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벌 자판의 장단점과 미래

두벌 자판주1은 닿소리 한 벌과 홀소리 한 벌을 갖춘 한글 자판을 가리킨다. 남한의 표준 자판은 두벌 자판 가운데 쓰는 이가 많고, 북조선에서는 남한의 것과 배열이 비슷해 보이면서 다른 국규 자판이 쓰이고 있다.

남한의 표준 두벌 자판

남한의 표준 자판(KS X 5002) (따온 곳: 위키백과)


북조선의 국규 자판

북조선의 국규 자판 (따온 곳: 위키백과)


  지금 쓰이는 남한의 표준 자판은 1969년에 정부가 표준으로 삼은 전신 타자기(텔레타이프)용 두벌 자판과 배열이 같다주2. 1982년에는 '정보처리용 건반 배열'이란 이름으로 같은 배열을 셈틀(컴퓨터)에 쓸 자판의 표준으로 삼았다. 이미 쓰이던 자판과 시안들 가운데는 표준안보다 나은 것이 있었어도 번번이 무시되었다. (이에 관하여 두벌식 표준 자판 확정 과정의 문제점에서 이야기하였다.)

  표준 자판이 제정되는 과정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두벌 자판은 짜임이 단순하면서 뚜렷한 점이 큰 매력이다. 타자기는 주로 직업용으로 쓰여서 숙달된 뒤에 빠르게 칠 수 있는 자판은 처음에 익히기 어려운 것이 큰 흠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어려운 자판이 널리 쓰이면 여성, 고령층, 장애인 들이 정보 매체에 소외되기 쉽다. 검토가 부족한 안을 하나만 표준으로 삼은 것은 잘못이지만, 전문 타자수보다 아닌 일반인을 겨냥하여 두벌 자판을 표준안으로 삼았다고 하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다른 한글 자판들과 견주어 두벌 자판의 좋고 나쁜 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좋은 점 나쁜 점
  • 필요한 글쇠 수가 적다
  • 닿소리/홀소리로 나누어 짜임이 뚜렷하다.
  • 배우기 쉽다.
  • 전산 기기에만 쓸 수 있다.
  • 도깨비불이 난다.
  • 한 손가락 연타가 잦다.
  • 모아치지 못한다.


  두벌 자판의 장점과 단점은 거의가 받침을 구분하지 않는 데에서 나온다. 받침을 구분하지 않으면 필요한 글쇠 수가 적어서 빨리 익힐 수 있고 휴대 기기에 쓸 자판을 만들기 좋다. 대신에 한 손가락으로 잇달아 칠 때가 잦고 속기용 자판처럼 모아치기를 할 수 없다.

  이 글에서는 두벌 자판의 응용 가치를 염두에 두고 두벌 자판의 특성을 다른 한글 자판들과 견주어 나열해 본다.



적은 글쇠 수

  현대 한글은 닿소리 14자주3, 홀소리 14자주4를 바탕 낱자로 쓴다. 겹홀소리 'ㅒ, ㅖ'를 빼면 로마자와 같은 26자가 된다. 아래 표에 여러 한글 자판들의 글쇠 수를 비교하였다. 14 + 5은 바로 누르는 글쇠가 14개이고, 전환글쇠(shift)와 함께 누르는 글쇠가 5개라는 뜻이다.

자판 첫소리 가운뎃소리 끝소리 합계
남한 두벌 표준 14 + 5 12 + 2 0 26 + 7 = 33
북조선 두벌 국규 14 + 5 12 + 2 0 26 + 7 = 33
공병우 세벌 390 14 + 0 16 + 1 9 + 12 39 + 13 = 52
공병우 세벌 최종 14 + 0 16 + 1 9 + 18 39 + 19 = 58
안마태 세벌주5  10 + 0 + (8) 10 + 0 + (5) 10 + 3 + (8) 30 + 0 + (21) = 30 + (21)

  두벌식인 남북의 두 표준 자판은 겹홀소리 ㅒ, ㅖ는 전환글쇠를 눌러 넣는다. 앞뒤에 오는 닿소리와 혼동하지 않으려면 구분하는 쌓닿소리 ㄲ, ㄸ, ㅆ, ㅃ, ㅉ도 전환글쇠를 눌러 넣는다. 두벌 자판에 들어가는 33자 가운데 7자는 전환글쇠와 함께 누르게 하여 영문 쿼티 자판의 로마자 26자 자리에 놓았다. 숫자와 기호 배열은 쿼티 자판과 같다.

  세벌 차판은 받침 때문에 필요한 낱자가 더 많다. 공병우 세벌 자판은 겹홀소리와 겹받침까지 들어가서 50개가 넘는 낱자가 들어 있다. 한글 낱자가 차지하는 글쇠 수는 39개여서 쿼티 자판의 로마자가 차지하는 26개보다 많다. 그러다 보니 공병우 자판은 한글 낱자가 맨 윗줄까지 4줄을 차지하고, 숫자와 기호 배열도 퀴티 자판과 다르다. 안마태 세벌 자판은 두 글쇠를 함께 눌러 거센소리·겹닿소리·겹홀소리를 넣는 치환 타법을 써서 글쇠를 줄였다. 치환 타법은 한 손가락 연타를 줄이는 효과를 내지만, 그만큼 처음 익힐 때에 번거롭기 마련이다.

  필요한 낱자가 적으면 자판을 만들 때 여러 모로 좋다. 글쇠 수를 줄이려고 굳이 변칙 입력을 할 필요가 없고, 남는 글쇠에 기호를 더 넣을 수 있다. 글쇠를 가까이 모아서 운지 거리(손가락을 움직이는 거리)를 줄일 수도 있다.



좌우로 나눈 짜임

  영문 쿼티 자판으로 'polynomial', 'easter', 'wearer' 따위를 넣으려면 한 손으로 잇달아 6~8번까지 쳐야 한다. 한 손을 잇달아 쓸수록 타자 속도가 떨어진다. 두벌 자판은 닿소리와 홀소리를 좌우에 나누어 양손을 번갈아 쓸 때가 많으므로, 쿼티 자판보다 타자 속도가 빠르다. 옛한글만 아니면 두벌 자판은 한 손 연타가 많아야 3번에 그친다.
영문 드보락(Dvorak) 자판
  미국의 복수 표준 자판 가운데 하나인 드보락 자판은 홀소리 A, O, E, U, I가 왼쪽 가운데에 몰려 있다. 이는 두벌 자판처럼 양손을 번갈아 써서 타자 속도를 높히려는 배열이다. 로마자는 닿소리 글짜가 너무 많아서 닿/홀소리를 딱 떨어지게 나누지는 못하였다.  (그림 출처 : 위키백과)

  두벌 자판처럼 가운데를 경계로 닿소리와 홀소리를 나눈 모습은 다른 문자를 쓰는 자판에서 보기 드물다. 한글 낱자는 닿/홀소리 낱자 수가 각각 14개 안으로 엇비슷하여 좌우로 나눈 배열을 할 수 있다. 다른 문자들은 로마자처럼 어느 한 쪽의 수가 너무 많거나 닿/홀소리를 구분하지 않아서 두벌 자판처럼 양손을 번갈아 쓰는 자판을 만들기 어렵다.


독수리 타법과 스마트폰

  자판을 보지 않고 빠르게 글을 치려면 사이띄우개를 누르는 엄지손가락을 뺀 여덟 손가락을 모두 써야 한다. 그래서 자판을 처음 익힐 때는 번거롭더라도 손가락 위치나 치는 자세에 신경 쓴다. 바른 자세로 치는 버릇을 들이면 숙달된 뒤에는 자판을 보지 않고 원고나 화면을 보면서 칠 수 있다.
 
  그런데 두벌 자판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 만큼 쉬운 자판이다. 그만큼 타자 연습에 공을 들이지 않아 나쁜 버릇이 밸 수 있고, 특히 손가락 둘로 치는 독수리 타법에 빠지기 쉽다. 손가락을 둘만 쓰면 자판을 보고 쳐야 하므로 시간이 갈수록 능률이 처진다. 나중에 잘못 든 버릇을 바로잡으려면 처음 익힐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든다.

  거꾸로 보면 셈틀에 쓰는 두벌 자판처럼 독수리 타법에 강한 자판도 없다. 요즈음은 스마트폰에서 표준 자판을 그대로 쓰기도 하는데, 엄지손가락 둘로 눌러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독수리 타법을 쓰게 된다. 독수리 타법은 일반 셈틀 자판에서는 독이 되지만, 휴대기기에서는 독수리 타법이 흠이 되지 않기도 한다.


기계화

  개화기부터 한글 학자들은 서양에서 로마자 타자기가 널리 쓰이는 것을 보고 한글도 빨리 기계화할 수 있길 바랐다. 그러나 로마자 타자기와 같은 설계로는 모아쓰기를 하는 한글을 나타낼 수 없다. 설계가 어려워 쓸 만한 한글 타자기가 좀처럼 나오지 않자 주시경, 김두봉, 최현배를 비롯한 몇몇 한글 학자들은 한글을 로마자처럼 풀어쓸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1900년대 초에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가 만든 최초의 한글 타자기는 풀어쓰기 방식이었다.

  처음으로 실용성을 인정 받은 타자기는 1949년에 나온 공병우 세벌 타자기였고, 다른 수동식 타자기에도 3~5벌 자판이 쓰였다. 닿/홀소리만 나누는 두벌 자판은 일찍부터 바랄 만한 자판이었으나 수동식 타자기에 두벌 자판을 쓰기는 여러 모로 어려웠다. 자판 배열이 타자기 설계에 매인 탓도 있었지만, 두벌 타자기를 만들더라도 받침을 구분하는 문제가 걸렸다. 1980년대에 나온 최동식의 외솔 타자기는 처음으로 두벌 자판을 쓰면서 모아쓰기를 한 수동식 타자기였으나, 받침을 넣을 때마다 받침 글쇠를 눌러야 해서 불편하고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두벌 자판이 편하게 쓰일 길은 전자 입력기가 나오면서 트였다. 1969년에 정부가 수동식 타자기용 네벌 자판과 함께 전신 타자기(텔레타이프)용 두벌 자판을 표준 자판으로 삼았다. 전신 타자기용 표준 자판은 지금 쓰이는 표준 자판과 배열이 같다. 이 때의 전신 타자기는 번거롭게도 음절마다 사이 띄우개를 눌러야 했다. 그 뒤에 나온 전자식 두벌 타자기는 기계가 받침을 알아서 구분하였는데, 받침을 얼른 구분하지 못하여 글짜가 늦게 찍히는 문제는 있었다.
 
  두벌 자판이 널리 쓰이는 계기는 셈틀(컴퓨터)이 나오면서 맞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어도 셈틀의 한글 입력기는 받침을 알아서 구분하고 낱소리 단위로 입력한 글짜를 보면서 고칠 수 있게 발달했다. 손전화(휴대전화)에 쓰이는 천지인, 나랏글, SKY 자판처럼 두벌 짜임을 응용한 자판도 나와 있고, 더 커진 화면을 눌러서 쓰는 스마트폰에는 표준 자판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천지인 자판
(삼성)
ㄱㅋ ㄴㄹ ㄷㅌ
ㅂㅍ ㅅㅎ ㅈㅊ
  ㅇㅁ  
나랏글 자판
(LG)
 ㄴ  ㅏㅓ
ㅗㅜ
획추가 쌍자음
SKY 자판
(팬택)
ㄱㅋ ㅣㅡ ㅏㅑ
ㄷㅌ ㄴㄹ ㅓㅕ
ㅁㅅ ㅂㅍ ㅗㅛ
ㅈㅊ ㅇㅎ ㅜㅠ




도깨비불

  도깨비불은 받침을 얼른 구분하지 못하여 생긴다. 셈틀에서 두벌 자판과 세벌 자판으로 '도깨비불'를 치면 다음처럼 바뀐다.

두벌식 : ㄷ → 도 → 돆 → 도깨 → 도깹 → 도깨ㅂ → 도깨비 → 도깨빕 → 도깨비부 → 도깨비불
세벌식 : ㄷ → 도 → 도ㄱ → 도ㄲ → 도깨 → 도깨ㅂ → 도깨비 → 도깨비ㅂ → 도깨비부 → 도깨비불
 
  세벌 자판은 군더더기 없이 나오나, 두벌 자판은 중간에 '돆', '깹', '빕' 같은 글짜들이 튀어 나온다. 두벌 자판을 쓸 때 이런 낯선 글짜들이 나오는 모습을 도깨비불이라 부른다. 두벌 자판은 받침을 구분하지 않으므로 뒤 음절을 치기 전에는 입력기가 앞 음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도깨비불이 생긴다. 전자식 두벌 타자기가 음절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하여 글짜를 늦게 보여 주는 것과 원인이 같다.
 
  과거에는 도깨비불이 입력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처리 속도가 느리고 기억 용량도 킬로바이트(KB) 단위로 따질 만큼 작았던 386 이하의 느린 셈틀에서는 '돆', '깹', '빕' 같은 글짜를 나타내는 것도 부담이 될 수 있었다. 빠르게 글을 칠 때에 타자 속도보다 화면에 글이 나타나는 속도가 느린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깨비불이 속도 면에서는 문제되지 않고, 글을 보면서 칠 때 틀린 곳을 바로 알아 보기가 좀 어려울 뿐이다.


연타와 손가락 부담

  표준 두벌 자판으로 '콜라', '안녕' '옹알이'처럼 같은 닿소리가 잇달아 나오는 말을  칠 때는 한 손가락으로 같은 글쇠를 두 번 누른다. '굳은', '그렇소'를 칠 때에도  같은 손가락을 잇달아 두 번 쓴다. '많다', '값어치'처럼 겹받침이 나오면 한 손을 잇달아 세 번 쓴다. 이는 두벌 자판이 첫소리와 끝소리(받침)를 구분하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이다.

  연타가 잦으면 타자 속도가 떨어지고 치는 흐름이 딱딱해진다. 손가락을 바꿔 치는 한 손 연타는 그래도 나으나, 한 손가락을 거듭 쓸 때가 잦으면 치는 속도가 느려지고 흐름도 끊긴다. 이 때문에 빠른 속도를 목표로 하는 자판은 연타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공병우 세벌 자판은 한 손을 잇달아 칠 때가 많으나 집게 손가락 쪽을 먼저 치고 새끼 손가락 쪽을 나중에 치게 하여 치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였다. 한 손가락 연타는 쌍닿소리나 겹홀소리를 칠 때 일어나므로 빈도가 낮다. 안마태 세벌 자판은 ㅆ을 ㅅ+ㄴ으로 넣는 식의 치환 타법으로 쌍닿소리의 한 손가락 연타를 피하고 있다.

  세벌 자판은 자주 나오는 낱자를 집게 손가락에 두면 좋지만, 두벌 자판은 꼭 그렇지는 않다. 두벌 자판은 닿소리를 치는 왼손에서 연타가 일어나고, 그 가운데도 한글 글쇠 6개를 누르는 왼손 집게 손가락의 부담이 가장 크다. 왼손 집게 손가락에 자주 나오는 닿소리를 몰아넣으면 더욱 연타에 시달릴 수 있다. 연타와 손가락 부담은 두벌 자판을 평가하거나 새로 만들 때 꼭 짚어 볼 점이다.


스마트폰 표준 자판

  조선족 자치구를 거느린 중국도 한글 자판을 필요로 하는 시장이다. 중국이 2010년에 손전화의 한글 자판 표준안을 마련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돌자, 언론은 이를 '한글 공정'이라며 크게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른바 '한글 공정'은 언론이 너무 부풀린 것이다. 중국이 자국에서 쓸 한글 입력기의 틀이 없어서 이를 남한에 표준안을 요구하였는데, 남한 정부가 움직이지 않자 자신들이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겠다고 밝혔다. 중국이 먼저 표준안을 정하여 굳어 버리면 좋을 것이 없다고 본 남한 정부는 뒤늦게 서두르고 쓰고 있다.

  2011년 3월 23일에 방송통신위원회는 일반 손전화는 천지인, 스마트폰은 천지인·나랏글·SKY 자판을 표준으로 하는 1단계 표준화 정책 방안을 확정했다. 그리고 6월 초에 심의회를 거쳐 최종 국가 표준을 확정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손전화 자판 표준안은 타자기나 셈틀 자판의 표준안만큼 의미가 크지는 않다. 스마트폰 표준 자판으로 삼을 세 자판은 모두 글쇠 수가 제한된 구형 전화기에 쓰던 것들이다. 스마트폰은 입력기까지 만들어 쓸 길이 열려 있고 글쇠가 따로 없이 화면에 프로그램으로 자판을 그리므로 비표준 자판을 더 편하게 쓸 수 있다. 손전화 자판 표준안은 자판의 특허와 프로그램을 공개하게 하여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두벌 자판의 앞날은...


  앞에서 살핀 것처럼 두벌 자판은 짜임이 단순하면서 뚜렷하여 익히는 데에 시간과 노력이 적게 든다. 양손을 번갈아치는 횟수가 많아서 다른 문자 자판보다 속도가 빠르다. 전문가를 위한 자판으로는 부족하지만, 일반인들을 겨냥한 자판으로는 두벌 자판이 좋다. 두벌 자판은 수동식 타자기로는 설계와 입력 문제로 편하게 쓰기 어려웠으나, 전자 입력기에 힘입어 오늘날에는 손전화나 전자사전 같은 기기에까지 쓰임새를 넓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두벌 자판 연구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돌이켜 보면 두벌 자판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았어도 진지하게 연구한 이는 드물었다. 두벌 자판은 모아치기를 할 수 없고 연타 때문에 속도를 내기 어려워서 속기 자판을 바라는 자판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있다. 1990년대에 PC 통신 동호회에 나왔던 '수정 두벌식' 자판이 글쓴이가 아는 유일한 셈틀용 비주류 두벌 자판이다. 이 자판은 실험 단계에 머무르다 흔적도 없이 묻혀 버렸고, 더 이상 표준 자판보다 두벌 짜임의 좋은 점을 살리면서 나쁜 점을 줄이려는 하는 노력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자판 표준안은 산업용 표준을 마련하는 데에 필요하지만, 좋은 자판이 널리 쓰이게 한다는 취지는 살리지 못했다. 좋은 평가를 받는 자판들은 한 번에 나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쓰는 이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보완하는 작업을 거듭하곤 한다. 남한의 표준 자판처럼 비밀스럽게 연구 용역을 맡겨서 뚝딱 만든 자판은 반드시 헛점이 있기 마련인데, 표준 자판은 1969년에 원형이 공표된 뒤로 자판 배열을 검토하여 바꾼 적도 없다. 북조선 당국도 이를 알고 있을 터이니 남한과 다른 자판을 만들어 쓰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미 굳어 버린 표준 자판 때문에 국내에서 다른 셈틀 자판이 널리 쓰이기는 쉽지 않지만, 새로운 기기에 맞는 자판은 나오고 있다. 천지인, 나랏글, SKY 자판처럼 두벌 자판을 응용한 손전화 자판이 널리 쓰이고 있고, 자판을 화면을 그려 쓰는 스마트폰과 타블렛 PC는 더 다양한 한글 자판을 만들어 쓰기에 좋다. 두벌 짜임은 필요한 글쇠수가 적고 독수리 타법도 나쁘지 않다는 장점 때문에 새 기기에 응용될 수 있는 폭이 크다. 정부의 입김이 세차지만 않다면 앞으로 새 기기에서 더 많은 두벌 자판을 보게 될 것이다.



〈주석〉
  1. 위키백과에서는 '두벌식 자판'의 식(式)은 사족이라 지적하였다. 글쓴이는 그 동안 '두벌식 자판'이라 불러왔으나, 위키백과의 지적이 옳으므로 이 글에서는 되도록 '두벌 자판'이라 적는다. back
  2. 1969년에 함께 표준이 된 수동식(기계식) 타자기용 네벌 자판도 전신 타자기용 자판과 배열이 거의 같고, 받침 글쇠를 누르게 하여 받침 벌 수를 늘렸다. back
  3.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 back
  4. ㅏ,ㅐ,ㅑ,ㅒ,ㅓ,ㅔ,ㅕ,ㅖ,ㅗ,ㅛ,ㅜ,ㅠ,ㅡ,ㅣ back
  5. 괄호 안의 수는 치환 타법으로 넣는 낱자 수이다. back
2011/04/18 20:16 2011/04/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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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벌 2011/04/19 09:2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글 잘 읽었습니다. 세벌식 자판이 두벌식 자판보다 어렵다는 의견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참고로 우리집에서는 초등학교도 아직 안 들어간 어린이도 세벌식 자판 잘 치고 있습니다. 두벌식 사용자들이 세벌식 자판을 어렵게 느끼는 건 세벌식이라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세벌식은 보기 드물고 두벌식은 흔히 보이는 세상이 된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고 봅니다.

    • 팥빙산 2011/04/19 18:4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의견 고맙습니다.

      솔직히 제가 공병우 세벌 자판을 쓰면서도 여전히 어렵다고 느낍니다.
      그래도 손가락이 절로 움직이는 것은 자판을 치는 머리와
      자판이 어렵다고 느끼는 머리가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자판을 처음 익힐 때는 어려운 면부터 보입니다.
      두벌 자판이 더 쉽다고 한 것은 나이 들거나 장애가 있어서
      몸이 따라 주지 않은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여태까지는 전산 업무 때문에 손가락이 굳은 나이에 자판을 처음 만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에게 세벌 자판이 놓여 있었다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조금 연습해서는 속도가 붙지 않아서 전문 타자수나 젊은 사람에게
      타자 업무를 떠미는 모습이 더 자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연습량이 쌓일수록 두벌 자판은 세벌 자판에 밀리니,
      어릴 때 배우거나 연습할 시간이 넉넉하다면 세벌 자판을 익히는 쪽이 낫습니다.
      두벌식이든 세벌식이든 골라 쓸 대안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인데,
      말씀하신 대로 사람들이 세벌 자판을 접할 기회가 너무 적어서 저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