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3. 세째 세대 (1960~1980년대)
3. 세째 세대 (1960~1980년대)
1960년대에 공병우 자판은 첫소리 ㄹ과 ㅅ의 자리가 맞바뀌었다. 공병우의 자서전에 따르면, 공병우는 1963년의 한글 타자 경기 대회에 출전한 마산상고 선수가 ‘수’를 찍을 때에 활자대가 엉킨다는 말을 듣고 첫소리 ㅅ과 ㄹ의 자리를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주1
최초의 글자판 배열 변경
나는 글자판의 배열을 자주 바꾼다고 여러 사람한테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나는 과학적이라고 판단되는 것이면 언제나 바꿨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바꾼 글자판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나는 한글 타자기의 발전을 위하여 1960년 초반부터 전국 경기 대회를 개최하여 왔다. 아마도 1963년에 한글 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주최도 개최한 한글 타자 경기대회인 듯하다. 대회가 끝난 뒤에 선수들에게 타자기에 대한 소감을 발표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더니 마산상고 선수가 공병우 속도 타자기로 '수'를 빨리 찍으니 활자대가 엉킨다고 했다. 그래서 'ㅅ'과 'ㄹ' 자리를 바꿔 놓았다. 이 자리바꿈으로 말미암아 글자판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사람'을 찍으면 '라삼'으로 찍힌다고 불평을 털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 한 사람에 국한된다는 생각이며, 앞으로 많은 사람이 찍을 때에 다만 한 동작이라도 빠르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능률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늘날의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을지언정 바꿔 버린 것이다.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첫판 제7쇄 141째쪽
(제7장 "공박사가 미쳤다!")주2
꼭 활자대 충돌 때문이 아니라도, 잦기와 운지 거리를 헤아리면 첫소리 ㅅ과 ㄹ을 맞바꾼 것은 적절했다.주3 첫소리 ㄹ과 ㅅ은 자주 쓰이는 낱자이기 때문에 공병우 타자기를 쓰던 사람들에게는 크게 와닿는 자리 바꿈이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두째 세대와 다르게 첫소리 ㅅ과 ㄹ의 자리가 맞바뀐 공병우 자판 배열을 세째 세대로 분류한다.
(1) 한글 수동 타자기 자판 (빠른 타자기)
앞의 두째 세대 배열들처럼 세째 세대 공병우 수동 타자기 자판도 글쇠 수가 다른 배열이 여럿 쓰였다. 한글/기호 배열이 앞 세대와 비슷하면서도 몇몇 기호들과 많은 받침들이 놓인 자리가 바뀌었다. 같은 세대의 배열도 글쇠 수에 따라 받침과 기호들이 놓인 자리가 저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앞 세대에서 왼쪽에 있던 손톱묶음 ( )이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9.9.5. 첫소리 ㅅ·ㄹ 자리가 잘못 들어간 그림 3-2을 고쳐 올림)잘못 올린 그림 (첫소리 ㅅ,ㄹ 바뀜)
첫소리 ㄹ과 ㅅ의 자리가 바뀐 무렵은 한글 수동 타자기 수요가 크게 늘던 때였다. 1950년대에 한글 타자기는 군과 국방부에서 많이 쓰였으나, 다른 기관들의 타자기 보급 대수는 적었다. 그러다가 1961년에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한 5·16 군사 정변의 영향으로 1960년대에는 공병우 타자기가 다른 정부 기관에 많이 보급되었다.
그런데 과학기술처는 여러 종류가 쓰이던 타자기 자판 배열을 통일한다는 명목으로 1969년에 4벌식 수동 타자기 표준 배열과 2벌식 전신 타자기 표준 배열을 새로 만들어 정했다. 정부는 이 해에 국무총리 훈령 제81호를 내려 모든 관공서와 교육 기관에서 새로 정한 표준 자판 배열을 쓰는 한글 기기만을 쓰게 하였다. 국무총리 훈령 제81호(1969.8.18 시행, 1985.5.30 국무총리 훈령 제205호로 폐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행 1969.8.18] [국무총리훈령 제81호, 1969.7.28, 제정]
국무총리, 02-2100-2114한글 기계화 촉진에 암적 저해요인으로 되어 있던 자판의 다양성을 시정하기 위하여 그 동안 정부는 대통령각하의 지시에 따라 다각도로 검토하여 한글 기계화 표준자판을 1969년 7월 1일 제50회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정부의 확정만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를 널리 보급하여 우리들의 것으로 완전 소화시켜야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의 철저한 시행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지시하니 관계부처장관은 그 시행에 만전을 기하기 바랍니다.
1. 앞으로 구입하는 한글타자기 및 인쇄전신기등은 모두 표준자판에 의한 것으로 한정할 것.
2. 한글타자교육과 각종 검정은 표준자판에 의하여만 실시할 것.
3. 소속공무원들에게는 자체교육을 통하여 표준자판에 의한 한글타자기술을 조속히 습득시킬 것.
4. 현재 보유하고 있는 각종 한글타자기와 인쇄전신기 등은 점차 표준자판으로 개조 사용하도록 조치할 것.
5. 표준자판 타자기의 보급이 종전의 타자기 보급률을 상회할 때까지 각종 지원에 의한 보급방법을 연구 검토할 것.(경제기획원, 재무부, 과학기술처)
6. 한글타자기의 국산화촉진을 위하여 외국합작투자의 권장과 기타 지원책을 연구 검토할 것.(경제기획원, 상공부)
7. 표준자판에 의한 타자교육을 위하여 타자기술학원등에 적절한 지도를 가할 것. (문교부)
8. 정부 관리기업체를 포함한 산하기관에 대하여도 위1, 2, 3, 4항의 취지에 따라 관계 각 부처장관의 감독 아래 표준자판타자보급의 철저를 기할 것.
얽힌 글 :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에서 본 한글 자판 (https://pat.im/1130)
(2018.10.14. 그림 더하여 넣음)
이 조치는 정보 기관인 중앙정보부까지 나서 반발하는 움직임을 억누르고, 표준 자판을 쓰지 않은 타자기로는 국내에서 열리는 타자 대회나 타자 급수 시험에 참가하지 못하게 할 만큼 강력하게 시행되었다.주4 그래서 1970년대에는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던 공병우식·김동훈식·장봉선식·송계범식을 비롯한 여러 타자기들이 위기에 몰렸고, 능률이 뛰어난 공병우식만 겨우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이 무렵에 타자기 수요가 가장 많았던 곳이 정부 기관을 비롯한 관공서였으므로, 시장의 주류 자리는 관공서 수요를 등에 업은 표준 네벌식 타자기가 차지하였다. 이 때문에 세째 세대의 배열을 쓴 공병우 타자기는 1960년대까지 시장에서 전성기를 누리다가 1970년대에 갑작스러운 침체기를 맞았다.
높은 능률을 앞세워 시장을 과점했던 공병우식 수동 타자기가 1970년대에 갑자기 타격을 입는 것은 정부가 막강한 공권력으로 시장에 개입했기 때문이다.주5 1970년대에는 전문 타자원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타자기를 다루는 개인 실무자의 비율이 늘어났는데, 이런 때에 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자연스러운 시장 흐름에 따라 더 널리 쓰이고 알려질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 일은 1970~1980년대에 셈틀(컴퓨터)을 다루던 개발자와 사용자들이 공병우 자판을 잘 알지 못하여 셈틀에서 쓸 세벌식 자판 개발이 늦는 원인이 되었다.
(2) 전신 타자기 자판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 자판도 세째 세대에 맞춘 배열이 등장했다.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 자판은 수동 타자기 자판과 똑같지는 않지만, 다른 계열의 한글 자판보다 두 기종의 자판 배열이 비슷하고 타자법이 같아서 한 사람이 전신 타자기와 수동 타자기를 함께 다루기 좋았다.
정부는 1969년에 4벌식 수동 타자기 표준 자판과 함께 2벌식 전신 타자기 표준 자판주6을 함께 지정하였다. 그리하여 정부 기관들은 국무총리 훈령 제81호에 따라 표준 두벌식 자판을 쓸 수 있는 새 전신 타자기를 들여와 실무에 쓰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부 표준 두벌식 전신 타자기는 낱내(음절)를 가리는 문제에 걸려 매우 번거롭게 쓰였다. 이 때의 전신 타자기는 전자식 처리 장치의 속도가 느리고 열이 많이 나서 한글을 빠르게 칠 때에 첫소리와 끝소리(받침)을 자동으로 거침없이 골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만약 애국가를 친다면 "동/해/물/과//백/두/산/이//마/르/고//…"에서 빗금(/)이 들어간 자리마다 사이띄개를 누르는 식으로 글을 치는 이가 낱내를 끊어 주어야 했다. 거기다가 공병우식으로 쓰던 전신 타자기는 두벌식 자판으로 고쳐 쓸 수 없고, 더 비싼 일본산 전신 타자기를 들어와야 했다. 이런 문제들에 걸려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로 공문서를 빠르게 주고 받던 행정 기관들은 표준식 전신 타지기 때문에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지고 예산까지 더 들어가는 낭패를 보았다.
이 때문에 군과 체신부·내무부를 비롯한 정부 부처들이 예산과 공문서 소통 속도를 들어 정부의 표준 자판 정책에 반발하였고, 정부는 행정 개혁 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1972년에 국무총리실을 통하여 각 부처의 통신망을 내무부식(공병우식)으로 다시 일원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주7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 자판은 1970~1980년대에 셈틀(컴퓨터)이 사무실을 차지할 때까지 군과 정부 기관에서 마지막까지 쓰인 전신 타자기용 한글 자판이었다.
(3)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1972년에 2단 또는 3단 활자를 써서 개발된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에도 처음에 이 세대의 한글 배열이 들어갔다.주8 2단 한·영 겸용 타자기는 한글과 큰 로마자(영문 대문자)를 찍을 수 있고, 3단 한·영 겸용 타자기는 한글과 큰 로마자(영문 대문자) 및 작은 로마자(영문 소문자)를 찍을 수 있다. 3단 타자기에는 영문 단에도 한글 받침이 들어가 있다.
공병우식 한·영 겸용 타자기는 복잡한 설계 구조 때문에 한·영 겸용 기능을 넣지 못하던 표준 네벌식 타자기를 겨냥한 제품이기도 하다. 표준 네벌식 타자기는 맨 윗줄 글쇠에 한글이 들어가지 않은 대신에 아래 3줄에는 윗글 자리까지 빼곡하게 한글 낱소리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로마자를 더 끼워 넣으려면 4단 활자를 써야 하는 점이 불리하다. 또 움직/안움직 글쇠의 짜임이 공병우식보다 복잡한 것도 표준 네벌식 타자기에 영문 타자 기능을 덧붙이는 것을 어렵게 요인이었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활자 막대를 쓰는 수동 타자기의 틀에서는 한·영 겸용 표준 네벌식 수동 타자기가 끝내 상용 제품으로 나오지 못했다.
세째 세대의 공병우식 한·영 타자기는 받침 자리 때문에 더 정교한 움직/안움직 장치(동/부동 장치)가 들어갔고, 그림 3-10과 그림 3-11처럼 긴네모꼴이 아닌 구부러진 꼴의 활자가 들어갔다. 하지만 더 복잡해진 장치 구조 때문에 고장이 더 잦고 기기 수명이 줄어드는 원인이 되었고, 구부러진 활자에 들어간 글짜가 선명하게 찍히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오래지 않아 한·영 타자기의 한글 배열이 다시 바뀌는 원인이 되었다.
(4)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
1969년에 과학기술처가 배열을 정하고 정부가 강력하게 보급한 4벌식/2벌식 표준 자판은 실제 기기에서 보인 낮은 능률과 번거로운 조작법 때문에 실무 기관과 민간 관계자들에게 큰 반발을 샀다. 이전에 표준 자판을 논의한 공청회 등에서 각자 지지하는 배열 방식을 두고 서로 다른 목소리를 냈던 연구가와 업체 관계자들도 표준 자판에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한목소리를 내기에 이른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1971년에 한글 기계 발명자, 제작자, 연구가, 타자 교육가, 대량 수요자의 대표 등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한글 기계화 추진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한글 기계화 추진 위원회'는 그 때까지 나온 많은 한글 자판들의 장단점을 검토하여 〈한글 기계 글자판에 대한 심의 보고서〉(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2)를 펴냈고, 이 연구를 바탕으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는 공병우 세벌식 배열을 바탕으로 하는 민간 통일 자판 시안인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을 1972년에 제안하였다.
그림 3-13의 보통 타자기(수동 타자기) 배열을 보면, 나중에 셈틀에서 쓰인 3-89 자판 및 3-90 자판과 숫자 배열이 비슷하다. 3-89 자판 및 3-90 자판에 들어간 숫자 배열의 뿌리는 이미 민간 통일 자판 시안인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ㄱ/ㄺ, ㅁ/ㄻ, ㅂ/ㄼ, ㅎ/ㅀ으로 홑받침과 겹받침을 짝을 지어 받침 배열을 익히기 쉽게 하려고 한 것도 눈에 뜨인다.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이 공병우 세벌식을 따른 것은 아직 실무에서 공병우 자판보다 높은 능률을 내거나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자판 배열이 없어서 민간 관계자들이 대체로 공병우식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또 이 때에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배열 방식에 관한 특허 기간이 지나서 누구나 공병우 세벌식 배열을 쓸 수 있었다. 그러나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은 강제력 없는 민간 단체가 제안한 데다가 공병우 타자기의 배열은 필요에 따라 그 뒤에도 바뀌었으므로,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이 널리 쓰이는 제품에 그대로 들어가서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5) 문장용 타자기 자판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는 1975년 무렵에 소설가 정을병이 제안한 자판 배열을 바탕으로 하여 처음 만들어졌다. 흔히 쓰이던 공병우 타자기는 일반 사무용에 맞추어져 있어서 작가들에게 필요한 기호들을 갖추지 못하였다. 문장용 타자기는 겹받침과 문장 부호를 더 넣어서 타자기로 글을 쓰는 이들의 편의를 높힌 제품이다.주10
그림 3-16은 doopedia photo community에 올라온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 사진을 보고 옮긴 자판 배열이다. 1975년에 정을병이 제안하여 만들어진 문장용 타자기 배열은 아니고, 더 개량한 배열인 것 같다. 받침 ㅋ과 ㄳ이 들어 있고, 가운뎃점(·), 「, 」, 〈, 〉 등이 들어 있다.
문장용 자판을 고안한 정을병의 「문인용 타자기」(《새가정》 1975년 5월호)에 따르면, 문장용 타자기에는 홀소리 ㅒ, 큰 따옴표, 작은 따옴표, 가운뎃점(·), 「, 」, 〈, 〉, A, B, C, D, E, X, K, L, P가 더 들어갔다고 한다. 그림 3-16 및 3-17에 보이는 배열은 이 특징에 들어맞지 않는다. 이 특징에 들어맞는 것은 뒤의 글 그림 4-19에 올린 배열이다.
(6) 점자 타자기 자판
(2013.1.10. 더하여 넣음)
공병우식 타자기는 시각 장애인이 쓰는 점자 타자기로도 개발되었다. 공병우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에 따르면, 공병우 점자 한글 타자기는 1971년 8월에 개발되었다고 한다. 다음은 「소경들에게 자혜로운 선물 ― 공 박사 “점자 한글 타자기” 개발로―」(한글학회, 《한글 새소식》 제2호, 1972. 10. 5.)에 실린 공병우 점자 타자기 자판 배열표이다.
(7) 자동 식자기 자판 (모노타이프, 사진 식자기)
(2016.1.15. 더하여 넣음)
위 배열은 1975년에 열린 제20회 과학전람회에서 출품된 「한글과 Roma자 겸용 Baby 타자기의 개발」에 들어간 공병우식 자동 식자기 자판 배열이다. 실용 제품이 나온 때보다 먼저 만들어진 배열표이므로, 실제로 쓰인 식자기에는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세벌식 배열이 쓰였을 수 있다.
자동 식자기는 자판으로 넣은 문자 정보를 천공 테이프(punched tape)에 구멍을 뚫어서 담고, 이 천공 테이프를 담긴 대로 활자들을 모아서 인쇄물을 찍는 활자판을 짠다. 납 활자로 활자판을 만드는 방식이 있고, 사진에 담긴 글꼴을 필름에 찍는 방식(사진 식자 방식)이 있다. 찍어 내는 글꼴이 자판 배열에 얽매이지 않는 전자식 기기이므로, 수동 타자기와 달리 네모꼴 한글 글꼴도 찍어 낼 수 있다.
공병우는 1976년에 세벌식 자판을 쳐서 납 활자를 찾아 넣는 방식으로 모노타이프를 개발하였다. 일본 회사인 고이케에서 시제품을 만들어 실험하였으나, 제작비 문제와 한자가 들어 있지 않은 것 때문에 언론사들의 주문을 받지 못하여 실용 제품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한다.주11 주12
1978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한국일보 지사장으로 있던 장재구는 공병우가 개발한 모노타이프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공병우를 찾아와 공병우·이윤온·김성익의 협조로 공병우식 모노타이프의 작동 원리를 이해했고, 그 원리로 한글 사진 식자기를 개발하여 한국일보에서 썼다고 한다.주13
그 뒤에 공병우는 미국에 머물고던 1985년에 영문 사진 식자기 제작 회사인 아이텍(ITEK)의 제품을 써서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진 식자기를 개발하였다. 캐나다의 '코리언 저널', 뉴욕의 '미주 동아일보', 필라델피아의 '자유신문', 로스엔젤레스의 '뉴 라이프' 잡지사 등에서 이 제품이 쓰였다고 한다.
(얽힌 글 : 1970년대의 공병우 수동 타자기 / 전신 타자기 / 자동 식자기 자판 배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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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1 05: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https://www.paju.go.kr/news/user/BD_newsView.do?q_ctgCd=1002&newsSeq=586
여기 이 타자기 사진을 보시면 그 이형의 문장용 타자기 배치인 듯 합니다. 참조하시면 되겠습니다
팥알 2023/03/21 11:3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귀중한 정보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두루뫼 박물관의 타자기가 소설가 정을병 님이 기고하신 글에서 이야기된 문장용 타자기가 맞거나 그에 매우 가까운 것 같습니다.
두루뫼 박물관의 타자기 사진이 좀 흐릿해서 몇몇 기호들이 잘 보이지 않지만, 두루뫼 박물관의 공병우 타자기 배열은 4째 세대 배열에 더해서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림 3-16의 배열을 따르는 문장용 타자기는 한글만 찍는 3째 세대 배열을 따르는 것이 특징이고, 두루뫼 박물관의 타자기는 몇몇 들어간 로마자까지 한영 겸용 타자기의 배열 짜임새를 따르는 4째 세대 배열을 쓴 것이 특징입니다.
어느 배열이 먼저 나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ᄒᆞᆫ글에 3째 세대 배열이 들어간 것을 보면, 오히려 3째 세대 배열이 뒤에 나왔거나 더 오래 쓰였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정을병 님의 「문인용 타자기」에 겹받침에 관한 이야기가 없는데, 사진이 흐릿해서 아쉽지만 두루뫼 박물관의 공병우 타자기에서도 겹받침 구성도 일반 공병우 타자기와 비슷해 보입니다. 잘 헤아려 보면 두 배열의 앞뒤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팥알 2023/03/21 12:2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얽힌 글을 하나 더 찾았습니다.
파주의 진품 명품(2편)
https://www.paju.go.kr/news/user/BD_newsView.do?q_ctgCd=1002&newsSeq=492
팥알 2023/03/21 16:4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두루뫼 박물관의 문장용 타자기와 같은 것으로 보이는 자판 배열을 담은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문인용 타자기' 광고 전단지 사진입니다.
https://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203400700758000000
저도 문장용 타자기 광고 전단지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실린 자판 배열은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것과 달리 그림 3-16의 배열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