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섯째 세대 (1980년대 말~)

  1980년대 말에는 첫소리 ㄱ·ㄷ과 가운뎃소리 ㅣ·ㅐ가 맞바뀐 배열이 나왔다. 이로써 공병우 자판의 바탕 자리(가운뎃줄) 타수 비율이 더 늘어났다. 이 자리 바꿈은 1975년에 출원한 한영타자기 특허 문서에 나온 배열에 처음 등장했지만(그림 5-1), 일반인이 쓰는 자판 배열에 이 자리 바꿈이 반영된 때는 3-89 자판이 나온 1989년이었다.

1975년의 '한영 타자기'의 특허 문서에 나오는 자판 배열

[그림 5-1] 1975년의 '한영 타자기' 특허 공보에 나오는 자판 배열

  위 배열이 예시하려 한 것은 네째 세대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처럼 영문 로마자를 오른쪽으로 두 글쇠 배열이다. 첫소리 'ㄱ'과 홀소리 'ㅣ'와 바탕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은 수동 타자기보다 글쇠 누르는 힘이 덜 드는 전자식 기기 자판에 알맞은 배열이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첫소리 'ㄱ'과 'ㅣ'가 위 배열표처럼 바탕 자리에 놓인 일반 보급용 배열이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3-89 자판부터 널리 선보인 공병우식 셈틀 자판의 배열 특징이 1970년대 중반에 이미 연구되어 있었음을 특허 공보에 나온 위 배열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1980년대에는 전동식/전자식 타자기가 나오면서 타자기 보급 대수가 잠시 느는 듯했으나, 셈틀(컴퓨터)이 사무실과 가정에 널리 보급되면서 1990년대에는 타자기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루어 볼 수 있을 만큼 흔하지 않았던 타자기와 달리, 셈틀은 1990년대 이후 거의 누구나 다루는 기기가 되었을 만큼 많은 수가 보급되었다. 이 셈틀을 통하여 공병우 자판은 더 널리 쓰일 수 있는 바탕을 다질 수 있었다.

  셈틀에서는 수동 타자기의 설계 제약에서 벗어난 자판 배열이 쓰였고, 특수한 목적에 맞추어 변형한 배열도 나오면서 배열의 가지수가 더욱 늘었다. 여기에서는 한글문화원이 발표한 3-89 자판, 3-89 자판, 3-90 자판,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과 3-90 자판을 응용한 순아래 자판, 3-93 옛한글 자판을 다섯째 세대로 묶어 살펴본다.

1978년 민간통일판

[그림 5-2] 1978년에 한글기계화 촉진회가 발표한 민간 통일판 (《동아일보》 1978.10.9)

  1978년에 한글기계화촉진회(회장: 주요한)을 비롯한 민간 한글 단체들은 1969년에 정부가 정한 4벌식 타자기 표준 자판을 비판하는 뜻을 모으고, 민간 통일판이라는 이름으로 위와 같은 공병우 세벌식 배열을 시안으로 발표하였다.

  민간 통일판은 네째 세대의 2단 한·영 타자기 배열을 바탕으로 하였다. 첫소리 ㄱ과 ㄷ의 자리는 네째 세대와 같고 홀소리 ㅐ와 ㅣ가 맞바뀐 것은 다섯째 세대 배열들의 특징이어서, 이 글에서 나누는 기준으로 네째 세대와 다섯째 세대의 중간형 배열로 볼 수 있다. 이 배열은 일반 보급용으로 쓰이지는 않았다.


(1) 3-89 자판

  1988년에 미국에서 돌아온 공병우는 사설 문화 단체인 한글문화원을 세워 보급용 셈틀 자판 연구를 이어 간다. 공병우는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를 쓴 애플(apple)의 매킨토시(Macintosh)에서 주로 개발 작업을 해 왔고, 명령어 기반인 도스(DOS) 운영체제를 많이 쓰던 IBM 계열 PC 환경에는 익숙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IBM 계열 PC의 보급용 배열 연구는 많은 부분을 한글문화원의 연구원이었던 박흥호가 주도하였다.

  그 무렵에 도스의 한글 관련 풀그림들은 1982년에 일찌감치 정보처리용 기기의 표준 배열이 된 두벌식 표준 자판을 지원하고 있었다. 공병우 자판은 일반 PC에서 쓸 배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보급용 배열을 빨리 발표하는 일이 시급했다. 그래서 공병우와 박흥호는 매킨토시 환경에서 공병우가 연구하던 배열(뒷날 3-91 자판이 됨)과 따로 PC 보급용 배열을 내놓기로 합의하였고, 이리하여 1989년에 한글문화원의 이름으로 셈틀의 첫 PC 보급용 세벌식 배열인 3-89 자판이 나올 수 있었다. 3-89 자판은 셈틀뿐만 아니라 타자기에서도 두루 쓸 한글 배열을 헤아린 한글 자판이었다.

IBM-3-89 자판 (정내권, 「한글 입력기 홍두깨」,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0.1)

[그림 5-3] IBM-3-89 자판 (정내권, 「한글 입력기 홍두깨」,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0.1)

  3-89 자판이 한글문화원을 통하여 보급될 때의 공식 이름은 IBM-3-89 자판이었다.주1 3-89 자판은 IBM 호환 기종 PC의 도스(DOS) 환경에서 홍두깨한글 도깨비(양왕성 수정판)를 비롯한 한글 지원 풀그림들을 통하여 쓰이기 시작했다. 본래 IBM 호환 기종 PC에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한 자판 배열이었지만, 타자기나 매킨토시 환경에서도 쓰일 수 있는 기종 간 통합형 세벌식 자판 성격을 함께 띠었다. 요즘한글에 쓰이는 겹받침들을 모두 갖추어서 직결식 한글 처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3-89 자판은 IBM-3-89 통일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었다.

(2016.4.18에 배열표와 설명을 더하여 넣음)

 

한겨레신문에 실린 3-89 자판 배열 (표준글자판 세벌식으로 정착 움직임)

[그림 5-4] 신문 기사에 실린 3-89 자판 배열 (한겨레신문 1990.3.1)

  1990년만 하더라도 받침 글쇠를 누르는 불편한 2벌식 수동 타자기가 사무실에서 쓰이고 있었다. 아직 셈틀은 쓸 만한 한글 관련 풀그림이 많지 않은 데다가 기억 공간이 작고 속도가 느렸다. 일반인들 가운데 셈틀로 한글을 빠르게 칠 수 있는 이도 드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타자 교본 없이 셈틀 자판을 익힐 수 있었던 데에는 1989년에 첫 판을 선보인 한메타자교사의 힘이 컸다.

  이 때에는 셈틀에서 쓸 한글 부호와 두벌식/세벌식 자판 문제에 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한국 산업 표준인 KS C 5601(지금의 KS X 1001) 부호계에는 처음에 한글이 완성형으로 2350자만 들어갔다.주2 그런 탓에 표준 한글 부호 체계를 따르는 풀그림들은 '똠', '몌', '믜' 같은 글짜를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한글 11172자를 나타낼 수 있는 상용 조합형(KSSM) 부호 체계를 쓰는 풀그림들은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므로, 조합형 한글 부호 체계를 표준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주3 두벌식 표준 자판(옛 KS C 5715, 지금의 KS X 5002)은 1982년에 '정보처리용 건반 배열'로서 일찌감치 표준이 되었지만, 한글문화원이 PC 통신을 통하여 펼친 보급 운동을 통하여 세벌식 자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다. 이 무렵은 개인용 셈틀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한글 자판을 처음 접하고 쓰기 시작하던 때였으므로, 정부 기관에서 적극 나선다면 세벌식 자판을 복수 표준으로 삼는 것도 바랄 수 있었던 때였다.

  한글문화원을 운영한 공병우는 한글 관련 개발자들을 지원하고 이들과 교류하면서 여러 응용 풀그림과 운영체제에서 세벌식 자판을 함께 쓸 수 있게 하도록 이끌었다.

  도스에서는 운영체제 차원에서 모든 풀그림이 공유할 수 있는 한글 입력기가 없었으므로, 각 응용 풀그림마다 한글 입출력 기능을 따로 구현해야 했다. 이 때만 해도 한글 관련 개발자들조차 세벌식 자판을 모르는 일이 흔하여 도스 풀그림에서 공병우 자판을 지원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환경에서 박흥호는 개발자들을 만나 공병우 자판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는 일을 도맡았고, 양왕성을 비롯한 개발자들도 세벌식 자판을 지원하는 한글 입력기 개발을 이끌었다. 이런 노력으로 도스 명령 화면에서 한글을 쓰고 볼 수 있게 해 주는 한글도깨비·홍두깨와 자체 한글 입출력 기능을 갖춘 문서 편집기인 ᄒᆞᆫ글(아래아한글)을 비롯하여 몇몇 도스 풀그림에서 3-89 자판을 쓸 수 있었다.주4 (얽힌 글: 3-89 자판을 지원했던 한글도깨비 1.2)

한글도깨비 1.2의 설명문

[그림 5-5] 한글도깨비 1.2의 설명문

한글도깨비 1.2의 설명문에 들어간 3-89 자판 배열표

[그림 5-6] 한글도깨비 1.2의 설명문에 들어간 3-89 자판 배열표

아래아한글 1.2에 들어간 3-89 자판

[그림 5-7] 아래아한글 1.2에 들어간 3-89 자판

3-89 자판 (389 자판)

[그림 5-8] 3-89 자판

  공병우 타자기는 두째 세대부터 홀소리가 움직글쇠에 들어갔으므로, 홀소리 자리에는 기호는 들어가도 받침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셈틀에서는 그런 수동 타자기의 설계 제약이 사라져서, 3-89 자판부터는 홀소리 글쇠의 윗글 자리에 받침과 기호가 모두 들어가기 시작했다. 3-89 자판부터는 ㅋ을 뺀 첫소리들과 겹홀소리에 쓰는 ㅗ·ㅜ·ㅢ의 자리가 굳어졌고, 셈틀 자판의 오른쪽 숫자판과 비슷한 숫자 배열이 쓰였다.주5 요즘한글에서 쓰이는 모든 겹받침이 들어가 있는 것도 특징이다.

  1989년은 개정된 한글 맞춤법이 시행된 해였다. 새 한글 맞춤법에서는 ‘있읍니다’, ‘없아오니’로 쓰던 것을 ‘있습니다’, ‘없사오니’로 쓰게 하여, ㅅ 또는 ㅆ이 끝소리와 첫소리로 이어 나올 때가 크게 늘었다. 새 자판 배열에는 새 맞춤법과 자주 쓰이는 어휘가 달라진 것을 반영해야 했으므로, 몇몇 한글 낱소리 잦기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생겼다.주6 또 3-89 자판을 통하여 셈틀에서 세벌식 자판을 접한 사용자들의 의견을 들을 시간도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3-89 자판이 나온 때는 한 번은 더 개선한 세벌식 자판이 나올 수 있는 과도기였다.

 

(2) 3-90 자판

  3-89 자판이 보급된 뒤에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도스 환경에서는 명령어를 자주 넣어야 했으므로, 전문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도 로마자와 특수기호들이 자주 써야 했다. 도스 명령어에서는 < >·* ? | 같은 기호들이 자주 쓰였는데, 3-89 자판의 기호 배열은 영문 자판과 매우 달라서 쓰는 이들에게 익히고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PC 통신의 전자 게시판 등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점을 파악한 한글문화원은 이듬해인 1990년에 PC 사용자들의 편의에 맞추어 영문 자판과 기호들의 자리를 비슷하게 맞춘 3-90 자판을 내놓았다.

3-90 자판 (390 자판)

[그림 5-9] 3-90 자판 (IBM 세벌식)

한글 3벌식 (IBM-3-90) 글자판, IBM 세벌식 자판 (한글문화원 배포 자료)

[그림 5-10] 3-90 자판 배열표 (한글문화원 배포 자료)

  3-90 자판은 겹받침 ㄳ·ㄵ·ㄽ·ㄼ·ㄾ·ㄿ이 빠졌고, 그 자리에 기호들이 더 들어갔다. 3-90 자판에는 영문 자판에 들어간 모든 기호들이 들어갔고, 기호들의 자리도 영문 자판과 많이 비슷하다. ㅖ가 ㅢ의 옆 자리에 붙어서 오른쪽에 있는 ㅖ·ㅢ·ㅗ·ㅜ의 자리가 정돈되었다. 맨 윗줄의 윗글 자리에 있던 ㅒ는 ㅐ의 윗글 자리로 옮겼다. 첫소리 ㅋ은 쿼티 자판의 숫자 0 자리에 자리잡았다. 숫자 배열은 3-89 자판과 비슷하지만 한 줄 밑으로 내려갔다.

  3-90 자판은 영문 자판과 특수기호 배열이 꽤 비슷하고 겹받침 수가 적어서 PC 환경에서 더 쉽게 익히고 편리하게 쓸 수 있었다. 세벌식 자판 딱지를 나누어 주며 보급 운동을 펼쳤던 한글문화원은 1990년대 초에 3-90 자판을 통하여 공병우 자판과 세벌식 한글 배열 원리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한글에 들어간 3-90 자판 배열표

[그림 5-11]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한글에 들어간 3-90 자판

EST 소프트의 '21세기'에 들어간 3-90 자판 배열표

[그림 5-12] EST 소프트의 '21세기'에 들어간 3-90 자판

  1990년대 초에는 많은 사람들이 IBM 계열 PC에서 도스를 썼고, 한글을 입출력하는 도스 풀그림들은 세벌식 자판으로 거의 3-90 자판만을 지원하였다. 그래서 3-90 자판은 'IBM 세벌식'이라고도 불렸고, 도스 풀그림들에 흔히 '한글 3벌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갔다.

  아래아한글에서 한글을 조합하지 않거나 홀소리가 들어가 있을 때에 오른쪽 ㅗ 글쇠를 누르면 빗금(/)이 들어가는 기능은 2.0판부터 들어갔다.

3-90 자판 (수동 타자기 배열)

[그림 5-13] 수동 타자기에 쓰인 3-90 자판 배열

  셈틀에서 쓰인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3-90 자판과 비슷한 배열을 쓴 수동 타자기도 만들어졌다. 그림 5-13의 배열은 실물이 알려진 공병우식 타자기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자판 배열이다. [배열표에 첫소리 ㄱ·ㄷ이 바뀌어 들어간 것을 바로잡음 (2016.1.10.)]

 

1) 안종혁 순아래 자판 (1990)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3-90 자판 배열을 바탕으로 하여 나온 첫 응용 배열이다. 1990년에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알려진 안종혁이 제안하였다. 한 손 자판 또는 No-Shift로도 불린다. 윗글 자리에 있는 한글 받침들과 ㅒ를 기호가 들어간 아랫글 자리에 옮겨서, 손이 불편하여 윗글쇠를 쓰기 어려운 사람도 한 손가락으로 한글을 넣을 수 있게 하였다.주7

순아래 자판

[그림 5-14] 순아래 자판

순아래 자판 (순 아랫글 자판, 만든 이 : 안종혁)

[그림 5-15] 순아래 자판 배열표 (만든 이 : 안종혁)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PC통신 하이텔에 아래아한글의 사용자 자판 파일로 처음 공개되었다.주8 처음에는 'No-shift' 또는 '순 아랫글 자판'으로도 불리다가 지금은 '순아래 자판'으로 불리고 있다. 그림 5-15은 안종혁이 하이텔의 한글프로그래밍 동호회에 올린 순아래 자판 배열표이다.주9

  안종혁 순아래 자판에는 3-90 자판에서 윗글 자리에 들어간 받침 ㄷ/ㅈ/ㅊ/ㅋ/ㅌ/ㅍ이 오른쪽 기호 자리에 들어갔고, 그 자리에 있던 기호들은 겹받침이 있던 왼쪽 윗글 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겹홀소리에 넣는 ㅗ/ㅜ와 ㅆ을 뺀 겹받침들이 모두 빠졌다. 첫소리 ㅋ은 왼쪽으로 한 글쇠 옮겨 갔고, ㅐ의 윗글 자리에 있던 ㅒ가 첫소리 ㅋ이 있던 자리에 들어갔다. 윗글쇠를 전혀 쓰지 않고 한글을 넣고자 한 자리 바꿈이다. ㅆ을 뺀 겹받침들은 홑받침을 조합하여 넣는다.

  안종혁 순아래 자판을 쓰면 윗글쇠를 쓰지 않고 한글을 모두 나타낼 수 있다. 그 대신에 아랫글 자리에 있던 몇몇 기호들을 윗글쇠를 눌러 넣어야 하고, 한글 낱자들이 들어간 글쇠 범위가 넓어서 3-90 자판보다 손을 많이 움직여서 쳐야 한다.

순아래 자판을 지원한 통신 풀그림 '이야기 4,3'

[그림 5-16] 순아래 자판을 지원한 통신 풀그림 '이야기 4,3'

순아래 자판(No-Shift) 항목이 있는 이야기 4,3의 바람잡이 (환경 설정 풀그림)

[그림 5-17] 순아래 자판(No-Shift) 항목이 있는 이야기 4,3의 바람잡이 (환경 설정 풀그림)

아래아한글 2.0에 들어간 순아래 자판

[그림 5-18] 아래아한글 2.0에 들어간 순아래 자판

아래아한글 2.11의 순아래 자판(한 손 자판) 설치 항목

[그림 5-19] 아래아한글 2.11의 순아래 자판(한 손 자판) 설치 항목

  안종혁 순아래 자판(한 손 자판)은 도스에서 많이 쓰였던 글틀(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과 통신 풀그림 '이야기'에서 골라 쓸 수 있는 세벌식 자판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도스가 주로 쓰이던 때에는 안종혁 순아래 자판이 3-90 자판 다음으로 널리 알려진 세벌식 자판 배열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손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입력 장치를 만드는 국내 전문 업체가 없던 때에 개발되어 판매된 대안 자판이기도 했다.주10

 

2) 3-93 옛한글 자판

  3-93 옛한글 자판도 순아래 자판처럼 3-90 자판을 바탕으로 한 응용 배열이다. 1993년에 부산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 김경석이 옛한글 입력용으로 발표하였다. 김경석이 개발한 옛한글 문서 편집기인 나랏 말씀에서 처음 구현되었다.

3-93 옛한글 자판

[그림 5-25] 3-93 옛한글 자판

  3-93 옛한글 자판에는 3-90 자판에 들어간 숫자 10자와 기호 4자(`, ~, <, @)를 뺀 자리에 옛한글에 쓰이는 첫소리 9자(ㅿ, ㆁ, ᄼ, ᄾ, ᅎ, ᅐ, ᅔ, ᅕ, ㆆ)와 홀소리 1자(ㆍ)와 끝소리 3자(ㅿ, ㆁ, ㆆ)가 들어갔다. 원안에는 !, <, >가 빠져 있지만, 이 기호들을 넣을 수 있게 구현한 입력기도 있다.

  3-93 옛한글 자판이 쓰이기 전에는 세벌식 자판으로 옛한글을 넣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심도 받았다. 3-90 자판만 하더라도 한글 낱소리가 글쇠에 빈틈 없이 들어가서 옛한글 낱소리를 더 넣을 자리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3-93 옛한글 자판이 쓰이면서 세벌식 자판으로 겹닿소리가 많이 들어가는 옛한글을 매끄럽게 넣기에 좋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두벌식 자판은 요즘한글에 쓰이지 않는 겹닿소리 때문에 옛글을 넣을 때에 치는 이가 낱내(음절)을 끊어 주어야 할 때가 생기지만, 세벌식 자판은 첫소리를 넣을 때 낱내가 끊어지므로 치는 이가 낱내를 끊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옛글을 칠 수 있다.

  그러나 숫자와 몇몇 기호들(@, /, <, >, ~, `)이 빠져 있어서 사무 작업에는 쓸 수 없으므로, 3-93 옛한글 자판은 일반 업무에 쓰는 3-90 자판을 보조하는 성격으로 만들어진 배열이다.

 

(3)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창안자인 공병우는 1980년대 이후에도 셈틀과 타자기 환경을 모두 헤아린 자판 배열 연구를 이어 갔다. 그리고 1991년에 공병우는 1980년대부터 애플 II, 매킨토시에서 연구해 온 세벌식 배열을 정리하여 공병우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을 붙여 발표하였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공병우 글자판' 또는 '공자판'으로 불린 자판 배열의 마지막 판이라는 뜻이다.주11 주12 나온 해를 따서 3-91 자판으로도 불린다.주13

3-91 자판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그림 5-20]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매킨토시 세벌식)

  3-89 자판처럼 3-91 자판도 요즘한글에 쓰이는 겹받침들이 모두 들어가 있다. 이는 초기 매킨토시 환경에서 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쓸 때에 임시 방편으로 쓰인 직결식 입출력의 편의에 맞춘 것이다.주14 3-91 자판은 겹받침이 많이 들어가고 가운뎃점(·)과 참고표(※)가 들어간 것에서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문장 입력용 배열의 특징이 엿보인다.

  일반 사무용 배열인 3-90 자판과 아랫글 자리의 한글 배열이 같고, 윗글 자리에 들어간 ㅒ와 받침들의 자리가 다르다. 한글 문서에 자주 쓰이는 큰따옴표(")와 빼기 부호(-)가 오른쪽 집게 손가락 자리에 들어갔다. 숫자 배열은 두째 세대부터 쓰이던 것과 같고, 사칙 연산 기호(+, -, *, /)들은 숫자와 이어 치기 좋게 오른쪽의 윗글 자리에 들어갔다. 소수점에 쓰이는 마침표(.)와 자릿수를 끊을 때 쓰는 쉼표(,)는 윗글과 아랫글 자리에 모두 들어갔다. 열고 닫는 따옴표(“ ”)와 참고표(※)와 가운뎃점(·)도 들어갔다. 그 대신에 영문 자판에 있는 `, @, #, $, ^, &, | 따위가 빠져 있다.

  3-91 자판은 셈틀과 타자기에서 함께 쓸 수 있는 한글 배열을 목표로 하였으므로, 수동식/전자식 타자기에서 쓸 배열도 함께 마련되었다. 그림 5-21와 그림 5-22은 『한글과 나 · 공병우』(공병우, 한글문화원 소책자, 1994)에 나온 3-91 타자기 자판 배열이다.주15

3-91 자판 수동식(기계식) 타자기 배열

[그림 5-21] 기계식 수동 타자기용 3-91 자판 배열

3-91 자판 전자식 타자기 배열

[그림 5-22] 전자식 타자기용 3-91 자판 배열

  3-91 자판에서 받침 ㅈ이 ㄵ보다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홀소리가 움직글쇠에 들어간 타자기에서의 편의에 맞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3-91 자판 같은 한글 배열은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나 볼 타자기처럼 홀소리와 받침을 안움직글쇠로 넣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므로 만약 3-91 자판을 쓴 수동 타자기가 만들어졌다면, 3-90 자판을 쓴 타자기와는 움직/안움직 글쇠 짜임이 달랐을 수도 있다. 만약 홀소리와 받침을 안움직글쇠에 넣는다면, 받침 ㅈ이 굳이 ㄵ보다 윗줄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3-91 자판은 1990년대 초에 거의 매킨토시에서만 쓰였으므로, 매킨토시 세벌식이라고 불렸다. 그러다가 3-90 자판과 3-91 자판을 모두 지원한 윈도(Windows)의 영향으로 1990년대 말부터 3-91 자판을 쓰는 이가 늘었다. 3-91 자판은 3-90 자판보다 한글을 매끄럽게 치기 좋고, 공병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공병우 자판을 쓰는 이들에게 꽤 존중 받고 있다.

3-91 공병우 최종 자판 딱지

[그림 5-23] 1990년대 초에 한글문화원에서 나누어 준 3-91 자판 딱지를 자판에 붙인 모습

  그러나 3-91 자판에는 @, #, $, &, [, ] 등이 빠져 있어서 이 기호들을 치려면 영문 자판에 기대어야 한다. 적지 않은 기호들의 자리가 일관성이 떨어지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주16 3-91 자판은 셈틀 환경에서 어디에나 두루 쓰기 좋은 업무용 자판 배열과는 거리가 멀고,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 자판의 후속판으로서 기호를 많이 쓰지 않는 한글 문장을 넣을 때에 편하게 만들어진 배열이다.

공병우 최종 자판 기본/확장 배열 (한글문화원 배포 자료, 1993.9.4)

[그림 5-24] 3-91 자판의 기본/확장 배열 (한글문화원 배포 자료, 1993.9.4)

  매킨토시에서 쓰였던 3-91 자판에는 그림 5-24처럼 선택 글쇠(option key, 옵션 키)를 쓰는 확장 배열이 있었다. 하지만 선택 글쇠를 쓰는 배열은 한글 자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고, 윈도에서는 쓸 수 없어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확장 배열에서도 @, $, ^, & 같은 기호들은 빠져 있다.

 

차례
<주석>
  1. 389 자판은 나중에 배열 개발자, 한글 입력기 개발자, 배열 사용자들 사이에서 불린 약칭이다. back
  2. KS X 1001의 1992년 개정안에 상용 조합형 부호 체계가 부속서로 들어갔다. back
  3. 오늘날에는 유니코드가 여러 나라에서 공통으로 쓰이고 있고, 한국 산업 표준에 규정된 한글 부호 체계(KS X 1001)는 국내에서도 거의 쓰이지 않는다. 유니코드에 완셩형으로 들어간 요즘한글 11172자는 조합형처럼 간단한 공식으로 셈할 수 있는 차례로 놓여 있어서 완성형·조합형 한글 부호계를 둘러싼 논쟁이 이제는 잦아들었다. back
  4. 3-89 자판이 나오고 쓰인 과정은 「세벌식 390 자판이 나오게 된 사연」(박흥호, 호박동네 http://www.hopark.me/?p=316)을 참고하였다. back
  5. 3-89 자판의 숫자 배열은 요즈음 노트북에서 Num Lock을 켜고 쓰는 숫자 배열과 같다. back
  6. 공병우 자판은 줄곧 받침 ㅆ을 따로 두고 있어서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연타)에 어느 만큼은 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1982년에 일찌감치 정보 기기의 표준 자판으로 확정된 두벌식 표준 자판(KS X 5002)은 이에 관한 검토를 거치지 못했다. back
  7. 순아래 자판은 윗글쇠를 쓰지 않고 한글을 넣을 수 있는 한글 자판들을 두루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하지만 안종혁 순아래 자판(1990)이 그 개념을 처음으로 널리 알린 배열이어서 안종혁 순아래 자판이 순아래 자판으로 흔히 불리고 있다. 또한 안종혁은 2014년에 다른 방식으로 더 개량한 순아래 자판(2014)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back
  8. 세벌 위키에 아래아한글 사용자 파일을 공개했던 안종혁의 순아래 자판 배포문이 있다. back
  9. 본래 검은 배경에 흰 글씨로 되어 있던 것을 요즈음 화면에서 보기 좋게 글쓴이가 흑백을 바꾸어 놓았다. back
  10. 한국전산원, 〈장애인의 정보통신서비스 이용활성화 방안 : 정보사회 촉진방안 연구사업〉, 1997.12. back
  11. 1995년까지 공병우가 운영한 한글문화원에서는 '공병우 자판'을 '공병우'가 만든 자판 배열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그러나 그 뒤에는 '공병우 자판' 또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이 '공병우'가 만든 세벌식 자판의 배열 방식을 따르는 자판 배열들을 두루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 공병우 최종 자판? 세벌식 최종 자판?, http://pat.im/1071) back
  12. ‘최종’이라는 말 때문에 3-91 자판이 가장 완성도가 높은 배열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최종’은 공병우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배열을 뜻할 뿐이다. '공병우 최종 자판'을 ‘3-91 자판’으로 부르는 것은 되도록 오해를 부르지 않고 다른 공병우 자판 배열들과 객관성 있게 견주기 위함이다. back
  13. 1993년에 한글문화원이 배포한 자료인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의 비교」에는 3-91 자판이 1992년 초에 완성되었다고 나와 있다. 아마 3-91 자판은 1991년에 처음 공개되었다가 1992년까지 배열이나 기능이 더 다듬어졌던 것 같다. back
  14. 1990년대 초반의 초기 매킨토시 환경에서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이 입력기 차원에서 정식으로 지원되지 못했다. 그래서 임시 방편으로 쓰인 것이 공병우가 개발한 직결식 입출력이었다. 직결식 입출력은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한글 낱자들을 쿼티 자판의 같은 글쇠 자리에 있는 로마자들과 대응시키고, 한글 낱자에 맞추어 변형한 영문 글꼴과 입력 스크립트로 한글을 나타내는 방법이었다. 겹받침이 모두 들어가 있으면 영문 글꼴을 이용하는 직결식 글꼴과 스크립트를 짜기 편한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직결식으로 넣은 글은 그 무렵에 한글 코드(완성형 또는 조합형)와 다른 코드로 들어갔으므로, 직결식으로 넣은 한글 문서는 직결식 글꼴이 있어야 볼 수 있었다. back
  15. 3-91 자판을 쓴 타자기가 실제 제품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back
  16. 3-91 자판을 지원하는 한글 입력기들은 3-91 자판의 기호 배열을 틀리게 구현하다가 나중에 고쳐진 것이 많다. 쿼티 자판과 많이 다르고 어지러우면서 일반 자판에는 잘 들어가지 않는 기호들(참고표, 열고 닫는 따옴표)까지 있어서 3-91 자판을 손수 쓰는 개발자도 3-91 자판을 한 번에 똑바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back
2012/09/22 00:35 2012/09/22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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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쵀믃혻 2013/12/21 19:0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실제로 ᄼ·ᅐ·ᅕ 등은 받침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 팥알 2013/12/21 20:1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ᄼ, ᅎ, ᅔ의 받침이 아직 실제로 쓰인 적이 없기도 하고,
      아직 유니코드에 올라와 있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유니코드에 들어가 있는 요즘한글의 낱내들도 다 쓰이는 건 아닙니다.
      유니코드에 올라 있는 옛한글 낱자도 잘 쓰이지 않은 것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있', '겠' 처럼 ㅆ 받침이 옛글에는 잘 쓰이지 않다가 요즘글에 자주 쓰이는 것처럼
      오늘은 쓰지 않아도 나중에는 쓰이게 될 낱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소리 낱자를 끝소리에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이 한글의 특징이고
      옛한글 자판을 응용하여 외국어 표기까지 하는 한글 자판을 만들 수도 있으므로,
      ᄼ·ᅎ·ᅔ의 받침 넣는 방안을 생각은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제 뜻입니다.

      문자 코드에 들어가 있다면 두벌식 옛한글 자판으로 ᄼ·ᅎ·ᅔ의 받침을 칠 수 있는데,
      세벌식 옛한글 자판으로 치지 못하는 받침이 있다면 세벌식 자판다운 모습이 아닐 겁니다.

    • 팥알 2015/12/09 03: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다시 생각해 보니, 3-93 옛한글 자판에서 ᄼ·ᅐ·ᅕ 등의 받침에 대한 이야기는 적절하지 않은 듯하여 뺐습니다.

  2. 전마머꼬 2015/01/29 20:1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늘 날짜로 올라올 글을 읽어보다가

    팥알님의 기호확장 자판이... 뿌리가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 팥알 2015/01/29 22:3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 동안 저도 글로만 보고 3-91 자판의 기호 확장 배열이 있었다고 알았는데, 요즈음 들어서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가상으로 띄워서 공한글 입력기로 기호 확장 배열을 살짝 써 보며 실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런 확장 배열 개념이 더 일찍 널리 알려져서 폭넓게 응용되지 못했던 게 많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