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우 3벌식 자판은 3벌식 자판이어서 익히기 어려운 점이 있고, 3벌식 자판 가운데서도 공병우 자판이어서 익히기 어려운 점이 있다. 공병우 3벌식 자판은 왜 익히기가 쉽지 않은지를 하나씩 짚어 보고, 조금이라도 쉽게 익히는 방법을 이야기해 본다.


1. 손에 익은 두벌식 자판을 버리기 어렵다

  오늘날의 기기 환경에서 세벌식 자판을 두벌식 표준 자판보다 먼저 접하기는 매우 어렵다. 세벌식 자판을 익히려고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표준 자판이 이미 손에 익어 있다. 이는 세벌식 자판을 익힐 때에 큰 걸림돌이 된다. 두벌식 자판을 쓰면 첫소리와 끝소리를 같은 닿소리 글쇠로 넣는 것에 익숙해지지만, 세벌식 자판은 첫소리와 끝소리(받침)를 다른 글쇠로 가려 넣어야 한다.

  한글에서 첫소리와 끝소리는 모두 닿소리 낱자로 적지만, 위/아래로 자리는 달리하여 적는다. 그래서 한글을 잘 익힌 사람들은 첫소리와 끝소리를 같은 닿소리로 여기면서도, 손글씨를 쓸 때에 첫소리와 끝소리를 잘 가려 적는다. 로마자처럼 옆으로 풀어쓰는 글에만 익숙한 사람은 이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처음 한글로 글씨를 쓰려고 할 때에 어려움을 겪는다.

  두벌식 자판에 익숙한 사람이 왜 세벌식 자판을 익히기 어려운 까닭도 글씨 쓸 때와 같다. 처음에는 낱내(음절)를 모아쓰는 한글보다 로마자처럼 풀어쓰는 글이 익히기 쉬운 것처럼, 한글 자판도 모아쓰기 방식인 세벌식 자판보다 풀어쓰기 방식인 두벌식 자판을 더 쉽게 익힐 수 있다. 세벌식 자판은 받침을 가리는 점 때문에 처음 익힐 때에 신경이 더 쓰인다.

  두벌식 자판을 쓰면 자기도 모르게 첫소리와 끝소리를 가리지 않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세벌식 자판을 쓰려고 하면, 한글로 글씨를 처음 쓸 때처럼 첫소리와 끝소리를 가리느라 낯설고 답답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먼저 쓰던 두벌식 자판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긴다. 세벌식 자판에 어느 만큼 적응한 사람은 두벌식 자판을 쓰던 감각을 잊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겪는 마음고생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한글 자판을 전혀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갈등을 훨씬 덜 겪고 세벌식 자판에 적응할 수 있다.



2. 들어간 낱자 낱소리 수가 많다

  세벌식 자판에는 받침이 따로 들어가므로, 두벌식 자판보다 적어도 닿소리 14자가 더 들어간다. 거기다가 공병우 세벌식 자판들은 겹받침 ㄲ, ㄶ, ㄺ, ㄻ, ㅀ 등과 겹홀소리 ㅢ와 겹홀소리에 들어가는 ㅗ, ㅜ 등이 따로 들어 있다. 그래서 공병우 계열 자판은 다른 세벌식 자판보다도 처음 연습할 때부터 속도를 내기 어렵다.

  맨 윗줄(영문 쿼티 자판의 숫자열)까지 한글 낱자가 가득 찬 공병우 자판의 모습은 조금이라도 더 간단한 것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맞지 않다. 낱자가 많이 들어간 것이 숙달한 뒤에는 도움이 되는 면이 있지만, 처음 익히는 이에게는 큰 짐이다.

두벌식/세벌식 한글 자판들에 들어간 낱자 수
자판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합계
두벌식한국 표준
조선 국규
14 + 5 12 + 2 0 26 + 7 = 33
신세벌식 14 17 15 46 + 0 = 46
공병우
세벌식
순아래 14 15 15 44 + 0 = 44
3-90
3-2012
14 16 + 1 9 + 12 39 + 13 = 52
3-2011 14 16 + 1 9 + 15 39 + 16 = 55
3-91
3-2011 직결식
14 16 + 1 9 + 18 39 + 19 = 58
안마태
세벌식
소리 글판  10 + 0 + (8) 10 + 0 + (5) 10 + 0 + (8) 30 + 0 + (21)

  '14 + 5'은 그냥 누르는 낱자가 14가지, 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은 낱자가 5가지라는 뜻이다. '10 + 0 + (8)'에서 '(8)'은 글쇠 두 개를 함께 눌러 넣는 낱자가 8가지임을 나타낸다. (옛한글 낱자는 세지 않았다.)

3. 첫닿소리를 오른손으로 친다

  두벌식 표준 자판은 닿소리가 왼쪽에 있고, 홀소리가 오른쪽에 있다. 그 동안 나온 한글 자판 배열들은 닿소리(또는 첫소리)를 왼쪽에 둔 것이 많았다. 이는 손글씨로 쓰는 차례를 따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두벌식 자판을 쓰던 이가 공병우 자판을 익히려면, 세벌식에 적응하면서 한글 첫소리를 오른쪽 글쇠에서 치는 것과도 씨름해야 한다.

공병우 자판의 짜임새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짜임새

  공병우 3벌식 자판은 첫소리를 오른쪽에 두고 있다. 한글 기기 역사를 통틀어 보면, 첫소리를 오른쪽에서 치는 배열이 몇몇 있었다. 도덩보(도정보)의 풀어쓰기 2벌식 타자기 자판, 주요한의 2벌식 타자기 자판안, 진윤권의 3벌식 타자기(참 타자기) 자판 등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널리 쓰인 것은 공병우 자판뿐이다.

  첫소리를 오른쪽에 둔 공병우 자판 배열은 본래 수동 타자기 설계에 맞춘 것이다.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는 초점(가늠쇠, guide)이 하나만 있는 영문 타자기와 달리 초점을 두 개로 늘렸다. 움직글쇠로 찍는 낱소리(첫닿소리와 홀소리)는 오른쪽 초점에서 찍고, 안움직글쇠로 찍는 낱소리(끝닿소리)은 왼쪽으로 찍는다.주1 만약 첫닿소리를 왼쪽에 두면, 왼쪽 글쇠와 이어진 활자대가 오른쪽 초점으로 들어갈 때에 다른 활자대와 자주 엉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병우는 처음에 첫닿소리를 왼쪽에 둔 3벌식 배열로 타자기를 만들었다가 활자대 충돌이 심하여 첫닿소리를 오른쪽에 두는 배열로 바꾸었다고 한다.

  셈틀과 같은 전자 기기에서는 첫소리를 꼭 오른쪽에 두어야 할 까닭은 없다. 모아치기에 맞춘 안마태 3벌식 자판, 송영상의 ‘영상 세벌식’, 1968년에는 상공부가 제안한 3벌식 자판 시안, 카스 및 소리자바를 비롯한 3벌식 속기 자판 등이 첫닿소리를 왼쪽에 둔 3벌식 자판이다. 아무래도 첫닿소리를 왼쪽에 있으면 2벌식 자판을 쓰던 이가 3벌식 자판에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다. 한글 타수를 따지면, 첫소리를 왼쪽에서 치는 3벌식 자판은 오른손 타수가 약 60% 정도여서 오른손잡이를 더 배려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공병우 자판만큼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다. 안마태 자판과 속기 자판들은 모아치기를 해야 매력이 있어서 일반인이 두루 쓰기 어렵고, 영상 세벌식은 실무에 쓰려면 배열을 더 다듬을 필요가 있다. 공병우 계열 자판은 오랜 동안 실무에 쓰이면서 다듬어졌지만, 첫닿소리를 왼쪽에 둔 3벌식 자판은 모아치기 자판을 빼면 아직까지 공병우 자판만큼 쓸 만한 배열이 나오지 않고 있다.


4. 글쇠에 배열이 찍힌 기기가 없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셈틀 자판에는 두벌식 표준 배열이 찍혀 있다. 요즈음은 전화기(스마트폰)에서도 두벌식 표준 배열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셈틀 자판을 비롯하여 세벌식 배열이 찍힌 기기는 일부러 찾더라도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난날에 쓰인 수동 타자기에서 공병우 자판을 보기가 더 쉽다고 할 수도 있는 형편이다.

  공병우 세벌식 배열이 찍힌 자판 제품은 드물게나마 나오고 있다. 누군가 자판 생산 회사와 접촉하여 100대쯤을 주문 생산하고, 이 제품들을 동호회 등을 통하여 여럿이 함께 사는 식이다. 이런 방식은 주문하는 이가 자판의 글쇠 도안부터 비용 문제까지 짐을 져야 하고, 만드는 회사에서 보면 소량 생산이어서 제품이 나오기까지 어려움이 많다. 꾸준한 수요가 이어지면 이렇게라도 하여 공병우 자판이 시장에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꾸준한 판매처가 유지될 만큼 수요가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 때문에 제품이 필요한 사람이 제때에 제품을 얻기 어렵다.

(2012년 11월에 3-91 자판 배열과 두벌식 표준 배열이 함께 찍힌 자판을 공동 구매하고 있다.
http://cafe.daum.net/3bulsik/623N/101)

  배열이 찍힌 기기를 구하지 못했을 때에 3벌식 자판을 익히는 가장 현실성 있는 방법은 글쇠에 딱지(스티커)를 덧붙여 쓰는 것이다. 1990년대에 한글문화원은 3-90 자판과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 딱지를 나누어 주는 방법으로 공병우 3벌식 자판을 보급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루이빈 치과에서 3-90 자판과 3-91 자판 딱지를 나누어 주었다. 글쇠에 세벌식 자판 딱지를 덧붙이고 연습하면, 이미 익숙한 2벌식 표준 배열을 가릴 수 있어서 세벌식 자판 연습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세벌식 사랑 모임 등에 프린터로 찍기 좋게 공개한 3벌식 배열표 서식 파일이 올라와 있으므로, 파일을 받아 라벨지에 인쇄하여 딱지를 만들어 쓸 수도 있다.

3-91 공병우 최종 자판 딱지

1990년대에 한글문화원이 나누어 준 3-91 자판 딱지를 글쇠에 붙인 모습

3-2012 자판 딱지를 글쇠에 붙인 모습

3-2012 자판 딱지를 찍어 글쇠에 붙인 모습

  셈틀을 여럿이 함께 써야 한다면, 글쇠에 딱지를 덧붙여 쓰기는 어렵다. 세벌식 자판을 실무에 쓰면서 익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따로 종이에 찍은 배열표를 보거나 셈틀 화면에 배열표를 띄워 쓰기도 한다. 일반 셈틀에서 세벌식 자판을 눈치 보지 않고 잘 쓰려면 글쇠를 보지 않고 칠 수 있을 만큼 배열을 손에 익혀야 하는 것이 어렵다.


4. 윗글쇠를 눌러 치는 받침이 많다

  2벌식 표준 자판은 된닿소리(ㄲ, ㄸ, ㅃ, ㅆ, ㅉ)와 홀소리 ㅖ, ㅒ이 윗글 자리에 있다. 공병우 3벌식 자판은 홀소리 ㅒ와 받침 ㅈ, ㅋ, ㅌ, ㅍ과 ㅆ을 뺀 겹받침(ㄲ, ㄶ, ㄺ, ㄻ, ㅀ, ㅄ 등)이 윗글 자리에 있다.

  공병우 자판은 홀소리 ㅖ와 받침 ㅆ이 아랫글에 있어서 윗글쇠(시프트)를 쓰는 잦기를 줄이고 있다. 통계를 내어 보면 실제로는 공병우 자판이 표준 자판보다 30%쯤 윗글쇠를 덜 누른다. 하지만 윗글쇠를 눌러 치는 함께 한글 낱소리 수가 많아서 표준 자판보다 윗글쇠를 더 자주 누른다는 오해를 받는다.

  공병우 자판에 많은 받침이 윗글 자리에 있는 것은 처음 익힐 때에 어려우나, 숙달하고 나면 오히려 편할 수 있다. 자판으로 한글을 칠 때는 낱소리 단위로 글쇠를 누르지만, 사람들은 소리내어 읽는 단위인 낱내(음절)도 의식하기 때문이다.

  두벌식 표준 자판으로 ‘짠’을 넣을 때처럼 첫소리부터 윗글쇠를 눌러야 할 때는 바른 타자법으로는 다음에 오는 가운뎃소리 ㅏ와 끝소리 ㄴ을 빨리 이어 치기가 어려워진다.주2 그 때문에 낱내 넣기를 빨리 끝맺지 못하여 다음에 쳐야 할 홀소리와 받침을 머릿 속에 더 오래 담아 두게 된다.

  공병우 자판은 윗글쇠를 쓸 때가 받침을 넣을 쓸 때에 몰려 있으므로, 두 손을 써서 낱내를 마무른다는 느낌으로 넣을 수 있다. 윗글쇠를 쓴 다음에 거의 다음 낱내로 넘어가므로, 치고 있는 낱내의 낱소리를 머릿속에 오래 떠올리는 짐이 적다. 공병우 자판이 많은 받침을 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는 것이 처음 익힐 때에는 어렵지만, 능숙하게 치는 이는 타자 흐름이 더 매끄럽다고 느낄 수 있다.


5. 굳이 특수기호 자리가 어려운 배열을 익히려 한다

  셈틀에서 공병우 자판은 3-90 자판과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이 널리 쓰이고 있다. 처음 익히려는 사람에게 널리 쓰이는 공병우 자판 배열이 하나가 아닌 점은 매우 혼란스러울 일이다.

  많은 한글 입력기에는 3-91 자판이 '세벌식 최종'이라는 이름으로 목록에 들어가 있다. 이 자판 배열은 본래 이름이 '공병우 최종 자판'이고, 발표한 해(1991년)를 따서 '3-91 자판'이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세벌식 최종'이라고 흔히 알려진 배열 이름이 모든 세벌식 자판의 완성판이라는 인상을 풍기면서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세벌식 3-89 자판 (389 자판)

3-89 자판

세벌식 3-90 자판 (390 자판)

3-90 자판

  1990년대 초에 주로 쓰였던 공병우 세벌식 배열은 3-90 자판이었다. 3-90 자판은 특수기호들의 자리를 영문 쿼티 자판과 비슷하게 맞추어서 도스(DOS) 환경에서 명령어를 자주 써야 했던 PC 사용자들을 배려한 공병우 세벌식 자판 배열이었다. 앞서 나왔던 3-89 자판은 영문 자판과 특수기호 배열이 매우 달라서 쓰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3-90 자판은 특수기호 자리를 영문 자판과 비슷하게 맞추어 3-89 자판의 문제를 개선하였다.

세벌식 3-91 자판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은 1991년에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창안자인 공병우 박사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세벌식 배열이다. 겹받침을 모두 갖추고 있고 한글 배열이 더 다듬어져서 3-90 자판보다 한글을 치기 좋다. 하지만 @, $, ^, &, [, ], {, } 등이 빠져 있고 3-89 자판처럼 특수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매우 다르다. 업무용보다는 작가들이 쓰는 문필용에 가깝다.주3 3-91 자판은 모든 업무에 두루 쓰기 좋은 배열이 아니지만, 이름에 붙은 ‘최종’이 많은 사람들이 실제 배열을 견주어 보지 않고 모든 세벌식 자판의 완결판 또는 대표안이라고 여기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초에 한글문화원은 자판 딱지를 나누어 주는 방법으로 두 자판을 함께 보급하였는데, 흔히 쓰인 도스(DOS) 환경의 IBM 계열 PC에서는 3-90 자판이 쓰였다. 3-91 자판은 처음에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를 쓴 매킨토시에서만 쓰였는데, 매킨토시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3-91 자판을 쓰는 이가 드물었다. 그러던 3-91 자판은 두 자판을 모두 지원한 윈도(Windows) 운영체제가 널리 보급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쓰는 이가 점점 늘어났다. 1995년에 공병우 박사가 세상을 뜨고 한글문화원이 문을 닫으면서 3-90 자판을 꾸준히 보급하려는 움직임은 사라졌다. 3-91 자판은 공병우 박사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과 ‘최종’이 들어가는 배열 이름 때문에 세벌식 자판을 쓰는 이들 사이에서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겼고, 1990년대 말부터는 3-91 자판을 익힌 이들의 비중이 커졌다.

  3-91 자판을 쓰는 이들의 비중이 커졌다고 하지만, 오늘날 3-91 자판을 쓰는 이들 가운데는 3-90 자판을 쓰다가 바꾼 이들이 많다. 먼저 3-90 자판을 익히면 특수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비슷하여 한글 배열을 연습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고, 겹받침 수가 적어서 3-91 자판보다 한글 배열에 빨리 숙달할 수 있다. 그래서 1990년대 초에 공병우 자판은 3-90 자판을 앞세워 이미 자리를 굳게 잡은 두벌식 표준 자판을 흔들 만큼 지지자를 늘려 갈 수 있었다. 3-90 자판은 3-91 자판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구실까지 했다.

  그러나 3-91 자판을 바로 익히려면 영문 자판과 너무 다른 특수기호 배열과도 씨름해야 하므로, 처음에 한글 배열을 집중해서 연습하기 어렵다. 글쓴이처럼 3-90 자판을 먼저 익혔다가 3-91 자판으로 바꾸는 경우는 적응하기가 쉽다. 하지만 3-91 자판을 바로 익히려 들면 공병우 자판 쓰기를 포기할 확률이 높고, 어렵게 숙달하더라도 3-90 자판을 거칠 때보다 자판을 쓰면서 느끼는 만족감도 떨어지는 듯하다. 통계 조사를 해 보지는 않았지만, 1990년대 초에 3-90 자판이 한창 보급되던 분위기와 견준다면 3-91 자판을 바로 익혀 잘 쓰는 이들의 수는 매우 적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처음 익히는 이가 공병우 3벌식 배열에 숙달하여 편리하게 쓸 수 있는 확률을 높히고 싶다면, '최종'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3-90 자판처럼 더 쉽고 쓰기 편한 배열을 연습하는 것이 좋다. 3-91 자판을 익히는 것을 목표로 하더라도, 3-90 자판을 먼저 숙달한 다음에 3-91 자판으로 바꾸는 쪽이 더 쉽다. 3-91 자판을 바로 익히는 것을 역기를 단번에 끌어올리기는 역도의 인상에 빗댄다면, 3-90 자판을 먼저 익혔다가 바꾸는 것은 역기를 가슴에 걸쳤다가 반동으로 쳐드는 용상(추어올리기)에 빗댈 수 있다.

세벌식 3-2012 자판

3-2012 자판 (기본 배열)

  3-90 자판의 한글 배열이 아쉽다면, 이를 개선하고자 글쓴이가 제안한 3-2012 자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3-2012 자판은 리눅스나 맥 OSX와 같은 운영체제에서는 입력기 설치 과정을 더 거쳐야 쓸 수 있어서 입력기 환경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쓰기 어렵다. 아직은 3-90 자판이 여러 운영체제의 입력기에 기본으로 들어가 있어서 두루 쓰기 좋은 공병우 3벌식 배열이다.


6. 영문 자판과 숫자 배열이 다르다

  공병우 세벌식을 응용한 신세벌식 배열은 숫자 배열을 영문 자판과 똑같이 쓴다. 하지만 정통 공병우 세벌식을 따르는 배열은 많은 한글 낱소리들이 영문 자판의 숫자열까지 차지하여 영문 배열과 숫자가 다른 자리에 놓일 수밖에 없다. 영문 자판과 다른 숫자/기호 배열을 써야 하는 점은 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처음 익히는 이에게 어려운 부분이다.

  공병우 자판의 숫자 배열은 힘이 센 두째 손가락은 많이 쓰게 한 배열이고, 숙달하면 한글 문장에 섞인 숫자를 손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로 자연스럽게 칠 수 있다. 하지만 공병우 자판의 숫자 배열이 낯설어 자칫 영문 자판 상태에서 숫자를 넣는 버릇이 들 수 있고, 3-90 자판과 나머지 공병우 자판들의 숫자 배치가 달라서 쓰는 이들이 혼란스럽게 느낄 수 있다. 웹에서 쓰이는 자판(키보드) 관련 보안 장치들이 오직 쿼티 자판에만 맞추어 개발될 때도 있어서 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쓰다 보면 금융 거래 등을 할 때에 숫자를 넣다가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7. 팔은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만 뻗어 치려 한다

  공병우 자판은 영문 쿼티 자판의 숫자열까지 한글 낱소리가 들어가 있어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범위가 넓다. 첫소리 ㅋ이나 끝소리 ㅎ은 공병우 자판을 처음 익히는 이가 특히 껄끄럽게 느낄 만한 자리에 있는 낱소리이다.

  통계를 내어 견주더라도 공병우 자판은 다른 어느 계열의 한글 자판보다 운지 거리가 길다. 흔히 운지 거리는 치는 이가 느끼는 피로도와 비례한다고 알기 쉽지만, 공병우 자판을 실제로 쓰는 이들 사이에서는 표준 자판처럼 운지 거리가 더 짧은 한글 자판보다 오랜 동안 작업하기에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운지 거리가 긴 공병우 자판이 오히려 피로도가 덜한 까닭은 팔을 움직여 치는 타자법에 있다. 표준 자판을 쓰던 때의 버릇으로 공병우 자판을 치려고 하면, 손목을 받침대에 괸 채로 손가락만 뻗거나 손목을 비틀어 치기 쉽다. 하지만 공병우 자판을 칠 때에는 손목을 바닥에 괴지 않은 채로 팔을 움직여서 손가락을 뻗는 거리를 줄일 수 있다. 처음에는 팔을 움직여 치는 타자법이 어색하겠지만, 이를 터득하면 손이 작거나 손가락이 짧은 사람도 공병우 자판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쓸 수 있다.


8. 그렇다면 공병우 3벌식 자판을 쉽게 익히는 길은?

  다음 조건들을 따르며 연습한다면, 공병우 자판을 부작용 없이 빠르게 익힐 수 있을 것이다.


  • 여유가 있고 필요를 느낄 때에 연습을 시작한다
  • 되도록 한 살이라도 어릴 때(손가락이 굳기 전)에 익힌다.
  • 연습할 때는 두벌식 배열이 찍힌 글쇠를 딱지를 덧붙여 가리거나 공병우 자판 배열만 찍힌 자판 기기를 쓴다.
  • 처음 적응하는 동안(한 달 이상)에는 모든 작업을 공병우 자판만으로 한다.
  • 타자연습 풀그림으로 날마다 20분쯤 꾸준히 연습한다.
  • 되도록 쉬운 공병우 자판(3-90 자판이나 3-2012 자판)을 먼저 익힌다.
  • 처음에는 속도에 욕심 내지 말고 손가락을 바르게 써서 치는 것에 신경 쓴다.
  • 손가락을 너무 뻗거나 손목을 비틀지 말고 팔을 움직여 친다.
  • 연습할 때에는 모아치기 기능을 쓰지 않는다.
  • 한글뿐만 아니라 숫자와 기호를 치는 연습도 함께 한다.

  한두 달쯤 공병우 자판만으로 모든 작업을 한다면, 손에 익었던 두벌식 자판을 쓰던 감각조차 잊게 된다. 그렇더라도 두벌식 자판을 쓰던 감각은 쉽게 되살아나므로, 공병우 자판으로 기대한 만큼의 속도를 내기 전까지는 다른 자판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좋다. 세벌식 자판에 아주 숙달한 다음에는 두벌식/세벌식 자판을 함께 쓸 수 있지만, 두 자판을 자주 번갈아 쓸 때가 잦을수록 타자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공병우 자판이 첫닿소리를 오른손으로 넣는 것은 두벌식 자판을 쓰던 이에게 어렵지만, 공병우 자판에 숙달한 뒤에는 닿소리를 왼손으로 넣는 두벌식 자판과 함께 쓸 때에는 도움이 된다.

  숙달한 뒤를 생각한다면, 처음 익힐 때에 서두르지 말고 바른 타자법에 신경 써야 좋다. 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결코 독수리 타법으로 빨리 칠 수 있는 자판이 아니고, 능숙하게 쓰는 사람도 삐딱한 자세로는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공병우 자판은 처음 한 달 동안 속도가 잘 붙지 않다가 두어 달 뒤에야 속도가 붙을 수 있다. 속도가 붙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독수리 타법 같은 버릇이 걸림돌이 된다. 두벌식 자판을 쓸 때에 버릇이 잘못 들어 있었다면, 공병우 자판을 익히면서 버릇을 고칠 수 있다.

  쉽고 쓰기 편한 배열을 잘 골라 쓰는 일이야말로 변종이 많은 공병우 자판을 쉽게 익혀 편리함을 누리는 지름길이다. 이제 막 자판 배열을 익히려는 이가 세세한 요소까지 견주어서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는 어려운데, 이 문제가 공병우 자판을 익히려는 이의 짐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면에서 두루 쓰기 좋은 공병우 자판 배열이 하루 빨리 대표안으로 자리잡아야 하고, 그 때까지는 익혀 쓰는 이가 어느 배열이 스스로에게 알맞은지를 살필 수밖에 없다.

<주석>
  1.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는 홀소리를 안움직글쇠로 찍었다가 나중에 움직 글쇠로 찍도록 바뀌었다. back
  2. 이 점 때문에 두벌식 표준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된소리를 넣을 때에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윗글쇠 누르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타자법에 어긋나지만, 다음에 오는 낱소리(홀소리, 받침)를 매끄럽게 칠 수 있기 때문이다. back
  3. 1970년대에 공병우 타자기 가운데 작가들이 쓰기 편하게 만든 문장용(문인용) 타자기가 있었는데, 3-91 자판은 문장용 타자기 자판의 후속판이라고 볼 수 있다. back
2012/11/11 23:51 2012/11/1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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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그네 2013/02/12 18: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잘 보았습니다.
    큰 도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팥알 2013/02/12 22: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덧글 고맙습니다.
      한동안 세벌식 자판에 대한 관심이 많이 가라앉았는데, 요즈음 들어 세벌식 자판에 관한 글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기쁩니다.

  2. sk 2013/04/09 12: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좀 편안하게 타이핑할수 있는 방법 찿아 세벌식 자판까지 찿아 오게 되었습니다
    두벌식 자판 너무 불편해요

    • 팥알 2013/04/09 21:1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느리게 칠 때는 잘 몰랐지만, 속도가 붙을수록 두벌식 자판의 문제점을 크게 느꼈습니다.
      두벌식 자판은 닿소리를 치는 쪽 손가락이 꼬여서 자주 오타로 이어지는데, 두벌식 표준 자판은 이에 대한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은 듯하여 아쉽습니다.

  3. do 2013/04/13 09:2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세벌식 390으로 이제막 연습시작 하려고합니다
    종류가 많아서 고민했는데 이글덕분에 결정했네요^^
    컴퓨터를 오래써오다보니 두벌식으로는 한계가있는것같네요
    키보드도 최근에 자주 바꿔보았지만 생각해보니 두벌식의 한계였네요
    저도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조금있는데 좋은 자료가많네요
    보통 능력자가 아니신듯 ㅎㄷㄷ

    • do 2013/04/13 09:2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금 텐키리스 키보드로 바꾸고 적응중인데
      세벌식 390구조를 보니 키패드가 구지 필요없어보여서
      딱 이거다 싶더군요 ㅎㅎ

    • 팥알 2013/04/13 11:0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3-90 자판은 많은 한글 입력기들이 지원하고 있고, 개발자들에게 알맞은 배열입니다.
      오른쪽 숫자판을 편리하게 쓰고 있다면, 3-90 자판만 한 세벌식 배열이 없습니다.
      하지만 숫자 배열 때문에 기호 배열이 좀 더 흩뜨러지는 점이 흠이어서, 3-90 자판의 숫자 배열을 따르는 개선안을 어떻게 만들어야 가장 좋을지를 쭉 고민하고 있습니다.

  4. 세벌 2013/05/10 07: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익힐 낱소리 수가 많다? 맞습니다. 그러나...
    자판을 다 외워야만 된다는 편견을 버리면 세벌식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자주 쓰는 글쇠부터 천천히 익히면 됩니다.
    가끔 쓰는 글쇠는? 예를 들어 ㄽ 받침 치려는데 글쇠 위치가 생각 안 나면 ㄹ 친 다음 ㅅ 치는 방법도 있지요.

    • 팥알 2013/05/10 10: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늘날에 세벌식 자판을 쓰는 이들이 처한 환경은 생각한다면,
      겹받침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누구든 언제나 딱지를 붙이거나 세벌식 배열이 새겨진 자판을 쓰지는 못하니
      글쇠 배열을 거의 손에 익히지 않고서 세벌식 자판을 쓰기는 참 어렵습니다.
      아주 드물게 나오는 겹받침은 손에 잘 익지도 않아서 갈등 거리가 되곤 합니다.

      3-91 자판에는 ㄽ이 따로 들어가 있는데 쓰는 이가 알아서 판단하여 ㄹ+ㅅ으로 친다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모아치기만을 겨냥한 어떤 입력기는 3-91 자판을 쓸 때에 ㄹ+ㅅ, ㄹ+ㅌ, ㄹ+ㅍ으로 낱자 조합을 허용하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일반 보급용 배열일수록 자판 연구자가 미리 궁리해서 애매함을 풀어야 마땅한데, 실속 없는 애매함을 많이 남겨두어서 쓰는 이와 개발자 모두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ㄹ+ㅅ/ㄹ+ㅌ/ㄹ+ㅍ으로 치기가 더 쉽고 아주 드물게 쓰인다면, ㄽ/ㄾ/ㄿ은 일반 보급용 배열에서는 빠져야 맞습니다. 그 동안은 1995년에 공 박사님이 돌아가시고 한글문화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홍보가 잘 안 되어서 3-91 자판의 겹받침 문제가 더 두드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3-90 자판이 왜 보급 성과가 좋았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적절히 들어간 겹받침에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겹받침이 적게 들어가고 따로 들어가지 않은 겹받침도 이어치기 좋은 배열을 보급안으로 권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몇 안 되는 사람들만 익혀 쓰는 자판으로 남게 됩니다.

  5. 또바기 2013/08/22 16:5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세벌식 최종(한글 윈도우 이외의 윈도우에서는 3 Beolsik Final으로 표현되어 있더군요)이라는 명칭에 대한 문제점을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병우 박사님이 돌아가신 후, 세벌식의 발전과 개선이 멈춰진 것 같습니다. 세벌식은 아직 개선의 여지가 남아있고 보다 많은 사용자를 위해 개선되어야 할 것 같지만, 공병우 박사님이 안 계신 지금 그 문제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게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즉, 힘을 모으고 발휘하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느낌입니다. 여러가지 개선되어야 할 점이 남아있는데도 불구하고 공병우 박사님이 남긴 마지막 자판이 그냥 그대로 최종버전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공병우 박사님의 마지막 버전이니, 조금 불편해도 참고 사용하자라는 반강제적인 강요의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공병우 박사님의 뒤를 이을 새로운 분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 팥알 2013/08/23 21:3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1990년대 초에는 3-90 자판의 보급 성과가 컸는데, 2000년대에 들어서는 3-91 자판을 높게 보는 풍조가 너무 짙습니다. '최종'이나 'final' 같은 배열 이름 탓도 있지만, 참고할 만한 공개 자료가 적은 것도 오해를 키우는 까닭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이런 점 때문에 지난날 공 박사님이 계실 적처럼 세벌식 자판을 꾸준하게 연구하고 보급하는 주체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세벌식 자판에 관심 있는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문제를 조금씩 풀어가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세벌식 타자기는 3-90 자판이 보급되는 디딤돌이 되었고, 3-91 자판이 알려진 데에는 3-90 자판의 힘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3-91 자판의 다음이 있을까 싶을 만큼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뒷날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어떻게 보면 지난날에 쌓은 유산을 까먹으며 논쟁 거리가 될 힘마저 잃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광조님의 신세벌식처럼 새로 쌓아간 자산도 있습니다. 신세벌식 같은 새로운 개념으로 나오는 틈새 기술은 세벌식 자판이 더 발전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기능도 누리는 사람이 있어야 보람이 있겠지요. 알게 모르게 세벌식 자판과 얽힌 일로 많은 분들이 애쓰고 있는 만큼, 쓰는 사람도 늘고 더 새로운 기능도 느는 선순환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