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 - (8)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둘러싼 줄다리기
1) '글자판 통일'의 이상과 실제
공세벌식 자판은 1948년에 기계식 수동 타자기 자판으로 쓰이기 시작하여 쓰임새를 점점 넓혀 갔다. 1960년대에는 행정 통신망에 쓰인 전신 타자기에 공병우식에 바탕한 세벌식 자판이 들어갔고,주1 1970년대 이후에는 공세벌식 자판이 자동 식자기와 컴퓨터에도 쓰였다. 수동 타자기에서는 공세벌식 자판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가 개발되기도 하였다. 비슷한 배열 짜임새를 이어 가면서 여러 기기에서 거의 같은 타자법으로 여러 기기에 쓰일 수 있었던 한글 자판은 두벌식/세벌식/네벌식/다섯벌식 자판들을 통틀어 공세벌식 자판밖에 없었다. 요즈음에 흔히 쓰이는 두벌식 자판은 풀어쓰기를 하지 않는다면 수동 기기에서 쓰일 수 없었고,주2 네벌식 또는 다섯벌식 자판은 타자기로 한글을 네모지게 찍으려고 한글 낱자의 벌 수를 늘린 자판이어서 글을 넣는 능률이 떨어졌다. 하지만 공세벌식 자판은 타자기에서나 컴퓨터에서나 높은 빠른 타자 속도를 뽐냈다.
그래서 '기종 간의 글자판 통일'은 공세벌식 자판을 한글 자판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글자판 통일'은 기계식 수동/전동 타자기, 전자식 전동 타자기, 워드프로세서 전용기, 컴퓨터를 비롯한 여러 기기들이 시장에 나온 1980년대에 공세벌식 자판을 지지하는 진영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구호였다. 어느 기기에서나 쓸 수 있고 높은 능률까지 뽐내는 공세벌식 자판은 실용성에서 다른 한글 자판들을 압도했다. 적어도 타자기가 주로 쓰이던 때에는 공세벌식 자판을 통한 '글자판 통일'이 허황된 꿈은 아니었다.
위 유인물 자료에서는 한글 문화원이 보급하는 세벌식 자판을 지원한 프로그램들을 소개하고 있다. 매킨토시의 '공한글 시스템'에 들어간 '3벌식 자판'만 공병우 최종 자판이고, 다른 프로그램들에 들어간 '3벌식 자판'은 모두 3-90 자판이다.
한글 문화원이 이야기한 '기종 간의 한글 글자판 통일'은 모든 기기에서 똑같은 자판 배열을 쓰는 것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림 6-5에서 본 타자기/컴퓨터의 공병우 최종 자판 배열표처럼 '기종 간의 글자판 통일'을 이루더라도 기호 배열은 기기마다 다를 수 있었다.
공세벌식 자판은 수동 타자기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수동식 공병우 타자기의 성공을 바탕으로 전신 타지기를 비롯한 다른 기기에까지 쓰임새를 넓히며 실무용 한글 기기 시장을 이끌 수 있었다.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나온 무렵에 전자식 기기의 비중이 커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수동 타자기도 쓰이고는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한글 기기의 무게 중심이 점점 전자 기기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어도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수동 타자기를 한글 기기의 주축으로 보는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기종 간의 글자판 통일'을 목표로 나왔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쓴 타자기 제품은 나오지 않았다.주3 공병우 최종 자판은 처음에 매킨토시 기종에서만 쓰였고, 공병우 최종 자판이 나온 뒤에도 한글 문화원은 3-90 자판만을 IBM 호환 기종에 보급하였다. 매킨토시 기종은 IBM 호환 기종보다 훨씬 드물게 쓰였으므로, 1990년대 초반에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은 3-90 자판을 쓰는 사람보다 적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배열이 다른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따로 보급된 것은 한글 문화원이 내세운 '기종 간 글자판 통일'에 모순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기기에서 설계 목적이 다른 공세벌식 자판 배열이 함께 쓰인 사례는 컴퓨터보다 먼저 쓰인 수동 타자기에도 있었다.
공병우 타자기에는 주로 사무 작업에 맞춘 자판 배열이 쓰였지만, 1970년대부터 문인들의 수요에 맞춘 자판 배열을 쓴 문장용 타자기가 나온 적이 있다. 사무용 타자기 가운데도 한글만 칠 수 있는 제품과 한·영 겸용 제품의 한글 배열이 꽤 달랐다. 사무용 공병우 타자기 자판과 문장용 공병우 타자기 자판의 관계는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의 관계와 비슷한 면이 많다. 사무용 공병우 타자기 자판과 3-90 자판에는 업무 문서를 만드는 데에 자주 쓰이는 기호나 영문자가 우선하여 들어갔고, 그 대신에 받침은 더 적게 들어갔다. 문장용 타자기 자판에 문인들이 즐겨 쓸 만한 기호(「 」 따위)들과 겹받침 ㄵ이 들어간 것은 참고표(※)와 가운뎃점(·) 같은 기호와 요즘한글에 쓰이는 모든 겹받침이 들어간 공병우 최종 자판과 닮은 점이다.
그림: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3. 세째 세대 (1960년~1970년대) (https://pat.im/960)
그렇지만 업무에 널리 쓰인 공병우 타자기는 사무용 타자기였고, 문장용 타자기는 타자기를 많이 쓰지 않던 문인들의 필요에 맞추어 특수하게 만든 제품이어서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3-90 자판은 사무용 공병우 타자기 자판의 특징을 많이 이어 받았고, 공병우 최종 자판에서는 문장용 공병우 타자기 자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컴퓨터 환경에서 성격이 다른 두 자판 배열(3-90, 공병우 최종)이 함께 보급되었더라도, 처음에 주로 쓰인 배열은 3-90 자판이었다. 그러나 공병우 최종 자판의 이름에 '최종'이 붙은 것이 옛 한글 문화원의 활동이 끊긴 뒤에 3-90 자판이 공병우 최종 자판에 밀려 공세벌식 자판의 주류 자리를 내주게 되는 불씨가 되었다.
공세벌식 자판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쭉 개량되면서 굵직한 짜임새는 잡혔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세밀한 배열 원칙은 세워지지 않았다. 공세벌식 자판에 들어가는 한글 낱자, 숫자, 기호의 가짓수와 글쇠 영역이 뚜렷하게 못박히지 않아서, 새 배열이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의 필요와 형편에 따라 기본 배열의 짜임새가 흐트러지는 일이 거듭되었다. 홑받침과 겹받침이 뒤섞여 어느 한 쪽만 건드리기 어려웠고, ㅒ 같은 홀소리는 오래도록 제자리를 얻지 못하고 받침 자리를 피하여 옮겨 다녔다.주4 기호도 겹받침보다 우선 순위가 밀리는 요소처럼 보일 만큼 글쇠 배열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불안정했다. 이러한 공세벌식 자판의 불안정한 배열 요소 문제는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나온 뒤에도 풀리지 않았다.
두벌식/세벌식/네벌식 같은 굵직한 벌식 논쟁이 벌어질 때에는 '기종 간 글자판 통일'이 공세벌식 자판을 내세우는 명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배열 개선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은 공세벌식 자판은 규격화나 표준화까지 생각하는 단계에서 세밀한 배열 논리를 갖추지 못한 것에 발목이 잡히고 있다. 공세벌식 자판을 표준 규격으로 세우려면 공세벌식 자판을 대표할 수 있는 배열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지만,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 배열을 마련하는 일은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그 동안 공세벌식 자판이 여러 기기와 여러 쓰임새에 맞추어 쓰일 수 있었고 꾸준히 배열이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은 군데군데 배열을 바꾸기 쉬운 특성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특성은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를 정하고 나서도 개선안이 또 나오는 불씨가 될 수 있다. 먼저 표준이 된 두벌식 자판에 대한 아쉬움이 세벌식 자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듯이, 미흡한 면이 남은 공세벌식 배열이 표준이 되는 것도 사람들이 더 나은 대안을 찾아 나서는 동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주5
공세벌식 자판으로 표준화 또는 규격화를 이루려면 널리 쓰이는 공세벌식 배열을 통일할 수 있어야 하고, 널리 쓰이는 배열을 뜻있게 통일하려면 아쉬움이 남지 않게 잘 개선한 배열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통일을 목표로 한 배열이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에 이은 제3안에 머무르지 않게 할 강력한 보급 활동도 필요하다. 그러나 한글 문화원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기 시작한 뒤에는 단체 차원에서 더 나은 공세벌식 자판을 마련하는 작업을 더 이어 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은 통합되지 못한 채로 따로 보급되었고, 두 자판 배열을 쓰는 지지층끼리 줄다리기를 벌이기도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2) 3-90 자판을 갈음하지 못한 공병우 최종 자판
익숙하게 쓰던 자판 배열을 버리고 다른 자판 배열을 익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고 괴롭다. 특히 두벌식 자판을 잘 쓰던 사람이 세벌식 자판을 처음 쓰려 하면, 분당 600타 이상을 치던 타자 고수들도 분당 30타도 치기 어려운 초보자 수준으로 떨어지곤 한다. 두벌식 자판을 쓸 때의 경험과 감각을 살릴 수 없고, 같은 닿소리로 여겼던 첫소리와 끌소리를 다른 글쇠로 누르는 것이 매우 답답할 수 있다. 맹렬하게 연습하면 몇 달 안에 먼저 썼던 자판 배열의 타자 속도를 되찾기도 하지만, 새로 받아들인 자판 배열에 대한 어색함을 다 떨쳐 내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이미 세벌식 자판을 쓰고 있다가 배열이 조금 다른 세벌식 자판에 적응하는 것은 새로 익히는 것보다 쉽지만, 그래도 어려움은 있다. 쓰던 것과 다른 배열을 먼저 익힌 타자 버릇을 어느 만큼은 억눌러야 한다. 이미 비슷한 자판 배열을 능숙하게 쓰고 있어서 당장은 적응하기 쉬워 보이지만, 이미 들인 타자 버릇을 버리기 어려워서 조금 다른 배열을 쓸 때의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한글 문화원이 주로 보급하는 세벌식 자판을 3-87 자판 → 3-89 자판 → 3-90 자판으로 바꾸어 가는 것은 옛 배열을 쓰던 사람들의 반발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3-90 자판까지는 새 배열이 옛 배열의 자리를 갈음하는 일이 순탄한 편이었다. 이 무렵은 컴퓨터가 개인용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때였고, 한글 자판을 쓸 수 있었던 사람의 수가 요즈음에 비하여 매우 적었다. 한글 입출력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가짓수가 늘면서 컴퓨터에서 한글 자판을 쓰는 사람이 비로소 늘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한글 문화원은 한글 지원 프로그램들이 되도록 새 배열을 지원하도록 개발자들을 이끌었다. 그래서 새 공세벌식 배열을 쓰는 사람이 옛 공세벌식 배열을 쓰던 사람들을 금방 압도할 만큼 빠르게 늘 수 있었다. 옛 배열을 쓰던 사람들도 새 배열에서 개선된 점에 공감할 수 있었고, 새로 나오는 프로그램들이 지원하지 않는 옛 배열을 고집하여 쓰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공병우 최종 자판은 3-90 자판을 갈음하지 못하였다. 1990년대 초반에 3-90 자판이 많이 보급된 것은 한글 문화원이 IBM 호환 기종에서 쓰이는 프로그램들의 개발자들을 꾸준히 설득하여 이룬 결과였다. 주로 도스가 쓰이던 IBM 호환 기종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려면 한글 지원 프로그램 개발자들을 다시 설득해야 했다. 입력기 환경이 갖추어지더라도 공병우 최종 자판은 3-90 자판보다 배열을 익히기 어려워서 3-90 자판을 쓰던 사람들이 갑자기 따라가기는 어려웠다. 이 어려움을 알았기 때문인지 공병우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처음 보급하는 영역을 매킨토시 기종으로 한정하였다. 이 덕분에 3-90 자판은 한글 문화원이 지원 활동을 펼치는 동안 IBM 호환 기종에 꾸준히 보급될 수 있었다.
처음에 3-90 자판은 IBM 호환 기종에만 보급되어 'IBM 세벌식 자판'으로 불렸고, 공병우 최종 자판은 매킨토시 기종에만 보급되어 '매킨토시 세벌식 자판'으로 불렸다. 두 컴퓨터 기종을 함께 쓰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1990년대 초반에 한글 문화원이 두 가지 세벌식 자판을 보급하고 있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글자판 통일'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던 한글 문화원도 종류가 다른 세벌식 자판이 함께 보급되고 있음을 애써 알리지 않았다. 한동안 같은 입력기에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나란히 배열 목록에 오르지 않았고, 두 배열이 모두 배열 목록에 '세벌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는 때가 많았다.
3) 모두 '3벌식 자판'으로 불린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실무에 쓰이고 있는 세벌식 자판은 공병우 계열뿐이었다. 속기 업무에 쓰이는 세벌식 자판들은 1990년대 중반에야 실무에 쓰이며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글 문화원은 '세벌식 자판'이라는 이름을 독점하듯 쓸 수 있었고, 한글 문화원이 보급하는 공세벌식 자판이 곧 '세벌식 자판'으로 흔히 알려질 수 있었다.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함께 보급된 것은 한글 문화원이 내세운 '글자판 통일'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글자판 통일'이라는 명분을 생각하면 널리 보급하는 '세벌식 자판'은 언젠가 하나가 되어야 했고, 둘은 언젠가 하나가 될 대표 배열을 정하기 앞서 선보인 후보안으로 볼 수 있었다. 기약은 없었지만 공세벌식 자판으로 복수 표준을 정한다든지 하는 작업을 통하여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통합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자판 배열을 하나로 합치는 작업은 2000년대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두 배열에 눌러 앉아야 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1992년부터 매킨토시에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이 드물었던 탓에 공병우 최종 자판은 3-90 자판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도스 환경에서 쓰이는 응용 프로그램들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지원하지 않았다. 1993년부터 윈도 운영체제도 공병우 최종 자판을 지원하기 시작했지만, 1990년대 중반까지도 윈도 환경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먼저 보급되던 3-90 자판에 견주면 공병우 최종 자판은 후발 주자로서 도전하는 처지에 있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이 흔히 보급되고 있는 세벌식 자판(3-90 자판)과 다른 것임을 강조하려면, 그림 8-8에 보이는 기사처럼 '공병우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을 따로 강조해야 했다. 하지만 한글 문화원의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동안 두 가지 공세벌식 자판이 함께 보급되고 있음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았다. 3-90 자판을 쓰는 사람들도 '3-90 자판'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만큼, 3-90 자판이 한글 문화원을 통하여 주로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는 3-90 자판과 공병우 자판이 세벌식 자판을 대표하여 자판 분석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거듭치기(연타) 잦기, 손가락 분담률, 윗글쇠 누름 잦기, 운지 거리처럼 자판 배열을 쓸 때에 드러나는 통계 지표는 여러 자판 배열들의 특성을 밝히고 나음과 못함을 가리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될 수 있다.
1990년대에 한글 문화원이 주로 보급한 세벌식 자판은 3-90 자판이었고, 한글 문화원이 보급하지 않은 세벌식 자판은 일반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무렵에 별다른 설명 없이 '3벌식 자판'을 분석했다고 하면, 한글 문화원이 보급하는 세벌식 자판 가운데 3-90 자판을 분석했다고 보면 맞았다. 그림 8-8의 《정보시대》 기사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면, 그 무렵에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은 그 때에 주로 보급되던 3벌식 자판인 3-90 자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었다.
3-90 자판을 분석한 《마이크로소프트웨어》 기사(그림 8-7)에는 3-90 자판의 배열표가 실렸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을 분석한 《정보시대》 기사(그림 8-8)에는 공병우 최종 자판의 배열표가 실리지 않았다. 위의 《정보시대》 기사 말고 공병우 최종 자판을 주된 소재로 다룬 1990년대의 간행물 자료가 드물었으므로, 한글 문화원이 배포한 다른 자료를 더 보지 않고서는 공병우 최종 자판의 세부 배열과 3-90 자판과의 관계를 뚜렷이 알기 어려웠다.
한글 문화원은 3-90 자판을 가리킬 때와 공병우 최종 자판을 가리킬 때에 모두 '세벌식 자판'이라는 이름을 썼다. 처음에는 컴퓨터 기종에 따라 쓸 수 있는 공세벌식 자판의 종류가 나뉘었고, 같은 한글 입력기의 배열 목록에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나란히 들어가지 않았다. 공세벌식 자판이 보급되는 상황을 잘 아는 사람은 '세벌식 자판'이라는 말이 쓰이는 때를 따져서 정확히 어떤 '세벌식 자판'을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고, 어떤 공세벌식 자판들이 보급되는지 모르는 사람도 사용자 입장에서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둘을 모두 '세벌식 자판'이라고 부르더라도 별다른 문제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윈도 운영체제가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함께 지원한 뒤에는 IBM 호환 기종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이 차츰 늘었다. 그래서 같은 컴퓨터 환경에서 다른 '세벌식 자판'이 함께 쓰이는 상황을 맞았다. 공세벌식 자판을 쓰면서 알리는 사람들은 쓰고 있거나 지지하는 공세벌식 자판을 '세벌식 자판'으로 알리고, 쓰지 않는 공세벌식 자판에 대하여는 자세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경향이 나타났다.
윈도우 3.1를 통하여 IBM 호환 기종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이 쓰이기 시작한 것처럼, 매킨토시 기종에서 3-90 자판을 지원하는 입력 스크립트도 나왔다. 위에 보이는 입력 스크립트는 한글 문화원 연구원 오한중이 만든 스크립트를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회원이 고쳐서 1995년 3월 18일에 동호회 자료실에 공개한 것이다.주6 자료 설명에 '390 자판'이라는 이름이 쓰이는데도 '3-90'이 배열 항목과 스크립트가 담긴 파일 이름에 쓰인 것은 '3-90'이 배열 이름으로 주로 쓰인 때의 흔적일 것이다.
이 입력 스크립트는 한글 낱자를 담은 영문 글꼴을 함께 써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지원한 제2 공 직결식 글꼴과 같은 원리로 쓸 수 있었다. 하지만 3-90 자판에 겹받침 ㄳ·ㄵ·ㄼ·ㄾ 따위가 따로 들어 있지 않은 것 때문에 받침 ㄱ·ㄴ·ㄹ을 화면에 바로 나타내지 않는 이른바 데드 키(dead key) 방식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므로 낱자들을 바로바로 찍는 '직결식 처리 방식'은 아니었다. 겹낱자를 나타내는 부호 체계가 제2 공 직결식 글꼴을 쓰는 입력 스크립트와 달라서 제2 공 직결식 글꼴을 그대로 쓸 수 없었다.
세벌식 자판을 처음 익히려는 사람은 이왕이면 더 좋은 배열을 쓰고 싶기 마련이므로, 공병우 최종 자판에 붙은 '최종'이라는 말에 홀리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공병우 최종 자판은 세벌식 자판의 권위자인 공병우가 손수 만든 점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었다. 3-90 자판이 나온 지 두 돌도 되지 않아서 공병우 최종 자판이 나온 것은 3-90 자판을 보급하는 일에 큰 걸림돌이 될 만 했다. 그래서 3-90 자판을 보급하려는 쪽에서 보면, 아예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을 모두 알리지 않는 편이 낫다고 여길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에 3-90 자판은 도스에서 많이 쓰인 ᄒᆞᆫ글, 한메타자교사,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들에 '세벌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갔고, 공병우 최종 자판은 도스 환경에서 쓸 수 없었다. 도스에서 많이 쓰인 한글 프로그램들이 세벌식 자판 가운데 3-90 자판을 주로 지원하고 있는 상황을 오래 끄는 것이 3-90 자판을 보급하는 전략 아닌 전략이 되었다.주7
한글 문화원은 우편으로 세벌식 자판 딱지를 받았던 사람들에게 이 《매일신문》 기사 「두벌식 외면 세벌식 급부상」을 유인물로 따로 배포한 적이 있다. 이 기사에는 도스판 ᄒᆞᆫ글(아래아한글)에서 본 3-90 자판 배열표가 사진으로 실려 있다. "글쇠를 「첫소리+가운뎃소리+받침」으로 구분, 58개로 배열하고 있다"는 내용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기준으로 한 설명이다.주8 하지만 배열표까지 실은 3-90 자판을 '한글 3벌식 자판(일명 공명우 자판)'이라고 소개한 것에서 '공병우 자판'의 뜻이 '공병우가 손수 연구를 주도하여 만든 자판'을 넘어서 3-90 자판처럼 다른 사람이 연구를 주도하여 나온 '공병우 계열 세벌식 자판'까지 두루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쓰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90 자판이 그냥 '한글 세벌식 자판'으로 통했을 만큼 가장 흔히 쓰이는 세벌식 자판이었음을 이 기사가 보여 준다. 이 때에 한글 문화원은 3-90 자판과 함께 '공병우 최종 자판'도 보급했지만, 주로 보급한 것은 3-90 자판이었다. 한글 문화원에 그냥 '세벌식' 딱지(스티커)를 신청하면 3-90 자판 딱지를 보내 주었고, '공병우 최종 자판' 딱지를 받으려면 세벌식 자판 가운데 어느 종류의 딱지를 받고 싶은지 이야기를 덧붙여야 했다.
이 기사에서 공병우를 치과 의사라고 한 것은 잘못된 정보이다. 공병우는 안과 의사였다.
《매일신문》 1994.6.21. 「컴퓨터 한글 자판 2벌식 퇴조 3벌식 급부상」 웹 주소 :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16422&yy=1994
〈한글공학〉에는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의 배열표가 함께 실렸다.주9 공병우 최종 자판을 '공병우식의 최종 버전'이라고 소개하였지만, 두벌식 자판과 세벌식 자판을 비교한 내용에서는 그 때에 흔히 쓰이던 3-90 자판을 세벌식 자판의 대표로 살폈다.
한글 문화원을 이끈 공병우가 세상을 떠난 소식을 알린 월간 《한글과컴퓨터》 1995년 4월호의 기사 「공병우 박사의 외곬 인생 90년」(취재: 이애리)에는 한글 문화원의 연구원으로서 3-90 자판을 개발하였던 박흥호(당시 한글과컴퓨터 이사)의 증언을 담은 취재 기사가 함께 실렸다. 이 기사에는 "현재 한글과컴퓨터의 전 직원중 3~40%가 세벌식 자판을 하용하고 있으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기사에서 이야기하는 세벌식 자판은 3-90 자판을 가리킨다. 3-90 자판은 한글과컴퓨터가 개발한 ᄒᆞᆫ글을 비롯한 여려 도스 프로그램들에서 지원되었다. 윈도우 3.1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쓸 수는 있었지만, 아직 '세벌식 최종'이 아닌 '공자판'으로 불려서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이 주로 쓰인 매킨토시 기종은 한글 지원 프로그램들의 동향에 영향을 줄 만큼 많이 쓰이지 않았고, 한글과컴퓨터도 이 때에는 매킨토시용 프로그램을 시판하지 않았다.
한글과컴퓨터는 1989년에 한글 문화원의 사무실을 빌려 작은 기업으로 시작하여 이 무렵에는 직원 수가 100명을 넘는 중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정확한 통계 조사를 통하여 나온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한글과컴퓨터의 직원 가운데 30~40%가 세벌식 자판을 쓰고 있다는 증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에서 3-90 자판이 차지했던 무게를 엿볼 수 있다.
《헬로우 PC》(Hello PC) 1996년 2월호에 실린 「3벌식 포기하기? 3벌식 활용하기」에서는 도스판/윈도판 ᄒᆞᆫ글, 윈도우 3.1, 윈도우 95, 매킨토시의 한글 시스템 7.5(세벌식 제공)주10에서 세벌식 자판을 쓰는 방법들을 소개하였다. 공병우 최종 자판이 '공자판' 또는 '3벌식 최종판'으로 불리기도 했다는 것과 그 무렵에 3-90 자판이 주로 쓰이고 있음을 알리는 설명이 담겨 있다.
아래는 위 기사에 보이는 매킨토시 화면을 비슷하게 흉내내어 불러낸 것이다. 한글 입력기(파워 입력기) 설정 항목에 공병우 최종 자판이 '세벌식'으로 들어가 있다. 배열표는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한 것이어서 키캡(Key Caps)처럼 화상 자판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주11
4) 여론을 주도하지 못한 3-90 자판 지지층
윈도(Windows) 운영체제는 3-90 자판이 주로 보급되는 상황을 깨는 복병이 되었다. 1993년에 나온 윈도우 3.1 한글판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공자판'이라는 이름으로 3-90 자판과 함께 지원하였는데, '공자판'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윈도우 95은 '3벌식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하였다. 윈도우 95을 통하여 윈도는 사람들이 가장 흔히 쓰는 운영체제로 자리잡았고, '390 자판'과 '3벌식 최종 자판(세벌식 최종 자판)'을 항목 이름으로 담은 윈도의 한글 입력기 설정 화면이 공세벌식 자판 보급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도스가 주로 쓰일 때에는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아예 알리지 않은 것이 3-90 자판을 더 보급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윈도 환경으로 넘어간 뒤에는 그 점이 오히려 덫이 되었다. '3-90 자판'이라는 이름이 너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사람들은 윈도 입력기에 들어간 '390 자판'이 공병우가 이끈 한글 문화원이 주로 보급한 세벌식 자판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마땅한 설명 자료도 없어서 3-90 자판이 공세벌식 자판을 지원하는 한글 입력 환경을 일구는 데에 이바지한 바도 널리 알려지지 못하였다.
사람들은 윈도 입력기 설정 화면에 보이는 '세벌식 최종'이라는 이름에 홀려 공병우 최종 자판을 세벌식 자판의 대표로 여기기 시작했고, 3-90 자판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유난히 '최종'을 강조하는 기류가 나타났다. '맨 마지막'을 뜻하는 최종(最終)은 '끝내 주는 것'이라는 인상도 풍기므로, '최종'을 강조하는 것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알리기에 손쉽고 효과가 큰 방법이 되었다.
2000년대에 운영된 옛 세벌식 사랑 모임에서 세벌식 자판의 종류를 설명한 글을 보면, 공병우 최종 자판을 '세벌식 최종 글판'으로 내세우며 강하게 지지하며 정통성을 강조하는 내용이 유난히 많다. 옛 한글 문화원이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설명하면서 정통성은 따지지 않은 것(그림 6-1, 6-2)과 다른 모습이다. 옛 세벌식 사랑 모임은 2000년대에 세벌식 자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길잡이 구실을 했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에 관하여는 주관성 짙은 정보를 거르지 않고 전달한 것이 흠이었다.주12
공병우 최종 자판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세벌식 자판의 권위자였던 공병우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작품임을 내세워 공병우 최종 자판이 3-90 자판보다 권위와 정통성이 높은 세벌식 자판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하였다. 또한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나뉜 공세벌식 자판 사용자들이 '최종'(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뭉쳐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였다.
이는 한글 문화원의 안내를 받아 3-90 자판을 익힌 사람들이 듣기에 거슬릴 수 있는 주장이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이 윈도 운영체제 등을 통하여 널리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은 3-90 자판이 활발히 보급된 성과에 힘입은 결과였다. 한글 문화원의 안내를 따라 3-90 자판을 쓴 사람들이 없었다면, 공병우 최종 자판은 널리 쓰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공병우가 주도하여 만들지 않았다고 하여 3-90 자판을 낮추어 보는 것은 옛 한글 문화원의 권위와 함께 한글 문화원을 응원했던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일이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에 요즘한글에 쓰이는 겹받침들이 모두 들어간 것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이다. 하지만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 제품들에 대체로 겹받침 ㄿ이 들어가지 않았고,주13 그 뒤에 주로 쓰인 사무용 타자기에는 3-90 자판처럼 ㄳ·ㄵ·ㄽ·ㄾ 등이 더 빠진 자판 배열이 들어갔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나온 문장용 타자기(문인용 타자기)에 ㄳ·ㄵ을 다시 넣은 배열이 쓰였다. 공병우 타자기의 주류는 문인용 제품이 아니라 사무용 제품이었고, 공병우 타자기에 들어가는 자판 배열을 주도하여 만든 사람이 다름아닌 공병우였다. 그러므로 3-90 자판의 정통성을 깎아 내리는 것은 공병우를 깎아 내리는 셈이 되는 논리 모순을 낳는다.
3-90 자판을 쓰던 사람들이 바른 정보를 알리고 적절히 반론을 폈다면, 덮어놓고 '최종'만을 강조하는 움직임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3-90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3-90 자판이 공병우 최종 자판에 점점 밀려나는 상황에도 두드러진 반응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까닭으로 다음 몇 가지를 꼽아 본다.
- 3-90 자판에 너무 익숙해져서 한글 자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듦
- 3-90 자판을 쓰다가 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바꾸는 사람이 꽤 생김
- 세벌식 자판을 주제로 한 웹 모임이 있음을 빨리 알아치리지 못함
- 2000년대에 웹 모임의 분위기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지지하는 쪽으로 너무 쏠림
- 단체나 모임에 개인의 의견을 강하게 펼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음
- 여론 동향에 관계 없이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함께 지원되는 입력기 지원 환경이 그대로 이어짐
웹 공간에서 드러나는 분위기만 살핀다면, 2000년대에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3-90 자판을 새로 익히는 사람의 비율이 점점 줄었고, 3-90 자판을 익힌 사람들 가운데 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바꾸어 쓰는 경우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도스 환경에서부터 3-90 자판을 오래 쓴 사람들은 3-90 자판을 버리고 다른 배열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글 문화원의 안내를 받아 3-90 자판을 익힌 사람들 가운데는 3-90 자판에 그대로 눌러앉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열린 공간에 흔적을 가장 많이 남기는 때는 세벌식 자판을 처음 익힐 때이다. 누구나 잘 쓰던 한글 자판을 버리고 다른 한글 자판으로 바꾸어서 익힐 때에는 마음이 매우 답답하고 어수선하다. 스스로 선택을 잘 했는지도 궁금하여 도움이 될 만 한 정보가 있을 만 한 곳이라면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래서 세벌식 자판을 주제로 다루는 모임들은 세벌식 자판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활기를 띤다. 그러나 새로 익힌 한글 자판에 잘 적응한 사람들은 몇 해 지나고 나면 한글 자판에 관한 관심이 시들해진다. 두벌식 자판을 쭉 쓰고 있는 사람들이 굳이 '두벌식 사랑 모임'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쓰고 있는 세벌식 자판이 숨쉬는 공기처럼 익숙해진 사람들도 한글 자판에 관한 이야기에 무덤덤해지기 쉽다.
2000년대 이후에는 3-90 자판을 그대로 쓰던 사람들에 비하여 새로 익히는 사람이 너무 적다 보니, 3-90 자판을 익히거나 쓰는 사람들의 흔적이 적게 남고 있다. 그래서 3-90 자판을 쓰는 사람이 실제보다 훨씬 적게 보일 수 있다.
3-90 자판이 한창 보급되던 1990년대의 정보 통신 매체에는 누구나 알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세벌식 자판 모임이 없었다. 한글 문화원이 PC 통신망을 통하여 세벌식 자판을 홍보했지만, 운영되고 있던 PC 통신망이 여러 곳이었고 PC 통신망에 따라 접할 수 있는 정보에 격차가 있었다.주14 그렇다 보니 절실한 자료는 정보 통신망을 이용하기보다 한글 문화원을 방문하거나 우편을 통하여 받는 방법이 더 빠르고 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웹 공간에 세벌식 자판을 주제로 하는 모임이 들어서 있을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세벌식 자판의 새로운 동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세벌식 자판 모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차리는 데에 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세벌식 자판 모임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3-90 자판을 쓰거나 썼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 모임에 정을 붙일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2000년대 초·중반에 웹에서 운영된 세벌식 사랑 모임(sebul.org)주15에서는 '최종'을 강조하며 공병우 최종 자판 쪽으로 너무 쏠리는 분위기를 보였다. 한글 문화원의 안내를 받아 공세벌식 자판을 익힌 사람들은 개인의 의견과 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일에 대체로 익숙하지 않았다. 한글 문화원이 어떤 세벌식 배열을 보급할지를 도맡아 결정했고,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한글 문화원의 결정을 응원하며 따르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배열 제안자나 단체의 움직임이 없는데 사용자들끼리 뭉쳐서 특정 자판 배열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은 지난날에 없었던 일이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을 적극 지지한 이들은 '공병우가 만든 자판'임을 공병우 최종 자판을 세벌식 자판의 대표로 세우려는 마음이 앞섰지만, 웹 공간에서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펴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고 자꾸 쏘아붙이며 반박하는 태도를 자꾸 보이는 바람에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반감을 일으켰다. 옛 한글 문화원의 활동을 지켜 보았던 이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적절히 견제해야 했지만, 오히려 견제 당하며 거의 지켜만 보는 처지에 머물렀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공세벌식 자판에서 3-90 자판을 쓰는 사람들의 수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들에 밀리지 않았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 지지자들이 이미 뭉쳐 있는 웹 공간에서 3-90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내는 목소리는 크게 들리기 어려웠다.
또한 3-90 자판이 열린 공간에서의 여론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에 밀리더라도, 윈도 운영체제 등에서 3-90 자판에 대한 지원이 끊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3-90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불합리한 주장과 정보가 오가더라도 하나하나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 있었다. 하지만 3-90 자판을 그대로 써 온 사람들이 열린 공간에서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이렇다 할 목소리도 내지 않은 것은 이들이 공세벌식 자판의 쌓인 문제들을 주도하여 풀지 못하고 공세벌식 자판 쓰는 사람들끼리의 토론에서 점점 더 소외되는 결과를 불렀다.
4) '최종'의 판정승? 그러나…
결과만 따지면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둘러싼 줄다리기는 공병우 최종 자판의 판정승으로 매듭지어졌다. '최종'이 들어간 이름 덕분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3-90 자판의 개선판으로 여기는 생각이 정설처럼 굳어 갔고, 3-90 자판은 세벌식 자판을 새로 익히려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주16
ᄒᆞᆫ글 97과 ᄒᆞᆫ글 815에 들어간 글자판들을 설명한 위 글에는 한글 문화원이 발표한 '3-90 자판을 세벌식 자판의 정통으로 보는 관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3-90 자판보다 개선된 세벌식 자판으로 보는 관점'이 함께 담겨 있다. 1990년대 초반에 공병우 최종 자판의 줄인꼴 이름이 '공자판' 또는 '공'이었던 것과 달리,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위에 보이는 '한글 3벌식 최종'처럼 '세벌식 최종'이나 '최종'이 공병우 최종 자판의 줄인꼴 이름으로 쓰였다.
3-90 자판을 '3벌식' 또는 '한글 3벌식'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것은 1990년대 초반의 도스 환경에서부터 이어진 것이다. 1997년에 나온 ᄒᆞᆫ글 97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추가 자판으로 지원한 첫 ᄒᆞᆫ글 제품이었는데, '글자판 추가' 항목에서 글자판 설정 항목으로 꺼낸 다음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쓸 수 있었다.(그림 3-11)주17
2000년에 나온 ᄒᆞᆫ글 워디안부터는 글자판 선택 항목에 3-90 자판이 '세벌식 390'으로, 공병우 최종 자판이 '세벌식 최종'으로 들어가고 있다.(그림 3-12) 2000년대 이후의 ᄒᆞᆫ글 제품들에는 공병우 최종 자판이 추가 자판이 아닌 기본 항목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0년 4월 25일에 열린 PC 정비사 2급 자격증 필기 시험에는 3벌식 자판에 대한 틀린 설명을 고르는 묻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 3벌식 자판은 국가 표준으로 공인되어 있는 것이 없으므로, 위 문제의 정답은 '가'이다. 그런데 "현대어에서 사용하는 모든 겹받침은 키를 누른 상태에서 1타에 입력할 수 있다"는 설명도 옳지 않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ㅆ을 1타에 넣을 수 있고 요즘한글에 쓰이는 모든 겹받침을 윗글쇠를 누른 채로 1타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3-90 자판을 비롯한 많은 3벌식 자판들은 ㅆ을 뺀 겹받침들 가운데 윗글쇠를 누른 채로 1타에 넣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3-90 자판에서 겹받침 ㄼ은 영문 쿼티 자판을 기준으로 w3을 눌러 2타에 넣는다. 위 PC 정비사 출제 문제는 공세벌식 자판을 '3벌식 자판'으로 보면서 '세벌식 최종 자판'으로 알려져 있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3벌식 자판의 대표로 여기는 관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홍보로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으로 떠오른 공병우 최종 자판은 3-90 자판에 가려 있던 민낯을 널리 드러내야 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더 다듬어진 한글 배열이 3-90 자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매력이 될 수도 있지만, 너무 많이 들어간 겹받침과 어지러운 기호 배열이 그 매력을 깎아 먹었다. 겹받침과 기호에 얽힌 공병우 최종 자판의 단점은 공세벌식 자판의 공통된 문제처럼 알려져서 공세벌식 자판에 대한 평판을 나쁘게 하였다.주18
1990년대부터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은 3-90 자판을 먼저 익힌 경우가 꽤 많았다.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은 아랫글 자리의 한글 배열이 같고, ㄶ·ㅄ처럼 자주 쓰이는 겹받침들의 자리가 같다. 그래서 3-90 자판을 먼저 쓰던 사람은 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바꾸어 쓰기가 한결 쉽다. 하지만 3-90 자판을 거치지 않고 공병우 최종 자판을 익히려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므로,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는 성과는 3-90 자판을 뛰어넘기 어려웠다.
세월이 지날수록 한글 자판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는 것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익힌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공병우 최종 자판을 강하게 내세우던 움직임은 2000년대 중·후반을 지나며 차츰 누그러졌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먼저 멀어진 3-90 자판은 한때나마 쓰는 사람의 수가 빠르게 늘며 윈도 운영체제에 두 공세벌식 자판이 들어가게 하는 성과라도 일구었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은 그 성과를 더욱 키우는 주역이 되지 못하고 3-90 자판으로 이룩한 성과에 기대어 연명하는 신세에 머물렀다. 다른 한편으로 3-90 자판에 이어서 공병우 최종 자판까지 보급이 주춤한 것은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둘로 니뉜 지지층을 하나로 모을 대안이 필요함을 더 절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 한글 윈도우 3.1에 공세벌식 자판이 들어간 사연
윈도우즈가 기본 지원하고 있는 탁상용 한글 자판은 다음 4가지이다.
- 표준 두벌식 자판 (KS X 5002)
- 두벌식 옛한글 자판 (KS X 5002 응용)
- 3-90 자판
-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공자판)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들어간 것은 특이한 경우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간판 제품인 윈도우즈가 기본 지원하는 탁상용 한글 자판이 늘어나는 것은 예나 요즈음이나 바라기 어려운 일이다. 만약 요즈음에 표준이 아닌 한글 자판이 윈도우즈에 들어간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비표준 자판도 함께 넣어 달라는 요구에 시달릴 수 있다. 이 한글 자판은 들어갔는데 다른 한글 자판은 왜 들어갈 수 없느냐는 식의 형평성 논란이 나기 쉽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의 입장에서는 쓰는 사람이 매우 많거나 권위 있는 주체(나라, 국제 기구 등)가 공인한 한글 자판만 지원하는 것이 골치 아픈 일을 만들지 않는 길이 될 수 있다.
한글 윈도우 3.1에 두 공세벌식 자판이 들어가게 된 사연은 앞에서 보았던 기사인 《헬로우 PC》 1996년 2월호의 「3벌식 포기하기? 3벌식 활용하기」(윤태근)에 다음처럼 실려 있다.주19
윈도우즈 3.1은 준운영체제이지만 윈도우즈 자원을 윈도우즈용 애플리케이션이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각광을 받은 바 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하면, 가령 한글 자판의 경우 윈도우즈가 2벌식과 3벌식을 지원하면 윈도우즈에서 돌아가는 다른 프로그램은 따로 자판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 필요없이 윈도우즈에 있는 그 부분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은 자신이 프로그래밍해야 하는 부분이 줄어들고, 쓰는 사람도 어떤 프로그램을 쓰든지 동일한 형태의 사용방법을 보장받기 때문에 혼돈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윈도우즈의 표준을 따르고, 이 표준이 매우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만 된다.
3벌식 자판도 이런 의미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윈도우즈 3.1에서는 3벌식 자판을 지원하는데, 이 표준을 따르는 모든 프로그램은 자동적으로 3벌식을 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윈도우즈에서 3벌식을 사용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도스의 한글 바이오스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건대, 기꺼이 3벌식을 지원하고 선택마저 용이해진 데는 한가지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 윈도우즈를 발표하기 전 MS에서는 최종적으로 3벌식 자판을 지원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 참가했던 한 개발자가 어떻게든 3벌식을 윈도우즈에서 지원하게 해 주고 싶어서 자신이 윈도우즈를 지원하는 3벌식 자판 드라이버를 만들어 통신에 다른 사람 아이디로 올렸다. 그 다음 그는 회의에서 외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내부에서 이것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이것은 체면의 문제라고 강변한 덕에 결국 MS에서도 3벌식 자판을 표준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기지가 뛰어난 한 개발자의 임기응변이 흐뭇하게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이다.
윤태근, 「3벌식 포기하기? 3벌식 활용하기」, 《헬로우 PC》 1996.2.
이 글에 나오는 '표준'은 나라나 국제 기구가 인정하는 표준이 아니라 윈도우즈가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쓸 수 있게 제공하는 문자/자판 입출력에 관한 사이틀(인터페이스)을 가리킨다. 요즈음엔 흔히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로 불린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에서는 깜빡 속은 셈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끝내 공세벌식 자판을 지원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도 그만한 까닭은 있었다. 아직 MS 도스(MS-DOS)에 얹혀 실행되던 신세였던 일반용 윈도우즈주20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력 운영체제로 우뚝 서는 때를 대비한다면, 도스(DOS)에서 쓰이던 국내 프로그램들의 한글 자판 지원 수준을 따라갈 필요는 있었다. 공세벌식 자판은 3-90 자판을 통하여 판을 키우며 도스 프로그램들에서 표준 두벌식 자판과 함께 쓰이는 한글 자판으로 지위를 굳히고 있었으므로, 마이크로소프트 한국 지사도 공세벌식 자판 사용자들의 동향을 가볍게 보아 넘길 수는 없었다. 이 때에는 공세벌식 자판과 경쟁하는 다른 비표준 한글 자판이 딱히 없어서 마이크로소프트가 공세벌식 자판을 새로 지원하는 일에 갈등이 적을 수 있었다.
'공자판'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공병우 최종 자판은 3-90 자판에 끼어 들어간 격이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1992년에 매킨토시에서 쓸 수 있는 직결식 글꼴과 입력 스크립트가 개발되었지만, 널리 쓰이는 한글 부호계와 다른 직결식 부호계는 실무에 쓸 수 있는 입력 쳬계와 거리가 멀었다. IBM PC 호환 기종에서는 공병우 최종 자판이 프로그램들에서 지원되지 않아서,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용자들의 요구가 윈도우즈에 공병우 최종 자판이 들어간 요인이 되기는 어려웠고, 공세벌식 자판에 관한 권위자인 공병우의 뜻을 살피는 차원이었다면 이해할 만 하다.
한글 윈도우 3.1는 IBM PC 호환 기종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처음으로 지원한 프로그램이었지만, 기호 배열이 정확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이 무렵에 공병우 최종 자판의 배열을 정확히 아는 사람과 실사용자가 드물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던 사람이 있었다면, 공병우 최종 자판이 더 이른 때에 바른 배열이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19.1.13. '한글 윈도우 3.1에 공세벌식 자판이 들어간 사연' 부록 글상자를 더하여 넣음)
덧글을 달아 주세요
신세기 2017/01/18 19: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랜만에 시리즈를 연재해주셨군요. 사실 이번 8번째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장 궁금해하던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궁금했던 부분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떠한 과정에서 3-90 자판과 3-91 자판 사이에서 여론이 형성되었고 그 여론이 어떤 이유로 지금처럼 되었는지가 궁금했었습니다. 이 부분을 이렇게 자세히 알려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늘 밤도 좋은 밤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팥알 2017/02/04 23:5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덧글 달아 주시는 분들께 바로바로 답하지 못한 것 죄송합니다.
위 글을 올리며 까다롭게 느낀 것을 다음 세 가지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근거로 삼을 만 한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고, 두째는 사람들이 접할 수 있었던 정보의 폭이 저마다 다르고 제한되어서 관점이 통일될 수 없었고, 세째는 그 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갈등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이야기하려 들면 주관성을 크게 드러내며 어느 한 쪽을 크게 옹호하는 쪽으로 빠지기 주제입니다.
1990년대에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대체로 '두벌식'과 '세벌식'을 맞서우는 단순한 대립 구도로 한글 자판 문제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했고,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의 꼬인 관계는 단체 차원의 활동을 통하여 정리되어야 할 문제로 여기곤 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나중에 무언가 잘못 꼬였다는 것은 알았고 꼬인 문제가 저절로 풀리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 꼬였는지 생각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더 욕심을 내서 한글 문화원에서 활동한 분들의 증언까지 모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자 기질이 없는 저로서는 더 일을 벌이기 어렵습니다. 새로운 동향을 알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면 다른 분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기회가 많을수록 좋은데, 제가 이런 주제로 글을 올릴 수 있는 것은 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지 않은 덕분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위 글을 겨우 올렸지만, 작지 않은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자료를 찾고 엮는 것보다도 다른 관점들이 맞부딪치는 가치 문제를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이 제게 한참 힘에 부치는 것 같습니다. 정보 처리 능력을 딸리는 가운데 마음을 가라앉히며 지나친 주관은 억누르려다 보니, 마음이 휑해지고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 오래 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공세벌식 자판에 얽힌 정보들이 조각조각 나뉘어 알려져서 오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그 생각 때문에 실수라도 할까 봐서 글을 얼른 끝맺지 못하고 며칠씩 쓰다 지우기를 거듭하는 것이 버릇이 되고 말았습니다. 덧글에 답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애를 먹고 있습니다. 아마 이 후유증을 한동안 달고 살 것 같습니다.
신세기 2017/02/14 17:1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덧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굉장히 고심하시면서 이 글을 쓰셨군요. 민감한 주제일 수 있기에 쓰시기 쉽지 않은 글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고를 거치며 쓰셨기에 더욱 정보력이 있고 유용한 글이 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이렇게 좋은 글을 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p.s. 팥알 님 온라인 한글 입력기에서 404 오류가 뜨고 있는데 혹시 ohi 파일을 바꾸고 계신 건가요?
팥알 2017/02/14 18:5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요 며칠 사이에 호스팅 계정을 옮기다가 착오가 좀 있었습니다. OHI가 잘 돌아가는지 깜빡하고 살피지 않은 것 죄송합니다. 지금은 복구했습니다.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낼 뻔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토토 2017/02/20 13:0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막연한 두벌식과 세벌식에 대한 개념만 있었을 뿐인데 이렇게 자세하고 흥미진진한 내용이 숨어 있는 줄 몰랐네요. 이제는 두벌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세벌식을 병행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좋은 글 잙 읽었습니다. 나머지 게시글도 찬찬히 더 읽어볼게요.
후후 2017/08/04 22: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어릴적 컴퓨터 실습시간에 두벌식은 이미 너무 빨라서 심심풀이로 세벌식 기본배열을 어슴푸레 익힌것
그리고 마침 시간이 많고 여유가 생겼던 때에 세벌식에 관심을 잠깐 기울이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세벌을 쓰고 있지 못했을겁니다. 일상이 바쁜 현대에 자판을 새로 통째로 바꾸는건 쉽잖고도 딱히 이유를 찾긴 심든 일이죠. 소설가나 프로그래머라면 모를까.
손이 작아 네줄자판이 힘들고 공세벌과 완전 다른 자판을 외울 여유도 없던 저는 신세벌에 안착했습니다. 리눅스 우분투 버젼을 호환성 사정상 1604 에서 1404로 떨어트렸더니 P1 만 있길래, 역으로 P2 쓰다가 P1 으로 갈아타게 됐지만 이미 그나마 가장 익숙해진 자판이고
후후 2017/08/04 22:5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금은 바꿀 여력도 관심도, 타자 치는 일도 적어서 그냥 그러려니 있는대로 적용해서 쓰고 있습니다. ㅎ. ㅎ.
불편 크게없이 오래 만족하며 쓸수있는 구관이 오히려 명관이다 생각하며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후후 2017/08/04 22: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근데 남의 윈도우 피씨에 날개셋 깔고 쓰기도 하는데 복벌식이 그리 완벽하진 않아서 아예 바꿔 쓰다가
되돌려 놓는거 깜빡하는 일이 종종.
윈도우 스페이스 누르면 되는데 미안하더란. 에구.
아직 젊어 사실 두벌도 남들 이상 빠른데도 세벌이 익숙해지는 만큼 두벌은 치기가 싫어지는 요상한 습관.
비밀방문자 2017/10/23 12: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덧글입니다.
팥알 2017/11/01 23:2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 글에서는 풍문처럼 들릴 수도 있는 정보들의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자 어느 만큼은 기록 근거를 댈 수 있는 선에서 이야기를 끌어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2000년대 중반까지 모임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았고 달리 참고할 만 한 자료도 없어서, 옛 세사모(sebul.org)의 모습을 담는 것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도 겹받침과 숫자 배열 때문에 3-91 자판으로 넘어갔으므로, 3-91 자판을 지지하는 쪽에 공감한 면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3-91 자판으로 넘어간 것은 개인 판단에 따른 것이었고, 3-91 자판보다는 3-90 자판이 대의명분을 등에 업고 있다고 여겨 왔습니다. 이는 정통성의 기준이 특정 인물(공병우)에만 있지 않고 옛 한글 문화원의 종합된 활동에 있다고 보면 할 수 있는 생각입니다. 다만 옛 정보와 시대 상황에 맞게 갱신된 정보가 잘 돌지 못하여 같은 생각을 함께 하기 어려웠다고 보고 있습니다.
"쏘아붙였다"거나 "의견을 너무 강하게 내세웠다"고 한 것은 옛 세사모 안의 분위기만이 아니라 세사모 밖의 블로그나 게시판에 비친 인상까지 두루 이야기한 것입니다. 특히 다음 박흥호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가 충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세벌식 390 자판이 나오게 된 사연
http://blog.daum.net/hopark/15415
세벌식 390 글자판과 최종 글자판 비교
http://blog.daum.net/hopark/11722486
3-87 자판을 비롯한 공자판들은 개선안이 나올 때마다 들어가는 기호들의 구성과 배치가 달라졌지만, 3-90 자판에서 같은 기호 구성을 후속 개선안에서 이어 갈 수 있는 짜임새가 잡혔습니다. 만약에 공세벌식에 바탕한 표준 배열을 정한다면 3-90 자판의 한글/기호 구성이 표준 후보를 좁히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90 자판은 먼저 나온 배열의 단순한 변형이 아니라 일반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공세벌식 자판의 안정된 기틀을 닦고 규격화에 다가간 배열로 볼 수 있습니다. 그 3-90 자판의 실무 연구자가 박흥호 선생님이었으므로, 박흥호 선생님도 공병우 선생님에 버금가는 업적을 남긴 분으로서 존중 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께 "감히 박사님께서 만들어 발표한 최종 글자판조차도 쓰지 않고 390을 고집하고 있다"고 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저는 그 때의 상황을 황당하게 여기면서 겁도 먹었습니다. 그 무렵에 제가 한글 자판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어서 바로 반론을 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꼬인 것을 눈치 챘더라도 알았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였는지까지 알려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2000년대에 가장 걱정할 수 있는 기류는 '공병우' 한 분만 너무 우러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자판 배열의 아쉽고 모자란 점을 따지는 쪽의 토론은 잘 하면 더 나은 배열을 끌어 내서 공병우 정신을 잇는 성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부 배열을 살피지 않고 만든 사람에 따라 자판 배열의 정통성을 가리는 것은 다른 연구자들의 손발을 묶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옛 세사모 회원들이 모두 동조하지는 않았더라도, 바깥 세계에 비치는 세사모는 회원들 개개인의 뜻에 관계 없이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공고문처럼 붙어 있던 옛 세사모 설명 자료를 통하여 운영진이 3-90 및 3-91 자판을 택하는 문제에 대하여 뚜렷한 목적 의식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세사모의 설명 자료는 가장 먼저 입문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웹 공간에 미친 홍보·파급 효과는 옛 한글 문화원의 유인물 자료를 뛰어넘고도 남을 만큼 컸습니다. 그러나 일반 회원이나 방문객은 이 설명 자료에 잘못된 데가 보여도 손수 고칠 수 없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지금의 세사모 카페는 분위기와 운영 방식이 옛 세사모와 사뭇 다릅니다. 근래에 연구·토론 모임 성격을 함께 띠고 있지만, 그 동안 운영진이나 세력을 이룬 회원 집단의 입김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친목 모임에 가깝게 운영되어 왔습니다. 본래부터 그러했을 수도 있지만 그 동안에 세벌식 관련 모임 활동들에서 겪은 진통들을 거울 삼고 대비하려고 운영진과 회원들이 노력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정보를 나누는 데에 여러 매체들이 함께 이용되곤 합니다. 자주 갱신해야 할 정보는 위키에 올리고, 주관성이 짙거나 더 다듬어야 할 내용이 있는 글은 블로그에 올리는 식입니다. 옛 한글 문화원에서도 여러 매체들을 이용하여 정보를 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단체의 이름을 걸고 우편이나 간행물 광고를 통하여 배포된 공지·설명 자료는 설명문답게 꼼꼼하고 차분한 문체를 썼고, 주장이나 연구 결과가 담긴 글은 글쓴이의 실명을 걸고 간행물과 PC 통신 게시판 등에 올라오곤 했습니다. 때로운 치우친 주장을 하기도 하는 개인과 묵직하게 무게 중심을 잡는 단체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이루어서, 양동 작전이 펼쳐진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여 2000년대 이후의 세벌식 자판 관련 활동들은 내용과 논리 면에서 1990년대 수준을 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1980~1990년대에 PC 통신 게시판에 올라왔던 것과 내용과 논리 전개 방식이 2000년대 이후에도 비슷하게 쓰인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옛 정보를 모를 때는 신선하게 느끼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2000년대 중반을 넘어가서도 새로 찾거나 만든 성과물이 쌓이지 못하고 줄거리가 비슷한 이야기가 쳇바퀴 돌듯 거듭되는 것에서는 누구나 식상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이 글을 쓰면서 어려웠던 점을 두 가지로 꼽아 보면, 전산화되지 않았거나 후미진 곳에 있던 자료들을 하나씩 뒤져서 찾기 힘들고 모은 자료가 많아도 뜻있는 정보를 잘 추리고 엮지 못하면 자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공병우 계열 세벌식 자판의 역사를 되짚는 일에 꽤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분량과 관점 때문에 진상을 더 자세히 이야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옛 세사모 회원들의 활동도 그렇고 옛 한글 문화원의 내부 형편도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과 그 공간을 겪은 분들의 증언이 있으면 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분들이 참고하고 보태서 더 진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옛 한글 문화원처럼 단체 차원의 짜임새 있는 지원 활동은 기대하기 어렵고, 개인들이 힘을 보태 필요한 일을 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개개인의 활동이 언제나 꾸준하기 어렵고 시간차가 있을 수 있으므로, 블로그나 위키 같은 정보 매체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일이 더 절실해졌습니다.
비밀방문자 2017/11/08 00:2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덧글입니다.
팥알 2017/11/11 19: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도움말씀을 해 주시고 글 내용에 얽힌 정황을 이해해 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욕심을 부리면 기자가 취재하듯 증언록을 만들어 봄직도 하지만, 제가 그런 쪽으로 움직이기에는 꽤나 은둔형입니다. 나중에 보충하는 성격으로 글을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미처 모르고 있거나 주목하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은 다른 분들이 저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비밀방문자 2017/12/29 09: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덧글입니다.
최성호 2018/03/05 16: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세벌식 자판을 찾다가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세벌식으로 바꾼지 한 10년 넘었을까요. 자주쓰는 자판은 기억하지만 전부 다는 기억하지는 못하고 이후로 그냥 생활에 쓰고 있습니다. 시간나면 이 블로그의 글을 자세히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자판 습관도 돌아보고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팥알 2018/03/07 19: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찾아 주셔서 반갑고 고맙습니다.
저도 세부 배열을 다 외우지 못한 채로 공세벌식 자판을 쭉 썼던 적이 있습니다.
다들 세벌식 자판을 쓰는 환경은 달랐어도 겪었던 고충에 비슷한 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