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벌식 표준자판 확정 과정의 문제점

남한의 한글 두벌식 표준자판은 오늘날 가장 많이 쓰이는 한글 자판이다. 그러나 이 자판이 유일한 두벌식 자판은 아니다. 북조선에서도 남한과 배열이 비슷하면서 다른 두벌식 자판을 쓰고 있다. 지금의 두벌식 표준자판은 1969년에 처음으로 표준 지위를 얻었다.

두벌식 표준 자판
남한의 두벌식 표준 자판 (출처: 위키백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규 9256 자판
북조선의 국규 9256 자판 (출처: 위키백과, 배열표 만든이: 김국)

  1960년대의 수동식 한글 타자기 시장은 공병우 세벌식과 김동훈 다섯벌식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속도가 빠른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는 사무 처리가 많은 군과 관공서에서는 주로 쓰였다. 김동훈 다섯벌식은 벌 수가 많아 네모꼴에 가까운 글씨체를 만들 수 있었으므로 주로 기업에서 많이 쓰였다. 그밖에도 공병우식, 김동훈식보다 쓰이는 비중은 작았지만 장봉선 다섯벌식 타자기, 최동식의 두벌식 외솔타자기주1 등 자판 배열이 다른 타자기가 여럿 있었다.

타자기용 공병우식 한영 겸용 세벌식 자판
기계식 타자기에 쓰인 한·영 겸용 공병우 세벌식 자판 [출처: 동아대백과사전]
김동훈식 다섯벌식 타자기 자판
기계식 타자기에 쓰인 김동훈 다섯벌식 자 [출처: 동아대백과사전]


  이미 손에 익은 자판을 배열이 다른 자판으로 바꾸거나 함께 쓰기는 매우 어렵다. 자판 배열이 다른 타자기들이 함께 쓰이면서 배우고 가르치고 쓰는 쪽 모두가 문제를 느꼈다. 그래서 1957년에 문교부에서, 1962년에 한글기계화연구소에서 자판 통일하려는 작업을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다시 1968~1969년에 정부 기관 주도로 자판 통일 작업이 진행된다.

  1968년에 상공부가 표준 자판의 첫 시안으로 네벌식과 두벌식 자판을 발표하자, 공병우를 비롯한 민간 전문가들은 시안의 불합리함에 크게 반발하였다. 1969년 1월에 상공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시안은 논쟁 끝에 폐기되었다. 상공부로부터 업무를 넘겨받은 과학기술처는 민간 관계자가 참여하는 공청회 없이 사실상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하였다. 과학기술처는 1969년 2월에 둘째 시안을 내고, 1969년 6월 수동식 타자기용 네벌식 자판과 전신 타자기(텔레타이프)용 두벌식을 표준안으로 공표하였다. 1969년 7월 28일에 '한글 기계화 표준 자판 확정에 따른 지시'(국무총리 훈령 제81호)로 이 두 자판을 타자기 표준 자판으로 확정 공포하였다.

타자기용 네벌식 표준자판
수동식 타자기용 네벌식 표준자판 (출처: 동아대백과사전)


  네벌식 자판은 전신용으로 만든 두벌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사무용 표준이 된 네벌식 타자기는 속도에서는 공병우 세벌식에 밀리고, 글씨체에서 김동훈 다섯벌식 타자기보다 나을 게 없었다. 자판을 통일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1980년대 초까지 이 세 자판이 공존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정부 기관이 나서 표준 자판을 만들어서 오히려 혼란을 부채질한 꼴이었다.

  한글 자판이 사실상 통일되는 계기는 컴퓨터(셈틀)가 보급되면서 맞는다. 1970년대부터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었으나, 한글 자판이 업체마다 제각각이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래서 과학기술처는 컴퓨터용 표준 자판을 제정하기 위해 1981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 연구 용역을 준다. <표준한글자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결정 모형의 개발>(이만영, 국어정보학회, 1992.3.)에 따르면 표준 자판을 확정하기 위한 연구는 다음 단계를 거쳤다고 한다.

 첫째 단계 : 민간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사용하던 컴퓨터 자판을 수집하고 비교하여 A,B,C,D로 4가지 시안을 선정함

 둘째 단계 : 왼손-오른손 부하율, 손가락 부하율, 손가락 운동 거리, 전환 글쇠(Shift) 누르는 비율 등에 관하여 4가지 시안 사이의 우열을 비교함

 셋째 단계 : 컴퓨터 업계 대표자들과 관련 학자들 사이의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합의를 이끌어냄

  A시안은 1969년에 공포되었던 전신 타자기용 두벌식 자판에 근거를 둔 배열로서 업계에서 널리 쓰이던 것이었다. C와 D시안은 A시안의 변형이었다. B시안만이 공업진흥청 HL자판안으로 A시안과 달랐다.
 
  자판의 능률을 비교하는 둘째 단계는 시간을 두고 연구해야 할 까다로운 과제이다. 그런데 연구 용역을 받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는 이 과정을 거의 생략했다. 연구 결과는 D 시안이 우수한 것으로 나왔는데도, 차이가 근소하다는 이유로 A 시안을 최종안으로 채택했다고 한다. 위 문헌에서는 당시에 업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던 자판을 큰 무리가 없으면 표준 자판으로 채택하려는 의도를 깔고 요식으로서 연구 절차를 거쳤다는 느낌이 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이 연구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처는 1982년에 '정보처리용 건반 배열(KSC 5715)'이란 이름으로 1969년의 것과 거의 같은 두벌식 자판을 표준 자판으로 공표한다. 타자기에 쓰이던 표준 네벌식 자판은 1983년에 폐지되어 두벌식 표준 자판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두벌식은 입력 방식이 단순하고 글쇠 수가 적어서 빨리 익히기 좋은 반면에, 첫소리와 끝소리(받침)을 같은 글쇠로 치기 때문에 '콜라', '안녕' '옹알이' 같은 말을 넣을 때 한 손가락 또는 한 손으로 잇달아 쳐야 하는 구조상의 문제점이 있다. 현행 표준 자판은 배열 문제까지 있어 손가락의 피로와 오타율이 높다. 자판을 설계할 때 손가락 부담이 집게 > 가운데 > 약 > 새끼 순이 되도록 글쇠를 배열하는 것이 상식이나, 표준 자판은 왼쪽 새끼손가락의 부담이 크고 집게 손가락의 부담은 오히려 적은 편이다.

  1981~1982년의 표준 자판 제정 과정에서 배열 문제를 다시 검토할 수 있였으나, 표준을 빨리 확정하려는 정부 부처의 의지와 쓰던 것을 그대로 쓰고 싶어하는 업계의 바람이 맞아떨어지면서 문제를 개선할 기회를 넘겨 버렸다. 경험 많은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1~2년 사이에 뚝딱 만들어진 표준 자판이 공병우 세벌식, 안마태 세벌식처럼 오랜 기간 고심한 흔적을 담고 있을 리 없다. 탁상 행정과 요식 연구로 그 때 당시는 편하게 넘어갔을지 모르지만, 덕분에 표준 자판을 쓰는 많은 이들이 겪지 않아도 될 불편을 두고두고 떠안게 되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PC통신을 통하여 자판 문제에 대한 정보 교류가 활발했다. 두벌식 자판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서 배열을 바꾼 수정 두벌식 자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공병우/안마태 계열을 뺀 민간 자판들은 거의가 꾸준한 사용층을 얻지 못하고 사라졌다. 1995년에 공병우 박사가 작고한 뒤로 한글 자판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멀어졌다. 이제는 누구나 익숙한 표준의 위력 때문에 표준 자판을 바꾸기는커녕 개선하자는 이야기도 꺼내기 어렵다. 이제 논의할 여지가 남은 게 있다면 남북의 다른 자판을 통일하는 문제일 것이다.




- 참고문헌 -


이만영, <표준한글자판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결정 모형의 개발>, 국어정보학회, 1992.3.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공병우
동아대백과사전 (1982)
위키백과 - 한글 자판
〈주석〉
  1. 외솔타자기를 만든 최동식은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이다. 외솔이라는 이름을 따왔으나 외솔 선생이 이 타자기를 만들지는 않았다. 외솔타자기의 한글 바탕 배열은 지금 쓰이는 남한의 표준 자판과 같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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