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들 - (6) 3-93 옛한글 자판

1) 1990~1992년의 세벌식 옛한글 자판

  널리 쓰인 컴퓨터 프로그램에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 들어간 사례는 1990~1992년 사이에 나온 'ᄒᆞᆫ글' 제품들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초반의 초창기 ᄒᆞᆫ글에서는 앞의 글에서 본 안종혁 순아래 자판과 같은 방법(그림 5-9)으로 환경 설정(CONFIG.EXE)에서 '3YETGUL.KBD'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자판 배열 파일을 '한글 3벌식 #2' 항목으로 불러서 세벌식 옛한글 자판을 쓸 수 있었다.

  그림 6-1는 1990년 12월에 나온 ᄒᆞᆫ글 1.5에 들어간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다. 3-90 자판을 바탕으로 하면서 첫소리 ㅿ · ㆁ,  끝소리 ㆁ · ㆆ, 홀소리 ㆍ, 첫소리 ㅸ이 더 들어간 옛한글 배열을 볼 수 있다.

ᄒᆞᆫ글 1.5에 들어간 3벌식 옛한글 자판
[그림 6-1] ᄒᆞᆫ글 1.5에 들어간 세벌식 옛한글 자판
ᄒᆞᆫ글 2.0에 들어간 3벌식 옛한글 자판
[그림 6-2] ᄒᆞᆫ글 2.0에 들어간 세벌식 옛한글 자판

  그림 6-2은 1992년에 나온 ᄒᆞᆫ글 2.0의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다. ᄒᆞᆫ글 1.5에서 빠졌던 첫소리 ㆆ이 ㅸ이 있었던 자리에 들어갔고, 끝소리 ㅿ이 들어갔고, 겹받침 ㅭ과 ᅟᅠᇚ은 빠졌다.

  도스(DOS) 환경에서 쓰인 초창기 ᄒᆞᆫ글의 세벌식 옛한글 자판은 기호가 있던 자리에 옛낱자들이 들어갔고, 숫자를 넣을 수 있었다.

'세벌식 개선 글자판(3-90)'이 담긴 "㈜ 한글과 컴퓨터" 회사 설립 광고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0.12)
[그림 6-3] '세벌식 개선 글자판(3-90)'이 담긴 "㈜ 한글과 컴퓨터" 회사 설립 광고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0.12)
「새롭게 단장된 ᄒᆞᆫ글 1.51」 (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1.5)
[그림 6-4] ᄒᆞᆫ글 1.51에 추가된 자판을 알린 기사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1.5)

  ᄒᆞᆫ글 1.5의 새 기능을 소개한 그림 6-3의 광고에는 "세벌식 개선 글자판(3-90)과 세벌식 개선 옛한글(고어) 자판이 추가되었습니다."라는 설명이 있다. 이를 통하여 ᄒᆞᆫ글 제품에서는 3-90 자판과 3-90 자판을 바탕으로 한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 ᄒᆞᆫ글 1.5에 처음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그림 6-5의 기사(「새롭게 단장된 ᄒᆞᆫ글 1.51」,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1.5)에서는 ᄒᆞᆫ글의 환경 설정 프로그램(CONFIG.EXE)에서 3YETGUL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세벌식 옛한글 자판을 불러서 쓸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림 6-6] 세벌식 옛한글 자판의 일부 배열이 담긴 '쪽박사' 화면 (편집부, 「그래픽 워드프로세서 쪽박사」,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0.9)
[그림 6-5] 세벌식 옛한글 자판의 일부 배열이 담긴 '쪽박사' 화면 (편집부, 「그래픽 워드프로세서 쪽박사」,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0.9)

  그림 6-5은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기사 「그래픽 워드프로세서 쪽박사」(편집부, 《마이크로소프트웨어》 1990.9, 정보시대)에 실린 문서 편집 프로그램 '쪽박사'의 실행 화면 그림이다. '한컴퓨터연구소'가 만든 '쪽박사'는 문서 편집기인 워드프로세서에 그림 그리기 기능을 더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글이 지원되는 그래픽 프로그램이었고, 요즈음으로 치면 포토샵과 비슷한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림 6-5에서는 ㅦ · ᅟᅠᇍ· ㅱ 같은 겹낱자들이 들어간 쪽박사에서 쓰인 세벌식 옛한글 자판의 모습을 일부나마 볼 수 있다.주1

ᄒᆞᆫ글 1.2의 2벌식 옛한글 자판 (한글 고어 자판)
[그림 6-6] ᄒᆞᆫ글 1.2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
ᄒᆞᆫ글 2.0의 2벌식 옛한글 자판 (한글 고어 자판)
[그림 6-7] ᄒᆞᆫ글 2.0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

  1980년대부터 나온 컴퓨터 도구들에 더 일찍부터 쓰인 옛한글 자판은 두벌식 자판이었다. ᄒᆞᆫ글에서는 1990년 1월에 나온 ᄒᆞᆫ글 1.2에 두벌식 옛한글 자판(그림6-6)이 이미 들어가 있었고, 세벌식 옛한글 자판은 두벌식 옛한글 자판보다 조금 늦게 나오곤 했다.

  1980~1990년대는 착오와 실험을 거듭 겪으며 옛한글 자판이 차츰 틀을 갖추어 나간 때였다. 그 무렵에는 옛 문헌들에 어떤 한글 낱자들이 쓰였는지를 밝히는 문헌 조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주2 옛한글 자판을 쓰면서 필요한 기능과 요소를 알아 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문헌 연구 결과와 옛한글 자판을 쓰는 사람들의 요구 사항이 새롭게 나오더라도 컴퓨터 프로그램에 반영되는 데에는 시차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나온 옛한글 자판들에는 중국어 표기에 쓰이는 닿소리 낱자들(ᄼᅠ, ᄾᅠ, ᅎᅠ, ᅐᅠ, ᅔᅠ, ᅕᅠ)이 들어가지 않은 경우가 많았고, 꼭 넣어야 할 요소들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해서 생긴 빈 자리에 ㅺ · ㅽ · ㅾ처럼 옛 문헌에 자주 쓰인 겹낱자를 넣어 볼 수도 있었다.

  두벌식 옛한글 자판은 '차ᄡᅡᆯ'과 '찹살'을 가려 넣을 때에 한글 조합을 끊는 기능이나 타자 동작이 필요할 수 있지만, 세벌식 옛한글 자판은 첫소리와 끝소리를 가려 치는 특성 때문에 한글 조합을 따로 끊을 필요가 없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할 미완성 한글(덜 갖춘 한글 낱내자)을 넣는 것에서도 세벌식 옛한글 자판은 채움 문자를 따로 넣지 않아도 된다. 옛한글을 넣는 것에서는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 두벌식 옛한글 자판보다 편의가 높다.

  하지만 1990년대의 세벌식 옛한글 자판에 관한 프로그램 지원은 ᄒᆞᆫ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두벌식 세벌식 자판보다 줄곧 뒤쳐져 있었다. 그림 6-7에 보이는 것처럼 1992년에 나온 ᄒᆞᆫ글 2.0에는 중국어에 쓰이는 ᄼᅠ ·  ᄾᅠ ·  ᅎᅠ · ᅐᅠ · ᅔᅠ · ᅕᅠ까지 갖춘 두벌식 옛한글 자판이 들어갔다. 하지만 ᄒᆞᆫ글에서는 1999년까지 개발된 ᄒᆞᆫ글 97 기능강화판에도 ᄒᆞᆫ글 2.0에 들어간 것과 같은 6개 낱자가 빠진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 들어갔다. ᄼᅠ ·  ᄾᅠ ·  ᅎᅠ · ᅐᅠ · ᅔᅠ · ᅕᅠ까지 담긴 세벌식 옛한글 자판(3-93 옛한글 자판)은 200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ᄒᆞᆫ글에 들어갔다.

ᄒᆞᆫ글 97 기능강화판에 들어간 세벌식 옛글 자판
[그림 6-8] ᄒᆞᆫ글 97 기능강화판에 들어간 세벌식 옛글 자판

2) 3-93 옛한글 자판과 유니코드

  3-93 옛한글 자판의 초안은 아래의 문헌에서 공개되었다.

  • 이중화 · 김경석, 「ISO 10646 부호계를 이용한 옛한글 문서 편집기 개발에 관한 연구」, 《한국정보과학회 언어공학연구회 학술발표 논문집》, 1993.10, 427-436, 한국정보과학회 언어공학연구회

  그림 6-8은 이 문헌에 실린 3-93 옛한글 자판 초안의 모습이다.

「ISO 10646 부호계를 이용한 옛한글 문서 편집기 개발에 관한 연구」에 나온 3-93 옛한글 자판의 초안
[그림 6-9] 「ISO 10646 부호계를 이용한 옛한글 문서 편집기 개발에 관한 연구」에 실린 3-93 옛한글 자판의 초안

  3-93 옛한글 자판은 도스(DOS) 환경에서 쓸 수 있었던 옛한글 문서 편집기인 '나랏말씀'에서 구현되었다. 그림 6-8과 그림 6-9은 '나랏말씀'의 프로그램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자판 배열표이다. 나랏말씀은 1.2판이 1994년에 PC 통신망 자료실을 통하여 일반에 공개되었다.

나랏말씀 1.2에 들어간 3-93 옛한글 자판
[그림 6-10] 나랏말씀 1.2에 들어간 3-93 옛한글 자판

  ᄒᆞᆫ글에는 2000년에 나온 'ᄒᆞᆫ글 워디안'부터 3-93 옛한글 자판이 들어갔다.(그림 6-15) ᄒᆞᆫ글 2007부터 도움말에 들어가고 있는 한국어 글자판 종류라는 문서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한국어 세벌식 옛글 자판

한국어 세벌식 옛글 자판은 다음과 기준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자판 개발자: 김경석 교수(부산대 공대 정보 컴퓨터 공학부) (1993.12.31 발표)
  • 참고 문헌: 컴퓨터 속의 한글 이야기. 김경석 지음. 영진 출판사, 1995.

그리고 한국어 세벌식 옛글 자판의 정식 명칭은 '393 (세벌식) 옛한글 자판'입니다. 그런데 393 옛글 자판에서는 대문자 Y(윗글쇠)에 가운뎃점 2개(:)가 배당되어 있고, 대문자 P(윗글쇠)는 글쇠가 배당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어 세벌식 옛글 자판에서는 대문자 Y(윗글쇠)에 '<'를, 대문자 P(윗글쇠)에 '>'를 배당했습니다.

유니코드 1.1에 들어간 첫가끝 부호계 ①
[그림 6-11] 유니코드 1.1에 들어간 첫가끝 부호계 ①
유니코드 1.1에 들어간 첫가끝 부호계 ②
[그림 6-12] 유니코드 1.1에 들어간 첫가끝 부호계 ②

  3-93 옛한글 자판의 한글 낱자 구성은 유니코드에 들어간 첫가끝 부호계에 근거가 있다. 1993년 6월에 발표된 유니코드 1.1에는 그림 6-11 ~ 6-12에 보이는 첫가끝 부호계가 새로 들어갔는데, 3-93 옛한글 자판은 이 첫가끝 부호계를 써서 옛한글까지 조합하는 수단으로 쓸 수 있는 한글 자판이었다.

  안종혁 순아래 자판과 3-93 옛한글 자판은 3-90 자판의 응용판이다.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ᄒᆞᆫ글에 꽤 이른 때에 들어갔지만, 3-93 옛한글 자판은 1993년에 만들어진 뒤에 시간이 꽤 흘러 2000년에야 ᄒᆞᆫ글 제품에 들어갔다.

3) 3-93 옛한글 자판의 배열 특징

3-90 자판
[그림 6-13] 3-90 자판
3-93 옛한글 자판
[그림 6-14] 3-93 옛한글 자판

  1990년대에 ᄒᆞᆫ글 등에서 쓰인 세벌식 옛한글 자판이나 안종혁 순아래 자판과 마찬가지로 3-93 옛한글 자판도 바탕인 3-90 자판과 배열에 비슷한 점이 많다.

  3-90 자판의 한글 배열은 3-93 옛한글 자판에 겹받침까지 그대로 들어갔다.주3

  3-90 자판에서 숫자와 몇몇 기호들을 빼고 옛한글을 넣기 위한 배열 요소들을 집어넣은 것은 먼저 나온 세벌식 옛한글 자판과 다르지 않지만, 3-93 옛한글 자판에는 중국어를 나타내는 데에 쓰이는 정치음/치두음 낱자들(ᄼᅠ ·  ᄾᅠ ·  ᅎᅠ · ᅐᅠ · ᅔᅠ · ᅕᅠ)들과 방점 2개(〯, 〮)가 더 들어갔다.

  아래는 3-93 옛한글 자판의 배열 특징을 간추려 본 것이다.

  • 비슷한 요즘낱자의 윗글 자리에 있는 옛낱자
    • 첫소리 ㅿ : ㅅ의 윗글 자리
    • 첫소리 ㆁ : 첫소리 ㅇ의 윗글 자리
    • 첫소리 ㆆ : 첫소리 ㅎ의 윗글 자리
    • 받침 ㅿ : 받침 ㅆ의 윗글 자리주4
  • 그밖의 옛낱자
    • 받침 ㆁ과 ㆆ : 쿼티 배열의 ~, ` 자리에 있음주5
    • ᄼᅠ, ᄾᅠ, ᅎᅠ, ᅐᅠ, ᅔᅠ, ᅕᅠ : 쿼티 배열의 I, O, K, L, <, > 자리에 있음
    • 아래아(ㆍ) : ㅡ의 윗글 자리에 있음주6
  • 겹받침
    • 3-90 자판의 ㅆ과 윗글 자리에 들어간 6개 겹받침(ㄲ · ㄶ · ㄺ · ㄻ · ㅀ · ㅄ)이 그대로 들어감
  • 방점( 〯, 〮)
    • 쿼티 배열의 Y, U 자리에 있음
  • 원안에 들어가지 않은 기호
    • 0~9 (숫자)
    • ! (느낌표) : 원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나 요즈음에 쓰이는 배열에는 들어가고 있음주7
    • < > (부등호) : ᄒᆞᆫ글에서는 방점 〯을 빼고 부등호를 넣고 있음
    • ` ~ : 이 기호들 자리에 받침 ㆆ · ㆁ이 들어감

  3-93 옛한글 자판에는 첫소리/끝소리 ㅿ · ㆁ · ㆆ와 ᄼᅠ ·  ᄾᅠ · ᅎᅠ · ᅐᅠ · ᅔᅠ ·  ᅕᅠ와 아래아(ㆍ) 합쳐 13개 옛낱자가 들어갔고, 방점 2개( 〯, 〮)도 들어갔다. 그 대신에 숫자 10개(0~9)와 부등호 2개(< >)와 그밖의 기호 2개(` ~)가 빠졌다. 다만 기호 배열은 ᄒᆞᆫ글에 부등호가 더 들어가는 것처럼 프로그램마다 조금씩 변통한 배열이 쓰이기도 한다.

4) 3-93 옛한글 자판의 의의와 한계

  안종혁 순아래 자판처럼 3-93 옛한글 자판도 3-90 자판의 응용 자판 배열의 한 축이다. 장애인까지 배려하는 한글 자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널리 알리는 구실을 한 것처럼, 3-93 옛한글 자판도 공세벌식 자판으로 옛한글을 넣을 때에 어떤 요소가 필요한지를 알리고 있다. 이로써 3-90 자판은 응용 자판들을 거느린 대표 자판으로서 구색을 갖춘 셈이 되었는데, 공세벌식 자판의 기본 틀을 더 개선할 때에도 3-90 자판과 응용 자판들의 내용과 관계가 참고할 거리가 될 수 있다.

  3-93 옛한글 자판은 유니코드 1.1부터 들어간 첫가끝 한글 낱자들을 옛낱자까지 처음으로 모두 다룰 수 있게 만들어진 한글 자판이다. 먼저 나온 세벌식 옛한글 자판들로 넣을 수 없었던 ᄼᅠ ·  ᄽᅠ · ᄾᅠ · ᄿᅠ · ᅎᅠ · ᅏᅠ · ᅐᅠ · ᅑᅠ · ᅔᅠ · ᅕᅠ을 넣을 수 없었지만, 3-93 옛한글 자판으로는 이 낱자들을 넣을 수 있어서 중국어를 나타내지 못했던 세벌식 옛한글 자판의 약점을 없앨 수 있었다.

  두벌식 옛한글 자판에는 1990년대 중반까지 유니코드의 첫가끝 부호계에 들어간 채움 문자(U+115F, U+1160)를 따로 넣는 기능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두벌식 자판으로는 아래처럼 낱자를 덜 갖춘 한글 낱내자(미완성 한글)를 넣지 못할 수 있었다.

  • 따로 넣는 받침 : ᅟᅠᆨ, ᅟᅠᆩ, ᅟᅠᆫ, ᅟᅠᆭ, …
  • 낱자를 덜 갖춘 한글 낱내자 : ᄀᅠᆫ, ᄣᅠᇒ, ᅟᅳᆯ, …

  세벌식 옛한글 자판을 쓰는 때에는 채움 문자를 따로 넣는 기능이 없더라도 이런 유형의 한글을 넣을 수 있다. 세벌식 자판은 닿소리가 첫소리인지 끝소리인지를 가리므로, 한글 낱자를 넣자마자 채움 문자가 들어가야 하는 경우인지 아닌지가 금방 드러나기 때문이다.

  3-93 옛한글 자판이 막 나온 때에는 한글 자판들 가운데 3-93 옛한글 자판이 유니코드의 첫가끝 부호계를 써서 넣을 수 있는 한글 유형이 가장 넓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더 개선된 두벌식 옛한글 자판에 채움 문자를 넣거나 조합을 끊는 기능이 더 들어간 뒤에는 3-93 옛한글 자판이 한글을 나타내는 폭에서 두벌식 옛한글 자판보다 우위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1990년대에 나온 프로그램들 가운데 3-93 옛한글 자판을 지원한 프로그램은 '나랏말씀'뿐이었다. 2000년 10월에 나온 'ᄒᆞᆫ글 워디안'에 비로소 3-93 옛한글 자판이 들어갔다. 이로 미루어 보면, 21세기 세종계획을 비롯하여 옛한글 관련 연구 활동들이 있었음에도 세벌식 옛한글 자판은 쓰는 사람이 드물었고 3-93 옛한글 자판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ᄒᆞᆫ글 워디안에 들어간 세벌식 옛글 자판 (3-93 옛한글 자판)
[그림 6-15] ᄒᆞᆫ글 워디안에 들어간 세벌식 옛글 자판 (3-93 옛한글 자판)

  옛 문헌에 나오는 한글도 요즘낱자로 조합할 수 있는 글자가 꽤 많고, 해설문은 옛한글을 담은 원문보다 요즘한글 비율이 높다. ㅿ · ㆁ · ㆆ나 아래아(ㆍ) 같은 옛낱자를 넣는 때가 매우 많지 않다면, 옛한글을 넣으려고 아주 새로운 한글 자판을 익히기보다는 이미 익숙하게 쓰고 있는 한글 자판의 요즘한글 배열을 그대로 따르는 옛한글 자판을 쓰는 것이 쉽고 편한 길일 수 있다.

  서로 다른 한글 자판을 오가는 것은 한글 자판과 영문 자판을 오가는 것보다 대체로 불편하다. 옛한글 자판을 'ᄒᆞᆫ'이나 'ᅀᅮ'처럼 요즘한글 자판으로 넣을 수 없는 글자가 나올 때에만 잠깐 쓰고 요즘한글 자판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듭해야 한다면 번거로움이 클 수 있다. 요즘한글 자판에서 넣을 수 있는 문자들을 옛한글 자판으로도 넣을 수 있으면 요즘한글 자판과 옛한글 자판을 자꾸 바꾸어 쓰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옛한글이 나오는 글에도 숫자(0~9)와 ~, @ 같은 기호가 쓰일 수 있으므로, 요즘한글 자판에 들어가는 숫자와 기호를 모두 넣을 수 있는 옛한글 자판이 실수요자에게 쓸모 있다.

  옛한글처럼 보이는 글이 꼭 옛말이라는 법도 없다. 아래에 적은 사투리들은 글로 적으면 낯선 옛한글처럼 보이지만, 드물게라도 어느 지역의 몇몇 사람들은 오늘도 쓰고 있는 요즘말일 수 있다.

  • 'ᄋᆖ치', 'ᄋᆏ치' ('여치'의 사투리)
  • 흐ᇘ ('흙'의 사투리)
  • 여ᇬ다 ('얹다'의 사투리)

  두벌식 옛한글 자판의 실용성은 널리 쓰이는 표준 두벌식 자판의 요즘한글 배열을 그대로 쓸 수 있는 것에서 힘입는 바가 있다. 흔히 쓰이고 있는 표준 두벌식 자판의 한글 · 숫자 · 기호 배열을 그대로 둔 채로 옛한글 요소를 얹은 두벌식 옛한글 자판은 실무에서 표준 두벌식 자판의 숫자/기호 배열의 편의를 그대로 누릴 수 있다.주8

  그러나 3-90 자판은 남는 글쇠 자리가 없이 자판 배열을 꽉 채운 공세벌식 자판이다. 3-93 옛한글 자판은 3-90 자판의 한글 배열을 겹받침까지 그대로 담았으므로, 옛한글 요소(옛낱자, 방점)를 더 담으려고 한글이 아닌 요소들(숫자 · 기호)을 희생해야 했다.주9 이 때문에 3-93 옛한글 자판으로 넣지 못하는 숫자와 기호를 영문 자판이나 다른 한글 자판에서 넣어야 하는 문제가 걸리므로, 실무에서의 편의와 실용성은 3-93 옛한글 자판이 요즘한글 자판인 3-90 자판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도 옛한글 자판을 실무에 쓴다는 것은 낯선 생각일 수 있지만, 평소에 옛한글 자판을 주로 쓰러는 사람은 '옛한글'만 잘 넣을 수 있는 옛한글 자판을 바랄 리 없다. 두벌식 옛한글 자판은 숫자와 기호가 실무에 쓰는 데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데, 공세벌식 자판 쪽에서는 2000년대까지 옛한글 자판을 실무에 쓸 때에 걸리는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딱히 없었다. 꾸준히 쓰려는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옛한글 자판이 미리 마련되지 못한 것은 공세벌식 자판이 '옛한글'이라는 틈새를 파고드는 힘이 강하지 못한 까닭 가운데 하나였을 수 있다.

훈민정음 2000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
[그림 6-16] 훈민정음 2000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
MS 워드 2000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과 옛한글 입력기
[그림 6-17] MS 워드 2000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과 옛한글 입력기
ᄒᆞᆫ글 워디안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
[그림 6-18] ᄒᆞᆫ글 워디안의 두벌식 옛한글 자판

  위의 그림들에서 1999~2000년 사이에 나온 훈민정음 2000(훈민 워드 2000), MS 워드 2000, ᄒᆞᆫ글 워디안에 들어간 두벌식 옛한글 자판을 나타낸 배열표를 볼 수 있다. 더 일찍 쓰인 두벌식 옛한글 자판에는 채움 문자를 넣는 기능이 없어서 3-93 옛한글 자판보다 한글을 나타낼 수 있는 폭이 좁았다. 하지만 🄵 또는 Ⓕ가 적힌 글쇠 자리에 채움 문자를 따로 넣는 기능이 들어간 뒤에는 두벌식 옛한글 자판으로 나타낼 수 있는 한글의 폭이 3-93 옛한글 자판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

〈주석〉
  1. '한글2000'이나 '사임당'을 비롯한 한컴퓨터연구소가 개발한 프로그램들은 강력한 복제 방제 장치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쪽박사도 복제 방지 장치인 열쇠 디스크가 있어야 실행할 수 있었다. 글쓴이는 실행할 수 있는 쪽박사를 얻지 못하여 쪽박사에 들어간 세벌식 옛한글 자판의 세부 배열은 확인하지 못했다. back
  2. 국문학자들이 주도하던 옛한글 자료 문헌 조사는 1998년부터 문화관광부가 주관한 '21세기 세종계획'이라는 국어정보화 사업으로도 이어졌다. 옛한글을 나타내는 데에 필요한 홑낱자 종류는 1990년대 중반에 알려졌지만, 겹낱자를 파악하는 작업은 2000년대에 가서야 매듭지어졌다. back
  3. 요즘한글 자판과 옛한글 자판이 매우 비슷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다른 데가 한 군데라도 있으면 쓰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요즘한글 자판의 한글 배열을 옛한글 자판에서 똑같이 쓸 수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back
  4. 받침 ㅿ은 받침 ㅅ의 윗글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만, 3-90 자판에서 받침 ㅅ의 윗글 자리에는 받침 ㅍ이 있다. back
  5. 받침 ㆁ과 ㆆ도 받침 ㅇ과 ㅎ의 윗글 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만, 3-90 자판에서 받침 ㅇ과 ㅎ의 윗글 자리에는 받침 ㄷ과 ㅈ이 있다. back
  6. 옛한글 자판에서 아래아(ㆍ)는 '아래아'로 불리는 이름 때문에 ㅏ의 윗글 자리에 놓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만, 3-93 옛한글 자판에서는 ㅏ의 윗글 자리에 있는 받침 ㄲ을 빼지 않았다. back
  7. 나랏말씀 1.2에서 3-90 자판에 느낌표(!)가 들어간 B 자리를 누르면 영문 B가 들어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B 자리를 챙기지 못한 실수였을 것 같다. back
  8. 다만 원래 첫소리로 들어가야 할 닿소리 낱자가 끝소리(받침)에 붙었다가 첫소리로 옮기면서 나타나는 '도깨비불'이 훨씬 더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낯설고 어색할 수는 있다. back
  9. 객관적으로 보면 숫자나 기호보다 겹받침을 빼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공세벌식 자판은 받침이 4 · 5째 손가락 자리에 많이 몰려 있는 것 때문에 ㄶ · ㅄ 같은 겹받침을 ㄴ+ㅎ이나 ㅂ+ㅅ으로 조합하여 넣는 것보다 ㄶ · ㅄ을 한꺼번에 넣는 타자 동작이 편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세벌식 자판에서 3-90 자판보다 겹받침을 더 빼는 것은 실사용자들의 바람에 어긋나는 일이 되어서 쉽지 않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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