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벌 자판의 설계 원리와 한계 - ⑤ 자판 견주기

6. 자판 견주기

  앞에서 본 2벌 자판들과 두 설계안의 손가락 분담률, 한 손가락 거듭치기를 견주어 본다. 김국 교수 연구진의 표준 자판 개선안은 글쓴이가 평가하려는 항목과 어긋나는 데가 있어서 넣지 않았고, 셈틀에 쓰이는 일반 한글 자판 가운데 가장 속도가 빠르다고 알려진 공병우 3벌 최종 자판(3-91 자판)을 참고 삼아 함께 견준다. '표준(ㅆ)'이라고 쓴 것은 표준 자판에 설계안1처럼 'ㅆ' 글쇠 하나만 더 넣은 배열이다.

  비교값에는 앞의 [표 1]에 나타낸 한글 낱소리, 윗글쇠, 특수기호, 숫자 등을 셈하였다. 윗글쇠(shift)와 줄바꾸개(enter), 오른쪽에 있는 특수기호들도 다섯째 손가락의 타수에 넣었다.^주1 첫째(엄지) 손가락은 셈하지 않았다.

(1) 손가락 분담률

  표준, 국규, 공동시안, 박영효-송계범 자판의 왼손/오른손 타수 비율은 55.1%:44.9%이다. 'ㅆ' 글쇠를 오른쪽에 둔 표준 자판과 설계안1의 비율은 54.6%:45.4%이다. 닿소리를 오른쪽에 둔 설계안2은 43.1%:56.9%로 오른쪽의 분담률이 높다.

  표준 자판과 박영효-송계범 자판이 오른손에서 셋째 손가락보다 넷째 손가락 쓰임이 더 많은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이들 자판이 윗줄에 셋째 손가락 자리보다 넷째 손가락 자리에 더 자주 나오는 홀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표준 자판은 셋째 손가락 윗자리에 잦기가 드문 'ㅑ'를 두었고, 박영효-송계범 자판은 넷째 손가락 윗자리에 자주 나오는 'ㅓ'를 두었다. 이들 홀소리는 꼭 그 자리에 두어야 할 까닭은 없어서 자리를 맞바꾸어도 문제가 없다.

  왼손 다섯째 손가락의 부담은 남북 공동시안은  8.1%로 가장 크고, 국규 자판(7.5%)과 표준 자판(6.4%)이 그 다음이다. 오른쪽 다섯째 손가락은 설계안2이 6.1%로 가장 높고, 공병우 3벌 자판이 5.9%로 그 다음이다. 이 두 자판은 오른 다섯째 손가락으로 치는 닿소리가 4개여서 다른 2벌 자판이 홀소리 1개만을 치는 것에 비하면 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표준 자판은 'ㅆ' 글쇠만 따로 둔 것으로도 왼손 둘째 손가락의 부담이 살짝 준 것을 볼 수 있다.

(2) 윗글쇠 타수

  'ㅆ' 글쇠를 따로 둔 표준 자판과 두 설계안은 'ㅆ'의 수만큼 윗글쇠 타수가 줄었다. 윗글쇠 타수가 공병우 최종 자판과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은 눈여겨 볼 일이다. 설계안2은 큰 따옴표를 윗글쇠 없이 누르게 하였으므로 큰 따옴표가 많이 있을수록 윗글쇠를 적게 쓰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윗글쇠는 새끼 손가락 거듭치기를 늘리는 원인이기도 하다. 위 그림표에 보이듯 표준 자판은 'ㅆ' 글쇠를 따로 두는 것만으로도 새끼 손가락 거듭치기가 약 6400회나 줄었다.

(3) 한 손가락 거듭치기

  한 손가락으로 거듭 2타를 칠 때는 하나를, 거듭 3타를 칠 때는 둘을 더하였다. 윗글쇠, 줄바꾸개를 치는 것도 오른쪽 다섯째 손가락의 거듭치기에 들어가 있다.

  한 손가락으로 같은 글쇠를 거듭 치는 것보다 다른 글쇠를 거듭 치는 것이 더 나쁘다. 두 손의 합은 국규 자판이 가장 많고, 표준 자판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닿소리를 치는 왼손만 본다면 이미 나와 있는 자판 가운데는 표준 자판이 가장 적고, 국규 자판이 그 다음으로 적다. 남북 공동시안은 홀소리를 치는 오른손의 한 손가락 거듭치기가 적다.

  설계안1와 설계안2은 이미 나와 있는 자판들보다 한 손가락 거듭치기가 더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닿/홀소리 자리를 맞바꾼 설계안2이 한 손가락 거듭치기 합이 가장 적다.

  표준 자판에 'ㅆ'을 글쇠를 둔 배열이 한 손가락 거듭치기가 꽤 준 것을 볼 수 있다. 국규, 공동시안, 박영효-송계범 자판도 'ㅆ' 글쇠를 따로 둔다면 이와 비슷한 만큼 한 손가락 거듭치기를 줄일 수 있다. 두 설계안은 공병우 최종 자판에는 못 미치지만 5가지 2벌 자판보다 나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손가락별로 나타낸 한 손가락 거듭치기 그림표들이다.

  오른쪽 다섯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모두 잦은 것은 줄바꾸개·오른 윗글쇠·특수기호의 영향이 있고, 국회 회의록에 자주 나오는 숫자 '0'과 닫는 손톱 묶음 ')'도 한몫한다. 말줄임표(……)를 '..'으로 줄인 것이 넷째 손가락의 같은 글쇠 거듭치기 수에 반영되었다.

  표준 자판은 'ㅆ' 글쇠를 따로 두어 'ㅅ' 글쇠가 있는 왼손 둘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줄었다.

  박영효-송계범 자판은 왼손 넷째, 다섯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꽤 적다. 그 대신 셋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많다. 박영효-송계범 자판은 오늘날의 셈틀 자판과 규격이 다른 전신 타자기 자판에 맞춘 것인데, 여기에서는 박영효-송계범 자판을 편의상 표준 자판과 오른쪽 특수기호 배열을 똑같이 쓴다고 가정하였다. 그러므로 오른쪽 다섯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높게 나온 것이 자판 설계가 잘못된 탓은 아니다.

  남북 공동시안은 왼손 다섯째 손가락 거듭치기가 가장 잦고 그 가운데 다른 글쇠를 치는 수도 많다. 이를 공동시안의 큰 결점으로 꼬집을 수 있다.

  설계안1는 박영효-송계범 자판에 못지않게 왼손 넷째, 다섯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적다. 그러나 둘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잦고 다른 글쇠를 누르는 비율도 꽤 높은 것이 아쉬운 점이다.

  설계안2은 설계안1보다 닿소리를 치는 둘째 손가락의 거듭치기가 조금 더 많다. 왼손가락의 거듭치기는 무시해도 될 만큼 적다.

(4) 위아랫줄 분담률

  바탕 자리를 둘째줄, 숫자가 있는 줄을 넷째줄이라고 하고 위아랫줄 분담률을 비교한다. 여기에서는 줄바꾸개와 윗글쇠를 뺀 일반 글쇠만을 셈하였다.

  표준 자판은 왼손 셋째줄(윗줄)을 치는 비율이 높다. 이는 된소리가 있는 ㄱ, ㄷ, ㅂ, ㅅ, ㅈ을 셋째줄에 모은 4벌 타자기 배열을 그대도 따랐기 때문이다. 왼손 둘째와 다섯째 손가락에서도 둘째줄과 셋째줄의 균형이 맞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섯째 손가락은 가장 둔하고 약한 손가락이어서 손가락을 뻗기가 어렵고, 손가락 길이가 짧아서 아래쪽보다 위쪽으로 뻗어칠 때에 힘이 더 든다. 표준 자판은 왼손 다섯째 손가락으로 셋째줄을 3.17%나 치고, 둘째줄(가운뎃줄)은 오히려 더 적은 2.64%를 친다. 왼쪽 다섯째 손가락을 너무 자주 위로 뻗어 치는 것을 표준 자판을 오래 치면 이 손가락이 아픈 까닭으로 꼽을 수 있다.

  설계안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뺀 나머지 2벌 자판들도 오른쪽 다섯째 손가락에서 둘째줄을 적게 치고 셋째줄을 많이 친다. 이는 오른쪽 다섯째 손가락의 바탕 자리에 한글권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머무름표(;)를 두고, 그 윗줄에 홀소리를 두었기 때문이다.

  설계안1와 설계안2은 다섯째 손가락으로 치는 비율을 둘째줄>첫줄>셋째줄 차례가 되게 하여 오른쪽 다섯째 손가락의 짐을 덜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