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들 - (2) 1970~1980년대의 상황과 3-87 자판
1) 기종 간 한글 자판 통일
1970~1980년대의 공세벌식 자판들이 바뀌어 간 과정을 살피면, 1990년대 초에 3-90 자판과 3-91 자판이 나온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공병우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세벌식은 컴퓨터에도 알맞아
…(줄임)…
나는 자판 문제를 연구한 지 40년 만인 1986년 10월에 한글 자판 기종간 통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세벌식을 갖고 수동식 타자기를 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컴퓨터도 칠 수 있고, 그 밖의 사진 식자기나 텔레타이프, 또한 어떤 한글 기종의 자판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세벌식 한글 자판을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같은 기종 간 통일 자판을 만들 수 있기까지는 한글 자체의 과학 성의 덕을 톡톡히 본 것이기도 하지만, 40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의 연구 경험을 살려 마무리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쪽으로 자판 배치를 했다가 문제점이 생기면 저쪽으로 변경도 해 보았으며, 별의별 시행착오에 시 달려 보기도 하였다.
연구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여러 차례 우리말 찾기(빈도수)의 통계를 내보기도 하고,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를 민활한 손가락 위치에 놓게 하는 인간 공학적인 효율성도 계산하여 자판 배정의 바탕으로 삼았다. 가령 어떤 받침은 좀 치기 쉬운 곳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되면, 인간 공학적인 면과 기계 공학적인 면을 감안하여 이동 여부를 검토하게 되는데, 어떤 경우는 하나를 바꾸기는 쉬워도 그 자리에 있던 글자를 딴 곳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뜻밖에도 자판 대이동이 일어나 혼란을 빚게 되는 수도 있었다. 그래서 자판 개량이란 게 일반이 생각하듯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능률적인 운지(손가락 놀림)를 위해 ㅁ자와 ㅂ자의 글쇠의 위치를 바꾸는데도 1년여의 실험 기간을 거쳐야만 했다. 자판에서 아주 사소할 것 같은 점 하나 찍는 쉼표 자리를 옮긴다 해도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 자신은 이상적이라 생각하더라도 관심을 쏟고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아주 조심스럽게 자판 이동을 해 왔다. 일단 타자수들이 정해져 있는 자판에 길들여지면 그 습관을 고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40여 년 동안 계속해서 자판 연구를 해 오면서도 중요한 자모의 기본 위치는 그대로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내 자판이 만족할 만한 완전한 자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가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는 동안 40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제는 기종간의 통일 자판은 만들어 놔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컴퓨터만을 위해서는 더욱 간단한 자판을 만들 수도 있지만, 기종간의 통일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생각되어 모든 기종의 자판을 통일시켜 놓았다. 그래도 컴퓨터만을 간단한 방법으로 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로 특수 전용 자판을 첨가하여 두었다. 글자 하나 하나의 배치를 위해 이렇게 많은 검토를 하였지만 사실 더욱 중요한 것은 세벌식이라고 하는 근본적인 골격이 문제인 것이다.
어쨌든 나는 세벌식 시스템으로 기종 간(여러 한글 기계 종류들 사이에서 서로 통할 수 있는) 통일 자판을 만들어 놓았다. 오랫동안의 숙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이제 눈을 감아도 한이 없다. 앞으로는 자판 문제를 관장하는 정부 기관에서 컴퓨터 시대의 바탕이 되는 자판 문제를 강압적으로 위협해 가며 다룰 생각 말고, 실험과 통계를 중시하는 과학적인 자세로 자판 통일 문제를 검토해 나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표준판을 검토할 경우에는 담당 관리가 공명심에 사로잡혀 엉뚱한 자판을 새로 더 만들어 내는 그런 전철은 제발 밟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날은 그같은 관리들 때문에 자판 통일을 할 때마다 자판이 빈번히 더 늘어나고 혼란만 더욱 가중되었던 것이다.
…(줄임)…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1989년부터 출간된 공병우 자서전에는 자판 배열이 실려 있지 않아서 '기종 간 통일 자판'의 정확한 뜻이나 '특수 전용 자판'의 모습을 자서전을 통하여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3-87 자판(그림 2-7)이라고 불린 공세벌식 자판이 공병우 자서전에서 이야기된 '기종 간 통일 자판' 또는 '특수 전용 자판'이거나 배열이 비슷한 꼴이었을 수 있다.
다른 자료들과 대조해 보면, 공병우 자서전에서 이야기된 '한글 자판 기종간 통일'의 개넘이나 사례를 살필 수 있다. 〈(제20회)과학전람회총람)〉에 실린 '각종 한글 기계의 글자판과 CODE의 일원화'라는 배열표 자료에는 여러 기기에서 쓰인 공세벌식 자판 배열들이 나와 있다. 이 자료에서 1970년대 초반 무렵에 생각할 수 있었던 공세벌식 자판을 통한 '기종 간 한글 자판 통일'이 뜻하는 바를 엿볼 수 있다.
1950~1970년대에 공세벌식 자판은 수동 타자기에서 주로 쓰였고, 통신용 타자기(텔렉스, 전신 타자기, 인쇄전신기)와 식자기(모노타이프, 라이노타이프 등)에서 쓰인 공세벌식 자판도 있었다. 이 기기들에 쓰인 글쇠판들은 글쇠 수와 글쇠 배치가 제품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었다. 1970년대의 공세벌식 자판을 통한 '기종 간 자판 통일'은 글쇠판 규격이 같지 않은 기기들에서 되도록 비슷한 공세벌식 한글 배열을 쓰는 것에 목적을 둘 수 있었다.
- 그림 : 공병우, 「한글과 Roma자 겸용 Baby 타자기의 개발」, 〈(제20회)과학전람회총람)〉, 1975
- 얽힌 글 : 각종 한글 기계의 글자판과 CODE의 일원화
타자기 가운데 가장 흔히 쓰인 종류는 기계식 수동 타자기였다. 통신용으로 전신 타자기(인쇄 전신기)가 쓰였고, 1980년대에는 기계식 전동 타자기와 전자식 타자기(휠 타자기, 볼 타자기 등)를 비롯한 더욱 다양한 타자기들을 시장에서 볼 수 있었다.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식 기기들에서는 넣고 있는 글을 고치는 기능이 당연하게 쓰인다. 전자식 타자기들 가운데는 오타가 난 곳에 수정 테이프를 덧발라 주는 기능이 들어간 제품도 있었다. 하지만 전자식 처리 장치가 없는 기계식 타자기에는 이미 찍힌 글을 손쉽게 되물리는 기능이 없으므로, 오타가 나서 잘못 넣은 글을 고칠 때의 번거로움이 컸다. 기계식 타자기를 쓰는 때에는 되도록 오타를 내지 않는 것이 능률을 높이는 길이었으므로, 타자 작업을 높은 정확도가 요구되는 전문 업무로 여길 만 했다.
타자기가 글을 찍는 기기로 주로 쓰이던 때에는 많은 사람이 한글 기기를 하나씩 차지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보급 초기에 가까울수록 쓸 수 있는 타자기는 사람들이 다루어 볼 기회를 잡기 어려울 만큼 수가 적었다. 타자기를 자주 다루던 사람들은 학교나 학원 등을 통하여 타자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경우가 많았고, 타자기를 쓰는 분야도 요즈음의 컴퓨터만큼 다양하지는 않았다. 그런 때에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종류의 타자기를 함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일반인의 범주에서 한참 벗어난 경우였다.
타자 작업을 전문 업무로 받아들이던 때에 타자기를 쓰는 사람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훈련을 거쳐 능숙해졌을 때의 속도와 편의가 괜찮다면, 일반인의 기준에서 자판 배열이 어려운 것은 큰 흠이 아닐 수 있었다. 그런 때에는 여러 기기들에서 쓰이는 한글 자판 배열들을 어느 만큼 일관성 있도록 비슷하게 맞춘다면, 직업 타자수가 다룰 수 있는 기기 수를 늘림으로써 한글 자판 배열을 통합하는 효과가 날 것이라고 기대해 볼 수 있었다.
그렇자만 더 멀리 본다면 '기종 간 한글 자판 통일'을 이루는 데에는 더욱 정교한 논리가 필요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사람의 힘을 빌지 않고 한글 기기를 손수 다루는 사람이 점점 늘었기 때문이다. 가정에도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80년대부터는 문인 · 학생 · 가정주부처럼 사무 작업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일반인들까지 한글 자판을 능숙하게 쓰는 모습이 점점 낯설지 않게 되었다. 기계식 타자기가 주로 쓰이던 때와 달리, 컴퓨터가 널리 쓰이는 세상에서는 직업 타자수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와 상식에 맞게 한글 자판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었다.
위에 보이는 자판 배열표 자료를 통하여 타자기와 식자기 등에 쓰이는 공세벌식 자판들의 한글 배열이 '일원화'라는 목표에 따라 비슷하게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통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 느슨한 '일원화'였다. 이 한글 배열들에서 특히 받침들의 구성과 자리가 달라지는 폭이 작지 않았는데, 자리가 달라지는 받침들은 자주 쓰이지 않는 편이더라도 그 수가 적지 않았다. 뛰어난 직업 타자수라도 적지 않은 낱자들의 다른 자리에 적응하는 일은 짐이 될 수 있었다.
공병우 타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기계식 한글 타자기들에도 ㄶ · ㅄ · ㅆ 같은 겹받침은 들어가면서도 홑받침 ㅋ은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받침 ㄱ에 위/아래 간격을 조절하여 - 꼴 문자를 더하거나 그려 넣어서 받침 ㅋ을 만들어 넣는 방법이 쓰일 수 있었다. 받침 ㅋ이 '부엌'이나 '남녘' 같은 낱말들에서 매우 드물게 쓰이므로, 받침 ㅋ을 넣는 편의를 높히는 것보다 기호를 하나라도 더 넣는 것이 이득이 컸다.
하지만 일반인들을 겨냥한 컴퓨터용 한글 자판에서는 표준어에 쓰이는 홑낱자를 드물게 쓰인다고 하여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다. 아래의 그림 2-2에 보이는 공병우 자판 시안처럼, 1980년대의 과도기에 연구되던 컴퓨터용 공세벌식 자판에서는 기계식 타자기에서처럼 받침 ㅋ을 빠뜨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그림 : 김숙자, 「조선글컴퓨터화를 위한 글자판 시안에 대하여」, 《조선어문》 1986년 제1호 3~6, 길림성민족사무위원회, 1986.3
- 얽힌 글 :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4. 네째 세대 (1970~1980년대)
1980년대부터는 한글을 다루는 기기들 가운데 컴퓨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공세벌식 자판도 그 추세에 맞추어 컴퓨터와 같은 전자 기기를 다루는 사람들의 편의와 상식에 맞추어 갈 필요가 있었다. 한글만이 아니라 기호도 컴퓨터 환경에서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배열 요소였다.
1980년대까지는 기계식 타자기도 꽤 많이 쓰였으므로, 기계식 타자기용 한글 자판이 으뜸이고 컴퓨터용 한글 자판은 특수 자판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공병우 자서전에서 "컴퓨터만을 간단한 방법으로 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로 특수 전용 자판을 첨가하여 두었다"고 한 것이 그런 상황이 반영된 내용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컴퓨터용 자판을 특수하게 보며 따로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세벌식 자판은 '기종 간 한글 자판 통일'을 이룰 준비를 마치지 못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무렵에 이제 막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컴퓨터를 위주로 한글 자판을 생각하는 일이 쉬울 수 없었지만, 컴퓨터용 한글 배열을 고치는 일을 마치지 않고서는 공세벌식 자판을 통한 '기종 간 한글 자판 통일'은 이룰 수 없었다.
1980년대는 한글 기기 시장이 급격하게 바뀌던 때였다. 전동식 또는 전자식 제품들과 컴퓨터용 주변 기기 및 프로그램 제품들이 새롭게 쏟아져 나오며 기계식 타자기의 지위가 흔들린 1980년대에는 기계식 타자기를 한글 기기의 으뜸으로 보던 고정관념이 금방 낡은 생각이 되어 갔다. 기계식 타자기 시장에서는 한글 자판들 가운데 공세벌식 자판이 익히기 쉬운 축에 들었지만,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다루는 비중이 크게 늘어난 컴퓨터 시장에서는 어떤 한글 자판이 쉬운지 어려운지에 관한 판단 기준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2) 공병우 직결식과 얽혀 간 공세벌식 자판 (3-87 자판)
'공병우 직결식'은 공세벌식 자판을 창안한 공병우가 1980년대 중반에 매킨토시 환경에서 개발한 한글 입출력 방안이다. 공병우 직결식의 '직결'(直決: 곧바로 결정함)은 글쇠를 누르자마자 낱자 단위로 들어가는 한글 부호값이 바로 확정되어 들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한글 낱자 단위로 부호값을 대응시키고 음수 자간(마이너스 자간) 기능을 함께 쓰는 가변폭 글꼴 처리로 한글을 나타내었다. 공병우 직결식의 기초 원리는 오늘날에 옛한글까지 나타내는 한글 표현 수단인 '첫가끝 조합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자 기기로 한글을 넣을 때에는 'ㄱ+ㄱ→ㄲ'이나 'ㅗ+ㅏ→ㅘ'처럼 앞뒤에 오는 한글 낱자 정보를 따져서 홑낱자를 겹낱자로 바꾸는 조합 처리를 거치곤 한다. 두벌식 자판으로 한글을 넣는다면 첫소리와 끝소리를 가리는 일도 필요하다. 컴퓨터에서 한글을 나타내려면 앞뒤에 오는 낱자 정보를 따져 부호값을 바꾸어 나가는 조합 처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통했는데, 초기 매킨토시 환경의 고급 글꼴 기능을 끌어들인 공병우 직결식은 부호값 처리 없이 한글을 넣는 방법을 선보여서 그런 쪽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매킨토시 환경에서 쓰인 공병우 직결식에는 아무나 생각해 내지 못할 기발한 발상이 들어갔지만, 제약도 있었다. 공병우 직결식은 다른 곳에서는 쓸 수 없는 빨래꼴 한글 글꼴과 한글 부호계로 운용되었는데, 공병우 직결식을 헤아리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보니 바깥 세상과 자주 소통하는 일에 쓰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공병우 직결식은 공세벌식 자판의 한글/기호 배열이 바뀌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공병우 직결식을 쓰는 환경에서는 'ㄹ+ㅂ→ㄼ'처럼 홑받침 2개로 겹받침을 조합하려고 하면 ㄹ과 ㅂ이 같은 자리에 겹쳐 찍혔으므로,주1 자판 배열에 겹받침을 따로 넣어서 ㄼ을 한꺼번에 넣는 방법이 쓰였다. 이 때문에 공병우 직결식을 겨냥한 1980년대의 공세벌식 자판은 점차 겹받침 수가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고, 겹받침 수가 늘어난 만큼 기호가 들어갈 자리는 줄어들었다.
매킨토시 운영체제(한글 시스템 7.5)의 심플텍스트(SympleText KH1-1.1.1)에서 3-87 자판으로 쓰는 공병우 직결식 글꼴 Kong-m-98으로 '넓은'을 넣는 화면 모습이다.
영문 쿼티 배열을 기준으로 보면, 왼쪽처럼 겹받침 ㄼ을 B로 한꺼번에 넣는 것이 공병우 직결식을 따르는 때의 정석 타자법이다.
가운데처럼 ㄼ을 w1로 ㄹ+ㅂ을 조합해서 넣으려 하면 공병우 직결식을 쓰는 환경에서는 ㄹ과 ㅂ이 같은 자리에 겹쳐 찍힌다.
오른쪽처럼 ㄹ과 ㅂ 사이에 빈칸을 끼워넣는 방법은 기계식 타자기에서 쓰인 방법과 비슷한데, 컴퓨터 환경에서 이 방법이 권장된 적은 없다. 사이에 빈칸이 들어간 'ㄹ ㅂ'으로 ㄼ을 나타내면 한글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컴퓨터라는 기기 특성에 어울리는 방법이 아니다.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오른쪽처럼 '넓'과 '은'이 벌어져 보이지 않게 하려고 ㄼ이 찍히는 자리 또는 '은'이 찍히는 자리를 왼쪽으로 더 옮기는 방법을 쓰기도 하였다.
아래 그림에서 위쪽 창은 공병우 직결식으로 넣은 '넓은'을 직결식 글꼴(Kong-m-98)로 본 모습이고 아래쪽 창은 영문 글꼴(애플고딕, AppleGothic)로 본 모습이다.
기계식 공병우 타자기에서도 공세벌식 자판에 따로 들어가는 겹받침 수가 달라진 적이 있었다. 1940~1950년대의 초기 공병우 타자기에는 요즘한글에 쓰이는 13개 겹받침들이 거의 들어갔지만,주2 1960~1980년대에 쓰인 공병우 타자기 자판에는 겹받침이 초창기 제품들보다 적은 9개(ㄲ · ㄵ · ㄶ · ㄺ · ㄻ · ㄼ · ㅀ · ㅄ · ㅆ) 이내로 들어갔다.
기계식 공병우 타자기에서는 절차가 번거롭더라도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홑받침 2개로 겹받침을 만들어 찍는 방법을 쓸 수 있었다.
글자판에 없는 겹받침 찍기
글자판에 없는 겹받침을 찍으려면, 먼저 뒷걸음쇠로 나르개를 한 간 뒷걸음시킨 다음에 사이띄우기판을 누른 채, 뒷걸음쇠를 또 누른 채, 왼쪽받침 하나를 찍고, 뒷걸음쇠만 놓고 사이띄우기판을 누른 채, 바른 쪽에 있는 받침을 찍어 만든다.
임종철, 〈최신 표준타자교본〉 59째 쪽, 한국교육도서출판사
받침 ㄹ을 찍고 요령껏 빈칸 조절을 한 단음에 받침 ㅂ을 찍어서 겹받침 ㄼ을 만들어 넣는 방식이다.
기계식 타자기(기계식 수동 타자기, 기계식 전동 타자기)에서 한글을 넣는 편의만을 생각한다면, 글쇠 자리와 활자에 겹받침을 따로 많이 두어서 겹받침을 넣을 때의 번거로운 타자 동작을 피할 수 있다. ㄶ · ㅄ처럼 자주 쓰이는 겹받침은 홑받침으로 조합하지 않고 한꺼번에 넣는 방법이 공세벌식 자판에서 간편할 수 있다. 기계식 전동 타자기는 기계식 수동 타자기보다 낱자 간격을 맞추는 잔손질을 하기 어려워서 겹받침이 따로 두는 효과가 더욱 크다.
하지만 겹받침이 많이 들어갈수록 기호가 들어갈 자리는 줄어든다. 한글이 주로 들어가는 문서에도 @ · $ · % · &처럼 한글이 아닌 기호들이 함께 들어가곤 한다. 기계식 타자기에서 겹받침은 번거로운 동작을 거치더라도 홑받침을 이어 붙여서 찍을 수 있었지만, 활자에 없는 기호를 만들어 찍는 일은 훨씬 더 까다롭거나 방법이 없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글 타자기를 업무에 쓰는 곳에서는 드물게 나오는 겹받침을 줄여서 자주 쓰이는 기호를 더 다양하게 넣을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었다.
한글 타자기는 공병우 타자기가 나온 뒤부터 실무에 쓰이기 시작했으므로, 공병우 타자기가 처음 나온 무렵에는 한글 타자기가 실무에 쓰이면서 쌓인 정보가 아직 없었다. 초창기의 공병우 타자기에는 겹받침 만이 아니라 겹첫소리 ㄲ · ㄸ · ㅃ · ㅆ · ㅉ까지 들어갔는데, 겹낱자가 많이 들어가면 간편한 동작으로 한글을 고른 글씨꼴로 찍기에 좋다. 하지만 공병우 타자기가 실무에 쓰이면서 어떤 기호들이 더 필요한지 알게 된 뒤에는 한글을 넣는 조금 편의를 떨어뜨리더라도 한글 겹낱자를 줄이고 기호를 늘리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의 공세벌식 자판은 공병우 직결식 때문에 겹받침에 관해서는 초창기의 모습에 가깝게 되돌아간 셈이 되었다. 1970년대에 나온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에 ㄳ · ㄵ이 들어간 적은 있었지만, 1960년대부터 사무용으로 쓰인 공병우 타자기들에는 ㄳ · ㄵ · ㄽ · ㄾ · ㄿ이 대체로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공병우 직결식에 맞춘 3-87 자판에는 ㄽ · ㄾ · ㄿ처럼 드물게 쓰이는 겹받침들까지 따로 들어간 모습이 보인다.
3-87 자판을 살피면 아래와 같은 특징들을 볼 수 있다.
- 겹받침과 기호
- 기본 배열에 겹받침 많이 들어간 만큼 기호가 들어갈 자리가 줄어듦
- 기본 배열의 기호들의 자리가 영문 쿼티 자판과 매우 다름
- 기본/확장 배열의 기호
- 참고표(※)처럼 영문 자판에 없는 기호가 기본 배열에 들어가기도 함
- © ® ™ ↓ ↑ 같은 기호들이 확장 배열에 다양하게 들어감
- 홑받침과 겹받침
- 요즘한글에 쓰이는 겹받침 13개가 모두 들어감주3
- 겹받침이 홑받침보다 자리 배치에서 우선 순위가 높은 경우가 있음 (ㄶ > ㅍ)
컴퓨터 환경에서는 'ㄹ+ㅂ→ㄼ'를 알아서 해 주는 한글 조합 기능이 쓰이므로, 상식 선에서 생각하면 컴퓨터에서 쓰이는 한글 자판에 겹받침이 꼭 들어가야 할 까닭은 없다. 하지만 공병우 직결식은 홑낱자를 겹낱자로 조합하는 기능을 두지 않은 채로 운용되었다. 그림 2-3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공병우 직결식으로 받침 ㄹ과 ㅂ을 차례로 넣으면 제자리에 겹쳐 찍히는 문제가 일어난다. 공세벌식 자판의 겹받침 수를 늘려 겹받침을 한꺼번에 넣게 하면, 이 문제를 피해서 공병우 직결식을 손쉽게 운용할 수 있었다.
매킨토시 기종 환경에서는 선택 글쇠(option key)를 눌러 쓰는 확장 배열이 기본 배열의 모자란 기호 자리를 보충하는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림 2-3에 보이는 3-87 자판 배열표에서 @ # $ © ® ™ * 따위가 확장 배열에 들어간 기호들이다. 하지만 이 확장 배열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뒤에 바뀐 배열은 기본 배열을 보완하는 목적이 있는지가 뚜렷하지 않았고, 공병우 직결식을 쓰지 않는 한글 입력 환경에서는 이 확장 배열이 쓰이지 않았다.
공세벌식 자판은 타자기에서부터 가장 오래 실무에 쓰인 한글 자판이지만, 컴퓨터 환경에서는 뒤늦게 배열을 정비하여 표준 두벌식 자판에 도전할 준비를 하던 처지였다. 3~5벌식 자판이 쓰이던 기계식 한글 타자기에서는 공세벌식 자판이 한글 타자기 자판들 가운데 쉽고 단순한 축에 들었다. 하지만 2벌식 자판이 쓰이는 컴퓨터 환경에서는 쉽고 단순함이 공세벌식 자판의 자랑거리가 아니게 되었다. 따로 들어간 겹받침이 늘어서 타자 동작이 간결해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더라도, 한글/기호 배열이 복잡해져서 학습 부담이 커지고 실용성이 떨어진다면 공세벌식 자판을 보급하는 일은 어려워질 수 있었다.
1980년대까지 줄곧 공세벌식 자판을 만들고 보급하는 일의 주도권을 쥔 사람은 고집쟁이로 이름난 '공병우'였다. 공병우는 공병우 직결식과 함께 '기종 간 한글 자판 통일'까지 공세벌식 자판의 설계 목표로 내걸고 있었는데, 미리 내걸린 거창한 목표들이 세부 배열을 꼼꼼하게 따지며 과감하고 결단을 내리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얼핏 생각하더라도 이런저런 제약을 많이 받는 기계식 타자기 자판보다 컴퓨터 자판이 배열 요소들을 균형 있게 조율하기 수월해야 마땅하지만, 공병우 직결식과 얽히던 1980년대의 공세벌식 자판은 기계식 타자기에서 쓰인 것보다 오히려 더 꽉 막힌 면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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