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세째 세대 (1970년대)

  1960년대에 공병우 자판은 첫소리 ㄹ과 ㅅ의 자리가 맞바뀌었다. 공병우의 자서전에 따르면, 공병우는 1963년의 한글 타자 경기 대회에 출전한 마산상고 선수가 ‘수’를 찍을 때에 활자대가 엉킨다는 말을 듣고 첫소리 ㅅ과 ㄹ의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주1

  꼭 활자대 충돌 때문이 아니라도, 잦기와 운지 거리를 헤아리면 첫소리 ㅅ과 ㄹ을 맞바꾼 것은 적절했다.주2 첫소리 ㄹ과 ㅅ은 자주 쓰이는 낱자이기 때문에 공병우 타자기를 쓰던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는 자리 바꿈이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두째 세대와 다르게 첫소리 ㅅ과 ㄹ의 자리가 맞바뀐 공병우 자판 배열을 세째 세대로 분류한다.

 

(1) 한글 수동 타자기 자판 (빠른 타자기)

  앞의 두째 세대 배열들처럼 세째 세대 공병우 수동 타자기 자판도 글쇠 수가 다른 배열이 여럿 쓰였다. 한글/기호 배열이 앞 세대와 비슷하면서도 몇몇 기호들과 많은 받침들이 놓인 자리가 바뀌었다. 같은 세대의 배열도 글쇠 수에 따라 받침과 기호들이 놓인 자리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앞 세대에서 왼쪽에 있던 손톱묶음 ( )이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유니온 공병우 타자기 자판

[그림 3-1]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 (세째 세대 ①, 유니온, 44글쇠)

세째 세대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42글쇠)

[그림 3-2]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 (세째 세대 ②, 42글쇠)

세째 세대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37글쇠)

[그림 3-3]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 (세째 세대 ③, 37글쇠)


  첫소리 ㄹ과 ㅅ의 자리가 바뀐 무렵은 한글 수동 타자기 수요가 크게 늘던 때였다. 1950년대에 한글 타자기는 군과 국방부에서 많이 쓰였으나, 다른 기관들의 타자기 보급 대수는 적었다. 그러다가 1961년에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한 5·16 군사 정변의 영향으로 1960년대에는 공병우 타자기가 다른 정부 기관에 많이 보급되었다.

수동 타자기 네벌식 표준 자판

[그림 3-4] 수동 타자기의 4벌식 표준 자판 (황해용, 「한글 기계화와 표준 자판」, 1969)


  그런데 과학기술처는 여러 종류가 쓰이던 타자기 자판 배열을 통일한다는 명목으로 1969년에 4벌식 수동 타자기 표준 배열과 2벌식 전신 타자기 표준 배열을 새로 만들어 정했다. 정부는 이 해에 국무총리 훈령 제81호를 내려 모든 관공서와 교육 기관에서 새로 정한 표준 자판 배열을 쓰는 한글 기기만을 쓰게 하였다. 국무총리 훈령 제81호(1969.8.18 시행, 1985.5.30 국무총리 훈령 제205호로 폐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글기계화표준자판확정에따른지시

[시행 1969.8.18] [국무총리훈령 제81호, 1969.7.28, 제정]
국무총리, 02-2100-2114

한글 기계화 촉진에 암적 저해요인으로 되어 있던 자판의 다양성을 시정하기 위하여 그 동안 정부는 대통령각하의 지시에 따라 다각도로 검토하여 한글 기계화 표준자판을 1969년 7월 1일 제50회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정부의 확정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널리 보급하여 우리들의 것으로 완전 소화시켜야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의 철저한 시행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지시하니 관계부처장관은 그 시행에 만전을 기하기 바랍니다.

1. 앞으로 구입하는 한글타자기 및 인쇄전신기등은 모두 표준자판에 의한 것으로 한정할 것.

2. 한글타자교육과 각종 검정은 표준자판에 의하여만 실시할 것.

3. 소속공무원들에게는 자체교육을 통하여 표준자판에 의한 한글타자기술을 조속히 습득시킬 것.

4.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각종 한글타자기와 인쇄전신기 등은 점차 표준자판으로 개조 사용하도록 조치할 것.

5. 표준자판 타자기의 보급이 종전의 타자기 보급률을 상회할 때까지 각종 지원에 의한 보급방법을 연구 검토할 것.(경제기획원, 재무부, 과학기술처)

6. 한글타자기의 국산화촉진을 위하여 외국합작투자의 권장과 기타 지원책을 연구 검토할 것.(경제기획원, 상공부)

7. 표준자판에 의한 타자교육을 위하여 타자기술학원등에 적절한 지도를 가할 것. (문교부)

8. 정부 관리기업체를 포함한 산하기관에 대하여도 위1, 2, 3, 4항의 취지에 따라 관계 각 부처장관의 감독 아래 표준자판타자보급의 철저를 기할 것.

  이 조치는 정보 기관인 중앙정보부까지 나서 반발하는 움직임을 억누르고, 표준 자판을 쓰지 않은 타자기로는 국내에서 열리는 타자 대회나 타자 급수 시험에 참가하지 못하게 할 만큼 강력하게 시행되었다.주3 그래서 1970년대에는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던 공병우식·김동훈식·장봉선식·송계범식을 비롯한 여러 타자기들이 위기에 몰렸고, 능률이 뛰어난 공병우식만 겨우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이 무렵에 타자기 수요가 가장 많았던 곳이 정부 기관을 비롯한 관공서였으므로, 시장의 주류 자리는 관공서 수요를 등에 업은 표준 네벌식 타자기가 차지하였다. 이 때문에 세째 세대의 배열을 쓴 공병우 타자기는 1960년대까지 시장에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1970년대에 갑작스러운 침체기를 맞았다.

  높은 능률을 앞세워 시장을 과점했던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가 1970년대에 갑자기 타격을 입는 것은 정부가 막강한 공권력으로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주4 1970년대에는 전문 타자원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타자기를 다루는 개인 실무자의 비율이 늘어났는데, 이런 때에 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에 따라 더 널리 쓰이고 알려질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 일은 1970~1980년대에 셈틀(컴퓨터)을 다루던 개발자와 사용자들이 공병우 자판을 잘 알지 못하여 셈틀에서 쓸 세벌식 자판 개발이 늦는 원인이 되었다.


(2) 전신 타자기 자판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 자판도 세째 세대에 맞춘 배열이 등장했다.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텔레타이프 라이터) 자판

[그림 3-5]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 자판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글 기계 글자판에 대한 심의 보고서〉, 1972)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 자판은 수동 타자기 자판과 똑같지는 않지만, 다른 계열의 한글 자판보다 두 기종의 자판 배열이 비슷하고 타자법이 같아서 한 사람이 전신 타자기와 수동 타자기를 함께 다루기 좋았다.

  정부는 1969년에 4벌식 수동 타자기 표준 자판과 함께 2벌식 전신 타자기 표준 자판주5을 함께 지정하였다. 그리하여 정부 기관들은 국무총리 훈령 제81호에 따라 표준 두벌식 자판을 쓸 수 있는 새 전신 타자기를 들여와 실무에 쓰기 시작하였다.

전신 타자기 두벌식 표준 자판

[그림 3-6] 전신 타자기의 2벌식 표준 자판 (황해용, 「한글 기계화와 표준 자판」, 1969)

  그런데 정부 표준 두벌식 전신 타자기는 낱내(음절)를 가리는 문제에 걸려 매우 번거롭게 쓰였다. 이 때의 전신 타자기는 전자식 처리 장치의 속도가 느리고 열이 많이 나서 한글을 빠르게 칠 때에 첫소리와 끝소리(받침)을 자동으로 거침없이 골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만약 애국가를 친다면 "동/해/물/과//백/두/산/이//마/르/고//…"에서 빗금(/)이 들어간 자리마다 사이띄개를 누르는 식으로 글을 치는 이가 낱내를 끊어 주어야 했다. 거기다가 공병우식으로 쓰던 전신 타자기는 두벌식 자판으로 고쳐 쓸 수 없고, 더 비싼 일본산 전신 타자기를 들어와야 했다. 이런 문제들에 걸려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로 공문서를 빠르게 주고 받던 행정 기관들은 표준식 전신 타지기 때문에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예산까지 더 들어가는 낭패를 보았다.

  이 때문에 군과 체신부·내무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이 예산과 공문서 소통 속도를 들어 정부의 표준 자판 정책에 반발하였고, 정부는 행정 개혁 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1972년에 국무총리실을 통하여 각 부처의 통신망을 내무부식(공병우식)으로 다시 일원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주6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 자판은 1970~1980년대에 셈틀(컴퓨터)이 사무실을 차지할 때까지 군과 정부 기관에서 마지막까지 쓰인 전신 타자기용 한글 자판이었다.

 

(3)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2단식 공병우 한영 겸용 수동타자기 자판 배열(세째 세대)

[그림 3-7] 2단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 (세째 세대, 유니온 71 세종)

3단식 공병우 한영 겸용 수동타자기 자판 배열(세째 세대)

[그림 3-8] 3단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배열 (세째 세대, 유니온)

  1972년에 2단 또는 3단 활자를 써서 개발된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에도 처음에 이 세대의 한글 배열이 들어갔다.주7 2단 한·영 겸용 타자기는 한글과 큰 로마자(영문 대문자)를 찍을 수 있고, 3단 한·영 겸용 타자기는 한글과 큰 로마자(영문 대문자) 및 작은 로마자(영문 소문자)를 찍을 수 있다. 3단 타자기에는 영문 단에도 한글 받침이 들어가 있다.

  공병우식 한·영 겸용 타자기는 복잡한 설계 구조 때문에 한·영 겸용 기능을 넣지 못하던 표준 네벌식 타자기를 겨냥한 제품이기도 하다. 표준 네벌식 타자기는 맨 윗줄 글쇠에 한글이 들어가지 않은 대신에 아래 3줄에는 윗글 자리까지 빼곡하게 한글 낱소리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로마자를 더 끼워 넣으려면 4단 활자를 써야 하는 점이 불리하다. 또 움직/안움직 글쇠의 짜임이 공병우식보다 복잡한 것도 표준 네벌식 타자기에 영문 타자 기능을 덧붙이기는 것을 어렵게 요인이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활자 막대를 쓰는 수동 타자기의 틀에서는 한·영 겸용 표준 네벌식 수동 타자기가 끝내 상용 제품으로 나오지 못했다.

공병우 3단 한영 타자기에 들어간 활자 그림

[그림 3-9] 공병우 3단 한영 타자기에 들어간 활자 그림 ('한영 타자기' 특허 공보, 1967 공고)

세째 세대 공병우 2단 한영 타자기 활자 막대

[그림 3-10] 받침 쪽 활자가 구부러진 공병우 2단 한영 타자기 모습


  세째 세대의 공병우식 한·영 타자기는 받침 자리 때문에 더 정교한 움직/안움직 장치(동/부동 장치)가 들어갔고, 그림 3-9와 그림 3-10처럼 긴네모꼴이 아닌 구부러진 꼴의 활자가 들어갔다. 하지만 더 복잡해진 장치 구조 때문에 고장이 더 잦고 기기 수명이 줄어드는 원인이 되었고, 구부러진 활자에 들어간 글짜가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한·영 타자기의 한글 배열이 다시 바뀌는 원인이 되었다.


공병우 3단 한영 타자기 (유니온 제품)

[그림 3-11] 공병우 3단 한영 타자기 (유니온)

공병우 3단 한영 타자기 (공병우 타자기 회사 제품)

[그림 3-12] 공병우 3단 한영 타자기

  세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영 겸용 타자기는 영문 쿼티 배열이 바른 자리에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 사진처럼 이 세대의 3단 한영 타자기는 왼쪽의 타력 조절기를 한글/영문 상태를 바꾸는 장치로 썼다.주8 그림 3-11처럼 2개나 들어간 윗글쇠는 받침 ㄺ 처럼 세째 단에 들어간 문자를 한·영 상태를 바꾸지 않고 바로 칠 수 있게 하는 구실한 것 같다. (그림 3-11, 그림 3-12 : 세종대왕기념관에서 찍음)

(4)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

  1969년에 과학기술처가 배열을 정하고 정부가 강력하게 보급한 4벌식/2벌식 표준 자판은 실제 기기에서 보인 낮은 능률과 번거로운 조작법 때문에 실무 기관과 민간 관계자들에게 큰 반발을 샀다. 이전에 표준 자판을 논의한 공청회 등에서 각자 지지하는 배열 방식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던 연구가와 업체 관계자들도 표준 자판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한목소리를 내기에 이른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71년에 한글 기계 발명자, 제작자, 연구가, 타자 교육가, 대량 수요자의 대표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한글 기계화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한글 기계화 추진 위원회'는 그 때까지 나온 많은 한글 자판들의 장단점을 검토하여 〈한글 기계 글자판에 대한 심의 보고서〉(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2)를 펴냈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공병우 세벌식 배열을 바탕으로 하는 민간 통일 자판 시안인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을 1972년에 제안하였다.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 (수동 타자기)

[그림 3-13]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 (보통 타자기)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 (전신 타자기)

[그림 3-14]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 (전신 타자기)


  그림 3-13의 보통 타자기(수동 타자기) 배열을 보면, 나중에 셈틀에서 쓰인 3-89 자판 및 3-90 자판과 숫자 배열이 비슷하다. 3-89 자판 및 3-90 자판의 숫자 배열의 뿌리는 이미 민간 통일 자판 시안인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ㄱ/ㄺ, ㅁ/ㄻ, ㅂ/ㄼ, ㅎ/ㅀ으로 홑받침과 겹받침을 짝을 지어 받침 배열을 익히기 쉽게 하려고 한 것도 눈에 뜨인다.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이 공병우 세벌식을 따른 것은 아직 실무에서 공병우 자판보다 높은 능률을 내거나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자판 배열이 없어서 민간 관계자들이 대체로 공병우식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또 이 때에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배열 방식에 관한 특허 기간이 지나서 누구나 공병우 세벌식 배열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은 강제력 없는 민간 단체가 제안한 데다가 공병우 타자기의 배열은 필요에 따라 그 뒤에도 바뀌었으므로,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이 널리 쓰이는 제품에 그대로 들어가서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5) 문장용 타자기 자판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는 1975년 무렵에 소설가 정을병이 제안한 자판 배열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흔히 쓰이던 공병우 타자기는 일반 사무용에 맞추어져 있어서 작가들에게 필요한 기호들을 갖추지 못하였다. 문장용 타자기는 겹받침과 문장 부호를 더 넣어서 타자기로 글을 쓰는 이들의 편의를 높힌 제품이다.주9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 자판

[그림 3-15]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

아래아한글 1.2에 들어간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 자판

[그림 3-16] 아래아한글 1.51에 들어간 문장용 자판


  그림 3-15은 doopedia photo community에 올라온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사진을 보고 옮긴 자판 배열이다. 받침 ㅋ과 ㄳ이 들어가 있고, 가운뎃점(·), 「, 」, 〈, 〉 등이 들어가 있다.

  문장용 타자기 자판은 그림 3-15과 다른 배열이 더 있었던 것 같다. 문장용 자판을 고안한 정을병의 〈문인용 타자기〉(《새가정》 1975년 5월호)에 따르면, 문장용 타자기에는 홀소리 ㅒ, 열고 닫는 따옴표(“ ” ‘ ’), 가운뎃점(·), 「, 」, 〈, 〉, A, B, C, D, E, X, K, L, P를 더 들어갔다고 한다.


(6) 점자 타자기 자판

(2013.1.10. 더하여 넣음)

  공병우식 타자기는 점자 타자기로도 개발되었다. 공병우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에 따르면, 공병우 점자 한글 타자기는 1971년 8월에 개발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소경들에게 자혜로운 선물 ― 공 박사 “점자 한글 타자기” 개발로―」(한글학회, 《한글 새소식》 제2호, 1972. 10. 5.)에 실린 공병우 점자 타자기 자판 배열표이다.

공병우 점자 타자기 자판 (한글학회, 《한글 새소식》 제2호, 1972. 10. 5.)

[그림 3-17] 공병우 점자 타자기 자판 (한글학회, 《한글 새소식》 제2호, 1972. 10. 5.)

(7) 자동 식자기 자판 (모노타이프, 사진 식자기)

(2016.1.15. 더하여 넣음)

공병우식 자동 식자기 자판 배열 (공병우, 「한글과 Roma자 겸용 Baby 타자기의 개발」, 1975)

[그림 3-18] 공병우식 자동 식자기 자판 (공병우, 「한글과 Roma자 겸용 Baby 타자기의 개발」, 1975)

  위 배열은 1975년에 열린 제20회 과학전람회에서 출품된 「한글과 Roma자 겸용 Baby 타자기의 개발」에 들어간 공병우식 자동 식자기 자판 배열이다. 실용 제품이 나온 때보다 먼저 만들어진 배열표이므로, 실제로 쓰인 식자기에는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세벌식 배열이 쓰였을 수 있다.

  자동 식자기는 자판으로 넣은 문자 정보를 천공 테이프(punched tape)에 구멍을 뚫어서 담고, 이 천공 테이프를 담긴 대로 활자들을 모아서 인쇄물을 찍는 활자판을 짠다. 납 활자로 활자판을 만드는 방식이 있고, 사진에 담긴 글꼴을 필름에 찍는 방식(사진 식자 방식)이 있다. 찍어 내는 글꼴이 자판 배열에 얽매이지 않는 전자식 기기이므로, 수동 타자기와 달리 네모꼴 한글 글꼴도 찍어 낼 수 있다.

  공병우는 1976년에 세벌식 자판을 쳐서 납 활자를 찾아 넣는 방식으로 모노타이프를 개발하였다. 일본 회사인 고이케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하였으나, 제작비 문제와 한자가 들어 있지 않은 것 때문에 언론사들의 주문을 받지 못하여 실용 제품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다.주10 주11

  1978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일보 지사장으로 있던 장재구는 공병우가 개발한 모노타이프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공병우를 찾아와 공병우·이윤온·김성익의 협조로 공병우식 모노타이프의 작동 원리를 이해했고, 그 원리로 한글 사진 식자기를 개발하여 한국일보에서 썼다고 한다.주12

  그 뒤에 공병우는 미국에 머물고던 1985년에 영문 사진 식자기 제작 회사인 아이텍(ITEK)의 제품을 써서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진 식자기를 개발하였다. 캐나다의 '코리언 저널', 뉴욕의 '미주 동아일보', 필라델피아의 '자유신문', 로스엔젤레스의 '뉴 라이프' 잡지사 등에서 이 제품이 쓰였다고 한다.

공병우식 자동 식자기의 찬공기 부호표 (공병우, 「한글과 Roma자 겸용 Baby 타자기의 개발」, 1975)

[그림 3-19] 공병우식 자동 식자기 찬공기 부호표 (공병우, 「한글과 Roma자 겸용 Baby 타자기의 개발」, 1975)

(얽힌 글 : 1970년대 초반의 공병우 수동 타자기 / 전신 타자기 / 자동 식자기 자판 배열표)

 

차례
  • 5. 다섯째 세대 (1990년대~)
    • (1) 3-89 자판
    • (2) 3-90 자판
      • 1) 순아래 자판
      • 2) 3-93 옛한글 자판
    • (3)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 6. 새로운 시도와 개선안
    • (1) 신세벌식 자판
    • (2) 김국 38 자판 (설계안)
    • (3) 3-90 자판과 3-91 자판의 통합안
    • (4) 3-2011 자판 (3-91 자판 수정안)
    • (5) 3-2012 자판 (3-90 자판 수정안)
  • 7. 맺음말
<주석>
  1. 공병우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의 1989년 첫판 제1쇄에는 이 이야기가 없고, 표지 제목이 공한체로 바뀐 1990년판부터 ‘최초의 자판 배열 변경’이라는 제목을 앞세운 부분(141쪽)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 글쓴이가 확인한 1990년판은 삼정인쇄가 박은 초판 제5쇄본와 고려서적주식회사가 박은 개정판 제2쇄본이다. 두 1990년 인쇄본은 발행된 날짜가 다르게 나와 있지만, 내용은 같다. back
  2. 우리말에서 첫소리 ㄹ은 두음 법칙의 영향으로 말마디(어절)의 처음보다 뒤쪽에 훨씬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말마디 처음에 나오는 첫소리를 치는 속도는 타자 속도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말마디의 뒤에 나오는 첫소리는 앞 낱내를 칠 때 미리 손가락을 움직여 칠 수도 있어서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야 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타자 속도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작을 수 있다. 이 원리가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첫소리 ㄹ·ㅁ·ㅅ 자리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에 얽힌 설명은 http://pat.im/1127#4-2에서 볼 수 있다. (2016.8.28. 주석 더하여 넣음) back
  3. 정부의 표준 자판 정책 반대에 앞장섰던 공병우가 중앙정보부에 끌려 갔다가, 국가 시책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풀려났다는 일화가 공병우의 글을 통하여 알려져 있다. 공병우의 자서전에 따르면 정부는 표준 자판과 공병우 자판을 비교한 기사를 낸 잡지사를 트집잡아 폐간시키고, 표준 자판의 문제를 논하는 토론회를 방해하고, 표준 자판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이를 연행하거나 회유·협박하는 방법으로 표준 자판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잠재웠다. (〈나는 내 식대로 살았다.〉, 155~161쪽) back
  4. 공병우 타자기와 표준 네벌식 타자기에 얽힌 시장 변화는 이른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에 어긋나는 사례이다. 공병우 타자기는 타자 능률이 높았어도 정부의 갑작스런 시장 간섭으로 타격을 입었고, 표준 네벌식 타자기는 지나치게 번거로운 타자법 때문에 경로 의존성을 만들지도 못한 채로 1980년대에 타자기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back
  5. 정부가 1969년에 정한 전신 타자기용 표준 자판의 한글 배열은 오늘날 셈틀에 쓰이는 2벌식 표준 자판과 같다. back
  6. 송현, 〈한글 기계화 운동〉 264~269쪽 back
  7. 이 타자기에 대한 특허는 '한영 타자기'라는 이름으로 1966년 11월 23일에 출원되었다. [공병우, '한영 타자기' 특허 공보, 출원번호 10-1966-0000946  (1966.11.23), 공고번호 10-1967-0000435 (1967.12.1), 등록번호 1000025690000 (1968.3.6)] back
  8. 뒷날 이윤온식 자판을 쓴 3단 한·영 타자기인 ON-LINE 510 제품 등에도 이와 비슷한 한/영 상태 바꿈 장치가 들어갔다. 이윤온식 자판은 오늘날에 쓰이는 2벌식 표준 배열에 받침 글쇠를 끼워 놓은 3벌식 자판이다. 이와 얽힌 특허로 '한영겸용 타자기의 2단 고정 쉬프트 장치'(출원인: 공병우, 출원번호: 74-5960)와 '한영 겸용 3단 타자기의 2단 고정장치'(출원인:이윤온, 출원번호: 82-6122)가 있다. back
  9.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와 문장용 자판은 공병우와 정을병이 공동 개발한 작품이다. (「문장구성에 이용도 높아 - 문인 전용 타자기개발 보급」, 《경향신문》, 1976.4.26.)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자판은 공병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공병우 세벌식 자판 개발에 공동 개발자로 참여했음이 뚜렷이 알려진 첫 사례이다. (2016.8.28. 주석 더하여 넣음) back
  10. 공병우는 줄곧 자동 식자기를 개발하면서 한자를 넣지 않는 것을 고집했고, 예쁜 글꼴을 넣는 것에 그다지 애쓰지 않았다. 이 점이 특히 국내 언론사들이 공병우가 개발한 자동 식자기를 쓰기 주저하는 원인이 되었다.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 왔다〉) back
  11. 장봉선은 고이케 사장에게 문의하였더니 "(공병우가 개발한 모노타이프는) 개발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주문이 없어서 가능성은 있었으나 실제로 개발한 일은 없다."고 하였다고 하였다. 장봉선이 말한 '개발'은 시험 단계의 개발이 아닌 '실용 상품 개발'을 가리킨 것 같다. (장봉선, 「한글 사무 자동화의 발전사 - 한글 인쇄자동화와의 연혁 (3) -」, 《인쇄계》 2001.6. 통권 320호) back
  12. 장재구는 그 때에 한국일보 사주였던 장기영의 아들이고, 뒤에 한국일보를 물려 받아 사주가 되었다. 공병우는 이윤온·김성익과 함께 해체했던 모노타이프를 다시 조립하여 장재구에게 식자기 원리를 설명했는데, 새로운 식자기 개발에 기계 부분 연구는 이윤온이 맡고 컴퓨터 부분 연구는 김성익이 맡았다고 한다. 또한 장재구는 식자기 개발을 위하여 김성익·김창만·오동호를 특별 채용했다고 한다. 공병우는 자서전에서 그 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던 자신의 기술이 언론사에 쓰인 것은 기뻤으나, 한국일보가 자신의 기술을 참고했음을 밝히지 않고 독자 개발한 것처럼 선전한 것이 서운했다고 밝혔다.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 왔다〉) back
2012/09/19 12:52 2012/09/1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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