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에서 본 한글 자판
국립한글박물관에서는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주1이라는 이름으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2015.10.6. ~ 2016.1.31.) 기획전에서 본 한글 자판과 한글 부호계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 덧불여 본다.
1. 1969년에 나온 정부 표준 네벌식 타자기 자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이는 자판 배열들은 어느 누구의 독창적인 발명품이거나 다른 이가 만든 배열을 고친 작품이다. 어떤 자판 배열이 어느 나라의 표준이 되었다면, 그 자판 배열을 만든 사람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판 배열을 만든 과정을 떳떳하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1969년에 표준이 된 네벌식 타자기 자판은 총괄 책임자(과학기술처 정책 조정관 황해용)는 알려져 있지만 연구 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어떻게 이바지하여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표준까지 되었으니 나중에라도 내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올 만도 한데, 그런 사람은 나오지 않고 있다.주2
1960년대에 한글 타자기는 시장에 이미 수만 대가 풀려 있었고, 행정 기관에서 가지고 있던 타자기도 1만 대를 넘었다고 한다. 정부 기관에서 쓰인 한글 수동 타자기는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가 60%, 김동훈 다섯벌식 타자기가 38%를 차지하여 두 업체가 타자기가 시장을 과점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한글 타자기에 쓰인 자판이 서로 달라서 공병우 타자기를 쓰던 사람은 김동훈 타자기를 쓸 수 없는 식의 문제가 있었고, 이 문제를 풀겠다는 목적으로 1959년부터 정부 기관(상공부 표준국 등)이 주도하여 타자기에서 쓰이는 한글 자판을 표준화하여 통일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실패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과학기술처가 주도하여 비밀리에 위와 같은 네벌식 자판 배열을 만들었고, 1969년에 국무총리 훈령 제81호로 한글 표준 자판으로 공포되었다.주3 주4
이 네벌식 타자기 표준 자판을 담은 수동 타자기는 요즈음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한글기계화 표준자판 확정에 따른 지시)으로 보급되었다. 공병우 타자기와 김동훈 타자기 등으로는 타자 검정 대회나 급수 시험에 참여할 수도 없게 하였고, 학교와 타자 학원 등에서 네벌식 표준 타자기가 아닌 제품은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맞서는 타자기 발명자(공병우)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고, 표준 자판에 대한 찬반 여론에 대한 기사를 실은 잡지(현대한국)가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폐간되는 일도 벌어졌다.주5
이런 정부 정책 때문에 빠른 타자 속도를 내세운 공병우 타자기만 민간 수요로 명맥을 겨우 이어갈 수 있었고, 다른 한글 타자기들은 모두 몰락했다. 네벌식 표준 자판은 1985년에 표준에서 폐지되었다. 네벌식 표준 타자기가 쓰이는 동안에 사람들은 시장 경쟁으로 더 편리하게 다듬어지는 한글 타자기를 쓸 기회를 잃었고, 이는 한글 수동 타자기 시장이 더 빨리 힘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공병우와 김동훈 같은 발명가들이 애써 이룬 업적도 빛을 크게 잃었다.
널리 쓰이고 있던 발명품이 이미 있는데 정부가 나서서 더 못난 발명품을 만들고 그것만 쓰게 하는 것은 계획 경제를 하는 공산주의 국가나 식민 통치를 받는 곳에서도 이상하게 바라볼 만하다. 정부의 권력 기관이 나서서 죄 없는 발명가를 괴롭히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것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따르는 나라에서는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이다. 정부가 1969년부터 한글 타자기 시장에 억지로 개입하며 펼친 정책들은 그 무렵의 우리나라 정치 수준이 어떠했는지를 보여 주는 부끄러운 사례로 남아 있다.
2. 1980~1990년대의 두벌식 표준 자판
(1) 초창기 셈틀에 쓰인 두벌식 자판
오늘 흔히 쓰이는 1982년에 산업 표준으로 오른 '정보처리 건반 배열'(옛 KS C 5715)에 바탕하고 있다. KS C 5715은 KS X 5002로 이름이 바뀌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위 SPC-1000 기종에 붙은 자판은 글쇠 배치와 기호 배열이 요즈음에 쓰이는 것과는 다르지만, 한글 배열은 KS X 5002에 실린 배열표와 거의 같다.
KS X 5002에서 ㄲ·ㄸ·ㅃ·ㅆ·ㅉ의 자리는 ㄱ·ㄷ·ㅂ·ㅅ·ㅈ의 윗글 자리에 놓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강제 사항은 아니어서 위 글쇠판처럼 된소리들을 다른 자리에 놓더라도 표준에 어긋난 건 아니다. KS X 5002에서는 요즈음에 이동 기기에 쓰이는 방식처럼 ㄱ+ㄱ→ㄲ으로 조합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었지만, 한글 조합에 애매한 경우가 생기는 것을 피하려고 셈틀에서는 윗글쇠를 눌러 된소리를 넣는 방식이 주로 쓰이고 있다.주6
(2) 88글쇠가 들어간 글쇠판
88글쇠가 들어간 글쇠판은 8088(XT) 기종에 많이 쓰였던 제품이다. 86글쇠 규격에 한·영 글쇠와 한자 글쇠를 더한 꼴이다.
글쓴이는 이 글쇠판으로 GW-BASIC 프로그램을 바삐 짜다 보면 한 줄씩 날려 먹는 일을 겪곤 했다. 기능 글쇠를 쓰려다가 그런 일을 겪었는데, 아직도 그 까닭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 기능 글쇠들이 더 들어간 101 글쇠판을 편하게 느꼈고, 88 글쇠판은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은 물건이었다.
(3) 101글쇠가 들어간 글쇠판
80286(AT), 80386 기종이 쓰인 때를 겪었던 사람은 101 글쇠가 들어간 글쇠판이 낯이 익을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두벌식 한글 배열 26개 한글 낱자가 들어간 이런 101 글쇠판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한·영'과 '한자' 글씨가 오른쪽 ALT와 Ctrl 글쇠에 적힌 제품은 글쓴이는 이 기획전에서 처음 본 것 같다.주7
나중에 나온 103 글쇠판이나 106 글쇠판에는 한·영 글쇠와 한자 글쇠가 따로 있지만, 101 글쇠판에는 두 기능 글쇠가 따로 없어서 응용 프로그램들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두 기능 글쇠를 갈음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인기를 누렸던 아래아한글에서는 '완쪽 윗글쇠(shift) + 사이띄개(space)'로 한·영 상태를 바꾸었고, F9 글쇠로 한자 글쇠를 갈음했다. 그 영향으로 아직도 아래아한글의 방식으로 한·영 상태를 바꾸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 꽤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Windwos)의 자판 드라이버 목록에는 'PC/AT 101키 호환 키보드/USB 키보드'가 종류 1~3으로 나뉘어 있다. 그 세 가지는 한·영 및 한자 글쇠를 갈음하는 방법을 고르기 위한 것이다. '종류 1'를 고르면 위 글쇠판과 같이 오른쪽 Alt를 한·영 글쇠로, 오른쪽 Ctrl을 한자 글쇠로 쓸 수 있다. '종류 3'을 고르면 아래아한글처럼 '윗글쇠(shift) + 사이띄개(space)'로 한·영 상태를 바꿀 수 있고, 한자 글쇠는 'Ctrl + 사이띄개(space)'로 쓸 수 있다.
3. 두벌식 자판에 얽힌 이야기
(1) 한국의 두벌식 자판
두벌식 자판에서 글쇠들이 얼마나 자주 눌리는지를 나타낸 열 지도(히트맵)이다. 색이 진하게 칠해져 있는 글쇠일수록 칠이 벗겨진다고 보아도 맞다. 신세기 SSG 연구소에 있는 신세기 님의 연구 자료에 있는 그림이다. 기획전의 다른 자료들을 만드는 데에 함께 참고했다는 뜻으로 신세기 SSG 연구소와 글걸이가 출처로 나란히 올라간 것 같다.
요즈음 가장 흔히 쓰이는 두벌식 한글 자판이 1982년에 어떻게 표준으로 확정되었는지에 대한 정왕호 님(글틀 '명필' 개발자)의 증언도 들을 수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분석할 한글 자료를 모으고 시안 배열을 몇 가지 만들어서 가장 효율성이 높은 배열을 가리는 시뮬레이션 분석을 했다는 이야기가 한참 나온다. 이렇게 듣다 보면 표준 자판이 꽤나 공들인 연구 작업을 거쳐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더 나은 시안이 있었으나 이미 쓰이던 한글 텔렉스 배열과 크게 차이가 안 나서(10% 미만) 그 한글 텔렉스 배열을 공청회를 거쳐서 표준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 한글 텔렉스 배열은 1969년에 정부 표준이 된 네벌식 수동 타자기 자판과 비슷한 꼴로 만들어 표준으로 정한 두벌식 전신 타자기 자판 배열이다.
두벌식 표준 자판을 정하는 과정은 이미 내정한 두벌식 배열을 표준으로 올리려는 요식 절차였다. 그러므로 정왕호 님을 비롯하여 검토 작업에 참여한 분들에게 책임을 물을 만한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때에는 세벌식 자판 쪽에 바로 내세울 만한 셈틀(컴퓨터) 보급용 배열이 없었고,주8 풀어쓰기가 아닌 모아쓰기를 전제로 하는 두벌식 자판 배열 설계에 매달린 연구가가 드물기도 했다. 1969년의 네벌식 표준 자판처럼 한 번도 쓰인 적 없는 제3안을 표준으로 바로 올린 것에 비하면, 시장에서 어느 만큼 쓰이던 것을 표준으로 삼은 것은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동 타자기에 맞춘 두벌식 배열을 전자 기기에서 널리 쓸 표준 한글 배열로 성급히 정한 것은 두고두고 비판할 만한 거리이다.주9
(2) 북조선의 두벌식 자판
1991년에 북조선은 위 배열표에서 겹닿소리(ㄲ,ㄸ,ㅃ,ㅆ,ㅉ)와 ㅒ·ㅖ가 빠진 배열을 ISO(국제 표준화 기구)에 제출한 적이 있다.(ISO/IEC JTC IN 1282) 그래서 남한의 연구가들 사이에 북조선의 한글 자판으로 겹닿소리와 ㅒ·ㅖ를 어떻게 넣는 방법이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처음에 북조선에서는 된소리가 섞인 '꼬'를 넣으려면 ㄱ+ㅗ+ㅗ로 홀소리를 두 번 넣는 '치환타건 방식'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연구를 통하여 남한의 표준 자판과 같이 겹닿소리와 ㅒ·ㅖ를 놓는 방식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내렸고,주10 겹닿소리 5개가 윗글 자리에 들어간 배열안을 1993년 4월 27일에 조선국규 9256호에서 임시규격(한 해마다 개정할 여지를 남겨 두는 북조선의 표준 제도)으로 제정하였다고 한다.주11
설명에 나온 것처럼 북조선은 머릿소리 법칙(두음 법칙)을 쓰지 않으므로, 남한보다 첫소리에 ㄴ·ㄹ이 더 쓰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ㄴ·ㄹ은 첫소리보다 끝소리에 더 많이 쓰이고, ㅇ>ㄴ>ㄱ>ㄹ 차례로 닿소리가 자주 쓰인다. 그래서 머릿소리 법칙이 쓰이는 남한에서도 ㄴ·ㄹ은 두벌식 자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다른 예로 북조선에서는 '나뉘어'를 '나뉘여'로 적는다. 그러므로 ㅕ가 더 자주 쓰일 터이니 더 편한 자리에 들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볼 수도 있겠는데, 오히려 남한의 표준 자판보다 ㅕ가 더 불편한 자리에 놓여 있다. 이는 ㅕ의 잦기가 다른 홀소리들에 비하여 크기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남한의 표준 자판에 ㅕ가 너무 편한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남한의 두벌식 표준 자판은 된소리가 있는 ㄱ·ㄷ·ㅂ·ㅅ·ㅈ이 같은 줄에 있다. 이는 수동 타자기에 쓰인 네벌식 자판과 비슷하게 맞춘 흔적이다. 북조선의 두벌식 자판은 처음부터 수동 타자기를 의식하지 않고 만들어져서 된소리가 있는 닿소리들이 같은 줄에 모여 있지 않다. 이 점 때문에 남한의 표준 자판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북조선의 표준 자판보다 효율성을 크게 희생하였다. 정희성 교수는 두 자판을 쓸 때의 손가락 이동 유형과 거리를 비교한 연구에서 남한의 표준 자판이 북조선의 표준 자판보다 입력 속도가 20% 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다.주12
(3) 남북 공동시안
홀소리 배치는 북조선의 표준 자판과 거의 같은데, ㅏ·ㅣ·ㅡ 자리가 바뀌었다. 덕분에 ㅢ를 치기 편한 꼴이 되었다. 닿소리는 새끼 손가락 자리에 들어간 ㄹ 때문에 새끼 손가락의 타수 비율과 거듭치기 비율이 많다. 왼손 집게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많은 것도 흠이다.주14 닿소리 ㄹ 자리만 살펴도 남북 공동시안은 완성안이 아님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배열이다.
남북 공동시안은 본래 나중에 더 개선하기로 합의하고 채택되었던 배열안이다. 그 뒤의 학술 회의에서 공동시안과 다른 배열을 비교 평가하는 방법 등이 논의되었지만, 공동시안이 더 개선되지는 않았다. 북조선에서 먼저 배열을 제안했으므로 남한에서 다른 대안을 내놓았음직 했는데, 달리 더 나은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다.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한 남한 학자들 가운데 이만영, 정희성 교수 등이 논문을 통하여 다른 설계안들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쓰기 불편한 점이 있거나 낱자 수와 글쇠 배치 조건이 다른 배열이어서 공동시안의 개선안으로 내세우기에는 알맞지 않았다.주15 주16
두벌식 자판은 부분 개선이 어렵다. 특히 닿소리 배열은 조금 고치기보다 새로 만들기가 오히려 수월하다. 그래서 두벌식 자판의 초안 배열을 마련해 놓고 여러 사람이 군데군데 고쳐서 한 줄기로 완성안을 만들어 가는 공동 작업은 이루어진 예가 없다. 그러므로 여러 배열안을 내놓고 좋은 것을 뽑거나, 한 쪽이 닿소리 배치를 맡고 다른 쪽이 홀소리 배치를 맡는 식이 되어야 공동 작업으로 더 나은 배열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남북 공동 배열 연구에 참여한 학자들은 다른 외부 요인이나 절차에 신경 쓴 나머지 열정을 쏟으며 경쟁하듯 배열안을 내놓는 분위기에는 이르지 못했던 듯하다.
남북 공동 자판이 세상에 나오더라도 이미 널리 쓰이는 남북의 표준 자판을 밀어내고 보급되기는 어렵다. 남북의 표준 자판 규정을 고치는 절차와 사람들이 새 배열을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에서 만만하지 않은 저항에 부딛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수요에 주목하여 남북 공동 자판을 바라본다면 다르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남한에서는 표준 자판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 다른 대안 자판들(주로 세벌식 자판 쪽)이 보급되는 기회가 되고 있다. 누가 떠밀지 않아도 표준 자판에 불만을 느끼고 더 나은 것을 찾는 수요가 있다는 뜻이다. 만약에 남북 공동 자판이 다른 대안 자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만큼의 효율성만 갖춘다면, 민간 차원에서 보급되는 한글 자판들보다 훨씬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남북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명분과 권위를 더 높여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쓸모 있는 한글 자판 배열이 공동 연구를 통하여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이 남북 공동 자판 연구의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이다.
4. 세벌식 자판에 얽힌 이야기
(1) 세벌식 자판
세벌식 자판에 대한 짤막한 설명이다. 배열표에 나타낸 것은 공세벌식 자판인 3-90 자판이 맞긴 한데, 몇 글쇠에 겹받침이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3-91 자판처럼 보이는 꼴이 되었다. 한글 배열에 ㄲ·ㄺ은 2~3개씩 들어가고 받침 ㅈ과 숫자 2·3은 빠져 있다.
글쓴이도 한글 자판 배열표를 만들 때 이와 비슷한 실수를 많이 하는데, 세벌식 자판 가운데도 공병우 계열은 겹받침이 많아서 배열표를 그리기가 참 까다롭다. 그래도 3-90 자판은 양반이고, 3-91 자판은 실제로 쓰는 사람들도 배열표를 그리기가 어려울 만큼 배열이 복잡하다. 한글문화원에서도 기호 한두 개쯤은 빠뜨라거나 틀린 자리에 놓은 배열표와 딱지를 배포했었다.주17 정확한 3-91 배열표는 여러 자료들을 대조하여 검토해 보고 나서야 그려 낼 수 있었다. 이는 2000년대 후반까지 윈도와 리눅스를 비롯한 여러 운영체제에서 3-91 자판이 조금씩 다른 기호 배열로 구현되는 원인이 되었다.주18
(2) 한글문화원 3-90 자판 딱지가 붙은 글쇠판
글쓴이가 세벌식 자판을 처음 익히려고 옛 한글문화원(1988~1996)에서 받았던 딱지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위 글쇠판에는 3-90 자판(390 자판, IBM-3-90 자판) 딱지가 주로 붙어 있는데, 다른 배열(3-89, 3-91 등)로 보이는 딱지들이 조금 섞여 있다. 글쓴이가 받은 3-90 자판 딱지는 위와 같이 글쇠의 반을 덮는 꼴이었다. 그런데 위 글쇠판에서 1 자리와 F 자리를 보니 글쇠 하나를 다 덮도록 나온 3-90 자판 딱지도 있었던 모양이다. '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불리던 3-91 자판 딱지도 있었는데, 3-91 자판 딱지는 영문 쿼티 배열이 함께 들어가서 글쇠 하나를 다 덮는 꼴이었다.
일찌감치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가 쓰인 매킨토시에서는 1980년대 초반부터 공병우 선생이 손수 개발한 직결식 한글 처리를 통하여 '공자판' 또는 '공병우 자판'으로 불린 세벌식 자판이 쓰였다. 이 세벌식 자판의 마지막 판이 1991년에 한글문화원을 통하여 나온 '공병우 최종 자판'(3-91 자판)이었다.주19 하지만 매킨토시 기종이 많이 보급되지 못해서 3-91 자판을 접한 사람은 적었다. 더구나 3-91 자판은 제대로 된 한글 처리 방식이 아니라 입력 스크립트와 변형 글꼴을 쓰는 간이 입출력 방식(직결식 한글 처리)으로 쓰였으므로, 매킨토시에서 직결식 처리를 통하여 3-91 자판으로 넣은 글은 부호계 변환을 거쳐서 다른 환경에서 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 매킨토시 환경에서 쓰인 3-91 자판은 외부 소통이 잦은 업무에 쓰기 번거로웠다.
IBM 호환 기종(PC)은 요즈음에도 흔히 쓰이는 셈틀(컴퓨터) 기종으로 이어진 계열이다. IBM 호환 기종은 이미 1980년대부터 매킨토시보다 많은 대수가 쓰였지만, IBM 호환 기종에서 세벌식 자판은 매킨토시보다 더 늦게 쓰이기 시작했다. 1989년에 한글문화원은 연구원이었던 박흥호 님이 연구를 주도하여 3-89 자판을 내놓았다.주20
IBM 호환 기종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많이 쓰인 운영체제는 도스(DOS)였다. 도스는 명령어 기반 운영체제여서 초기 환경에서는 전문 개발자가 아닌 사람도 영문과 기호로 이루어진 명령어를 넣어야 하는 때가 잦았다.주21 또한 도스에서 인기를 누린 응용 풀그림들은 한글 입출력 기능을 따로 구현하고 있었으므로, 도스 환경에서 세벌식 자판이 널리 쓰이려면 여러 개발자들의 협조가 필요했다. 한글문화원은 도스 환경에서 한글 입출력 풀그림을 만드는 개발자들과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한글문화원이 보급하는 세벌식 자판을 응용 풀그림들에서 지원하도록 이끌었다.
3-89 자판은 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매우 달랐고, 영문 자판에 있는 기호들을 모두 담지 못했다. 이 점이 그 뒤에 한글문화원이 벌인 설문 조사에서 불편한 점으로 꼽혔다. 그래서 이듬해에 이를 개선한 3-90 자판이 나왔다. 3-90 자판에는 영문 자판의 기호들이 모두 들어갔고, 기호 자리가 영문 자판과 꽤 비슷하게 맞추어졌다. 그 대신에 겹받침 수는 줄었다. 이 덕분에 3-90 자판은 그 때까지 나온 세벌식 자판 가운데 가장 적은 힘을 들여 빨리 익힐 수 있는 세벌식 배열이 될 수 있었다.
'390 자판'은 약칭이고, 이 배열의 공식 이름은 'IBM-3-90' 또는 '3-90'이다. 한글문화원은 3-90 자판을 알린 초기 공식 배포 자료에 철저하고 일관되게 '-'를 생략하지 않은 이름을 썼다.주22 그래서 한글문화원의 배포 자료를 읽고 세벌식 자판을 접한 사람들은 '3-90 자판'이라는 이름에 익숙했다. 하지만 한글문화원과 인연이 있었거나 한글문화원에 소속된 적이 있던 프로그램 개발자들과 연구원들은 '390 자판' 같은 약칭도 많이 썼다. 한글문화원의 자료 가운데도 글쓴이가 편집부가 아닌 연구원인 자료에는 '390 자판'으로 적히기도 했다. 공병우 계열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을 돕고 통신 게시판이나 출판물 등을 통하여 세벌식 자판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데에는 관련 프로그램 개발자와 한글문화원 연구원들이 이바지한 바가 컸으므로, 일반에는 '390 자판'이라는 약칭이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 3-90 자판은 세벌식 자판 가운데 사실상의 표준처럼 여겨졌으므로, 정작 3-90 자판이 많이 쓰이던 때에는 '3-90 자판'이나 '390 자판'이라는 이름은 잘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공병우 최종 자판(3-91 자판)이 점점 더 쓰이기 시작하면서, '3-90 자판'이나 '390 자판'이라는 이름이 점점 쓰이기 시작했다. 옛 한글문화원이 1990년대 중반에 문을 닫고 윈도우 운영체제가 1995년부터 '390'이라는 배열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람들이 '3-90' 이름꼴을 거의 잊고 '390' 이름꼴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되었다.주23
3-90 자판 딱지는 글쇠의 반(한글 쪽)만 덮는 것이 한글문화원을 통하여 주로 배포되었다. 하지만 이 글쇠판에는 글쇠의 반을 덮는 것이 주로 붙은 가운데 글쇠를 다 덮는 것(1, A, S, F 자리)도 섞여 있다. 위와 같은 딱지는 자판 덮개(키스킨)을 덮어 놓았더라도 빛을 받는 곳에 오래 두면 빨간 글씨가 저절로 색이 빠진다. 특히 A, S, D, F 글쇠는 색이 빠지나 떨어져 나가기 쉽다. 그래서 원형 그대로 보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섞여 들어간 다른 종류 딱지는 먼저 떨어져 나간 딱지를 보태서 채운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A, S, F 자리는 3-90 자판과 3-89 자판의 한글 배열이 같아서 3-89 자판 딱지를 쓰지 않았을까 의심해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3-89 자판 딱지를 보지 못해서 확인할 수 없다. 1 자리의 받침 ㅎ과 ㅈ은 3-90 자판의 특징이므로, 이로 미루어서 3-90 자판 딱지는 적어도 두 가지 꼴(반각, 전각)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쉼표(,) 자리와 L 자리에는 다른 배열들(3-87, 3-89, 3-91 등)의 것으로 보이는 딱지가 섞여 들어가 있다. 3-90 딱지가 모라라서 벌충했거나 이미 붙어 있던 딱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쉼표(,) 자리의 ₩ 기호는 3-87 딱지의 글꼴과 비슷해 보이지만 어떤 배열의 것인지 알 수 없다. 쉼표 자리에는 영문 쪽 아랫글 자리에 쉼표가 들어가고, 영문 쪽 윗글 자리에 부등호(<)가 들어가고, 한글 쪽 윗글 자리에 숫자 2이 들어가야 맞다. L 자리는 3-91 자판의 것과 글꼴이 매우 비슷한데, 숫자 3이 아니라 6이 들어가야 맞다.
(2016.3.31. 글과 배열표 보탬)
한글문화원은 세벌식 배열을 찍은 딱지(스티커)를 나누어 주는 방법으로 세벌식 자판을 알리고 보급했다. 하이텔과 천리안을 비롯한 대형 PC 통신망에서는 한글문화원에 전자우편으로 딱지를 신청하면, 우체국 우편으로 딱지 2장과 소책자·유인물 자료를 받을 수 있었다. PC 통신을 할 수 있는 셈틀 환경에서는 거의 3-90 자판이 쓰였으므로, 그냥 '세벌식 딱지'를 신청하면 한글문화원에서는 3-90 자판 딱지를 보내 주었다. 그 3-90 자판 딱지에 딸린 자료를 읽어 본 사람은 매킨토시라는 기종에서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도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 또는 '매킨토시 세벌식 자판' 딱지를 따로 이야기하면 한글문화원에서 3-91 자판 딱지를 받을 수 있었다.주24
공병우 타자기는 쓰는 사람이 특정 지역(주로 도회지)과 특정 직업군(전문 타자원, 사무원, 언론인, 문인 등)에 몰려 있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공병우 타자기가 표준 네벌식 타자기에 강제로 밀려나는 바람에 일반인들이 볼 기회가 적었다. 하지만 셈틀에서는 PC 통신망을 통하여 세벌식 자판이 많이 알려진 덕분에 세벌식 자판이 훨씬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쓰일 수 있었다.주25
돌이켜 보면, 3-90 자판이 많이 보급되던 때가 공세벌식 자판의 전성기였다. 그 무렵에는 셈틀에서 한글 자판을 처음 다루어 보는 사람이 많았고, 한글 자판을 빠르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았다. 이런 때에 3-90 자판은 한글문화원의 보급 운동에 힘입어 빠르게 퍼져 나갈 수 있었다. 3-90 자판을 익힌 사람들이 두벌식 표준 자판을 쓸 때보다 빠른 타자 속도를 뽐내면서 "세벌식 자판은 두벌식 자판보다 빠르다."는 생각이 선입견처럼 자리잡았다. 한때는 세벌식 자판이 두벌식 표준 자판의 지위를 흔드는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주26 윈도우 3.1의 입력기 설정에 두벌식 표준 자판과 나란히 3-90 자판과 3-91 자판이 들어간 것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결실이었다.
그러나 윈도우 운영체제에 3-91 자판이 들어간 일은 나중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1995년에 원장으로서 한글문화원을 이끌던 공병우 선생이 세상을 떠나고 한글문화원도 그 뒤에 문을 닫았다. 그 뒤로 3-90 자판을 애써 보급하려는 꾸준한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런 가운데 3-91 자판이 윈도우 95의 입력기를 통하여 '세벌식 최종'으로 알려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3-91 자판이 개인 차원에서 권장되는 공세벌식 배열로 자리잡았다. 3-91 자판은 3-89 자판의 나쁜 점을 되돌린 꼴이었지만, 오직 '최종'만 바라보며 움직이려는 사람들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이 때문에 한글문화원이 3-90 자판을 보급하던 때의 활기는 다시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만약에 3-90 자판과 3-91 자판이 후대에 권장할 만한 완성안이었다면, 옛 한글문화원은 일찌감치 글쇠에 배열을 새긴 글쇠판 제품으로 내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딱지로 보급한 것은 두 배열이 나중에 나올 개선안에 앞서 미리 선보이는 임시 배열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까지는 세벌식 자판도 표준 자판이 될 자격이 있다는 여론이 있었고, 두 배열을 더 개선한 배열이 표준안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어 볼 만했다. 하지만 공세벌식 자판은 표준 자판이 되지 못했고, 한글문화원은 더 개선한 배열을 내놓지 못했다.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실무용 배열로 볼 수 있는 공세벌식 개선안이 제안되고는 있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개선안을 가려서 보급하는 일은 숙제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 널리 쓰이는 두벌식 자판이 1969년에 등장한 전신 타자기 표준 배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공세벌식 자판도 3-90 자판과 3-91 자판에 오래 갇혀 있는 형국이다.
(3) 속기 자판 (CAS, 소리자바)
1980년대까지는 꾸준히 실무에 쓰이는 세벌식 자판은 공세벌식 자판뿐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는 다른 세벌식 자판도 실무에 쓰이기 시작했다.의회·법원·방송 등의 분야에서 깊숙히 자리잡으며 오늘의 속기 자판 시장을 이끌고 있는 카스(CAS)와 소리자바(옛 감퓨타)가 그 본보기이다. 처음에 기획전에는 카스(CAS) 자판만 전시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소리자바 제품도 함께 들어갔다.
속기 자판으로 빠른 타속을 낼 수 있는 비결은 모아치기에 있다. 모아치기는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 낱자를 함께 쳐서 한 낱내(음절)씩 넣는 것을 방법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첫·가·끝 모아치기만으로는 속기록을 만들 수 있는 만큼의 속도를 꾸준히 내기 어렵다. 모아치기 원리를 더 응용한 줄임말(약어) 기능까지 써야 속기 자판으로 사람이 하는 말을 받아 적을 만큼의 타속을 꾸준히 낼 수 있다. 줄임말 기능은 낱말 또는 글월을 적은 글쇠를 눌러 한꺼번에 넣게 하는 구실을 한다.
속기 자판은 기기 자체가 입력기 구실을 하므로, 셈틀에 다른 입력 프로그램을 따로 깔지 않더라도 운영체제 입력기를 두벌식 자판을 쓰는 상태에서 쓸 수 있다. 하지만 장난 치는 사람이 있는지 운영체제 입력기를 세벌식 자판을 쓰는 상태로 바꾸어 둔 것을 더러 볼 수 있었다. 글쇠 하나로 낱자 하나를 넣는 일반 자판과 달리, 속기 자판은 줄임말들이 꽉꽉 들어차 있어서 낱자만 따로 넣기는 오히려 번거롭다
전자식 속기 자판이 없던 때에는 손글씨로 적는 수필 속기가 쓰였다. 수필 속기록은 모르는 사람에겐 도무지 알 수 없는 암호문과 같다. 수필 속기록을 누구나 알기 쉽게 푸는 시간이 적는 시간의 몇 배로 걸리므로, 옛적의 국회 속기록은 국회 활동이 끝난 몇 달 뒤에나 정리되어 나오곤 했다. 하지만 전자식 속기 자판이 쓰인 뒤에는 빠르면 회의가 끝난 다음날에도 날짜별·회의별로 국회 속기록이 정리되어 속속 올라오곤 한다.
5. 한글 부호계
"똠방 각하! 전홥니다."
"위크샆에서 본 펲시맨은 얼굴이 하얬다."
요즈음에는 위와 같은 글을 어렵지 않게 넣을 수 있지만, 한때 널리 쓰였던 한글 입력 환경에서는 위의 글이 이렇게 들어가곤 했다.
"또ㅁ방 각하! 전화ㅂ니다."
"위크샤ㅍ에서 본 페ㅍ시맨은 얼굴이 하얘ㅆ다."
이런 요술(?)을 일으킨 원흉은 1987년에 KS C 5601(「정보 교환용 부호계」, 지금의 KS X 1001)에 들어간 이른바 KS 완성형 부호계였다.
요즘한글에 쓰이는 첫소리(19자)·가운뎃소리(21자)·끝소리(27자)를 모두 조합하면 11172자를 만들 수 있다. 1172자가 요즈음에 모두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옛말이나 새말을 나타낼 때에는 어느 글짜가 언제 더 쓰일지는 알 수 없다. KS 완성형 부호계에는 한글 2350자와 한자 4888자가 들어갔다. 1987년부터 쓰이기 시작한 KS 완성형 부호계 덕분에 한글 2350자로는 외래어는커녕 우리말을 나타내기에도 모자라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KS 완성형 부호계가 PC 통신망과 행정 전산망에서 쓰이는 한글 부호계로 굳게 자리잡은 뒤였다.
KS 완성형 부호계가 쓰인 행정 전산망은 이름 문제로 사람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KS 완성형 부호계에서 한자는 4888자만 나타낼 수 있었고, 4888자에서 벗어나는 한자 이름은 행정 전산망을 통하여 올릴 수 없었다.주27 본인이나 가족이 이 문제에 걸린 사람들은 동사무소에서 한자 이름을 등록할 수 없었다.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은 행정 전상망을 바꾸려고 싸우기보다 행정상의 편의에 굴복하여 한자 이름을 바꾸는 길을 택하곤 했다.
한글 이름을 못 넣는 경우는 훨씬 더 큰 어려움이 따랐다. 기획전에 소개된 서설믜 님의 '믜'는 KS 완성형 부호계에 들어가지 않은 글짜이다. 이 때문에 행정 전산망에 들어가지 않는 '믜'는 임시 방편으로 '므ㅣ'로 넣을 수밖에 없었고, 이 바람에 행정상의 실명은 '서설므ㅣ'가 되었다.주28 금융 통신망에서도 KS 완성형을 쓰는 바람에 전산망 오류를 피하여 '서설미'라는 이름을 써서 통장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서설믜 님은 실제 이름 '서설믜', 행정상의 이름 ' 서설므ㅣ', 금융 기관에서 만들어 넣은 이름 '서설미'까지 3가지 이름을 쓰게 되었다.
이름에 '믜'가 들어가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박설믜 님의 경험담에 잘 나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끝내는 실명 확인 작업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본인과 관계자들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애써야 겨우 해낼 수 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그 원인을 일으킨 KS 완성형 부호계는 아직도 한국의 행정 전산망에 쓰이고 있고, 한 번 전산망에 올라간 '므ㅣ' 꼴 이름 정보가 여기저기에 복제되어 '믜'가 들어간 이름을 쓰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1980~1990년대에 한글 11172자를 나타내는 조합형 한글 처리 기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7년에 개정된 KS 5601가 나오기 앞서도 업계 분위기는 완성형보다는 조합형 쪽(2바이트 조합형)을 지지하는 쪽에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도 완성형 부호계(KS 완성형)으로 삼은 가장 큰 근거는 국제 간 통신 문제였다. KS 5601을 개정하는 연구는 한국 표준 연구소가 맡았고, 그 실무 작업을 통신 업계(한국통신, 전자통신연구소, 데이콤)의 전문가들이 맡았다. 통신 업계의 전문가들은 국제 간 통신에 문제가 없도록 국제 규격(ISO-2022)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주29 그리고 한국 표준 연구소는 조합형을 따를 경우 ISO-2022에 나온 부호 확장법을 따를 수 없는 것, 한자를 3000자밖에 없는 것, 통신 제어 문자와 충돌이 나는 것 등을 문제 삼아 이유로 조합형 시안을 버리고 이미 알려진 것과도 다른 완성형 시안을 표준으로 올리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조합형을 쓰더라도 한국 표준 연구소가 꼬집은 문제들을 기술 보완으로 피해 갈 수 있다는 점은 무시되었다.주30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에 민간 업체들이 선보이는 글틀(워드프로세서)을 비롯한 무른모(소프트웨어)들은 최신형 제품도 몇 달만 묵히면 기능이 모자라는 한물 간 물건이 될 만큼 판올림을 거듭하며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ᄒᆞᆫ글(아래아한글)은 한국사 연구 등에 필요한 1만여 자의 한자를 더 지원하는 한자 확장 기능(한자 확장팩)을 내놓았다.주31 도스에서 쓰인 통신 풀그림 '이야기'는 조합형·완성형 한글을 모두 처리하고 글로 편집하는 기능까지 갖추었다. 조합형 한글 부호계를 쓰고자 하는 뜻이 있으면, 개발자 또는 개발사들이 힘쓰기에 따라 얼마든지 길이 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경쟁자 없이 군림하는 대한민국의 행정 전산망이 한자 확장 기능이나 부호 변환 기능을 발빠르게 갖출 리는 없었다. 1992년에 민간 업계에서 대세로 자리잡은 상용 조합형 부호계(KSSM)가 KS C 5601에 더하여 들어갔지만, 이미 KS 완성형 부호계로 쓰이고 있던 행정 전산망과 PC 통신망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1995년에 제정된 유니코드 2.0에는 조합형에 쓰인 낱자 차례로 한글 11172자가 올라갔다. 이로써 KS 완성형 때문에 엉망이 된 국내 표준 부호계는 국제 표준 부호계를 통하여 바로잡힐 기반이 닦였다. 처음에 유니코드에는 65535자만 들어갈 수 있었으므로, 두 나라(한국, 조선)에서 주로 쓰이는 문자가 11172자나 들어가는 것은 공평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유니코드 1.×에는 다른 나라들의 반대로 한글 11172자가 들어가지 못했고, 유니코드 2.0에서는 다른 나라들의 협조를 얻어 한글 11172자가 들어갈 수 있었다.주32 이 유니코드(ISO/IEC 10646)가 여러 운영체제들과 응용 풀그림들이 공통으로 따르는 국제 표준 부호계로 자리잡음으로써 완성형 한글 부호계에 얽힌 부작용은 차츰 사그라들 수 있었다.주33
그러나 서설믜·박설믜 님이 겪는 어려움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유니코드가 국내외의 표준으로 굳게 잡은 요즈음에도 KS 완성형 부호계 수준에 머무른 전자 기기들이 꽤 있다. 구형 손전화기뿐 아니라 요즈음에 팔리는 070 전화기 가운데에는 똠·펲·샾·믜을 아예 넣을 수 없는 제품이 꽤 있다. 전화 쪽글(문자 메시지)은 유니코드로 주고받으므로, 최신형 똑똑이 전화를 쓰면 똠·펲·샾·믜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통신사에서 구형 기기에 생기는 문제를 미리 막으려고 2350자에서 벗어나는 글짜를 넣지 못하게 막기도 한다.
'믜'에 대한 차별은 글꼴에서도 나타난다. 글꼴 업체들도 KS 완성형의 2350자만 챙기고 작업을 끝내는 경우가 흔히 있으므로, 그런 글꼴을 쓰면서 똠·펲·샾·믜를 넣으면 11172자를 모두 넣은 다른 글꼴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만 보아도 KS 완성형 부호계가 드리우는 그늘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만하다. 이런 점까지 헤아린 듯 기획전에 이바지한 분들의 명단에서도 깨달음을 얻게 하는 전시물이 되게 한 주최 측의 재치가 돋보인다.
기획전에는 한글 자판뿐 아니라 무른모(워드프로세서), 말뭉치, 응용 분야(응성 인식 데이터베이스) 등으로 주제도 다루고 있다. 다른 주제들에 나온 전시물까지 자세히 파헤친다면, 책 한 권이 나오고도 남을 듯하다. 상설전이 옛것을 보여 주는 박물관다운 느낌이 든다면, 기획전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은 아직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 둔 기분이 든다.속기 자판이나 도스판 아래아한글을 체험하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 돋보였는데, 처음 써 보는 사람의 이해를 돕는 시연 영상이나 도움말이 살짝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 참고한 자료
- 과학기술처, 〈한글기계화표준자판(안) 확정보고서〉, 1969.6.
-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대원사, 1989. (첫판 제5쇄, 박은곳:삼정인쇄, 1990.11.20 발행)
- 김학진, 「한글코드 '조합형'으로 바꿔야」, 《과학동아》, 1991.6.
- 이준희·정내권, 〈컴퓨터 속의 한글〉, 정보시대, 1991.
- 진용옥, 「코리안 컴퓨터 처리 국제학술회의(ICCKL) - 남북 전산 처리 표준화에 관하여」, 《정보화 저널》 제4권 제4호, 1997.12.
- 이만영, 「한글자판 설계연구 - ISO2530 호환 한글자판 설계 연구-」, 한국심리학회 세미나 자료, 1998.
- 전상훈, 「펲시맨과 똠방각하가 찦차를 탄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8.11.
- 정희성,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한 최적화 한글 문자 배열」, 한국어정보학 제1집, 1999.
- 김중태, 〈대한민국 IT사 100〉, e비즈북스, 2009.
- 김태호, 「1969년 한글 자판 표준화」, 《역사비평》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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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 2016/01/29 11:2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박물관에 제 닉네임이 전시되어(?) 있는 줄도 몰랐군요; 가서 저도 좋은 전시품들을 둘러보면 좋겠는데, 벌써 전시 마감일이 얼마 안 남았네요. 팥알 님 자세한 설명과 사진으로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팥알 2016/01/30 09: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기획전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더 일찍 올렸어야 했는데, 꾸물거리다가 거의 뒷북을 치는 꼴이 되었습니다. 몇몇 전시물만이라도 기획전이 아닌 상설 전시전으로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세벌 2016/01/30 06:3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글 중에서...
만약에 3-90 자판과 3-91 자판이 후대에 권장할 만한 완성안이었다면, 옛 한글문화원은 일찌감치 글쇠에 배열을 새긴 글쇠판 제품으로 내놓았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 딱지로 보급한 것은 두 배열이 나중에 나올 개선안에 앞서 미리 선보이는 임시 배열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세벌식을 새긴 글판 만드는 것보다 스티커 만드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 아닐까요?
팥알 2016/01/30 11:4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그 부분은 여러 상황과 자료들을 종합하여 내린 판단입니다. 제 판단이 꼭 옳다고만 할 수는 없으니, 다른 가능성도 열어 두고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용을 따진다면 딱지가 가장 싸게 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글쇠판 만드는 비용이 타자기 만드는 것보다 많이 들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 무렵에는 3-90 자판과 똑같지는 않지만 3-90 자판에 바탕한 수동 타자기가 만들어진 적이 있습니다. 몇 안 되는 대수라도 타자기를 만들 수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꼭 비용 때문에 딱지로만 보급한 것은 아닐 겁니다.
3-90 자판이 나오게 된 사연을 담은 박흥호 님의 글( http://blog.daum.net/hopark/15415 )을 읽어 보면, 박흥호 님도 보급용 세벌식 배열을 보완할 필요는 느끼지만 보급용 세벌식 배열을 바꾸는 일에는 줄곧 신중한 태도를 이어 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한글문화원이 보급하는 세벌식 배열은 3-90 자판 하나로 집중할 수 있었지만, 3-90 자판을 개선하는 일을 표준안 연구를 할 때로 미룬 것 때문에 3-90 자판은 더 개선되지 못한 채로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한글문화원이 3-90 자판을 일찌감치 글쇠판을 만들어 보급했다면, 그 제품을 통한 파급·홍보 효과 때문에 많은 사용자들이 좋든 싫든 3-90 자판에 묶였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두벌식 배열이 찍힌 표준 글쇠판을 흔히 보게 되는 것처럼,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세벌식 글쇠판에 3-90 배열만 찍혀 있다면 3-90 자판은 금방 사실상의 세벌식 표준으로 받아들여졌을 겁니다. 요즈음도 "일단 쓰이는 배열(지금은 주로 3-91 자판을 가리킴)을 보급해 놓고, 더 개선한 배열은 표준으로 올릴 때 생각하자."는 의견이 나오곤 하는데, 그 논리가 만약에 1990년대 초반에 3-90 글쇠판 제품이 보급되는 가운데 펼쳐졌다면 결과가 어떠했을지는 뻔합니다.
하지만 한글문화원은 글쇠판을 통한 세벌식 자판 보급을 시도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개인들의 판단으로 젊은 층은 3-91 자판을 쓰는 분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실은 한글문화원의 홍보로 3-90 자판을 쓰기 시작하여 눌러 앉은 사람들이 요즈음의 세벌식 자판에서 가장 뿌리 깊은 보수층입니다. 하지만 3-90 자판이 인기를 너무 잃는 바람에 3-90 자판을 쭉 쓰던 사람들은 젊은 층과의 연결 고리가 끊겨서 여론전에서 많이 고립되어 있습니다. 요즈음에 몇몇 세벌식 개선·변형안이 '세벌식 파편화'를 일으킨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것도 3-90 자판이 사실상의 표준 자리를 굳히지 못한 때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달걀(개선안)로 바위(3-90, 3-91)를 쳐 봤더니 바위가 금 가는 꼴]
전마머꼬 2016/02/01 13: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아... 끝났다.
팥알 2016/02/01 14:0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좋은 기획전이었는데, 아쉽게도 못 보신 분들이 많은 듯합니다.
저도 미처 못 보았던 것이 있어서 박물관에서 전시 기간을 연장하든지 아예 상설 전시관으로 만들어 주면 참 좋겠네요.
남되선 2024/02/11 07: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북한을 굳이 북조선이라고 표기한거 킹받네...
팥알 2024/02/11 20:1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한국을 남조선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한 건데,
좋은 의견이나 방안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