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 - (2) 쓰는 사람들도 잘 몰랐던 이름, '3-90 자판'
1) 3-90 자판 이름이 실린 자료들
한글과컴퓨터가 개발한 ᄒᆞᆫ글(아래아한글)과 한메소프트가 개발한 한메타자교사는 도스 환경에서 3-90 자판이 널리 쓰이게 하는 것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제품들의 광고에 3-90 자판을 지원함을 알리는 내용이 실린 적이 있다.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실린 위 광고들에는 '1990년에 개선되어 나온 세벌식 자판'의 이름이 '3-90' 또는 'IBM-3-90- 자판'으로 소개되었다.
광고에 '3벌씩 자판'('3벌식 자판'이 잘못 들어감)을 지원한다고 나온 도스판 한메한글은 한글 도깨비나 홍두깨처럼 도스 화면에서 한글을 보고 넣을 수 있게 해 준 한글 바이오스 프로그램이다. 먼저 나온 1.01판부터 나중에 나온 3.1판까지 쭉 3-90 자판을 지원했다.주1 주2
위 그림은 안종혁이 PC 통신망 케텔(나중의 '하이텔'로 이어짐)의 자료실에 올린 '순아래 자판'의 자료 설명문이다.주3 1990년 12월에 나온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3-90 자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첫 응용 배열이다. 위의 순아래 자판의 자료 설명문을 통하여 한글 문화원이 보급하던 3-90 자판이 처음에 '3-○○ 자판' 꼴 이름으로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자판 배열은 아니지만, ᄒᆞᆫ글과 이야기를 비롯하여 꽤 많은 도스 프로그램들이 지원하여 널리 알려졌다. 위 자료 설명문에 보이듯이 ᄒᆞᆫ글에서 쓸 수 있는 사용자 정의 자판 파일(확장자 KBD)과 함께 처음 공개되었다. 처음에 불린 'no-shift'는 윗글쇠(shift)를 누르지 않고 한글을 넣을 수 있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주4
1992년에 나온 ᄒᆞᆫ글 2.0부터는 안종혁 순아래 자판을 담은 파일(NO-SHIFT.KBD)이 환경 설정을 통하여 불러 쓸 수 있게 들어갔다.주5 2000년에 나온 ᄒᆞᆫ글 워디안부터는 ᄒᆞᆫ글이 기본 지원하는 한글 자판 배열 목록에 들어가고 있다.주6 주7
ᄒᆞᆫ글 1.51의 개선된 기능을 소개한 기사 「새롭게 단장된 ᄒᆞᆫ글 1.51」(김갑형·김균형,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1.5)에서는 'IBM'을 붙이지 않은 '3-○○' 꼴 배열 이름을 쓰고 있다.
앞의 글에서도 본 것처럼 한글 문화원은 새로 보급하는 세벌식 자판의 이름을 일관되게 '-' 기호를 붙인 3-○○ 꼴 이름으로 알렸다. 그래서 3-90 자판이 막 나온 무렵에 만들어진 자료들에는 '3○○' 꼴 이름은 거의 쓰이지 않고 '3-○○'꼴 이름이 많이 쓰였다. 처음에는 한글 문화원의 공식 배열표에 나온 'IBM-3-90' 처럼 보급하는 PC 기종(IBM)까지 붙인 이름이 더러 쓰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IBM'은 빼고 '3-90'만 적는 모습이 굳어졌다.
2) 쓰는 사람들도 '3-90 자판' 이름을 잘 몰랐던 까닭
이처럼 한글 문화원은 '3-○○' 꼴 이름을 꼼꼼하게 알렸지만, 정작 1990년대 초에 3-90 자판을 쓰던 사람들이 '3-○○' 꼴 이름을 접할 기회는 적었다. 한때는 3-89 자판을 개선한 자판 배열임을 알리려는 뜻에서 '3-90 자판'이라는 이름을 썼지만, 3-90 자판이 잘 자리잡고 3-89 자판이 거의 잊힌 뒤에는 '3-○○' 꼴 배열 이름을 써야 할 필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3-90 자판이 막 보급되던 무렵까지는 공세벌식이 아닌 다른 세벌식 자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한글 속기 자판 제품이 1990년대부터 실무용 세벌식 자판의 한 축으로 떠올랐지만, 한글 속기 자판들이 오늘 쓰이는 것과 같은 배열을 갖추고 실무 작업에서 일반인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또한 한글 문화원의 원장 공병우는 194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실무에 쓸 수 있는 세벌식 자판을 발명하고 개량해 나간 귄위자였다. 그런 공병우가 세운 한글 문화원이 세벌식 자판 보급을 주도하였으므로, 그 무렵에 그냥 '3벌식 자판'이라고 하면 한글 문화원이 보급하는 세벌식 자판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3-90 자판은 주로 도스가 쓰이던 IBM 호환 기종에 보급되었고, 매킨토시 기종에는 '공병우 최종 자판'이 보급되었다. 한글 문화원은 같은 컴퓨터 기종에 두 세벌식 자판 배열을 보급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한글판 윈도우 3.1가 나오기 앞서는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함께 자판 배열 목록에 들어가지 않았다. 안종혁 순아래 자판(1990)이나 3-93 옛한글 자판처럼 특수한 목적으로 3-90 자판을 응용한 배열이 자판 목록에 3-90 자판과 나란히 들어가는 경우가 있었을 뿐이다. 또한 매킨토시 기종은 IBM 호환 기종보다 훨씬 드물게 쓰여서, 매킨토시에서 쓰인 공병우 최종 자판은 1990년대 초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3-90 자판은 한글 문화원이 주로 보급한 한글 자판으로서 세벌식 자판 가운데는 '사실상의 표준'과 같은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주8 그런 3-90 자판은 다른 매김말 없이 '3벌식 자판'이나 '한글 3벌식' 같은 이름으로 자판 배열 목록에 들어가곤 하였다. 그렇다 보니 3-90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스스로 쓰고 있는 자판 배열이 '3-90 자판'으로 불리는지 모르고 그냥 '세벌식 자판'으로만 알고 있기 쉬웠다.
윈도판 한메한글을 쓰면 영문판 윈도에서 KS 완성형이 아닌 상용 조합형으로 한글을 쓸 수 있었다. 도스판 한메한글 3.1의 설정 화면에 3-90 자판이 '공병우 세벌식 한글 자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갔고, 윈도판 한메한글 2.5에는 3-90 자판 항목이 '3벌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갔다.
도스에서 쓰인 한글 바이오스 프로그램인 '한글 바람 3.0'의 환경 설정 프로그램에는 3-90 자판이 그림 1-6에서 본 'IBM-3-90'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한글 바람 3.0의 이 환경 설청 프로그램에서 한글 자판은 '두벌식 자판(KS)'과 '세벌식 자판(IBM-3-90)'이 들어 있고, 영문 자판은 'QWERTY 자판 (일반 영문 자판)'과 'DVORAK 자판 (빠른 영문 자판)'이 들어 있다.주9
(2017.11.17. 그림 2-8과 그림 설명을 더하여 넣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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