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우 타자기 광고 전단지에 나오는 공세벌식 자판들 (한영 겸용 타자기, 문장용 타자기)

  공병우 타자기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자판 배열을 달리하며 숱한 종류가 나왔다. 컴퓨터에서도 쓰이는 많은 공세벌식 자판(공병우 세벌식 자판)들은 배열의 특징에 따라 세대를 나눌 수 있는데,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에서 여러 공세벌식 자판들을 세대별로 묶어서 살펴 보았다.

  아래에서 볼 광고 전단지에 나오는 공병우 타자기들은 3~4째 세대 공세벌식 자판이 쓰였다. 3째 세대 배열은 1960년대부터 이미 쓰이고 있었고, 4째 세대 배열은 1970년대부터 보급되었다.

  수동 타자기의 특성과 여러 공세벌식 자판들의 장단점을 알고 있다면, 어느 자판 배열이 먼저 나왔고 나중에 나왔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나온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와 처음에 나온 '공병우 문인용 타자기'(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는 4째 세대 배열이 쓰였지만, 그 뒤에 한글만 찍는 공병우 타자기에는 1980년대 이후에도 3째 세대 배열이 쓰였다. 수동식 한글 타자기에서는 나중에 나온 4째 세대 배열보다 먼저 나온 3째 세대 배열이 쓰기 나은 면이 있었기 때문에, 4째 세대 배열이 3째 세대 배열을 오롯이 갈음하는 관계는 되지 못하였다.

  아래에 올린 자판 배열 그림들은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에 올린 것이다. 참조하기 쉽게 하려고 그림 차례 번호까지 그대로 옮겨 썼다.

(1) 공병우 한영 겸용 타자기 (4째 세대 배열)

공병우 한영 타자기 광고 전단지 (1970년대, 4째 세대 배열)
공병우 한영 타자기 광고 전단지 (1970년대, 4째 세대 배열)

  위의 '공병우 한영 타자기' 광고 전단지는 글쓴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스캐너로 읽은 것이다. 공 안과 의원 안에 있던 '공병우 타자기 연구소'가 개발하고 '유판사', '공병우 타자기 상사', '부라더 사무기 상사'에서 판매했음을 알 수 있다. 새로 만든 완제품도 팔았지만, 이미 있던 타자기를 개조해서 공병우식 한영 타자기로 만들었던 것도 알 수 있다.

  공병우 한 · 영 타자기는 2째 세대 배열을 쓴 것이 1960년대에 발명되었고, 3째 세대 배열을 쓴 제품도 나왔다.주1 위의 전단지에 보이는 4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 · 영 타자기는 1970년대부터 보급된 제품이다.

  2단 한 · 영 타자기는 영문을 큰 로마자(대문자)만 찍을 수 있었다. 3단 한 · 영 타자기는 영문 소문자도 찍을 수 있었고 겹받침과 기호가 더 들어 있었다.

2단식 공병우 한영 겸용 수동타자기 자판 배열(세째 세대)
[그림 3-8] 2단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 (3째 세대)
3단식 공병우 한영 겸용 수동타자기 자판 배열(세째 세대)
[그림 3-9] 3단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 (3째 세대)

  3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는 영문 쿼티 배열이 바른 자리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영문 수동 타자기는 모든 글쇠가 누르면 활자가 찍히면서 초점도 움직이는 '움직글쇠'이다. 한글 수동 타자기에서는 활자가 찍힐 때에 초점이 움직이지 않는 '안움직글쇠'에 일부 낱자들이 들어가기도 한다.

  1960년대 이후에 쓰인 수동식 공병우 타자기는 한글 첫소리와 가운뎃소리(홀소리)가 '움직글쇠' 자리에 들어갔고, 끝소리(받침)은 눌러도 '안움직글쇠' 자리에 들어갔다. 이러한 틀을 그대로 따라 한 · 영 겸용 타자기를 만든다면, 한글 끝소리 자리에 들어간 영문자들을 어떻게 찍을지가 문제가 된다.

  3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2단 한 · 영 겸용 타자기는 한글 받침이 들어간 글쇠가 윗글쇠를 함께 누르는지 아닌지에 따라 움직글쇠가 되기도 하고 안움직글쇠가 되기도 하였다. 윗글쇠를 함께 누르지 않은 때에는 초점이 움직이지 않는 채로(안움직글쇠로서) 받침을 찍었고, 윗글쇠를 함께 누를 때에는 초점이 움직이면서(움직글쇠로서) 영문자를 찍었다. 이를 구현하려고 기계 장치의 구조가 복잡해졌고, 받침 자리에 들어간 영문자가 바른 자리에 찍히도록 휘어진 막대 활자를 써야 했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1960년대에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가 발명되었지만, 만들기 까다롭고 고장이 잦고 활자가 깨지기 쉬운 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네째 세대 공한영 201 자판 배열 ①
[그림 4-3] 2단 한영 겸용 타자기 자판 배열 ① (4째 세대, 공한영 201)
네째 세대 공한영 201 자판 배열 ②
[그림 4-4] 2단 한영 겸용 타자기 자판 배열 ② (4째 세대, 공한영 201)
공한영 301 자판 배열
[그림 4-8] 3단 한영 겸용 타자기 자판 배열 ① (4째 세대, 공한영 301)

  위의 광고 전단지에 나오는 자판 배열은 그림 4-8에 보이는 3단 한 · 영 타자기 자판 배열이다.

  공세벌식 자판의 4째 세대 배열은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를 고장이 적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한글 받침이 들어가는 글쇠 자리를 왼쪽 두 칸으로 좁혀 안움직글쇠 영역을 줄이고, 영문 쿼티 배열을 오른쪽으로 두 칸씩 옮겨서 영문을 찍지 않던 본래 공병우 타자기와 같은 움직/안움직 글쇠 구성으로 한글과 영문을 함께 찍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4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는 2~3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글 타자기와 비슷한 움직/안움직 글쇠 구성으로 작동했다. 4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는 휘어진 막대 활자를 쓰지 않고 움직/안움직 글쇠 구성이 복잡하지 않았으므로, 3째 세대 배열을 한 · 영 겸용 제품보다 만들기 편하고 고장이 적고 수리하기도 편했다.

  그림 4-3의 배열이 그림 4-8의 배열과 가장 비슷한 2단 배열이다.

  그림 4-4의 배열도 그림 4-3 및 그림 4-8과 비슷하지만, 첫소리 ㅋ · ㅌ · ㅍ와 홀소리 ㅖ가 윗글 자리에 있고 아라비아 숫자들이 아랫글 자리에 있는 것이 다르다. 그런 특징을 아래에서 볼 4째 세대 배열을 쓴 초기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 배열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림 4-7은 1980년대에 더 바뀐 공병우 2단 한 · 영 겸용 타자기 배열이다.

네째 세대 공병우 2단 한영 타자기 ③ (4째 세대, 1980년대)
[그림 4-7] 2단 한영 겸용 타자기 자판 배열 ③ (4째 세대, 1980년대)

(2) 공병우 문인용 타자기 (초기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4째 세대 배열)

공병우 문인용 타자기 광고 전단지 (초기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4째 세대 배열)
공병우 문인용 타자기 광고 전단지 (초기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4째 세대 배열)
  • 명칭 : 공병우 문인용 타자기 홍보 전단지
  • 국적/시대 : 한국-광복이후
  • 분류 : 미디어 - 광고 - 광고전단지
  • 재질 : 종이 - 양지
  • 작가 : 유판사(유니온 타자기 상사) 제작
  • 크기 : 가로 19.2cm, 세로 26.6cm
  • 소장품번호 : 한기 7580
  • 사진 가져온 곳 : 국립중앙박물관 e 뮤지엄 (국립한글박물관 소장품)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공병우 문인용 타자기(문장용 타자기) 홍보 전단지 사진의 일부이다. e 뮤지엄에 올려진 본래 사진은 흐릿한데, 글쓴이가 뚜렷하게 보이도록 색조와 선명도를 조절했다.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가 소설가 정을병 선생(1934~2009)의 자문을 받아 개발되었다는 사실이 이 광고 전단지에 담겨 있다. 전단지에 나오는 설명을 가운데 아래에 일부 올린 정을병 선생이 남긴 글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 많다.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가 처음에 '공병우 문인용 타자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앞에서 본 4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처럼 초기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를 판 곳도 유판사(유니온 타자기 상사)이다.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 (4째 세대)
[그림 4-19]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 (4째 세대)

  광고 전단지에 보이는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공병우 문인용 타자기) 배열은 그림 4-19과 같다. 첫소리 ㅋ · ㅌ · ㅍ 자리, 홀소리 ㅖ 자리, 아라비아 숫자들의 자리, 영문자들의 자리에서 그림 4-4에서 본 2단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 배열과 같은 특징을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자판 배열을 따르는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를 두루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파주뉴스의 기사들에 두루뫼박물관에 있는 문장용 타자기의 모습이 실려 있다.

  그림 4-19의 배열은 소설가 정을병이 《새가정》에 기고한 「문인용 타자기」에 나오는 타자기 배열 특징과 들어맞는다.

…(줄임)…

  그리고 현재의 타이프라이타 글자판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일반 사무용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소설을 쓰기에는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타이프라이타를 가지고 공박사에게 가서 필요한 활자를 다시 넣어서 글자판을 소설을 쓰는데 다소 편리하도록 고쳐서 사용하기로 했다.

  “타이프라이타로 소설가들이 소설을 쓰려면 소설가 전용의 타이프라이타가 새로 개발되어야 합니다.”

  내가 공박사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참 그렇군요!”

  공 박사는 과학자여서 내가 하는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그 후로 우리는 여러 차례 회합을 갖고 소설가용 특수한 글자판을 만들어 내는 일에 몰두했다.

  드디어 두어달 뒤 새로운 소설가용 글자판이 만들어졌다. 그 제1호가 우리집으로 보내졌는데, 그 산뜻한 맛은 나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소설가용 글자판의 특징은 소설 문자에 들어가는 부호를 충분히 안배한 것이다. 예를 들면, 인용부호로 “ ” 말고도 ‘ ’, 그리고 〈 〉 : 「 」를 더 참가했으며, 가장 많이 쓰는 영자 A B C D E X, 그리고 우리나라에 제일 많은 성씨인 김, 이, 박을 표기하기 위하여 K L P를 더 두었고 ㅒ와 · (중간점)도 따로 두어서 소설을 쓰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부호는 총 망라하여, 조금도 불편이 없고 하였다.주2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설을 타이프라이타로 쓰는 사람은 본인을 포함해서 수삼명에 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소설가용 타이프로이타가 개발되고 했으니 더욱 많은 소설가들이 타이프로 소설을 쓰게 되리라고 기대한다.

정을병, 「문인용 타자기」, 《새가정》 1975년 5월호 (통권 제237호)

  이 설명까지 참고하면, 문인용 타자기 광고 전단지에 보이는 자판 배열표(= 그림 4-19)가 초기에 나온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공병우 문인용 타자기)에 쓰인 것임을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초기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가 나온 때는 4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가 쓰이던 때였다. 첫소리 ㅋ · ㅌ · ㅍ / 홀소리 ㅖ 자리 / 아라비아 숫자 / 영문자 들의 자리를 보면, 초기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는 4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의 자판 배열을 조금 고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 · 영 겸용 타자기보다 홀소리 ㅒ와 겹받침 ㄺ · ㄻ · ㄼ · ㅄ과 기호 ' " · 〈 〉 : 「 」 #가 더 들어간 것은 달랐다.

「문장구성에 이용도 높아 - 문인 전용 타자기개발 보급」, 《경향신문》, 1976.4.26
[그림 4-20] 「문장구성에 이용도 높아 - 문인 전용 타자기개발 보급」, 《경향신문》, 1976.4.26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공세벌식 자판(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타자기에서부터 많은 첫소리와 가운뎃소리(홀소리)가 아랫글 자리(윗글쇠를 함께 누르지 않고 넣는 글쇠 자리)에 들어가는 배열 특징을 지켜 왔고,주3 윗글쇠를 누르는 때는 받침을 넣을 때에 몰려 있다. 한글 낱내자(음절자)의 앞쪽에서 윗글쇠를 누르는 때가 적을수록 경쾌한 타자 흐름을 이어 가기 좋은데, 공세벌식 자판이 윗글쇠를 누르는 잦기에 비하여 쓰는 사람이 답답함을 덜 느낄 수 있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 불편한 타자 동작이 한글 낱내자 앞쪽에서 많이 일어나면 글을 치는 흐름이 느려지면서 낱내자 단위로 한글 내용을 기억하는 부담도 함께 커질 수 있다. 이에 얽힌 이야기를 수동 타자기 타자 동작에 얽힌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설계 원리 몇 가지에서 다루었던 적이 있다.

  그림 4-4(4째 세대 한영 겸용 타자기)과 그림 4-9(초기 문장용 타자기)의 배열은 숫자를 넣기는 편하지만, '투표'나 '기필코'처럼 첫소리 ㅋ · ㅌ · ㅍ이 들어간 말을 넣을 때에 타자 동작이 둔해지고 거북함이 클 수 있었다. 요즈음에 흔히 쓰이는 두벌식 자판으로 ㄲ · ㄸ · ㅉ · ㅃ · ㅆ을 넣을 때가 매끄럽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더구나 문장용 타자기는 한글 문장을 치는 것을 더 배려하는 것에 목적이 있었고, 첫소리부터 윗글쇠를 누르는 타자 동작은 문인들이 글 내용에 생각을 집중하기 어렵고 할 수 있었다. 이는 공병우 타자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문제이므로, 만드는 쪽과 쓰는 쪽에서 보완이 필요함을 느끼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2)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3째 세대 배열) (개량형 문장용 배열)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광고 전단지 (개량형, 3째 세대 배열)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광고 전단지 (개량형, 3째 세대 배열)

  이 광고 전단지도 글쓴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스캐너로 읽은 것이다. 아래의 그림 3-16이 전단지에 나오는 배열과 같다.

  몇몇 군데에서 앞에서 본 초기 문장용 타자기 배열과 다른 점들을 볼 수 있다. 첫소리 ㅋ · ㅌ · ㅍ이 아랫글 자리에 들어갔고, 받침 ㅋ · ㄳ · ㄵ이 더 들어갔다. 숫자는 윗글 자리에 들어갔다. 배열에 들어간 영문자는 4개(K · M · G · L)로 줄었는데, 한영 겸용 타자기와 다른 자리에 들어갔다. 아라비아 숫자는 윗글 자리에 들어갔는데, 요즈음에 쓰이는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과 같은 숫자 배열이다.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 (3째 세대)
[그림 3-16]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 (3째 세대)

  글쓴이가 세운 기준을 따르면, 그림 3-16의 배열은 3째 세대 배열이다. 얼핏 생각하면 3째 세대 배열4째 세대 배열보다 먼저 나왔겠거니 여길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림 3-16의 3째 세대 배열이 앞에서 본 그림 4-4(한영 겸용 타자기)과 그림 4-9(초기 문장용 타자기)의 4째 세대 배열을 개량한 꼴이다. 첫소리 ㅋ · ㅌ · ㅍ을 아랫글 자리로 옮기고 받침을 더 넣은 것 때문에 그림 3-16의 3째 세대 배열을 쓴 타자기의 한글 타자 흐름이 더 매끄러울 수 있었다.

  홀소리가 왼손 2째 손가락(집게손가락, 검지) 쪽에 몰려 있는 것은 2~3째 세대 공세벌식 자판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는 수동 타자기에서 편한 왼손가락 놀림을 헤아린 배열 특징이다. 공병우 한영 타자기에서는 3째 손가락(가운뎃손가락,중지) 자리까지 홀소리를 채웠지만, 수동 타자기에서는 글쇠를 누르는 깊이가 깊어서 3째 손가락에서 4째 또는 5째 손가락으로 쭉쭉 쳐 나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영문을 넣지 않는 수동식 한글 타자기에서는 1970년대 이후에도 3째 세대 배열이 쓰였고, 4째 세대 배열은 한영 겸용 타자기와 컴퓨터용 자판에서 쓰였다.

아래아한글 1.2 및 1.51에 들어간 문장용 자판 (MUNJANG.KBD) (3째 세대)
[그림 3-17] 아래아한글 1.2 및 1.51에 들어간 문장용 자판 (MUNJANG.KBD) (3째 세대)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의 개량형은 1989년에 나온 도스판 ᄒᆞᆫ글(아래아한글)에도 들어간 적이 있다. ᄒᆞᆫ글에 들어간 배열에는 겹낫표 『 』가 더 들어 있는데, 아마도 영문 자판을 따로 쓸 수 있는 점을 헤아려 영문자를 빼고 기호를 더 넣도록 배열을 조금 바꾼 것 같다.

  그림 3-16과 거의 같은 배열이 ᄒᆞᆫ글에도 들어간 것을 보면, 한글 타자기 시장의 막바지가 멀지 않았던 1980년대 후반 무렵에 3째 세대 배열이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에서 주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1970년대에 보더라도 이미 보급되어 있던 공병우 타자기들 가운데 3째 세대 배열을 쓴 것이 많았고, 타자 교본이나 상업계 고등학교의 타자 교과서를 통하여 3째 세대 배열을 접한 사람들도 많았다. 새로 나온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가 계기가 되어 4째 세대 배열이 주류가 될 가능성을 점칠 수도 있었지만,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가 3째 세대 배열을 잊게 할 만큼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공병우 한 · 영 겸용 타자기는 컴퓨터로도 이어지는 공세벌식 배열 특징을 미리 시험하는 무대가 되어 주었지만, 당장 눈앞에 놓인 타자기를 써야 하는 사람들이 4째 세대 배열을 받아들이기가 편한 여건은 아니었다.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비슷한 배열로 서로 연계하려는 뜻에서 한영 겸용 제품과 되도록 비슷한 자판 배열을 쓴 것 같다. 하지만 글쇠를 깊이 누르고 누르는 힘도 많이 드는 수동 타자기의 특성 때문에 한글을 칠 때에는 한영 겸용으로 쓰인 4째 세대 배열보다 영문을 찍지 않는 3째 세대 배열이 편한 면이 있었다. 문장용 타자기는 한글 문장을 치는 편의를 더 무겁게 보아야 했으므로, 4째 세대 배열을 따라가지 않고 3째 세대 배열로 되돌아간 것에 실속이 있었다.

〈주석〉
  1. 2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는 당연히 실물이 있었겠지만, 글쓴이는 실물을 사진으로도 보지 못했다. 타자 교본에 나온 배열표(https://pat.im/959의 그림 2-17)만 보았을 뿐이다. 2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 · 영 타자기는 양산하는 단계까지 가지 못했던 것 같다. back
  2. 열고 닫는 따옴표 4개(“ ” ‘ ’)가 따로 들어갔다는 뜻처럼 비칠 수도 있지만, 타자기 자판 배열에 들어간 따옴표는 큰 따옴표 하나(")와 작은 따옴표 하나(')이다. back
  3. 공병우 타자기에서 ㅒ가 아닌 홀소리가 윗글 자리(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는 글쇠 자리)에 들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했다. 홀소리 ㅒ는 공병우 타자기에서 빠진 경우가 많았고, ㅒ가 들어간 공병우 타자기 배열에서는 ㅒ가 윗글 자리에 들어갔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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