력 방안들이 담긴 자판 배열 목록 (3-90, Han, Han-x, KongHangeul)

  이 목록에서 '3-90'이 3-90 자판을 지원한 '390 키보트 스크립트'를 담은 KCHR 자원이고, 'Han-x'는 아래에서 설명할 3-95 자판안의 입력 스크립트를 담은 KCHR 자원이다.

3) 김창용의 3-90 / 3-91 자판 절충안 (가칭 3-95 자판안)

  앞에서 본 '390 키보드 스크립트' 자료가 공개된 바로 다음날인 1995년 3월 19일에 같은 곳인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에서 김창용은 3-90 자판과 3-91 자판의 절충안(3-95 자판안)주8을 공세벌식 자판의 개선안으로 제안하였다.

  이 3-95 자판안은 앞에 올린 글 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 - (9) 1995년에 나온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과 신세벌식 자판(https://pat.im/1149)에서 살핀 적이 있다.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의 한글 배열을 따르되 3-90 자판의 숫자 · 기호 배열을 따라간 꼴이다.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에 올라온 3-95 자판안을 제안문 자료 설명 (김창용, 1995)
[그림 22-11]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에 올라온 3-95 자판안 자료 설명 (김창용, 1995)

3벌식 표준/통일 제안 스크립트및

95/03/19 18:24 | 조회수 49

무명씨   
첨부파일 : new3key.sit

3벌식 표준/통일 제안에 대한 설명서와 관련 스크립트와 폰트를
자료실에 올립니다.
이 자판은 현재 제가 사용하고 있는 세벌식 자판으로 390자판과
최종자판을 절충시켜놓은 자판입니다. 저는 이 자판을 390과
매킨토시용 최종자판의 장점만을 모은 자판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390자판 사용자나 기존 매킨토시 3벌식 사용자나
모두 쉽게 익힐 수 있으며, 얼마간의 사용으로 그 효용성과
편리함을 느끼시게 될 것이라고 감히 자임합니다.(물론 이것은
순전히 저의 경험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사용방법과 자세한 설명  ? 함께 동봉한 클라리스 웍스 2.0
도큐먼트에 들어있습니다.(그림 포함)
여기에 동봉한 Han-x 의 원 키보드 스크립트는 노성우님과
권오훈님이 제작하신 것입니다. 제작자의 사전동의 없이 본
스크립트의 리소스를 수정한 점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이에
대한 양해의 말씀은 안의 도큐먼트에 상세히 써 놓았습니다) 이
스크립트는 기존의 한스크립트, 공스크립트, 390스크립트 등
직결식 세벌식 스크립트와 함께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물론
참입력, 세종입력기와도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역시 노성우님과권오훈  纛? 제작하신 GenevaHan폰트를
함께 동봉합니다. 아래 권오훈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폰트에
사용된 코드는 개선/수정 과정을 거쳐 다시 발표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역시 원제작자의 동의없이 함께 올리는 점 깊은
양해를 바랍니다.(이에 대한 양해의 말씀은 앞서 말씀드리는
도큐먼트에 상세히 써 놓았습니다-지금 수시간째 글을 썼더니
너무 피곤해서 이 란에 자세한 경과를 쓰지 못하는 점 용서하여
주십시오)
원저작자인 노성우님과 권오훈님의 의사표시가 있을 시에는 즉각
자료를 삭제하겠습니다.
하루빨리 세벌식 자 판의 표준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3-90 자판
[그림 22-12] 3-90 자판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그림 22-13]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3-95 자판 (1995년 김창용 개선 자판안)
[그림 22-14] 3-95 자판 (1995년 김창용 개선 자판안)

  3-95 자판안을 공개한 자료에 묶여 있던 파일들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 3벌식 개선 제안안 - 개선안 설명문 (클라리스웍스 파일)
  • Han-x : 개선안을 담은 키보드 배열 정보 (KCHR 자원)
  • Keyboard Layout : 개선안 배열표 그림 (그림 22-15)
  • Option-English : 선택(option) 글쇠를 눌러 넣는 Han-x 스크립트 배열을 영문 글꼴로 본 모습
  • Option-Han : 선택(option) 글쇠를 눌러 넣는 Han-x 스크립트 배열을 한글 글꼴로 본 모습 (그림 22-18에 보이는 자판 배열표가 담김)
김창용의 공병우 3벌식 개선 자판안 배열 그림 (1995)
[그림 22-15] 김창용의 공병우 3벌식 개선 자판안 배열 그림 (1995)

  3-95 자판안을 구현하는 데에 쓰인 KCHR 자원(KCHR resouce, 키보드 배열 파일)은 'Han-x'라는 이름으로 들어갔다. 한 코드 방식으로 쓸 수 있게 만들어졌고, 글꼴도 한 코드와 함께 공개된 글꼴 GenevaHan이나 ChicagoHan을 이용할 수 있었다.

ResEdit로 본 3-95 자판 KCHR 자원 아랫글 기본 배열 (KCHR 자원)
[그림 22-16] ResEdit로 본 3-95 자판 아랫글 기본 배열 (KCHR 자원)
ResEdit로 본 3-95 자판 윗글 기본 배열 (KCHR 자원)
[그림 22-17] ResEdit로 본 3-95 자판 윗글 기본 배열 (KCHR 자원)

  3-95 자판안의 한글 배열은 3-91 자판과 같았다. 3-95 자판안의 KCHR 자원(키보드 배열 파일)에는 겹받침에 얽힌 조합 규칙이 들어가지 않았고, ㅗ · ㅜ가 들어가는 겹홀소리를 조합하기 위한 규칙만 들어갔다.

ResEdit로 본 3-95 자판 아랫글 확장 배열 (KCHR 자원)
[그림 22-18] ResEdit로 본 3-95 자판 아랫글 확장 배열 (KCHR 자원)

  3-95 자판안은 영문 자판의 숫자열에 들어간 @, #, $, %, ^를 기본 배열에서 넣을 수 없다. 이 기호들은 선택 글쇠(option key)을 눌러 쓰는 매킨토시의 확장 배열로 넣을 수 있었다. 확장 배열에서 더 넣을 수 있는 문자들은 다음과 같았다.

  • 애플 회사 기호
  • @ # $ % ^ (기본 배열에서 빠진 영문 자판의 기호)
  • ※ 《 》 ≠ ÷ … ·
  • ㄲ ㄸ ㅃ ㅆ ㅉ (한글 첫소리 겹낱자)
  • ‘ ’ “ ” (열고 닫는 따옴표)

  김창용의 3-95 자판안의 한글 배열은 3-90 자판보다 쓰기 편한 꼴이었고, 기호 배열은 3-91 자판보다 쓰기 편한 꼴이었다. 3-95 자판안은 3-90 자판 및 3-91 자판보다 실용성이 높은 개선안이었다. 그러나 3-95 자판안은 널리 알려질 기회를 잡지 못했다. 아직 웹(web)과 같은 인터네트(internet) 매체가 낯설었고 정보통신망 이용자들이 여러 PC 통신망들에 나뉘어 있었던 탓도 있었고, 3-95 자판안을 알리려고 애쓴 사람도 없었다. 1995~1996년에 잠시나마 다시 문을 열었던 한글 문화원도 이러한 개선안을 마련하거나 찾는 일을 적극적으로 벌이지 않았으므로, 단체 차원의 격려나 지원을 바랄 수도 없었다.

4) 한 코드의 융통성

  3-95 자판안은 3-91 자판과 한글 배열이 같으므로 공병우 직결식으로도 쓸 수 있었지만, 1995년에 공개된 자료에서는 한 코드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한 코드 방식을 쓰면 이런 점들이 유리할 수 있었다.

  • 한글 배열을 3-91 자판보다 겹받침을 덜 갖춘 꼴로 바꾸는 것에 대비할 수 있음
  • 1바이트 부호계를 쓰던 매킨토시 환경에서 부호값을 하나라도 더 살려 쓰기 좋음
  • 이미 만들어진 글꼴과 한글 조합 체계를 살려 쓰기 좋음

  공세벌식 자판은 1940년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배열이 숱하게 바뀌어 왔다. 지난 일을 거울로 삼는다면 3-95 자판안도 배열 개선의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 될 수 있었다.

  매킨토시용 공세벌식 자판들(3-87, 3-891, 3-91 따위)이 겹받침이 따로 많이 들어가는 경향을 점점 더 강하게 띤 것은 쓰는 사람들의 요구보다는 공병우 직결식을 구현할 때의 개발 편의를 높이려 한 까닭이 컸다. 하지만 사람들이 공세벌식 자판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려면, 3-90 자판처럼 겹받침 수를 줄이는 길도 생각해 보아야 했다. 언제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개발자들과 사용자들의 요구 사항에 맞추어 가는 데에는 한글 낱자 조합을 헤아리지 않는 방식(공병우 직결식)보다 한글 낱자 조합을 헤아릴 수 있는 방식(한 코드 방식)이 나았다.

[표 19-6] '공한글 스크립트'로 쓰인 제2 공병우 직결식 부호계
(3-91 자판 기준, 기본 배열 + 확장 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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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공병우 직결식 부호계 문자 (0xD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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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공병우 직결식 부호계 문자 (0x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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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1-1] 한 코드 (Han 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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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1바이트 확장 영역에 한글 낱자를 우선하여 둔 제2 공병우 직결식의 한글 부호계가 주체성을 살린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병우 직결식 부호계에 들어간 ©, ®, ™, ≠, ≤, ≥ 같은 기호들은 매킨토시에서 기본으로 쓰이던 것과 부호값이 달랐다. 1바이트 부호계가 쓰이던 옛 매킨토시 환경에서 부호값 하나하나는 2바이트 부호계가 쓰이던 환경에서보다 훨씬 귀중한 자원이었다. 매킨토시의 1바이트 확장 부호계에 들어간 기호들이 조금이라도 필요했던 사람이라면, 그 기호들을 하나라도 더 살려 쓸 수 있게 한글 낱자를 둔 한 코드가 자존심에 얽매이지 않고 실용성을 높힌 꼴로 보일 수 있었다.

  앞에서 본 N 바이트 조합형이나 제1 공병우 직결식은 문자 부호값을 자판 배열과 얽어 놓는 방식이다. 자판 배열만 바뀌어도 부호값 대응 관계가 달라져서 글꼴 파일이나 프로그램을 고쳐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자판 배열처럼 필요하면 바꿀 수도 있는 요소 때문에 다른 요소들까지 기준점을 큰 폭으로 달리 잡아야 하는 한글 표현 방안은 오래 쓰이기 어렵다.

  자판 배열이 바뀌면 글꼴 파일도 고쳐야 하는 문제는 제2 공병우 직결식에서 풀렸지만, 제2 공병우 직결식은 3-91 자판에 없던 한글 표현이나 배열 방식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자판 배열에 조합용 ㅗ · ㅜ를 따로 두지 않거나 ㅘ · ㅝ 따위를 한꺼번에 넣는 공세벌식 한글 배열은 공병우 직결식으로 쓰기 어려웠다.주9

  만약 일반 글쇠 1타에 부호값 2개를 넣는 기능을 쓸 수 있다면, 한글 부호계에 ㅘ · ㅝ 따위가 따로 있지 않아도 부호값 2개로 겹홀소리들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면 조합용 ㅗ · ㅜ가 빠진 공세벌식 자판 배열로도 한글 부호계를 어떤 것을 쓰든 ㅘ · ㅝ 따위를 넣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동안에 쓰인 많은 입력기들이 1타에 부호값 1개만 넣는 것은 원칙으로 삼아 왔고, 요즈음의 입력기들도 1타에 부호값 2개를 넣는 기능을 구현하지 않는 것이 많다.

  그런 점들까지 헤아린다면, 공병우 직결식보다 한 코드 방식이 융통성 있게 쓰기 좋았다. 조합용 ㅗ · ㅜ나 겹받침을 넣은 일들을 살피면, 한 코드 방식에는 다음과 같은 이점들이 있었다.

  • ㅗ · ㅜ가 들어가는 겹홀소리들(ㅘ · ㅝ 따위)을 모두 부호값 1개로 나타낼 수 있음
    → 모든 한글 낱자를 겹낱자까지 부호값 1개로 나타내게 할 수 있음
    (2바이트 조합형의 5비트 낱자 부호값과 그대로 대응시킬 수 있음)
  • 공병우 직결식 부호계에 있는 조합용 ㅗ · ㅜ가 한 코드에도 있음
    → 제2 공병우 직결식과 같은 원리로 한글을 나타낼 수도 있음
  • 홑받침으로 겹받침을 조합해 나갈 수 있음
    → 겹받침을 2타로 넣더라도 부호값 1개로 겹받침을 나타낼 수 있음

  간단히 말해서 한 코드 방식은 공병우 직결식과 '하위 호환'이 되는 한글 표현 방식이었다. 공병우 직결식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한글 유형은 한 코드로 나타낼 수 있었고, 2바이트 조합형처럼 겹낱자를 처리하기에도 한 코드가 더 좋았다.주10 이런 점들 때문에 어느 공세벌식 자판을 쓰든 공병우 직결식보다 한 코드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 개발자와 사용자 모두에게 더 편할 수 있었다.

5) 쓸쓸히 잊힌 옛 매킨토시의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들

  앞에서 본 하이텔 동호회 자료실의 두 자료가 나온 때가 1995년 3월이면서 서로 가까운 것은 그저 우연 때문만이 아니다. 공병우가 세상을 떠난 때는 1995년 3월 7일이었다. 그 뒤에 얼마 동안은 공병우를 추모하는 분위기를 타고 언론 매체들에 특집 기사들이 실렸고, 월간지나 PC 통신망 게시판에도 공세벌식과 얽힌 내용을 다룬 글과 자료들이 평소보다 많이 올라왔다. 공병우의 건강이 악화된 1995년 초에 문을 닫은 사설 단체 '한글 문화원'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옛 구성원들이 다시 모여 잠시나마 다시 운영되었다.

1995년 3월에 세상을 뜬 공병우를 기린 특집 기사 (이애리, 「한글 기계화에 일생 바친 신념가 공병우 박사의 외곬 인생 90년」, 《한글과컴퓨터》 1995년 4월호)
[그림 22-19] 1995년 3월에 세상을 뜬 공병우를 기린 특집 기사 (이애리, 「한글 기계화에 일생 바친 신념가 공병우 박사의 외곬 인생 90년」, 《한글과컴퓨터》 1995년 4월호)

  하지만 뜨거운 관심이 영원히 이어질 수 없었고, 관심만으로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공병우 직결식'보다 '공세벌식 자판'에 쏠렸다. 공세벌식 자판인 3-90 자판과 3-91 자판은 1995년 이후에 윈도우 운영체제가 큰 힘이 되어 지원이 끊기지 않았으므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공한체처럼 공세벌식을 따르는 글꼴을 만드는 일은 글꼴 도안가들이 짊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공병우 직결식에 뿌리를 둔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들은 그렇지 않아도 내용을 아는 사람이 적었는데, '공병우'라는 구심점까지 잃은 1995년 이후에는 명맥이 끊어질 형편이 되었다.

  옛 매킨토시 환경에서 쓰인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들은 낱자를 분석하여 낱내자 경계를 가리는 한글 처리를 아예 하지 않았다. 복잡한 한글 입출력 처리를 않아서 매킨토시 운영체제가 판올림하여 바뀌더라도 프로그램을 고칠 필요 없이 직결식 글꼴로 꽤 오래 그대로 쓸 수 있었지만, 한자 변환이나 맞춤법 검사 같은 언어 처리 기능과는 접목할 수 없었다. 그 무렵에 이미 불편한 구닥다리 기술로 이야기되던 N 바이트 조합형에서도 조합하고 있는 한글의 앞뒤 부호값을 살펴 낱내자 경계를 가리는 일을 미흡하게나마 했었는데, 1990년대에도 한글 내용은 다루지 못하고 글씨를 보여 주는 수준에 그친 것은 시대에 맞지 않았다.

  요즘한글만 다루는 때에는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을 쓰는 보람이 크지도 않았다. 한글을 나타낼 수 있는 폭에서는 한글 낱내자를 2350개밖에 나타내지 못하는 KS 완성형보다 매력이 있었지만, 확장 완성형이나 상용 조합형처럼 11172개 낱내자를 나타낼 수 있는 2바이트 방식이 쓰이는 곳에서는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을 꼭 써야 할 까닭을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이 빛을 볼 가능성이 있는 곳은 옛한글 쪽이었다. 1980~1990년대에는 문헌 조사를 통하여 점점 더 많은 한글 옛낱자(주로 겹낱자)들이 알려지고 있었는데, 문헌 조사가 마무리된 때에 알려진 한글 낱자 수는 옛낱자와 요즘낱자를 더하여 355개에 이르렀다. 요즘낱자 67개로 조합할 수 있는 11172개 낱내자들은 2바이트 방식으로 담을 수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옛낱자들을 조합하여 나타내는 것에서는 2바이트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 학술 자료에 쓰였거나 쓰일 수 있는 옛낱자들까지 자유롭게 조합하여 한글을 나타낼 수 있으려면, 낱자 단위로 한글을 나타내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공병우 직결식의 운용 방법이 제1 방식과 제2 방식이 다른 데가 있고 한 코드 방식이나 첫가끝 부호계를 쓰는 방안들과도 다른 데가 있는 것처럼,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들은 한글 부호계를 꾸리고 다루는 방법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요즘한글에서보다 훨씬 많은 겹낱자들이 나오는 옛한글을 조합하는 방안도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여러 조합 방안들이 나와서 섞여 쓰인다면 그에 따른 혼란도 생기기 마련이므로, 널리 쓸 방안을 하나로 정하는 일도 필요했다.

  그래서 첫가끝 조합형을 연구하던 전산학자들은 유니코드와 옛한글을 첫가끝 조합형이 나아갈 무대로 점찍고 부호계와 운용 방안을 연구하고 제안하며 표준화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첫가끝 조합형을 시연한 도스 프로그램인 나랏말씀이 1994년에 공개되었을 때에는 아직 두벌식 자판으로 조합하지 못하는 한글 유형이 있었지만, 2000년대까지 옛한글 조합 방안을 마련하고 표준화하여 프로그램 지원을 얻는 과정을 거친 끝에 첫가끝 조합형은 세벌식 자판만이 아니라 두벌식 자판으로도 쓰는 옛한글 표현 방안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옛 매킨토시 환경에서 쓰인 낱자 단위 한글 표현 방안들은 공세벌식 자판으로 요즘한글을 나타내는 수단에 머물렀고, 1995년까지 이룬 성과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두벌식 자판과도 접목하며 작더라도 절실한 수요가 있는 옛한글 쪽으로 쓰임새를 넓힌 첫가끝 조합형과 달리, 클래식 매킨토시 환경에서 쓰인 세벌식 한글 표현 방안들은 요즘한글 쪽에서든 옛한글 쪽에서든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소통량이 늘어나는 것도 드물게 쓰이는 한글 부호계와 한글 표현 방안을 더욱 쓰기 어렵게 하였다. 통신 요금이 비싸고 통신 속도도 느린 PC 통신망을 주로 이용할 때에는 통신망에 오래 접속해 있기도 어렵고 오가는 정보의 양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가정에서도 초고속 인터넷망을 이용할 수 있게 된 1990년대 후반부터는 개개인이 쏟아내는 정보량부터 크게 늘었다. 가끔씩 문서 파일을 주고받는 때에는 똑딱 같은 부호계 변환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수 있었지만, 국내에서 다른 나라 글도 아닌 한글로 소통하려고 변환 프로그램을 자주 쓰는 것은 누구나 번거롭게 느낄 일이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한글 표현 방안은 표준 규격으로 보급하여 변환 프로그램을 따로 쓰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고, 그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방안에 너무 매달리는 것은 괜한 일이 될 뿐이었다.

  1995년 이전에도 한글 문화원이 발행한 자료들을 빼면 공병우 직결식이 꾸준히 쓰인 사례가 많지 않았지만, 매킨토시에서 공세벌식 자판을 쓸 다른 수단이 마땅하지 않은 것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라도 공병우 직결식이나 한 코드 방식을 쭉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른바 '공 시스템(공 한글 시스템)'에 특별히 들어갔던 '세벌식 입력'의 3-91 자판 입력 기능이 1996년에 나온 한글 시스템 7.5.3부터는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기본 입력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한글판 매킨토시 운영체제에서 입력 스크립트와 직결식 글꼴을 따로 깔지 않아도 3-91 자판을 널리 쓸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직결식 글꼴을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공병우 직결식에 뿌리를 둔 한글 조합 방안을 꼭 써야 할 까닭은 사라졌다.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기본 입력기로 지원한 것은 더 뒤의 일이다. 매킨토시 운영체제에 3-90 자판이 들어가기 시작한 때는 정확히 언제인지 모르지만, 클래식 매킨토시 시대가 끝난 뒤인 것 같다. 매킨토시 운영체제에 'OS X'라는 이름이 붙고 유니코드가 쓰이던 2000년대 후반에는 매킨토시의 기본 입력기를 통하여 3-90 자판을 쓸 수 있었다.

매킨토시 한글 시스템 7.5.3(개정판 2.2)에서 본 공병우 최종 자판 배열표와 한글 자판 설정 화면 및 도움말
[그림 8-15] 매킨토시 한글 시스템 7.5.3(개정판 2.2)에서 본 공병우 최종 자판 배열표와 한글 자판 설정 화면 및 도움말

  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 - (8)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둘러싼 줄다리기(https://pat.im/1148)에서 보았던 매킨토시 한글 시스템 7.5.3 개정판 2.2 화면이다.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목록에서 '한글입력(세벌식)'은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한글 입력 방법을 가리킨다. 3-90 자판은 지원하지 않았다.

  화면 가운데쯤의 '파워 입력기' 창에서 '세벌식 입력'은 파워 입력기를 통하여 KS 완성형 부호계와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을 써서 한글을 넣는 것을 가리킨다. 왼쪽 위에 나오는 한글 자판 배열을 쓸 수 있었다. 왼쪽 위에 보이는 자판 배열표는 마우스로 눌러 넣는 화상 배열표로는 쓸 수 없었지만, 배열표에 보이지 않는 별표(*)와 참고표(※)도 쿼티 자판의 억음 부호(`)와 물결표(~) 자리에서 넣을 수 있었다.

  입력 환경 도움말에는 '⌘ + space'가 '참입력 켜기/끄기'라고 나오는데, 글쓴이가 확인했을 때에는 한/영 전환 기능으로 작동하였다. 이로 미루어 '참입력'은 매킨토시 한글 시스템에 들어간 '파워 입력기'의 한글 입력 기능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이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글쓴이는 3-95 자판안을 제안한 자료의 설명문에서 이야기된 '참입력'과 '세종입력기'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더 모으지 못했다.)

▣ 인용한 자료

    • 무명씨(지은이 모름), 「390 키보드 스크립트」,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 1995.3.18.
    • 김창용, 「3벌식 표준/통일 제안 및 스크립트」,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 1995.3.19. (사본 : https://bbs.pat.im/viewtopic.php?t=931)
    • 이애리, 「한글 기계화에 일생 바친 신념가 공병우 박사의 외곬 인생 90년」, 한글과컴퓨터, 《한글과컴퓨터》 1995년 4월호
    • [사진 자료] '중앙대학교 전산실 및 도서관', e영상역사관 국가기록사진
〈주석〉
  1. 새로 팔리는 80286 또는 80386급 컴퓨터들에는 대체로 하드 디스크가 들어가고 있었지만, 이미 많이 보급된 XT급 컴퓨터들에는 하드 디스크가 거의 달려 있지 않았다. 구형 컴퓨터들을 쓰는 곳에서 하드 디스크를 달지 않고 네트워크 드라이브를 이용하는 사례는 있었다. back
  2. 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 - (9) 1995년에 나온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과 신세벌식 자판의 그림 9-7과 그림 9-8에서 본 한글 문화원 안내문에서 그런 관점을 볼 수 있다. back
  3. 요즈음의 'ᄒᆞᆫ글'이나 'MS워드' 같은 프로그램 back
  4. 요즈음의 '엑셀' 같은 프로그램 back
  5. 요즈음으로 따지면 MS워드나 ᄒᆞᆫ글을 쓰는 문서 편집 프로그램이나 엑셀 같은 표 계산 프로그램을 마우스 없이 쓰는 셈이다. 윈도우 환경에서는 커서를 멀리 옮기거나 창들을 오갈 때에 마우스를 쓰지 못하면 불편할 수 있는데, 도스 환경에서는 같은 화면에 창을 여러 개 띄우지 못했으므로 마우스가 없더라도 불편함이 덜할 수는 있었다. back
  6. 그렇더라도 1990년대에 3-90 자판을 보급하는 일에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은 다름아닌 '공병우'였다. 그가 자비를 들여 운영한 사설 단체인 '한글 문화원'이 3-90 자판 딱지를 '세벌식 딱지'로 나누어 주는 활동을 꾸준히 펼친 덕분에 3-90 자판을 쓰는 사람이 늘어서 공세벌식 자판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쭉 이어질 수 있었다. 거의 매킨토시에서만 쓰이던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은 1995년에 이후에 윈도우 운영체제를 통하여 '세벌식 최종'으로 알려지며 관심을 끈 것도 3-90 자판 딱지를 주로 보급하여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을 늘린 '한글 문화원'의 꾸준한 활동이 밑거름이 되었기에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다. back
  7. 뒷걸음쇠(백스페이스)로 낱자들을 지워 보면 부호값이 어떻게 나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back
  8. '3-95 자판안'은 1995년에 나왔고 3-90 자판과 3-91 자판의 설계 원리를 이은 공세벌식 자판의 개선안임을 헤아려 글쓴이가 붙인 이름이다. back
  9. 2009년에 제안된 김국 38 자판이 조합용 ㅗ · ㅜ가 배열에서 빠진 경우이다. 예쁜 글씨 타자기(체재 타자기)에 쓰인 공세벌식 자판에는 ㅘ · ㅝ 따위를 한꺼번에 넣는 한글 배열이 들어간 적이 있고, 공세벌식 자판은 아니더라도 ㅘ · ㅝ 따위를 한꺼번에 넣는 한글 자판이 지난날부터 때때로 제안된 적이 있었다. back
  10. 2바이트 조합형은 홑낱자이든 겹낱자이든 낱자 하나를 5비트 공간에 담는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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