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 타자기 타자 동작에 얽힌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설계 원리 몇 가지

차례

※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에 공 운지법을 쓰지 않을 때의 손가락 타수(그림 4-㉠)와 손가락 거듭치기(그림 8-㉠) 비교표를 더하여 넣었습니다. (2015.12.29.)

※ 낱말에서 첫소리가 오는 자리에 따른 ㄹ·ㅁ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림 11와 함께 더하여 넣었습니다. (2016.8.10.)

※ 그림 12의 세모이 2015 자판 배열표를 세모이 2016 자판 배열표로 바꾸어 넣었습니다. (2016.8.10.)

※ 그림 13의 신세벌식 P 자판 배열표를 신세벌식 P2 자판 배열표로 바꾸어 넣었습니다. (2016.8.10.)


(1) 2째·4째 손가락에 비하여 적게 쓰는 왼손 3째 손가락

  공세벌식(공병우 세벌식) 자판은 왼손/오른손 모두 2째 손가락(검지)과 4째 손가락(약지)에 비하여 3째 손가락(중지)은 적게 쓰는 편이다. 왼손 3째 손가락을 적게 쓰는 것은 공세벌식 자판이 수동 타자기에 쓰일 때부터 바로 옆 손가락을 이어 치는 것을 많이 꺼린 것과 관련이 있다.

  수동 타자기에서 다음 세 가지 타자 동작은 같은 손을 거듭 쓸 때에 힘이 빨리 빠지고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는 유형으로 꼽을 수 있다.

  • 같은 글쇠를 거듭 누르기
  • 힘이 약한 손가락을 먼저 쓰고 힘이 센 손가락을 나중에 쓰기
  • 바로 옆의 손가락을 이어 치기

  요즈음은 글쇠 누르는 힘이 적게 드는 전자식 글쇠판이 많이 쓰여서 너무 잦지만 않으면 이런 타자 동작을 견디고 쓸 만하다. 글쇠가 어설프게 눌리더라도 신호만 잘 건네지면 오타가 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수동 타자기에서는 다르다. 수동 타자기는 손가락으로 글쇠를 누른 힘으로 활자대가 움직이고, 그 활자대의 끝에 있는 활자가 종이를 때려 낱자를 찍는다. 수동 타자기에서 어설픈 타자 동작은 고르지 않고 희미한 글씨로 나타나므로, 전동식이나 전자식 기기를 쓸 때보다 글쇠를 더 세고 더 깊게 눌러야 한다. 그래서 수동 타자기에서 쓰이는 자판 배열은 글쇠에 꾸준하고 고르게 힘을 싣기 좋은 타자 동작을 이어갈 수 있어야 좋다.

  공세벌식 자판은 타자기 배열과 셈틀 배열 모두 왼손 쪽에서 같은 글쇠를 거듭 누르는 때가 거의 없다.주1 '힘 센 손가락 → 힘 약한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때도 드문 짜임새를 갖추었다. 하지만 바로 옆의 손가락을 이어 치는 것은 주로 겨냥했던 기기에 공세벌식 자판들의 경향이 다르다.

  수동 타자기에서도 2째→3째 손가락을 이어 치는 경우는 그리 나쁘지 않다. 그래서 수동 타자기에 쓰인 공세벌식 자판들도 2째→3째 손가락을 이어 치는 때는 잦았다. 하지만 3째→4째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것은 수동 타자기에서 이어 치는 글쇠 자리에 따라 어려울 수 있다. 4째→5째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것은 차라리 독수리 타법이 더 낫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힘든 동작이다.

[그림 1] 공병우 2단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3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그림 1] 공병우 2단 한영 겸용 수동 타자기 자판 (3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1970년대 초반까지 수동 타자기에 쓰인 공세벌식 자판들은 홀소리가 왼손 2째 손가락에 몰려 있었고, ㅔ는 왼손 3째 손가락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홀소리와 받침을 이어서 칠 때에 2째→3·4:5째로 손가락을 이어 치는 때가 많았고, 3째→4째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때는 많지 않았다.

[그림 2]  공병우 2단 한영 겸용 타자기 자판 (4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그림 2] 공병우 2단 한영 겸용 타자기 자판 (4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공병우 한·영 겸용 타자기는 1970년대 중반에 글쇠 설계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영문 로마자가 오른쪽으로 두 글쇠씩 옮겨 갔고, 3·4·5째 손가락 자리를 차지하던 받침 영역이 줄어서 거의 4·5째 손가락이 맡게 되었다. 이는 영문 로마자 26자를 받침이 들어간 안움직 글쇠 자리를 피하여 모두 움직 글쇠에 넣으려 한 결과였다. 이에 맞추어 2째 손가락 자리에 있던 ㅐ·ㅕ는 3째 손가락 자리로 옮겨 갔고, 3째 손가락 자리에 있던 받침 ㄴ은 4째 손가락 자리로 옮겨 갔다. 이리하여 공세벌식 자판에서 3째→4째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때가 잦아졌다. 그래도 제자리를 지킨 다른 홀소리들에 비하면 ㅐ는 받침이 많이 붙지 않는 홀소리여서, 3째→4째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잦기는 요즈음 쓰이는 배열보다 적었다.

[그림 3] 3-89 자판 (5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그림 3] 3-89 자판 (5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1989년에 나온 3-89 자판에는 ㅐ·ㅣ 자리가 맞바뀌어 홀소리인 ㅣ가 쿼티 자판의 D 자리에 들어았다. 다음으로 한글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홀소리는 ㅏ이고, ㅣ는 바로 다음이다. ㅣ 자리가 바뀌면서 공세벌식 자판은 3째 손가락 타수 비율가 눈에 띄게 늘었고, 3째→4째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때도 앞서보다 꽤 잦아졌다. 이는 공세벌식 자판이 수동 타자기에서 글쇠 누르는 힘이 적게 드는 전자식 글쇠판을 겨냥하여 꺼리던 배치에 덜 얽매이기 시작했음을 널리 알리는 신호탄이었다.주2

  이렇게 공세벌식 자판은 수동 타자기를 의식하여 3째→4째 손가락으로 이어 치는 것을 한참 동안 꺼렸다. 이제는 전자식 글쇠판이 한글 기기의 주류가 되어서 수동 타자기에서의 자판 설계 제약에 얽매일 필요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공세벌식 자판의 왼손 3째 손가락 타수 비율은 2·4째 손가락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이미 쓰이고 있는 배열을 너무 큰 폭으로 바꾸면, 바꾼 사람조차 잘 쓰지 못하는 배열이 되기도 한다. 옛 배열을 쓰던 사람은 잘못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는 것 때문에 웬만해서는 새 배열에 반대하는 입장이 되기 쉽다. 옛 배열을 쓰던 사람까지 안고 가는 것이 배열 개선 작업의 목적이라면, 새 배열을 쓰는 사람은 배열을 바꾼 까닭에 절실히 공감할 수 있고 옛 배열을 쓰던 사람은 적은 연습으로 새 배열에 빨리 적응할 수 있으면 좋다. 그래서 낱자 자리 바꿈이 꼭 필요하거나 효과가 매우 큰 경우가 아니라면, 자주 쓰이는 낱자들의 자리를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배열 개선 작업이 매듭지어지곤 한다.주3

  더 과감하게 2째 손가락 자리에 있는 ㅓ·ㅗ·ㅜ·ㅡ를 3째 손가락 쪽으로 옮기는 것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바꾼 홀소리 자리에 맞추어 받침이나 다른 요소도 조정할 필요가 생길 수 있으므로, 그저 3째 손가락 타수를 늘리는 것만을 노리고 홀소리 자리를 옮긴다면 개선 효과를 크게 누리지 못할 수 있다.

 

(2) 왼손 두째 손가락을 많이 쓰는데 괜찮을까?

  아래는 2011.9.1~2011.10.14 국회 회의록을 분석하여 뽑는 손가락 나눠 맡기 비교표이다. 여기에서 공세벌식 자판은 2~5째 손가락이 맡는 타수 가운데 2째 손가락이 맡는 비율은 52.4%에 이른다.주4

공병우 최종 자판에 공 운지법을 적용했을 때 (펼치기)

[그림 4-㉠] 2~5째 손가락 타수 비율 (2011.9.1~2011.10.14 국회 회의록)
[그림 4-㉠] 2~5째 손가락 타수 비율 (2011.9.1~2011.10.14 국회 회의록)

  위 비교표에서 공병우 최종(3-91) 자판만 공세벌식 자판이고, 나머지는 모두 두벌식 자판이다. 3-90, 3-2012 자판을 비롯한 다른 공세벌식 자판들의 타수 비율은 공병우 최종 자판과 비슷하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공 운지법으로 치는 것을 가정하였고, 위 표에서 첫째 손가락(엄지) 타수는 비율에 셈하지 않았다.

  이른바 독수리 타법으로 2째 손가락만 쓰는 사람이 있는 걸 생각하면, 2째 손가락을 많이 쓰게 한 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왼손만 따졌을 때 2째 손가락이 56.4%나 맡게 한 것은 손가락 균형을 잘 살피지 않은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공세벌식 자판이 다른 한글/영문 자판과 특성이 같다면, 타수 비율로 보았을 때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은 2째 손가락을 많이 쓰는 것을 힘들게 느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정작 왼손 2째 손가락을 많이 쓰는 것을 그다지 힘들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2째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가 드문 공세벌식 자판의 짜임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 5]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짜임새 (3-2012 자판)
[그림 5]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짜임새 (3-2012 자판)
[그림 6] 공병우 최종 자판 (3-91 자판)
[그림 6] 공병우 최종 자판 (3-91 자판)

  한 손가락을 거듭하여 쓸 때의 피로도는 다른 손가락과 번갈아 칠 때보다 높다. 그러므로 손가락들이 느끼는 피로도를 정확히 알려면, 손가락별 타수 비율뿐 아니라 같은 손가락을 얼마나 자주 거듭치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한글을 쳐 나가는 차례는 '첫소리→가운뎃소리' 또는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로 이어진다. 공세벌식 자판에서는 첫소리를 오른손으로 치고, 가운뎃소리(홀소리)는 주로 왼손 2·3째 손가락으로 친다. 끝소리(받침)는 주로 3·4·5째 손가락으로 치는데, 2·3째 손가락에 들어간 끝소리(주로 겹받침)는 윗글쇠를 먼저 누르고 친다. 이 흐름 덕분에 공세벌식 자판에서 모아쓰는 한글을 넣을 때에 완손 2째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는 많고, 왼손 3째 손가락 거듭치기가 많은 편이다.주5

[그림 7]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 - 표준 두벌식 자판 (KS X 5002)
[그림 7]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 - 표준 두벌식 자판 (KS X 5002)

공 운지법을 적용함 (펼치기)

[그림 8-㉠]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 - 공병우 최종 (3-91)
[그림 8-㉠]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 - 공병우 최종 (3-91)

  위 표에 보이는 공병우 최종 자판의 왼손 2째 손가락 거듭치기는 거의가 윗글 자리에 들어간 물음표(?)와 겹받침을 넣을 때 일어난다.주6 ㅘ·ㅝ 같은 겹홀소리를 넣을 때에는 오른손 쪽에서 ㅗ·ㅜ를 넣으므로, 겹홀소리를 넣으려고 왼손가락을 거듭 쓰지 않아도 된다.

  두벌식 자판과 견주어 보아도 다면, 공세벌식 자판의 왼손 2째 손가락 거듭치기는 꽤 적다.

[표 1] 두벌식 자판에서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쓰는 경우의 예
두벌식 자판
(KS X 5002)
영문 쿼티 기준 쓰이는 예
ㄹㄱ fr 밝다, 솔개
ㄹㅎ fg 잃다, 실현
ㄹㄹ ff 날로
ㄱㅎ rg 식후

  두벌식 자판은 겹받침 ㄺ·ㄽ·ㄿ·ㅀ을 넣거나, 끝소리(받침)와 첫소리를 이어 칠 때에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쓴다. 다른 왼손가락으로 넣는 닿소리는 3개이지만, 2째 손가락으로 넣는 닿소리는 5개나 된다. 또 대체로 2째 손가락 자라에 3·4·5째 손가락보다 자주 쓰이는 닿소리가 들어간다. 그래서 두벌식 자판은 끝소리와 첫소리를 이어 치는 과정에서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가 3·4·5째 손가락보다 많다. 영문 자판도 두벌식 자판과 형편이 비슷하다.

  공세벌식 자판은 왼손 2째 손가락에 두벌식 자판보다 많은 한글 낱자가 들어 있지만, 같은 손가락 거듭 쓰는 때는 오히려 적다. 다른 자판과 다른 이 특성 덕분에 공세벌식 자판은 왼손 2째 손가락의 피로도가 타수 비율에 비하여 낮을 수 있다.


(3) 윗글쇠를 누르는 것이 나쁘지 않다?

  자판 배열을 연구하거나 쓰는 사람 가운데 윗글쇠(시프트) 누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반 글쇠와 함께 윗글쇠를 누르는 동작은 그 자체로 타자 동작을 복잡하게 하여 타속을 떨어뜨리고, 다음 타자 동작까지 굼뜨게 한다. 손이 불편한 사람들 가운데는 윗글쇠를 함께 누르기가 어려워서 자판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윗글쇠를 아예 안 쓰기는 어렵다. 한정된 글쇠로 더 많은 글짜를 넣게 하게 하는 방안들 가운데 윗글쇠 쓰기만큼 널리 공인되어 모든 입력기들이 지원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아치기나 다른 조합 방안으로 더 많은 글짜를 넣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입력 방안을 지원하지 못하는 한글 입력기에서는 쓸 수 없다.

  윗글쇠 누르는 동작이 언제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차라리 윗글쇠 누르는 타자 동작이 낫다고 느낄 수 있다.

  • 윗글쇠를 더 누르게 한 배열이 더 단순하고 익히기 쉬울 때
  • 자주 넣는 글짜가 글쇠판의 너무 구석진 자리(영문 쿼티 자판의 `, 1, 0, -, \ 자리 등)에 있을 때
  • 윗글쇠를 누르는 타자 동작이 더 쉽거나 오타가 덜 나도록 배열이 짜여 있을 때
  • 윗글쇠를 누르는 타자 동작으로 더 일관된 타자 흐름을 이어 갈 수 있을 때

  흔히 쓰이고 있는 영문 자판에는 큰 로마자 A와 작은 로마자 a가 같은 글쇠 자리에 있다. A는 일반 글쇠와 함께 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고, a는 일반 글쇠를 바로 쳐서 넣게 하는 식이다. 만약에 큰 로마자 A와 작은 로마자 a를 다른 자리에 섞어 놓는다면 어떨까? 어느 글짜가 자주 쓰이는지 잘 헤아려 놓는다면, 윗글쇠를 적게 쓰면서 효율이 더 뛰어난 영문 자판이 나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효율이 뛰어나더라도 각각 26자씩 들어간 큰 로마자와 작은 로마자가 따로 놓인 영문 배열을 익혀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공세벌식 자판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오른손 쪽 아랫줄에 있다. 숫자를 많이 넣을 때는 영문 자판처럼 맨 윗줄 글쇠를 쓰더라도 윗글쇠를 누르지 않고 두 손을 모두 써서 넣으면 빠르게 넣기 좋다. 하지만 한글을 치면서 숫자를 조금씩 섞어 넣는 때에는 공세벌식 자판처럼 윗글쇠를 누르더라도 아래쪽에 놓인 글쇠를 누르는 것이 편할 수 있다.

  두벌식 자판에서는 ㄲ, ㄸ, ㅃ, ㅆ, ㅉ 같은 된소리를 넣을 때 윗글쇠를 함께 누른다.주7 그런데 고의든 실수든 두벌식 자판으로 '있었다'를 '잇엇다'로 적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윗글쇠를 눌러 된소리 ㅆ을 넣는 동작이 어렵거나 귀찮아서 생기는 일이다. 두벌식 자판으로 된소리를 칠 때에는 왼손가락으로 일반 글쇠를 치고 오른손가락으로 윗글쇠를 치는 것이 바른 타자법이다. 하지만 윗글쇠까지 왼손가락으로 치는 변칙 타자법을 쓰는 사람이 꽤 많다. 된소리를 왼손가락만으로 칠 때가 이어 나오는 홀소리를 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주8

  그에 비하면 공세벌식 자판에 적응한 사람들은 윗글쇠를 변칙으로 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윗글쇠 쓰는 것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편이다. 이는 쓰다 보니 익숙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윗글쇠를 누르는 타자 동작이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조율된 공세벌식 자판의 낱자 배치에서도 그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우리말에서 풀이씨(용언)는 씨줄기(어간)과 씨끝(어미)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맑다'라는 풀이씨는 '맑'이라는 씨줄기에 '다'라는 씨끝이 붙어 만들어진 낱말이다.

[표 2] 풀이씨에 자주 붙는 씨끝 유형
  -은 -는 -되 -습- -히- -게 -지
굳다 굳은 굳는 굳되 굳습- 굳히- 굳게 굳지
같다 같은   같되 같습-   같게 같제
않다 않은 않는 않되 않습-   않게 않지
없다   없는 없되 없습-   없게 없지
밝다 밝은   밝되 밝습- 밝히- 밝게 밝지

  3-90 자판을 비롯한 공세벌식 자판에서는 홑받침 ㄷ, ㅊ, ㅋ, ㅌ, ㅍ과 겹받침 ㄲ, ㄶ, ㅄ, ㄺ, ㄻ, ㅀ 등을 윗글쇠를 함께 눌러 넣는다.주9 주10 '없-', '않'-', '밝-', '삶-', '꺾-', '높-', '같-', '쫓-', '잊', '굳-' 등을 친다면, 풀이씨 씨줄기의 끄트머리를 치면서 윗글쇠를 함께 누르게 된다. 풀이씨의 뒤쪽에는 '-은', '-는', '-되', '-습-', '-히-', '-게', '-지'를 비롯한 여러 씨끝들이 붙을 수 있다. 이들 씨끝들의 맨 첫머리에 자주 나오는 첫소리는 ㅇ·ㄴ·ㄷ·ㅅ·ㅎ·ㄱ·ㅈ이다.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으로 윗글쇠를 누르고 끝소리를 친 다음에는 첫소리 ㅇ·ㄴ·ㄷ·ㅅ·ㅎ·ㄱ·ㅈ이 나올 때가 잦다. 이 점을 헤아려 공세벌식 자판에는 이 첫소리들이 윗글쇠를 누르는 5째 손가락 자리과 영문 쿼티 자판의 Y 자리를 피하여 놓여 있다.

[그림 9] 공세벌식 자판에서 윗글쇠를 누른 다음에 자주 치는 ㅇ,ㄴ,ㄷ,ㅅ,ㅎ,ㄱ,ㅈ 자리
[그림 9] 공세벌식 자판에서 윗글쇠를 누른 다음에 자주 치는 ㅇ,ㄴ,ㄷ,ㅅ,ㅎ,ㄱ,ㅈ 자리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으로 모아쓰는 한글을 칠 때에는 윗글쇠를 누른 다음에 5째 손가락을 또 누르는 때는 많지 않다.주11 또 첫소리 ㅇ·ㄴ·ㄷ·ㅅ·ㅎ·ㄱ·ㅈ은 2째 손가락으로 치는 비율이 높고, 윗글쇠를 누른 상태에서도 손가락을 뻗기 좋은 자리에 이 첫소리들이 놓여 있다.

[표 3] 공세벌식 자판의 윗글쇠 누르기에 자주 얽히는 끝소리-첫소리 이음새 잦기 (천만 자모 빈도 분석표에서 가려 뽑음)
  뒤에 오는 첫소리
2째 손가락 (공세벌식) 3째 손가락 4째 손가락 5째 손가락

끝소리
2885 85 38 53 0 0 148 9 22 1 8 2 1 1
113 1 15 1 2 0 10 2 3 0 17 0 0 0
1404 87 11 1 65 0 108 0 28 1 0 0 0 0
8291 1848 1086 218 0 0 2207 1 211 5 0 0 0 1
4217 1314 297 70 284 1 2050 11 622 237 108 1 3 0
1977 137 116 27 314 0 364 28 74 5 20 2 11 0
1188 16 14 0 0 0 406 0 35 1 0 1 2 0
564 19 31 35 63 0 186 0 75 0 7 0 0 0
1 0 0 4 0 0 0 0 2 0 0 0 0 0
36 7 3 0 0 0 8 0 0 0 0 0 0 0
14 4 0 0 0 0 4 0 3 0 0 0 0 0
1127 146 209 26 2 32 287 0 151 1 0 0 0 0
7373 3032 2643 250 5 0 1051 10 332 1 11 0 0 0
3548 658 355 100 206 0 1406 64 482 620 89 9 10 0
1203 199 132 235 67 4 399 192 78 41 255 54 5 2
163 1 3 2 6 0 10 11 6 1 8 1 0 0
9223 821 1041 140 50 1 685 129 359 52 106 5 4 1
5482 85 660 384 11 1 444 50 312 61 64 3 2 2
합계 34104 7554 4953 1022 1014 37 8644 328 2124 914 523 70 32 4
48684 8972 3038 629

  또 공세벌식 자판은 윗글쇠를 누를 때의 기억 부담이 두벌식 자판보다 적다. 공세벌식 자판은 첫소리와 가운뎃소리 가운데 ㅒ만 윗글 자리에 있다. 그래서 한글을 한 낱내(음절) 단위로 쳐 나간다고 하면,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를 가볍게 넣고 낱내의 마지막인 끝소리를 넣는 단계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다. 오타를 내지 않아도 된다. 끝소리를 넣을 때에는 윗글쇠 누르는 동작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두벌식 자판은 첫소리에 오는 된소리(ㄲ, ㄸ, ㅃ, ㅆ, ㅉ)와 홀소리 ㅖ·ㅒ를 윗글쇠를 눌러 넣는다. 첫소리부터 윗글쇠를 치는 때가 있어서 윗글쇠를 누르는 타자 동작 때문에 낱내의 다음 낱자를 치는 것이 늦어질 수 있다. 그만큼 머릿속에 다음 낱자를 더 오래 담고 있어야 할 수 있다. 윗글쇠를 쓰다가 오타가 나면 낱자를 오래 기억해야 하는 어려움이 더 커진다.

[표 4] 두벌식 자판의 윗글쇠 누르기에 자주 얽히는 끝소리-첫소리 이음새 잦기 (천만 빈도 분석표에서 가려 뽑음)
  뒤에 오는 홀소리
2째 손가락 (KS X 5002) 3째 손가락 4째 손가락 5째 손가락

첫소리
2994 1672 2908 521 2 0 12433 4943 2 1620 2194 2 2215 0
8734 7156 1985 0 0 0 6778 3107 1 13113 284 6 411 0
317 709 2453 232 37 6 2370 692 140 613 197 0 10 0
455 2711 312 2 1 3 2141 4447 1 37 4098 0 244 0
2151 1207 304 32 0 6 1695 552 1 1450 1872 0 9 0
합계 14651 13455 7962 787 40 15 25417 13741 145 16833 8645 8 2889 0
36910 39303 25486 2889

  공세벌식 자판에서 낱자 자리가 잘 조율되어 있고 윗글쇠 누르기가 끝소리에 집중되는 점은 자판을 치는 사람의 타자 동작과 심리 작용에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를 통하여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은 다른 한글 자판을 쓸 때보다 윗글쇠 누르는 동작을 매끄럽게 느낄 수 있다.

  너무 드물게 쓰여서 사무용 배열에는 들어가지 않는 ㄽ·ㄾ·ㄿ까지 윗글쇠를 눌러 한꺼번에 넣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는 것은 타자 흐름과 왼손/오른손 분담 때문이다. 예외 없이 모든 겹받침을 윗글쇠를 눌러 넣는다면, 겹받침을 넣을 때에 일관된 타자 흐름을 이어 갈 수 있다. 거기에다 오른쪽 윗글쇠를 써서 오른손보다 바쁜 왼손의 타수와 움직임도 줄일 수 있다. 공세벌식 자판에서 왼손은 오른손보다 많이 쓰여서 빨리 지치므로, 왼손을 조금이라도 덜 쓰게 할수록 글을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오래 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4) 첫소리 ㅁ이 ㄹ보다 좋은 자리에 있는 까닭

1) 윗글쇠를 누르고 치는 받침이 더 많이 붙는 첫소리 ㅁ

  첫소리 ㄹ은 ㅁ보다 40% 가까이 더 자주 쓰인다. 하지만 공세벌식 자판에는 ㄹ이 꽤 구석진 Y 자리에 있고, ㅁ은 3째 손가락으로 치기 좋은 I 자리에 있다. 첫소리 ㄹ은 토씨 '-를', -'로'에 붙는데도, 덜 쓰이는 ㅁ보다 나쁜 자리에 두었다. 이 때문에 3째 손가락이 맡는 타수 비율까지 줄었다.

[그림 10] 공세벌식 자판의 첫소리 ㄹ, ㅁ 자리
[그림 10] 공세벌식 자판의 첫소리 ㄹ, ㅁ 자리

  언뜻 보아선 상식에 어긋나 보이는 이 배치도 윗글쇠 누르기와 얽혀 있다. 첫소리 ㅁ 다음에는 '맑-', '묽-', '맡-', '몇'처럼 윗글쇠를 눌러 넣는 받침이 뒤이어 오는 때가 있다. 만약에 첫소리 ㅁ이 퀴티 자판의 Y 자리에 있다면, ㅁ을 친 다음에 오른손을 더 많이 움직여서 윗글쇠를 눌러야 한다. 그럴 때에 5째 손가락(새끼 손가락)이 윗글쇠를 찾지 못하여 오타가 날 수 있다. ㅁ이 I 자리에 있으면 '맑' 등을 칠 때에 윗글쇠를 누르려고 손을 덜 움직여도 되므로, 빨리 치려다가 윗글쇠를 잘못 눌러서 생길 수 있는 오타를 꽤 막을 수 있다.

  이와 달리 첫소리 ㄹ 다음에는 윗글쇠를 눌러 넣는 받침이 거의 붙지 않는다. '랕', '랅' 같은 말을 일부러 만들어 쓰지 않는다면, 요즈음에 흔히 쓰이는 한글 표기법을 따를 때에 공세벌식 자판에서 첫소리 ㄹ 다음에 윗글쇠 쪽으로 손을 옮기는 문제는 크게 걱정할 거리가 아니다.

[표 5] 공세벌식 자판에서 윗글쇠를 눌러 넣는 끝소리에 얽힌 첫소리-끝소리 이음새 잦기 (천만 빈도 분석표에서 가려 뽑음)
  뒤에 붙는 끝소리
합계




215 0 0 1 1617 194 165 0 0 0 0 16 421 1406 20 0 7936 797 12788
218 0 0 463 0 2 0 0 0 0 0 257 0 104 513 0 1801 0 3358
61 42 0 3 22 553 0 426 0 0 0 0 0 826 258 28 100 1008 3327
170 0 1 0 1496 499 114 91 9 0 0 23 0 137 33 0 2 270 2845
0 0 0 0 150 0 0 2 0 0 0 156 0 0 0 0 0 0 308
0 0 0 0 1 0 0 0 0 0 0 0 0 2 0 0 0 159 162
128 88 0 3452 1262 158 1 0 0 0 0 0 0 1928 2955 1 1007 0 10980
2250 0 0 0 3672 694 0 187 0 0 1 0 0 199 890 0 1649 0 9542
0 0 0 0 136 0 0 0 0 0 0 0 0 0 0 0 0 0 136
184 55 0 0 165 62 431 4 0 0 0 643 0 0 14 2 100 1819 3479
0 0 0 0 190 0 0 0 0 0 0 2 0 0 0 0 0 0 192
61 0 1753 9521 1021 761 349 81 0 0 24 934 14643 578 40 201 90 3603 33660
0 0 0 282 12 0 657 1 0 0 0 0 0 698 45 0 60 169 1924
0 0 0 26 0 0 0 233 0 0 0 0 0 153 367 0 0 0 779
0 0 0 359 1 9 0 0 0 0 0 0 0 1759 2 0 0 0 2130
0 0 0 0 31 0 0 0 0 0 0 0 0 0 0 0 1 0 32
0 0 0 0 219 38 0 0 0 0 0 0 0 0 0 0 0 0 257
28 0 0 0 0 0 0 0 0 0 0 0 0 0 0 0 33 0 61
0 0 0 0 7 221 0 0 0 56 0 1 0 0 0 0 189 0 474

2) 말마디의 맨 앞에 더 자주 붙는 첫소리 ㅁ

(2016.8.10. 더하여 넣음)

  공병우 선생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는 한글 타자기의 발전을 위하여 1960년 초반부터 전국 경기 대회를 개최하여 왔다. 아마도 1963년에 한글학회와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로 개최한 한글 타자 경기 대회인 듯하다. 대회가 끝난 뒤에 선수들에게 타자기에 대한 소감을 발표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더니 마산상고 선수가 공병우 속도 타자기로 '수'를 빨리 찍으니 활자대가 엉킨다고 했다. 그래서 'ㅅ'과 'ㄹ' 자리를 바꿔 놓았다.

  이 자리바꿈으로 말미암아 글자판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사람'을 찍으면 '라삼'으로 찍힌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 한 사람에 국한된다는 생각이며, 앞으로 많은 사람이 찍을 때에 다만 한 동작이라도 빠르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능률을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오늘날의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을지언정 바꿔 버린 것이다.

  1940년대부터 쓰인 처음의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에는 첫소리 ㄹ이 N 자리에 있었고 첫소리 ㅅ은 Y 자리에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에 와서 윗글의 내용대로 '수'를 치면 활자대가 자주 엉키는 문제로 첫소리 ㄹ이 Y 자리로 가고 첫소리 ㅅ이 N 자리로 가는 것으로 자리가 맞바뀌었다. 그렇다면 왜 첫소리 ㅅ이 Y 자리에 있을 때 '수'를 치면 활자대가 잘 엉키는 걸까?

  수동 타자기의 글쇠판을 보면, 쿼티 자판을 기준으로 Y 자리 글쇠는 타자수가 대기 상태에서 손가락을 놓고 있는 바탕 자리보다 높은 쪽에 있다. N 자리 글쇠는 바탕 자리보다 낮은 쪽에 있다. 그리고 Y 자리 글쇠는 높낮이를 헤아리지 않은 직선 거리로도 N 자리 글쇠보다 오른손 2째 손가락이 놓이는 바탕 자리 J 글쇠에서 멀다. 그래서 대기 상태에서 오른손 2째 손가락을 J 글쇠에 대고 있다면, N 글쇠 쪽으로 손가락을 내리는 속도보다 Y 글쇠 쪽으로 손가락을 올리는 속도가 느리기 마련이다.

  수동 타자기는 셈틀보다 글쇠 누르는 차례와 간격을 잘 맞추여야 잘 쓸 수 있다. 앞에 들어온 활자대가 초점을 때리고 빠져나가지 못했을 때 다음 활자대가 밀고 들어오면 활자대끼리 부딛혀 엉키기 때문이다. 또 가까이 있는 활자대끼리는 엉킬 확률이 더욱 높다. 아무래도 N 글쇠보다 Y 글쇠가 바탕 자리에서 멀어서 Y 글쇠를 치고 빠지는 동작이 굼뜨기 마련이고, Y 자리의 활자대가 ㅜ가 있는 B 자리 활자대가 가깝기도 하다. 그러니 더 자주 쓰이는 첫소리 ㅅ이 Y 글쇠에 있으면, ㅜ가 있는 B 글쇠를 앞뒤로 이어치면서 활자대가 서로 엉킬 확률이 높다.

  그런데 '수' 때문에 활자대가 잘 엉킨 것은 단순히 '수'가 자주 나오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가 낱말의 어느 곳에 많이 나오는지도 영향을 미친다.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 2〉(김한샘, 국립국어원, 2005)에서 말뭉치를 조사한 어휘 통계를 살피면, '수' 또는 '수+받침'으로 시작하는 경우(수, 순, 숲 등)는 79151번 나왔고 이 가운데 46737번은 낱말의 맨 처음에 쓰였다. '수' 또는 '수+받침'으로 시작한 낱내의 59%가 낱말의 처음에 나온 셈이다. '루' 또는 '루+받침'으로 시작하는 낱내는 9106번 나왔는데, 이 가운데 낱말의 맨 처음에는 2.15%인 196번이 나왔다. '수'가 '루'보다 자주 쓰일 뿐 아니라 낱말의 맨 처음에 쓰이는 비율도 훨씬 높다.

  우리말에서 첫소리 ㄹ이 들어가는 낱내(음절)는 말마디(어절)의 맨 처음보다 뒤쪽에 붙는 비율이 높다. 첫소리 ㄹ이 '-로서', '-란', '-러' 같은 토씨(조사)나 씨끝(어미) 쪽에 많이 붙는 탓도 있고, 한자말에서 ㄹ을 꺼려서 ㄴ으로 바꾸어 적는 머릿소리 법칙(두음 법칙)의 영향도 있다. ㄹ로 시작하는 낱말은 '라디오', '르네상스', '라면'처럼 외래어이거나 쓰이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은 말이 많다.

[표 6] 첫소리 잦기와 낱말 처음 나오는 첫소리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 2〉)
첫소리 잦기 낱말 처음 잦기
ㄱ·ㄲ 123'6035 50'1490 40.57%
59'6893 15'4134 25.82%
ㄷ·ㄸ 87'3389 27'2316 31.18%
61'0211 5'8708 9.62%
42'9661 19'7464 45.96%
ㅂ·ㅃ 111'5506 20'6718 18.53%
ㅅ·ㅆ 78'5661 32'5939 41.49%
210'5587 70'1019 33.29%
ㅈ·ㅉ 76'8943 32'0117 41.63%
20'0266 8'8814 44.35%
4'8097 1'7924 37.27%
10'6679 4'0164 37.65%
9'8986 5'0764 51.28%
63'5299 20'5152 32.29%
합계 961'1213 314'0723 32.68%
[그림 11] 첫소리 잦기(파랑)와 낱말의 맨 처음에 나오는 첫소리 잦기(빨강)
[그림 11] 첫소리 잦기(파랑)와 낱말의 맨 처음에 나오는 첫소리 잦기(빨강)

  위의 표와 도표는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 2〉(김한샘, 국립국어원, 2005)의 말뭉치 통계에서 첫소리가 나오는 전체 잦기(파랑)와 그 가운데 말마디(어절) 처음에 나오는 잦기(빨강)를 셈하여 나타낸 것이다.주12 여러 첫소리들이 말마디의 맨 앞에 나오는 비율은 평균 32.68%인데, 첫소리 ㄹ의 잦기 가운데 첫소리 ㄹ로 낱말이 시작하는 비율은 9.62%밖에 되지 않는다.

  단순히 첫소리 잦기만을 따지면 첫소리 ㄹ은 ㅁ보다 1.42배 더 자주 나온다. 하지만 말마디의 맨 처음에 나오는 때는 첫소리 ㅁ이 ㄹ보다 3.37배 많다. 첫소리 ㅁ이 낱말 처음에 나오는 비율도 약 45.96%여서 평균(32.68%)보다 높다.

  글을 빠르게 치는 사람은 낱말의 앞 낱자를 칠 때에 뒤이어 칠 낱자가 있는 글쇠가 있는 쪽으로 손가락을 미리 움직여서 타자 속도를 높이는 요령을 부릴 수 있다. 공세벌식 자판은 왼손보다 오른손의 타수 비율이 적어서 오른손이 더 한가하므로, 홀소리나 받침을 치고 있을 때 첫소리가 있는 오른손 쪽에서 손가락을 미리 움직이는 요령을 부리기 좋다.

  하지만 낱말의 처음에 나오는 첫소리를 칠 때에는 손가락을 미리 움직일 틈이 적다. 글 치는 작업은 낱말의 첫 낱자를 침으로써 시작되고, 첫 낱자를 빨리 칠 수 있어야 뒤이어 나오는 낱자들도 빨리 이어서 칠 수 있다. 그러므로 낱말의 처음에 자주 나오는 첫소리는 그렇지 않은 첫소리보다 치기 좋은 자리에 놓을 필요가 있다.

  첫소리 ㅁ의 전체 잦기는 ㄹ보다 적지만, ㅁ으로 시작하는 낱말은 ㄹ로 시작하는 낱말보다 훨씬 많다. 그러므로 첫소리 ㅁ이 ㄹ보다 좋은 자리에 있으면 글 치는 속도를 높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낱말의 뒤쪽에 많이 나오는 첫소리 ㄹ은 타자 속도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 왼손 쪽에서 홀소리나 받침을 칠 때 오른손 쪽에서는 뒤이어 오는 첫소리 자리로 손가락을 미리 가져가는 요령을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소리 ㄹ이 ㅁ보다 자주 쓰이는데도 공세벌식 자판에서 1960년대부터 쭉 불편한 자리에 머물렀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은 수동 타자기가 거의 쓰이지 않아서 활자대 엉킴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첫소리가 낱말의 어느 쪽에 많이 나오는지에 따라 타자 속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를 수 있는 것은 수동 타자기 글쇠판에서든 전자식 글쇠판에서든 같다.

 

(5) 공세벌식 배열을 응용한 다른 세벌식 자판들은 어떨까?

  공세벌식 자판은 적지 않은 받침들을 윗글쇠를 눌러 넣지만, 공세벌식 자판을 응용한 다른 세벌식 자판들은 형편이 다르다. 갈마들이 방식주13을 쓰는 세벌식 자판(신세벌식 자판, 갈마들이 공세벌식 자판)과 모아치기 세벌식 자판은 다른 조합·전환 방법을 써서 윗글쇠를 쓰지 않고 한글 낱자들을 넣고 있다.

  요즈음의 세벌식 자판들 가운데는 받침을 넣을 때 윗글쇠를 쓰지 않기도 하고, 수동 타자기를 헤아리지 않고 만들어지기도 한다. 줄임말 기능을 쓰는 모아치기 자판에서는 이어치기 자판에서의 낱자 넣는 차례가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앞에서 이야기한 공세벌식 자판의 첫소리 ㄹ·ㅁ 자리는 모든 세벌식 자판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칙은 아니다. 다른 세벌식 자판들은 필요에 따라 첫소리 ㅇ·ㄴ·ㄷ·ㅎ·ㄱ·ㅈ 자리를 공세벌식 자판과 달리할 수도 있다.

[그림 12] 세모이 2016 자판
[그림 12] 세모이 2016 자판

  첫소리 낱자들을 더 자유롭게 배치한 모습은 모아치기 자판세모이 자판에서 볼 수 있다. 세모이 자판은 공세벌식 배열에 가까운 짜임새로 이루어졌지만, 윗글쇠와 비슷하게 전환 기능을 하는 글쇠가 다른 자리에 들어가고 이른바 치환 타법으로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조합함에 따라, 첫소리들의 자리가 많이 바뀌었다. 첫소리 ㅁ이 Y 자리에 들어갔고, ㄷ·ㄹ·ㅅ·ㅎ의 자리도 흔히 알려진 공세벌식 자판과 다르다. 모아치기 자판에서는 다른 글쇠를 한꺼번에 누르는 동작을 자주 해야 하므로, 모아치기를 헤아리지 않은 공세벌식 배열 논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세모이 자판에 비하면, 신세벌식 자판갈마들이 공세벌식 자판은 옛 공세벌식 자판의 첫소리 배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세벌식 자판과 갈마들이 공세벌식 자판은 기본 타자법으로 쓴다면 윗글쇠를 쓰지 않고 모아쓰는 한글을 모두 넣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윗글쇠 누르는 것에 신경 쓴 공세벌식 자판 짜임새에 꼭 얽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첫소리 배열에 얽힌 다른 요소나 이미 쓰이고 있던 배열과의 호환·연계 문제가 옛 공세벌식 자판의 첫소리 배열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그림 13] 신세벌식 P2 자판
[그림 13] 신세벌식 P2 자판

  신세벌식 자판에서 겹홀소리를 조합하기 위한 홀소리 ㅗ·ㅜ 등은 꼭 있어야 하는 요소이다. 그리고 겹닿소리(된소리)를 첫소리 ㄱ·ㄷ·ㅂ·ㅅ 자리에는 겹홀소리 조합용 홀소리가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조합용 홀소리는 ㄴ·ㅁ이나 거센소리 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신세벌식 자판은 처음 나왔을 때(1995년)부터 이미 쓰이던 공세벌식 자판(3-90)의 첫소리 배열에 맞추어 조합용 홀소리들을 I·O·P·/ 자리에 넣고 있다.

  신세벌식 자판의 첫소리 자리가 조합용 홀소리 자리와 얽혀 있다 보니, 첫소리 배열을 바꿀 수 있는 폭은 그리 넓지 않다. 그래서 첫소리 배열은 공세벌식 자판과 첫소리 배열을 거의 같게 맞추어서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이 신세벌식 자판을 수월하게 쓰게 하는 것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곤 한다. 여태까지 나온 신세벌식 자판들에는 ㅋ 하나만 아래로 내려와 있고, 나머지 첫소리들은 공세벌식 자판과 자리가 같은 첫소리 배열이 쓰이고 있다.

  공세벌식 자판과 달리 신세벌식 자판은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가 꽤 있다. 공세벌식 자판은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쓰더라도 거의가 오른쪽 윗글쇠가 함께 쓰이는 경우여서 타속이 늦춰진다. 그러나 신세벌식 자판은 홀소리와 받침을 바로 이어 치는 때에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쓰기도 하므로, 한글 낱자들을 잘 배치하지 않으면 왼손 2째 손가락의 피로도가 매우 높은 배열이 될 수 있다.

  신세벌식 자판에서 같은 글쇠를 거듭 눌러 다른 낱자를 넣는 것은 불쾌감이 더욱 클 수 있는 타자 동작이다. 같은 글쇠를 거듭 누를 때는 손가락의 근육·뼈·관절에서 같은 곳에 충격이 거듭 미친다. ㄲ·ㄸ 같은 겹낱자를 넣을 때는 치는 사람이 미리 의식할 수 있으므로, 치는 박자를 조절한더가나 하는 요령으로 손가락에 오는 충격을 줄여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낱자를 같은 글쇠를 거듭 눌러 넣을 때는 바쁜 마음에 박자 조절이 쉽지 않다. 오타가 났을 때에는 어느 낱자를 잘못 쳤는지 헛갈리기도 쉽고, 낱자를 잘 넣었을 때에도 잘못 친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기 쉽다.

  이를테면 ㅏ와 받침 ㅆ이 같은 자리에 놓았을 때에는 '갔-', '났-', '왔-' 등을 칠 때에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눌러 ㅏ+ㅆ을 넣어야 한다. 여기에다 씨끝 '-다가'가 붙어 '갔다가', '났다가', 왔다가'를 칠 때에는 또다시 ㅏ를 거듭 눌러야 한다. 이런 때에는 비슷하거나 똑같은 타자 동작으로 다른 낱자들을 넣은 것을 머릿속에서 잘 가리기 어려운 심리 문제가 더해진다. 겉으로 드러나는 타자 동작은 단순하지만, 이미 했던 타자 동작이 머릿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아서 그 뒤에 이어지는 타자 동작에서 실수할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에 같은 글쇠를 거듭 누르는 것에서 오는 손가락 충격과 더 복잡한 타자 행동주14이 더해져 불쾌감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공세벌식의 틀에서는 왼손 쪽의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가 많지 않은 짜임새 덕분에, 앞뒤로 1타씩 이어지는 타자 행동만 잘 헤아려도 꽤 괜찮은 배열로 엮을 수 있다. 첫소리 ㅁ 자리처럼 윗글쇠 누르기에 걸리는 특수한 때에나 2~3타 뒤의 타자 행동까지 헤아릴 필요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신세벌식 자판은 홀소리와 받침을 칠 때에 왼손가락 거듭치기가 잦은 짜임새이고, 한글 낱자가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공세벌식 자판보다 좁다. 이 때문에 신세벌식 자판을 만들 때에는 공세벌식 자판보다 타자 동작을 더 길고 더 세밀하게 따져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6) 요즈음에 쓰이는 공세벌식 자판을 수동 타자기에 붙인다면?

  공세벌식 자판은 1980년대부터 수동 타자기에 맞춘 특성을 조금씩 버리고 전자식 글쇠판에 더 맞게 배열이 바뀌는 진통을 겪었다. 그렇게 하여 3-90 자판과 3-91 자판이 나왔고, 이 두 자판을 바탕으로 하여 요즈음에도 개선안·응용안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공세벌식 자판을 다시 수동 타자기에 붙여 쓴다면, 전자식 기기에 맞추어 바뀐 배열 때문에 수동 타자기에서 쓸 때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 글쓴이가 생각해 본 것은 다음 3가지이다.

  • D→S(ㅣ+ㄴ)로 이어치는 타자 동작에 문제가 없는지
  • 겹받침을 얼마나 넣을지
  • 움직·안움직 글쇠 배치에 따른 기호 배치 (셈틀 자판과 같은 배열을 쓸 수 있는지)
  • 한글 수동 타자기가 얼마나 쓸모 있을지

1) D→S(ㅣ+ㄴ)로 이어치는 타자 동작

  홀소리 ㅣ가 영문 쿼티 자판의 D 자리에 들어간 공병우 수동 타자기는 3-90 자판이 나온 다음에야 만들어졌다. 이 타자기는 만들어진 대수도 적고, 오래 써 본 사람이 드물다. 그렇다 보니 D→S로 이어 치는 동작으로 ㅣ+ㄴ을 찍는 것이 어떠한지는 넉넉히 검증되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정보가 쌓여 있지 않다.주15
[그림 14] 3-90 자판과 비슷한 배열이 쓰인 1990년대의 공병우 타자기 자판 배열
[그림 14] 3-90 자판과 비슷한 배열이 쓰인 1990년대의 공병우 타자기 자판 배열

  셈틀(컴퓨터)에서 공세벌식 자판을 쓰고 수동 타자기로는 가끔 쓰는 사람은 괜찮겠지만, 수동 타자기를 주로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D→S로 이어지는 타자 동작의 어려움을 크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랜 동안 꾸준히 힘을 싣기 어려운 타자 동작은 글씨가 옅게 찍히거나 오타를 더 자주 내는 원인이 되곤 한다. 요즈음의 공세벌식 배열을 써서 수동 타자기를 실무용으로 보급하고자 한다면, D→S로 이어지는 타자 동작이 훈련을 통하여 적응할 만한 동작인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2) 겹받침을 얼마나 넣을지

  공세벌식 자판에 홑받침만 들어 있다면, 기계식 수동/전동 타자기에서 쓸 때에 겹받침 넣기가 번거롭다. 공병우 타자기에서 받침은 초점이 움직이지 않는 안움직 글쇠에 들어가므로, 홑받침을 한 자씩 넣어서 겹받침을 찍으려면 사이띄개를 알맞게 눌러 자리를 맞추어 주는 군동작이 필요하다.주16 그 때문에 공세벌식 자판은 수동 타자기에 쓰일 때부터 자주 쓰이는 겹받침을 글쇠에 따로 넣는 길을 걸어 왔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한글 수동 타자기가 함께 쓰이고 있어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타자기·셈틀 겸용 배열이 있으면 좋다는 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윗글 자리에 들어간 겹받침이 따로 들어가면 왼손가락의 타자 동작을 간결해지는 이점도 있다. 그 때문에 겹받침이 따로 들어가던 수동 타자기 한글 자판의 특징이 셈틀에서 쓰이는 공세벌식 자판에도 이어졌다.

[그림 15] 3-90 자판 (5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그림 15] 3-90 자판 (5째 세대 공세벌식 배열)
[그림 15] 3-90 자판 배열표 (한글문화원 배포 자료) (한글 3벌식 IBM-3-90 글자판)
[그림 15] 3-90 자판 배열표 (한글문화원 배포 자료)

  3-90 자판은 1990년에 한글문화원이 3-89 자판의 개선판으로 보급한 공세벌식 자판이다. 영문 자판의 기호들을 모두 담은 것과 기호 배열을 영문 자판과 꽤 비슷하게 맞춘 것은 먼저 나온 공세벌식 자판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이었다.

  3-90 자판에 들어간 겹받침 7개(ㄲ, ㄶ, ㄺ, ㄻ, ㅀ, ㅄ, ㅆ)는 셈틀에서 쓰이는 공세벌식 자판에서 영문 자판의 기호들을 모두 담았을 때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겹받침 수이다. 이보다 겹받침을 많이 넣으면 기호를 빼야 하고, 이보다 기호를 더 넣으려면 겹받침을 빼야 한다. 수동 타자기에서는 기호가 많고 겹받침이 적으면 겹받침을 넣을 때의 군동작이 늘 수 있고, 기호가 적고 겹받침이 많으면 모자란 기호 때문에 타자기의 실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호와 겹받침 수의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는데, 그 균형 잡기의 예를 3-90 자판이 보여 주었다.

3) 움직·안움직 글쇠에 따른 기호 배치

[그림 16] 3-2015P 자판 (갈마들이 공세벌식)
[그림 16] 3-2015P 자판 (갈마들이 공세벌식)

  한글 배열만 생각한다면, 갈마들이 공세벌식 자판인 3-2015P 자판은 1940~1950년대의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의 설계 방식을 따를 때에 수동 타자기 자판으로도 쓸 수 있는 꼴이다.주17 Q·W·A·S·Z·X 자리에 3-90 자판에 들어간 겹받침 6개를 우선하여 둘 수 있고, 기호를 빼거나 3단 활자를 쓰게 한다면 겹받침을 더 두는 배열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갈마들이 입력 방식은 수동 타자기에서는 쓰지 못하므로, 윗글 자리에 들어간 받침들은 윗글쇠를 눌러 넣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골치 아플 수 있는 문제가 끼어 있다.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의 설계 방식을 따른다면, 홀소리(갈색)와 받침(빨강) 과 오른쪽에 들어간 조합용 홀소리 ㅗ·ㅜ(주황)는 안움직 글쇠에 들어간다. 그러면 그 낱자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 기호들(! @ # $ % ^ & ( : ; ? 등)도 안움직 글쇠에 있어서 이들을 넣을 때마다 사이띄개를 알아서 눌러 주어야 하는 군동작이 필요하다. 물음표(?)나 느낌표(!)는 자주 쓰이는 문장 부호인데, 수동 타자기에서 이 기호들을 편하게 넣고 싶다면 움직 글쇠 자리로 옮기는 것을 생각해야 할 수 있다.

  3째 세대 배열(그림 1)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는 기발한 방법으로 움직·안움직 글쇠 문제를 풀고자 했다. 더 정교하게 움직이는 움직·안움직 글쇠 장치를 넣었고, 받침 자리에 들어간 로마자는 옆으로 휜 활자로 찍었다. 이로써 같은 글쇠 자리라도 받침이나 조합용 홀소리 찍을 때는 안움직 글쇠로서 가늠쇠 초점이 움직이지 않게 하였고, 로마자나 기호를 찍을 때는 움직 글쇠로서 초점이 먼저 움직이게 하였다. 이렇게 잘 설계된 한글 타자기를 쓴다면, 치는 사람은 기호가 움직 글쇠와 안움직 글쇠 가운데 어디에 들어갔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편의를 높이는 정교한 설계가 제품 만드는 과정을 복잡하게 하고 생산비와 고장률을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 타자기를 험하게 다루는 환경에서 옆으로 휜 활자는 깨져 나가기 쉽다. 그래서 다음 4째 세대 배열(그림 2)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는 옛 방식대로 간단한 움직·안움직 글쇠 설계를 따르는 방식으로 되돌아 갔다. 그 때문에 로마자를 오른쪽으로 두 글쇠씩 옮겨 받침 자리에 들어가지 않게 한 한·영 겸용 배열이 나왔다.

  3째 세대 배열을 쓴 공병우 한·영 타자기와 같은 꼴로 수동 타자기를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어느 기호를 어느 자리에 넣을지에 대한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 하지만 설계가 정교해짐에 따라 활자 깨짐, 오작동주18이 잦아지고, 휘어진 활자 때문에 글씨가 희미하게 찍힐 수 있는 것은 달게 여겨야 할 일이다. 그나마도 그 설계 기술을 쓰지 못하는 때에는 셈틀에서보다 기호 넣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수동 타자기의 기능 한계는 궁리하고 개발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서 개발하지 않는다면 기계 기술 수준은 제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영문 타자기를 개조하여 실험을 거듭한 끝에 공병우 타자기가 처음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공병우 타자기를 다시 만드는 일도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

4) 한글 수동 타자기가 얼마나 쓸모 있을지

  한글 수동 타자기는 1996년까지 새 제품이 나왔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만들어진 한글 수동 타자기는 흔히 '두벌식 타자기'라고 불린 종류였는데, 실제로는 '두벌식 자판과 비슷한 배열을 쓴 네벌식 타자기'였다. 이 타자기는 두벌식 자판과 비슷하게 보이는 배열 덕분에 사람들이 작동법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받침 전환 기능을 겸하는 윗글쇠를 새끼 손가락으로 너무 자주 눌러야 해서 바른 타자법으로 오래 쓰기가 어려웠다.

  그에 비하여 공병우 수동 타자기는 타자 동작이 간결하고 손가락 타수 균형이 알맞아서 숙달한 사람이 오래도록 빠르게 글을 치기 좋다. 하지만 공병우 타자기는 제품이 나온 때에 따라 자판 배열이 달랐고, 셈틀에서는 또 다른 공세벌식 배열들이 쓰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요즈음에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이 꽤 있더라도 아무런 연습 없이 공병우 타자기를 빠르게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옛적에 공병우 타자기를 잘 썼던 사람도 많이 쓰던 것과 다른 타자기 배열이나 요즈음 배열을 쓰는 데에 적응하는 데에는 크든 작든 어려움이 따른다.

  어찌어찌 하여 배열 문제를 잘 풀어 내더라도, 수동 타자기의 실용성이 확 높아지지는 않는다. 한글 수동 타자기는 영문 수동 타자기보다 불리한 면이 있고, 수동 타자기로서 불리한 면도 있다.

  • 셈틀과 수동 타자기에서 똑같은 한글 배열이 쓰이도록 실제로 구현된 예가 아직 없음
  • 한글 타자기보다 수요가 더 많았던 영문 수동 타자기 공장이 이미 문을 닫음
  • 한글 수동 타자기 생산이나 개발로 이익을 얻을 만한 시장 상황이 되지 못함
  • 글을 칠 때의 소리가 너무 큼
  • 수동 타자기 타속을 뛰어넘는 전자 입력 기술이 발달함

  셈틀과 수동 타자기에서 쓰이는 한글 배열에서 겹받침 하나라도 자리가 다르다면, 두 기기에서 같은 한글 자판이 쓰이는 경우가 아니다.주19 한글문화원에서 내놓은 3-91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이 셈틀, 수동/전동 타자기의 한글 배열 통일을 목표로 하였지만, 배열도만 있고 타자기 실물은 선보이지 않아서 어떤 타자기 설계 방법을 따르면 좋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 지난날에 한글문화원에서 내세웠던 '기종 간 한글 자판 통일'은 아직까지 현실이 아닌 이론에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다.

  수동 타자기를 쓸 때의 묵직한 손맛, 요란한 타닥타닥 소리, 덜컹거림은 처음 겪어본 사람에게 흥미로운 인상을 남길 만하다. 하지만 몇 시간 동안 수동 타자기로 죽도록 글쓰기 작업을 해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음에는 윗글쇠를 누를 때 활자대가 위로 올라가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일지 모지만, 이내 손에 힘이 빠지고 나면 셈틀 자판으로 바꾸어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질 것이다. 처음에는 정겹게 들릴 수 있는 타닥타닥 소리도 자꾸 듣다 보면 살인 충동까지 일으킬 수 있다.주20

  수동 타자기는 요즈음의 업무 환경에도 맞지 않다. 노트북 PC마저도 무겁다며 더 가벼운 것을 찾는 마당에, 더 무거운 수동 타자기로 시끄러운 소리까지 내면서 통신 기능도 없이 더 느리게 업무를 처리하는 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앉은 자리에서 짧은 글을 찍는 때가 많은 곳에서도 기계식 수동 타자기보다 글씨가 고르게 찍히는 전자식 전동 타자기를 쓰는 형편이다. 수동 타자기보다 훨씬 빠른 타속을 내는 전자식 속기 자판까지 생각한다면, 수동 타자기가 업무 기기에서 밀러난 것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전쟁이나 재난으로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수동 타자기를 꺼내기보다 앉은 자리에서 전자 기기를 충전할 방법을 찾는 쪽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형편이다.

  이제는 한글 수동 타자기를 교육용, 취미용, 정보 보안용주21 기기 쪽으로 범위를 좁혀서 수요를 찾는 쪽이 더 현실성이 있을 것이다. 그런 작은 수요를 채워 갈 수 있어야 수동 타자기의 쓸모와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늘어서 특수한 상황에서 빛을 보는 것도 바랄 수 있다. 이제 한글 수동 타자기는 웬만해서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이 관심을 쏟을 만한 때가 지났으므로, 개개인의 필요나 특수한 일에서 생기는 작은 수요에 주목하여 개발·설계 문제에 다가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참고한 자료

  • 한글문화원 3-90 자판 배열표
  • 2011.9.1~10.14 국회 회의록 낱소리 분석, https://pat.im/847
  • 신세기, 「천만 자모 빈도 분석표」, http://cafe.daum.net/3bulsik/6CY8/345
  • 신세기, 세모이 자판 배열표, 신세기 연구소 (http://ssg.wo.tc/220239514856)
  •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대원사, 1989 (첫판 제5쇄, 박은곳:삼정인쇄, 1990.11.20 발행)
  • 김한샘, 〈현대 국어 사용 빈도 조사 2〉, 국립국어원, 2005주22
〈주석〉
  1. 공병우 타자기 자판에 받침 ㄲ이 따로 없다면, 받침 ㄱ을 두 번 쳐서 넣는다. 공병우 타자기에는 받침이 안움직 글쇠에 들어가 있어서 받침을 치고 나면 가늠쇠의 초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이띄개(필요하면 되걸음쇠도)를 써서 초점을 움직인 다음에 겹받침의 뒤쪽을 바른 자리에 찍을 수 있다. 그러므로 받침 ㄱ 글쇠을 두 번 쳐서 ㄲ을 만드는 때에도 같은 글쇠를 곧바로 두 번 누르지는 않는다. back
  2. 1980년대처럼 전자식 전동 타자기와 기계식 수동 타자기가 함께 쓰이던 때도 거쳤으므로, 전자식 기기가 나왔다고 하여 수동식 기기를 배려한 자판 배열에서 바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back
  3. 그래도 공세벌식 자판은 과감하게 배열을 바꾸어 간 경우이다. 1969년에 전신 타자기 자판 배열로 처음 나와서 오늘날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표준 두벌식 자판(KS X 5002)은 바탕이 된 한글 배열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1982년에 정보 처리용 기기의 표준 한글 배열을 다시 정하면서 두벌식 표준 배열을 고치거나 아예 새로운 표준을 만들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누가 주도하여 길게 연구하지 않고 전신 타자기에서부터 이미 쓰이고 있는 배열을 그대로 쓰는 쪽으로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얽힌 글: 두벌식 표준자판 확정 과정의 문제점, https://pat.im/621) back
  4. 국회 회의록은 대화가 많다 보니 글말보다 입말의 비중이 높고, 국회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자주 입에 오르는 낱말이 낱자 잦기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리 길지 않은 동안의 회의록을 분석했으므로, 여기에서 쓴 국회 회의록은 우리말을 고르게 분석하기 좋은 말뭉치는 아니다. 다만 국회 회의록은 언제나 속기록으로 작성되는 기록물이고, 특수성을 띤 공간에서 오간 대화에서 통계상으로 이런 경향이 나올 수도 있음을 헤아려서 보면 좋을 것이다. back
  5. 그림 8을 뽑은 분석에서는 공세벌식 자판으로 왼손 쪽 Z,X,C,V 글쇠를 이른바 공 운지법으로 친다고 가정하였다. 그러면 받침 을 ㅕ·ㅣ와 같은 손가락으로 넣게 되어여 왼손 3째 손가락 거듭치기가 더 잦아진다. 쿼티 자판을 쓰는 보통 운지법으로 친다면, 공세벌식 자판의 왼손 3째 손가락 거듭치기는 그림 8보다 줄어든다. back
  6. 왼손으로 홀소리를 넣은 다음에 받침이나 기호를 넣으려고 윗글쇠와 왼손 쪽 일반 글쇠를 함께 누르는 때는 왼손가락 거듭치기에 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오른손으로 윗글쇠를 치는 동안 잠깐이나마 왼손가락이 쉴 수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볼 때에는 공세벌식 자판은 왼손 2째 손가락 거듭치기가 거의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인용한 국회 회의록 통계 분석 자료에서는 윗글쇠를 누르며 치는 동작이 매우 빠르게 이어진다고 가정하고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를 셈하였다. back
  7. 된소리 낱자를 윗글 자리에 둔 덕분에 '익기'와 '이끼' 등을 잘 가려 넣을 수 있다. back
  8. 예를 들어 '꺾꽂이'는 왼손가락만 써서 닿소리를 넣는 변칙 타자법으로 칠 때에 빠르게 넣기 좋다. back
  9. 공세벌식 자판에서도 홑받침을 하나씩 넣어서 겹받침을 조합할 수 있다. 하지만 널리 쓰이던 공세벌식 자판들(3-90, 3-91 등)은 겹받침을 조합하기 좋게 홑받침들이 놓여 있지 않아서, 윗글 자리에 따로 들어간 겹받침은 윗글쇠를 눌러 한꺼번에 넣는 사람이 많다. 신세벌식 자판이나 갈마들이 공세벌식 자판은 점점 더 홑받침으로 겹받침을 조합하기 좋은 배열로 개량되고 있다. back
  10. 3-90 자판을 비롯하여 사무용으로 볼 수 있는 공세벌식 자판에는 6개 겹받침(ㄲ, ㄶ, ㅄ, ㄺ, ㄻ, ㅀ)이 글쇠 배열에따로 들어 있다. 3-91 자판처럼 문장 입력용으로 볼 수 있는 공세벌식 배열에는 더 많은 겹받침(ㄳ, ㄵ, ㄽ, ㄾ, ㄿ)이 들어가기도 한다. back
  11. 공세벌식 자판도 '끝판', '곧바로', '삯바느질', '숯불' 같은 말들을 칠 때에는 오른손 5째 손가락을 거듭 쓴다. 그러나 이 말들은 풀이씨의 씨끝에 비하면 잦기 비율이 낮은 편이다. back
  12. ㄲ·ㄸ·ㅃ·ㅆ·ㅉ의 잦기를 ㄱ·ㄷ·ㅂ·ㅅ·ㅈ의 값에 각각 더했다. back
  13. 신세벌식 자판 등에서는 벌이 다른 두 낱자(가운뎃소리·끝소리 또는 첫소리·가운뎃소리)가 짝지어서 같은 글쇠에 들어갈 수 있다. 갈마들이 방식은 모아쓰는 한글 낱내를 넣는 차례에 맞추어 같은 글쇠를 누르더라도 때에 따라 다른 낱자가 들어가게 하는 입력 방법을 가리킨다. back
  14. '왔-'를 칠 때처럼 오른손가락으로 ㅗ를 치는 동작에 낄 때에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왼손 2째 손가락을 거듭 누르는 동작이 더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back
  15. 수동 타자기에서 E→S는 두 글쇠의 높낮이 차이의 덕을 조금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D→S는 글쇠 높낮이가 같아서 또박또박 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같은 동작을 거듭할 때에는 옛 공세벌식 배열처럼 R→D 또는 R→S로 ㅣ+ㄴ을 치는 동작이 수월하다. back
  16. 이 군동작 문제는 거의 모든 한글 타자기들에서 겪는 문제였다. 사이띄개를 뒷걸음쇠 등과 조합하여 반 칸을 띄려다 보면 군동작이 더욱 복잡해진다. 다른 한글 타자기에서 ㅖ나 ㅒ가 따로 없다면 ㅕ+ㅣ, ㅑ+ㅣ 등으로 만들어 넣는 과정에서 군동작이 들어갔다. 그래도 공병우 수동 타자기의 군동작은 다른 한글 타자기들보다 적은 축에 들었다. back
  17. 수동 타자기에서는 갈마들이 입력 방식을 쓰지 못하므로 옛 입력 방식으로 써야 한다. back
  18. 특히 받침 자리에 들어간 로마자를 넣을 때에 초첨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데, 오래도록 부품 상태를 잘 관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잘못 작동할 확률이 높다. 정교하게 만든 것이 오히려 덫이 되어 오작동 확률은 더 커진다. back
  19. 기호 배열은 필요에 따라 조금 다른 꼴을 생각해도 될 요소이다. 타자기와 셈틀 글쇠판의 글쇠 수가 같지 않을 수 있고, 셈틀에서 개발용으로 쓰이는 기호까지 타자기에 억지로 넣을 필요는 없다. 수동 타자기에서 자주 쓰이는 기호를 너무 약한 손가락으로 넣지 않게 하는 것도 살펴야 할 문제이다. back
  20. 소음 문제를 떠올리면, 의회나 법원에서 속기록을 만들 때 수동 타자기는커녕 흔히 쓰이는 셈틀 글쇠판도 쓰지 않는 까닭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back
  21. 2013년에 러시아 연방경호국에서 기밀 문서를 타자기로 작성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위조한 문서를 걸러 낼 필요가 있는 정보 기관에서는 수동 타자기를 요긴하게 쓰일 만하다. 전자 결재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인감 도장이 쉽사리 사라질 수 없는 것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 back
  22. 이 자료의 출처와 이용 방법은 신세기 님이 신세벌식 카페에 올리신 설명(http://cafe.daum.net/3bulsikmini0A0/JYgd/22)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back
글 걸기 주소 : 이 글에는 글을 걸 수 없습니다.

덧글을 달아 주세요

  1. 신세기 2015/11/30 12:5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안녕하세요? 세모이 자판을 이렇게 분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공세벌식에서 ㄹ과 ㅁ의 위치가 y와 i인 이유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ㄹ 자리와 시프트 키의 사용이 이렇게 연관이 있다는 것을 크게 생각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자세히 말씀해주시니 이제야 이해가 명확하게 됩니다... 좋은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세요.

    • 팥알 2015/12/01 12: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공세벌식의 ㅁ과 ㄹ 자리가 놓인 까닭을 그 동안 막연하게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하여 얻는 편익이 얼마나 큰지는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신세기님께서 꽤 큰 말뭉치 분석 자료를 공개해 주신 덕분에 이제는 더 깊은 데까지 따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세벌식 자판은 4줄에 걸친 한글 배열이 복잡한 대신에 입력 방식과 배열 짜임새의 덕을 보아서 타자 동작은 참 단순합니다.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을 오래 쓴 사람일수록 공세벌식을 응용한 자판이나 다른 한글/영문 자판을 쓸 때의 고충이 잘 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설계 원리가 응용 자판에도 배열 호환을 핑계로 익숙한 공세벌식 배열을 강요하려 드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기도 합니다. 저도 공세벌식 자판을 오래 썼던 경우여서, 다른 자판들의 타자 동작들을 이제 눈을 떠 간다는 기분으로 한 걸음씩 알아 갈 필요를 느끼고 있습니다.

  2. 세벌 2015/12/13 08: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한글박물관에 다녀왔습니다.
    세벌식 타자기도 있고 속기 타자기도 있던데... 컴퓨터에서는 두벌식이 표준이니까 그냥 쓰라는 건지 어쩌라는 건지 설명이 분명하지 않음을 느끼고 왔네요...
    팥알 님의 글이 잘 정리되어서 한글박물관에 들어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 팥알 2015/12/13 18:0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침부터 바빠서 글을 고치고 한참 뒤에야 답글을 답니다.

      저도 한글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을 보았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이 힘을 보탠다면 세벌식 자판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이나 상설 전시 공간을 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올린 글이 그런 데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기쁜 일입니다.

      저는 주위 사람들이 세벌식 자판에 관심이 없으면 그러려니 합니다. 좋은 것은 혼자 쓰고 싶어하는 욕심꾸러기여서요.^^

  3. ㅎㅎ 2021/04/27 00:3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근데 초성을 오른쪽으로 배치해서 타자기에서 덜 꼬이게 했다는건 활자대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여져 있던건가요? 어떤 원리로 오른쪽으로 해서 엉킴이 줄어든 건가요?

    • 팥알 2021/04/27 10: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기계식 타자기에서 보면 활자대가 부채꼴 비슷한 모양을 이루며 활자들이 붙어 있습니다. 영문 타자기에 들어가는 활자는 직사각형입니다. 하지만 한글 타자기에 들어가는 한글 활자는 직사각형인 것을 보기 어려운데, 낱자가 찍히는 자리에 맞추어 위/아래가 휘어 있습니다. 낱자가 찍히는 곳에 맞추어 깎아 놓은 것 같은 모습입니다.

      기계식 한글 타자기 활자들을 잘 보면 첫소리 낱자가 새겨진 활자 부분은 오른쪽에 치우쳐 있고, 다음에 오는 낱자들이 새겨진 부분은 왼쪽에 치우치게 놓여 있습니다. 이는 움직글쇠를 누를 때마다 둥글대가 한 발짝 움직이는 것에 맞추어 한글 모아쓰기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오른쪽에 치우친 활자를 왼손 쪽에 먼저 치게 되면, 박자 조절을 잘 하더라도 그 다음에 오른손 쪽에서 들어올 왼쪽에 치우친 활자와 서로 닿을 확률이 더 높아집니다.

      활자/활자대 엉킴은 활자대만이 아니라 활자끼리 스치고 부딪칠 때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계식 타자기에서 활자대가 초점에 들어갔다면, 초점에서 빠져 나올 시간도 필요합니다. 전산 기기에서는 0.0001초 차이라도 기기가 글쇠 눌린 차례를 바르게 알아차리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지만, 기계식 타자기에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차로 글쇠를 눌러야 엉킴을 피할 수 있습니다. 0.0001mm 차이 때문에라도 활자나 활자대가 엉키면 오타나 작업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첫소리를 오른쪽 글쇠에 넣는 한글 배치가 왼쪽/오른쪽 활자들이 서로 닿을 확률을 줄일 수 있게 활자들의 거리 차이를 벌어 주는 구실을 합니다.

      여기에다 공병우 타자기는 쌍초점을 쓰는 것에 따른 이점이 더 있습니다.

      사진과 그림을 함께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는데, 아직 딱 맞게 올려 놓은 그림이 없네요.

  4. 세벌 2021/04/28 16: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쌍초점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 보시면 도움될 겁니다. 글과 그림이 함께 있어요.

    https://sebuls.blogspot.com/2021/04/korean-english-typewrit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