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이후의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들 - (10) 3-2011 / 3-2012 자판

1)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상황

  1995년 이후에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환경은 큰 희망이 보이지 않았지만 최악으로 치닫지도 않았다. 최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1995년 이후에 주류 운영체제로 떠오른 윈도우(Windows)가 3-90 자판 및 3-91 자판에 대한 지원을 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맥 OS와 리눅스 등에서 3-90 자판 및 3-91 자판을 지원하는 풍토가 마련된 것도 윈도우의 영향이 없지 않았다.

  2003년에는 한글문화원(원장: 송현)이 다시 설립되었다. 한글문화원은 공세벌식 자판에 얽힌 여러 문제들을 주도해서 풀어 나갈 단체로 한때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2006년에 완성된 한글문화원 그물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하여 운영진과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의 소통이 시작된 뒤에 이른바 '한글문화원 사태'로 불리는 뜻밖의 논란을 겪으며 기대를 안고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한글문화원 그물누리집 모습 (2006~2018)
[그림 10-1] 한글문화원 그물누리집 (2006~2018)

  인터넷이 대중 매체로 자리잡은 2000년대는 1990년대보다 새로운 정보와 기술이 빨리 전달되기 좋은 환경이었다. 여러 PC 통신망들로 나뉘어던 정보통신 매체는 인터넷(internet) 또는 웹(web)으로 한데 묶이고 있었고, 한글을 다루는 프로그램 기술도 지난날보다 사람들이 다가가기 쉬운 쪽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쓰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던 때였으므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의 비율은 줄더라도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의 수가 늘어날 기회는 될 수 있었다. 3-90 자판처럼 익히기 쉽고 실용성이 높은 배열을 앞세웠다면, 2000년대에도 공세벌식 자판이 다시 도약하는 분위기가 펼쳐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윈도우 환경에서 공세벌식 자판을 접하는 사람들은 3-90 자판에 관심을 두지 않고 '최종'이 강조된 이름(세벌식 최종)으로 알려지는 3-91 자판을 먼저 바라보고 있었다. 2000년대에는 3-90 자판을 쓰다가 3-91 자판으로 바꾸거나 어렵사리 3-91 자판을 곧바로 익힌 사람들의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3-91 자판을 권하는 모습이 늘었다. 겹받침과 기호 자리가 어려운 3-91 자판을 권하는 것은 공세벌식 자판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길이었다.

  3-90 자판보다 어려운 공세벌식 자판을 내세웠을 때의 결과는 1980~1990년대에 겪어 본 일이기도 했다.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표준 두벌식 자판에 유리한 외부 환경이 공세벌식 자판을 보급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고 여길 수 있었지만, 더 어려운 배열을 권하면서 공세벌식 자판이 잘 보급되지 못하는 까닭을 다른 데에서 찾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름난 고집쟁이였던 옛 한글 문화원의 원장 공병우도 3-91 자판을 주로 보급하려던 고집을 꺾고 3-90 자판을 권장하는 쪽으로 돌아서야 했던 일이 2000년대에는 교훈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1990년대까지는 타자기에서처럼 컴퓨터 환경에서도 공세벌식 자판이 가장 빠른 속도를 내는 일반용 한글 자판일 것이라는 믿음이 많이 퍼진 덕분에 공세벌식 자판을 기꺼이 익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표준 두벌식 자판으로도 꽤 빠른 타자 속도를 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어 공세벌식 자판을 좋게 보던 믿음에 차츰 금이 가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채움 문자를 따로 넣는 방법으로 두벌식 자판으로도 옛한글을 모두 조합하는 방안이 마련되었으므로, 옛한글처럼 특수하게 여겨지던 영역에서 공세벌식 자판을 꼭 써야 할 까닭을 찾기도 마땅하지 않게 되었다.

  공세벌식 자판은 흔히 쓰이는 표준 두벌식 자판의 아쉬운 점을 파고드는 대안 자판의 성격도 띠어 왔다.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더 나은 한글 자판에 관심이 높은 편이므로, 조금이라도 더 좋아 보이는 한글 배열이 있으면 다들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리 없었다. 3-90 자판보다 나은 점이 3-91 자판의 한글 배열도 3-90 자판을 쓰다가 3-91 자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생기는 까닭들 가운데 하나였다.

  공세벌식 자판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공세벌식 자판'을 종류를 가리지 않고 '세벌식 자판'으로 묶어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바라는 공세벌식 자판의 모습은 3-90 자판을 쓰는지 3-91 자판을 쓰는지에 따라 엇갈리고 있었다. 3-90 자판처럼 영문 자판과 비슷한 기호 배열도 쓰려면 겹받침 수를 제한해야 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3-91 자판이 서서히 주류로 떠오른 뒤에는 겹받침 때문에 배열 통합에 이르는 길이 험난해지고 있었다.

  전자 기기가 흔히 쓰이는 시대를 맞이한 2000년대에는 한글 자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높이도 더 쉽고 더 편리한 것을 바라는 쪽으로 높아져 있었다. 1980~1990년대에는 한글 자판 전문가들도 한글 자판을 써 본 시간이 길지 않을 수 있었지만, 2000년대에는 일반인들도 컴퓨터 환경에서 한글 자판을 오래 쓴 경우가 흔해져서 일반인의 경험과 지식을 얕잡아 보다가 큰 코 다칠 수 있었다.

  그런 점들을 헤아린다면, 2000년대의 공세벌식 자판은 안정을 꾀할 형편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큰 사건이 없어서 평온해 보일 수 있었지만, 윈도우를 통하여 '사실상의 표준화'를 이룬 3-9× 자판들에 기대던 공세벌식 자판은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었다.주1 비표준/비주류 한글 자판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으려면 새로 익히는 사람이 꾸준히 나와야 했지만, 공세벌식 자판을 새로 익히려는 사람들은 3-90 자판과 3-91 자판 가운데 어느 것을 익혀야 할지부터 갈등을 겪을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영문 자판과 기호 배열이 비슷한 3-90 자판을 내세우는 것으로 두드러진 보급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더 나은 한글 배열을 좇아 다른 대안으로 옮기는 사람이 생기던 3-90 자판을 2000년대 이후에도 내세우는 것이 좋은 해결책은 아니었다. 새로 익히는 사람들과 이미 쓰던 사람들의 고민 거리를 함께 줄이려면, 모험을 해서라도 3-9× 자판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통합할 수 있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는 공세벌식 자판의 개선안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 1940년대부터 배열 수정 작업이 숱하게 되풀이되었던 공세벌식 자판 역사에서 3-95 자판안이 나온 1995년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실무에 쓸 수 있는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이 나오지 않은 것이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실용성을 띠는 개선안이 없는 것 때문에 공세벌식 자판(3-9×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마땅한 비교 대상이 없어서 쓰고 있던 배열에 낀 문제들을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하고 생각이 굳어 갈 수 있었다.

  2000년대의 한글문화원은 2010년에 그물누리집(http://www.moonhwawon.ye.ro)에서 전화기에서 쓸 세벌식 자판을 제안한 적은 있었지만, 컴퓨터에서 쓸 공세벌식 자판의 개선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한글문화원의 밖에서도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하는 활동에 관심을 두거나 깊이 뛰어드는 모습을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2010년대를 맞은 시점에서는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하는 일에 모두가 손을 놓고 있었다고 여길 수 있었다.

  한때는 공세벌식 자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공세벌식 자판의 아픈 데를 꼬집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용기와 각오가 필요할 만큼 쉽지 않은 일로 보이기도 했다. 일반 사용자들끼리 개선안을 연구하고 토론을 벌이는 모습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비판이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부를 위험은 어느 때나 있었다. 3-91 자판을 '최종'판으로 여기던 사람들의 뜨거울 수도 있는 반응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쯤에는 오히려 너무 가라앉는 것을 걱정할 수 있을 만큼 분위기가 꺾이고 있었다. 2000년대에 쌓인 경험과 정보가 2010년대에 3-201× 자판들로 이어진 공세벌식 자판 개선 작업에 직접 큰 도움이 되기는 어려웠지만, 기대감이 낮아지고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새로운 방안을 논의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었다.

  1990년대에 PC 통신망을 통하여 알려진 안종혁 순아래 자판이나 3-95 자판안처럼, 정보를 공유하며 새로운 길을 찾다 보면 그 정보를 본 다른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개선안이 한 번 나와서 생각의 물꼬가 트이면, 목표를 달리하는 개선안들이 봇물 터진 듯 나올 수도 있다. 여러 사람이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을 각기 만들며 다양한 생각을 쏟아 내는 것은 지난날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모습은 아니었는데, 2000년대까지 미리 겪어 보지 못한 일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이나 갈등을 마주할 가능성은 있었다.

2) 3-2011 자판

  팥알(글쓴이)이 제안한 3-2011 자판은 3-91 자판에 대한 개선안이다.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그림 10-2]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3-2011 자판 (2011.12.11)
[그림 10-3] 3-2011 자판

  3-2011 자판은 글쓴이가 쓰고 있던 3-91 자판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문장용 배열 수정안이다. 사무용 배열과의 '통합'이나 '통일'을 곧바로 이루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ㅓ · ㅐ · ㅒ 자리 등에서 사무용 배열인 3-2012 자판과 그 뒤의 3-201× 자판들에서 일관성을 지킨 배열 특징이 있다.

  3-2011 자판에서 이루려 한 목표는 아래처럼 간추려 볼 수 있다.

  • 받침 배열은 대체로 3-91 자판을 따름
  • 드물게 쓰이는 겹받침을 줄이고 기호를 더 넣음
  • ㅓ · ㅐ · ㅒ의 잦기 균형을 맞추고 자리를 안정시킴
  • 영문 쿼티 자판과 자리가 같은 기호 수를 늘림
  • 기호 배열의 실용성을 높힘

① 겹받침 ㄽ · ㄾ · ㄿ을 뺌

  3-91 자판에는 ㄽ · ㄾ · ㄿ이 따로 들어 있다. 이 겹받침들은 일부러 추려서 연습하지 않으면 손에 익지 않을 만큼 드물게 쓰여서, 정작 이 겹받침들을 넣어야 할 때에는 어느 자리에 있는지가 떠오르지 않아서 당황할 수 있다.

  3-9× 자판에서 ㄽ · ㄾ · ㄿ은 ㄹ+ㅅ(wq), ㄹ+ㅌ(wW), ㄹ+ㅍ(wQ)으로 조합해서 넣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이 겹받침들이 따로 들어가는 것은 글쇠 자리를 낭비하는 일로 보고, 3-2011 자판에서는 ㄽ · ㄾ · ㄿ을 뺐다. 이 겹받침 3개를 빼서 배열을 익힐 때의 짐을 줄이고 기호를 더 넣기 위함이다.

② ㅓ · ㅐ · ㅒ 자리

  3-87 자판까지는 공세벌식 자판의 R 자리에 홀소리 ㅣ가 있었다. 하지만 3-89 자판부터는 ㅐ가 R 자리에 들어가고, ㅣ는 D 자리에 들어가고 있다.

  ㅣ는 ㅏ 다음으로 한글에서 2번째로 많이 쓰이는 홀소리이다. 아래는 세벌식 사랑 모임에 있는 천만 자모 빈도 분석표(신세기, https://cafe.daum.net/3bulsik/6CY8/345)에서 홀소리 낱자들의 잦기를 정리한 표이다.

[표 10-1] 한글 홀소리 낱자들의 잦기 · 비율 · 순위 (신세기, 천만 자모 빈도 분석표)
홀소리
(홑·겹 낱자)
잦기 비율 순위 홀소리
(홑낱자)
잦기 비율 순위
96'9215 22.07% 1 103'8739 22.30% 1
18'7609 4.27% 9
19'1735 4.12% 9
3'0549 0.70% 14 3'0549 0.66% 11
834 0.02% 21
834 0.02% 14
46'9556 10.69%  4 49'7605 10.68% 5
20'4948 4.67% 7 20'6446 4.43% 7
20'4308 4.65% 8 20'4308 4.39% 8
1'9007 0.43% 18 1'9007 0.41% 13
43'2154 9.84% 5 55'0680 11.82% 4
6'9524 1.58% 11        
4126 0.09% 19        
4'4876 1.02% 12        
3'9988 0.91% 13 3'9988 0.86% 10
28'8236 6.56% 6 34'1801 7.34% 6
2'8049 0.64% 15        
1498 0.03% 20        
2'4018 0.55% 17        
2'5209 0.57% 16 2'5209 0.54% 12
58'0885 13.23% 3 67'5184 14.49% 3
9'4299 2.15% 10        
67'2825 15.32%  2 83'6018 17.95% 2
합계 439'1713 100%   합계 465'8103 100%  

  공병우 타자기에서 ㅣ가 줄곧 R 자리를 지켰던 것은 기계식 타자기에서 쓰인 공세벌식 자판에서 R 자리를 F 자리 다음으로 좋게 보는 관점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3-87 자판에서 기계식 공병우 타자기에서 쓰인 공세벌식 자판의 특징을 많이 볼 수 있다.

3-87 자판 (매킨토시 배열)
[그림 10-4] 3-87 자판 (매킨토시 배열)
3-89 자판 (IBM-3-89)
[그림 10-5] 3-89 자판 (IBM-3-89)

  컴퓨터 환경에 더 맞춘 꼴인 3-89 자판부터는 R 자리에 ㅐ가 들어갔고, ㅣ는 D 자리에 들어갔다. R 자리와 D 자리에서의 자리 바꿈은 컴퓨터에서 쓰이는 자판이 기계식 타자기에서 쓰이는 자판보다 글쇠들의 높낮이 차가 적고 글쇠 누르는 깊이가 얕은 것을 헤아렸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ㅓ는 3-89 자판 이후에도 T 자리에 그대로 들어갔다. ㅓ는 ㅐ보다 많이 쓰이는데 T 자리에 들어간 것은 3-89 자판을 기획할 때에 R 자리보다 T 자리를 더 좋게 보았다는 뜻이다.

좌우대칭이 아닌 일반 글쇠판
[그림 10-6] 좌우대칭이 아닌 일반 글쇠판
좌우대칭인 가상의 글쇠판
[그림 10-7] 좌우대칭인 가상의 글쇠판

【그림 : [PPT] 두벌식/세벌식 자판의 짜임새와 개선 방안 (https://pat.im/1077)】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컴퓨터에서 흔히 쓰이는 글쇠판은 좌우 대칭이 아니다. 오른손보다 왼손 쪽에서 인체공학에 어긋나는 자세가 나오게 하는 규격으로 된 제품들이 흔히 쓰이고 있다. 컴퓨터 자판은 기계식 타자기 자판보다 글쇠들의 높낮이 차이가 적어서 글쇠들의 좌우 자리에 따른 느낌 차이가 더 두드러질 수 있다.

  글쓴이는 3-89 자판과 3-9× 자판에서 엿보이는 R 자리보다 T 자리를 더 좋게 보는 관점이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보았다. ㅓ가 T 자리에 있으면 '것, 겁, 넣, 얼, 었'을 넣을 때에 왼손가락을 더 벌리거나 왼손을 더 움직여야 한다. ㅓ를 R 자리로 옮기면 '것, 겁, 넣, 얼, 었'을 더 편하게 넣을 수 있다.

3-90 / 3-91 / 3-2011 / 3-2012 자판의 ㅓ,ㅐ,ㅒ 자리 비교
[그림 10-8] 3-90 / 3-91 / 3-2011 / 3-2012 자판의 ㅓ,ㅐ,ㅒ 자리

  R 자리에 있는 ㅐ는 3-9× 자판의 ㅒ와 받침의 자리를 불안정하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3-90 자판에서 ㅒ가 ㅐ의 윗글 자리에 놓인 것은 바람직하지만, R 자리에 받침이 들어가지 못하여 받침 하나(ㅈ)가 ! 자리에 튀어나오듯 들어갔다면 좋은 결과는 아니다. 3-91 자판은 ㅒ가 ㅡ의 윗글 자리에 있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어서 우겨 넣은 느낌이 크다. 3-91 자판의 ㅒ 자리는 3-90 자판과 연계되는 모습이 아니고 쓰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거북한 꼴이다.

  3-2011 자판에서는 ㅓ를 R 자리로 옮기고 ㅐ · ㅒ를 T 자리로 옮겼다. 이렇게 해서 3-89 자판에서부터 R · T 자리에 놓인 홀소리들의 잦기 불균형을 없애고, 3-90 자판과 3-91 자판에서 자리가 불안정했던 ㅒ를 왼손 배열의 가장자리로 옮겨서 다른 요소(다른 홀소리, 받침, 기호)에게 받는 영향을 줄이려고 했다.

③ 기호 배열의 실용성 높이기

  앞의 글들에서도 이야기했듯이 3-91 자판은 기호 배열의 큰 문제가 있다. 영문 자판에 있는 기호들 가운데 빠진 것이 있고,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리를 익히기 어려운 기호들이 꽤 많다. 3-91 자판을 다양한 업무에 쓴다면, 3-91 자판의 어느 자리에 어떤 기호가 있는지 또는 넣으려는 기호가 3-91 자판에 있는지를 떠올리는 것보다 영문 자판으로 바꾸어서 기호를 넣는 것이 편하고 빠른 방법일 수도 있을 지경이다.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3-91 자판의 물음표(?)와 느낌표(!)의 자리가 매우 거슬릴 수 있다. 아마도 3-91 자판의 물음표 자리는 기계식 타자기를 의식한 결과인 것 같다. 기계식 타자기에서 공세벌식 자판의 오른쪽 ㅗ 자리는 초첨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안움직글쇠 자리여서, 그 자리에 물음표를 넣을 때에는 사이띄개를 따로 더 눌러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주2 하지만 3-91 자판을 쓴 공병우 타자기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타자기에서 쓰는 것까지 헤아린 3-91 자판의 설계 의도는 본래 뜻했던 바는 이루지 못하면서 쓰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 면이 있었다.

  또한 3-91 자판은 영문 자판의 기호들이 다 들어가지 않았음에도 참고표(※) 같은 기호는 들어 있다. 한글 문장을 넣는 것을 제대로 배려하려면, 「 」 … ― ○ ✕처럼 한글 맞춤법 규정에도 나오는 기호들까지 다양하게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참고표처럼 절실함이 떨어지는 기호를 조금 넣는 것으로는 다양한 기호를 넣는 편의를 확 끌어올릴 수 없다. 어떤 논리를 따르든, 사무용 공병우 타자기에도 들어갔던 @ # $ 같은 기호들이 컴퓨터 환경에서도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3-91 자판의 기호 배열 문제들은 한정된 글쇠 자리 수 때문에 다 풀지는 못하더라도 일부나마 개선할 수는 있다. 아래는 3-91 자판과 견준 3-2011 자판의 기호 배열 특징이다.

  • $ ^ & ( ) < > ? 는 영문 자판과 같은 자리에 있음
  • 3-91 자판에 2개씩 들어갔던 마침표(.)와 쉼표(,)가 하나씩 있음
  • 3-91 자판에 없던 기호 7개(@ # $ ^ & [ ])가 들어감
  • 참고표(※)와 열고 닫는 따옴표(“ ”) 같은 기호들은 확장 배열에서 넣게 함

  공세벌식 자판들은 숫자들이 오른손 쪽의 윗글 자리에 있다. 그래서 왼손가락으로 윗글쇠를 누른 채로 숫자는 넣곤 한다. 3-91 자판에 마침표와 쉼표가 윗글 자리에 더 들어간 것은 왼쪽 윗글쇠에서 손을 떼지 않고 숫자를 이어 넣기 좋게 하기 위함이다. 그런 점을 헤아려서 숫자와 함께 쓰일 수 있는 기호들(+ - * / ~ %)을 오른손 쪽 윗글 자리에 놓는 기조는 3-91 자판을 따랐다.

  꼭 필요하지 않은 기호와 겹받침을 줄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서, 3-2011 자판은 3-91 자판보다는 영문 자판의 기호를 많이 담았지만 다 담지는 못했다.

3) 3-2012 자판

  3-2012 자판도 팥알(글쓴이)이 제안한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이다. 3-2011 자판이 문장용 배열인 3-91 자판에 대한 수정안이었다면, 3-2012 자판은 사무용 배열인 3-90 자판에 대한 수정안이다.

3-90 자판 (IBM-3-90)
[그림 10-9] 3-90 자판 (IBM-3-90)
3-2012 자판
[그림 10-10] 3-2012 자판

  3-2012 자판은 사무용 배열(3-90)의 기조를 따르면서도 3-2011 자판의 설계 방향을 이어 간 자판안이다. 조금 달리 말하면, 3-2012 자판은 3-91 자판을 쓰던 글쓴이의 취향을 담은 3-90 자판 개선안이라고 할 수 있다. 숫자 배열과 받침 ㅋ · ㄻ의 자리에서 3-91 자판의 특징을 볼 수 있다. ㅓ · ㅐ · ㅒ와 홑받침과 숫자 자리는 3-2011 자판과 같고, 기호와 겹받침 배열은 3-2011 자판과 다르다.

3-90 자판의 쿼티 자판과 다른 기호 자리
[그림 10-11] 3-90 자판의 쿼티 자판과 다른 기호 자리
3-2012 자판의 쿼티 자판과 다른기호 자리
[그림 10-12] 3-2012 자판의 쿼티 자판과 다른 기호 자리
  영문 쿼티 자판과 견주면, 3-90 자판은 6개 기호( ! < > / ; ' )의 자리가 다르고, 3-2012 자판은 5개 기호( : ; ' " / )의 자리가 다르다. 3-2012 자판에 들어간 받침의 수와 종류는 3-90 자판과 같고, ㄲ · ㄺ · ㅈ을 뺀 받침들의 자리는 3-91 자판 및 3-2011 자판과 같다.

  3-2012 자판은 느낌표(!)가 영문 쿼티 자판과 같은 자리에 있다. 3-90 자판은 받침 ㅈ이 영문 자판의 느낌표(!) 자리에 있는데, 3-2012 자판은 느낌표와 받침 ㅈ이 자리를 맞바꾸어 받침 ㅈ이 E 자리에 들어갔다. 그래서 3-2012 자판은 맨 윗줄 글쇠들의 윗글 자리에 한글 낱자가 전혀 없다.

3-90 / 3-91 / 3-2011 / 3-2012 자판의 받침 자리 비교
[그림 10-13] 3-90 / 3-91 / 3-2011 / 3-2012 자판의 받침 자리

  3-2012 자판의 받침 ㅈ 자리는 3-90 자판보다 한글 배열의 일관성을 높히고 받침 ㄵ을 조합하여 넣기 편하게 해 준다. 3-90 자판의 느낌표와 받침 ㅈ의 자리를 함께 개선한 셈이다.

  3-90 자판과 3-91 자판은 홑받침 ㅈ · ㅋ 자리가 서로 다르지만,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은 홑받침들의 자리가 모두 같다.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은 겹받침의 자리와 구성이 달라서 한글 배열 통합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홑받침 자리까지 같아서 3-9× 자판들보다 한글 배열의 차이가 더 좁혀졌다.

4) 기호 확장 배열

  3-91 자판에는 참고표(※)나 가운뎃점(·)이나 열고 닫는 따옴표(“ ”) 같은 기호들이 들어 있다. 영문 쿼티 자판 배열과의 연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요즈음의 관점에서는 한글 자판에 이런 기호들을 들어가는 모습이 낯선데, 3-91 자판이나 3-91 자판의 특징을 이어 가는 공세벌식 자판에는 이런 기호들이 흔히 들어가곤 한다.

  생각을 더 넓혀 본다면 이런 물음도 던져 볼 수 있다.

  • 공세벌식 자판은 영문 자판의 기호를 넣을 자리도 빠듯한데 이런 기호들을 꼭 기본 배열에 넣어야 할까?
  • 이런 기호들을 3-90 자판 같은 사무용 공세벌식 자판에서 넣을 수는 없을까?
  • 「 」 … ― ○ ✕처럼 한글 맞춤법 규정에 나오는 기호들까지 더 다양하게 넣을 길은 없을까?

  잘 생각해 보면 이런 의문점이나 요구들까지 다 받아들일 길은 있다. 공세벌식 자판에는 ㅗ · ㅜ가 2개씩 있고 ㅢ도 따로 있다. 2개씩 있는 요소들을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게 한다면, 특수한 기능을 붙이는 쪽으로 응용할 수 있다.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에 붙인 기호 확장 배열이 그런 응용 방안이다.

3-2011 자판의 기호 확장 배열
[그림 10-14] 3-2011 자판의 기호 확장 배열
3-2012 자판의 기호 확장 배열
[그림 10-15] 3-2012 자판의 기호 확장 배열

  공세벌식 자판에서 ㅗ는 왼쪽에도 있고 오른쪽에도 있다. 왼쪽 ㅗ는 ㅗ를 홑홀소리로 넣을 때에 흔히 쓰고, 오른쪽 ㅗ는 ㅘ · ㅝ 같은 겹홀소리를 조합할 때에 쓴다. 만약 홀소리 ㅗ만 따로 넣을 때에는 오른쪽 ㅗ로 넣게 하는 예외를 둔다면, 첫소리가 오지 않았을 때의 왼쪽 ㅗ에 전환 기능을 붙일 수 있다. 이를테면 '왼쪽 ㅗ + 첫소리 ㅂ'으로 ㉥을 넣고 '왼쪽 ㅗ + 왼쪽 ㅗ + 첫소리 ㅂ'으로 ④을 넣는 식이다.

  이런 기호 확장 배열을 3-2011 자판에서는 기본 배열에서 넣지 못하는 영문 자판의 기호들을 넣는 데에 쓸 수 있고, 3-2012 자판에서는 문장용 배열에서나 넣을 수 있는 기호들을 넣는 데에 쓸 수 있다.

  3-91 자판에도 선택 글쇠(option key)로 쓰는 확장 배열이 있었지만, 선택 글쇠가 일반 글쇠가 아닌 매킨토시에서 쓰인 특수 글쇠이다 보니 여러 환경에서 쓰기에 제약이 컸다. 3-2011 / 3-2012 자판의 기호 확장 배열도 제약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일반 글쇠만으로 쓸 수 있는 점에서 입력기로 구현하기는 더 좋은 방식이다.

3-2012 자판으로 특수기호 넣기
[그림 10-16] 3-2012 자판으로 특수기호 넣기
3-2012 자판으로 한글맞춤법에 있는 문장 부호 넣기
[그림 10-17] 3-2012 자판으로 한글맞춤법에 있는 문장 부호 넣기

5) 3-2011 / 3-2012 옛한글 자판 (한글 확장 배열)

  공세벌식 자판의 ㅗ · ㅜ · ㅢ처럼 군더더기로 보이는 요소는 기호만이 아니라 옛한글을 넣는 확장 방안으로도 응용할 수 있다.

  이렇게 확장 배열로 꾸린 공세벌식 옛한글 자판은 ㅖ와 ㅢ를 2타로 넣어야 하는 것에 유의한다면 요즘한글을 넣을 때와 거의 같은 타자법으로 쓸 수 있다.

3-2011 옛한글 자판
[그림 10-18] 3-2011 옛한글 자판
세벌식 3-2012 옛한글 자판
[그림 10-19] 3-2012 옛한글 자판

  3-2011 옛한글 자판3-2012 옛한글 자판은 각각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의 응용안이다. 요즘한글을 넣을 때에는 ㅢ와 ㅖ를 넣는 방법만 다르고 다른 낱자들은 요즘한글 배열(3-2011 자판 또는 3-2012 자판)을 쓰는 때와 같은 방법으로 넣을 수 있다.

  3-2011 / 3-2012 옛한글 자판은 위의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옛낱자를 넣는 방법을 따로 설명해야 할 만큼 옛낱자 넣는 방법이 복잡하게 보이는 것이 큰 흠이다. 그 대신에 3-2011 / 3-2012 옛한글 자판은 요즘한글 자판의 기본 배열에 들어간 숫자와 기호를 그대로 쓸 수 있다.

3-93 옛한글 자판
[그림 10-20] 3-93 옛한글 자판

  3-93 옛한글 자판은 3-90 자판에 있던 숫자와 몇몇 기호들을 뺀 자리에 옛낱자와 방점을 놓았기 때문에 배열에서 빠진 숫자와 기호를 넣으려면 요즘한글 자판(3-90 자판)이나 영문 자판에 기대어야 한다. 하지만 3-2011 / 3-2012 옛한글 자판은 요즘한글 자판의 숫자와 기호가 빠지지 않아서 숫자와 기호를 넣을 때에 요즘한글 자판이나 영문 자판으로 바꾸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3-2011 / 3-2012 옛한글 자판은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투박하고 복잡한 꼴이다. 옛한글 배열과 사용법의 간결함은 3-93 옛한글 자판보다 못하고 두벌식 옛한글 자판보다도 못하다. 요즘한글과 숫자를 넣는 실무 작업에도 쓸 수 있고 가장 많은 한글 낱자를 담을 수 있는 꼴이지만, 깔끔함이나 간편함과는 거리가 멀고 옛낱자를 넣을 때에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큰 흠이다.

5) 3-2011 / 3-2012 자판의 성격과 한계

  만약 2000년대에 다시 문을 연 한글문화원에서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하려는 활동을 벌이려는 정황이 보였다면, 글쓴이는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하는 일에 쉽사리 뛰어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수정안을 만들더라도 '3-201× 자판'이라는 이름을 감히 붙이지 못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글문화원이 컴퓨터용 공세벌식 자판에 관한 연구 결과물이나 활동 계획을 밝히지 않는 것이 글쓴이에게는 공세벌식 자판 연구에 마음 놓고 뛰어드는 계기가 된 면도 있었다.

  '393 옛한글 자판'(3-93 옛한글 자판)처럼 한글문화원의 검토를 거치지 않았어도 공세벌식 자판에 3×× 또는 3-×× 꼴 이름이 쓰인 사례도 있다. '3-9× 자판'이나 '3-201× 자판'처럼 연도를 붙이는 이름은 시간을 두고 착오를 더 겪으며 개선안을 다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3-95 자판안 (김창용 개선 자판안, 1995)
[그림 10-21] 3-95 자판안 (김창용 개선 자판안)

  3-95 자판안은 3-91 자판에서 기호 배열만 건드린 소극적인 개선안이었지만, 3-2011 / 3-2012 자판은 3-9× 자판의 한글 배열과 기호 배열을 함께 고친 더 적극적인 개선안이다. 3-9× 자판들보다 사무용/문장용 한글 배열의 차이를 좁히고 한글 · 기호 배열을 더 낫게 고친 것을 3-2011 자판 및 3-2012 자판의 성과로 내세울 수 있다.

3-2011 자판
[그림 10-22] 3-2011 자판
세벌식 3-2012 자판
[그림 10-23] 3-2012 자판 (기본 배열)

  아래는 3-2011 / 3-2012 자판이 3-91 / 3-90 자판보다 나은 점을 정리해 본 것이다.

  • 3-2011 자판 (3-91 자판에 대한 문장용 배열 개선안)
    • 3-91 자판에 없던 기호 7개(@ # $ ^ & [ ])가 들어감
    • 3-91 자판보다 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에 가까움
      ($ ^ & ( ) < > ?이 영문 자판과 같은 자리에 있음)
    • 겹받침 수를 줄임 (ㄽ · ㄾ · ㄿ 뺌)
    • 받침 ㄴ · ㄵ 자리의 형평을 맞춤
      (3-91 자판은 받침 ㅈ보다 ㄵ이 더 편한 자리에 있음)
  • 3-2012 자판 (3-90 자판에 대한 사무용 배열 개선안)
    • 받침 ㅈ의 자리가 3-90 자판보다 편함
    • 느낌표를 영문 자판과 같은 자리에서 넣음
  • 3-2011 / 3-2012 공통
    • ㅓ · ㅐ · ㅒ와 받침 ㅈ · ㅋ의 자리를 안정시킴
    • 문장용 배열과 사무용 배열의 차이를 좁힘
      (홑받침 자리까지 같게 맞춤)
    • 확장 기능(기호 확장 배열)으로 문장용 배열에 들어가던 기호들까지 넣을 방안을 제시함

  공세벌식 자판이 1990년대에 대중성을 띠고 오늘날에도 살아남을 수 있게 프로그램 지원을 끌어낸 데에는 3-90 자판의 역할이 컸다. 기호 배열이 영문 자판과 비슷하고 겹받침 수가 적은 배열이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쓰는 사람의 수가 빨리 느는 것에 도움이 되므로, 문장용 배열인 3-2011 자판이 아니라 사무용 배열인 3-2012 자판을 권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을 제안한 글쓴이에게는 앞뒤가 맞지 않는 면이 있었다. 글쓴이는 3-2011 자판을 응용안으로 보고 3-2012 자판을 기본안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생각을 정리했었다. 그럼에도 글쓴이는 2014년까지 3-2012 자판은 쓰지 않고 3-2011 옛한글 자판을 쓰고 있었다. 3-91 자판을 오래 써 온 것에 따른 받침 배열에서의 문장용 배열의 익숙함과 취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장용 배열에 익숙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겹받침 ㄳ · ㄵ · ㄼ을 넣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이 문장용 배열에서 사무용 배열로 옮겨 가는 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글쓴이가 느끼기에 ㄳ · ㄵ은 조합하여 넣기가 나쁘지 않지만, ㄼ을 ㄹ+ㅂ으로 조합하여 넣으려면 마지막에 맨 윗줄 일반 글쇠를 누르는 것이 거북했다.

  글쓴이가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을 따로 제안한 것에서도 공세벌식 자판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통합형 배열을 만드는 것은 문장용 배열(3-91)과 사무용 배열(3-90)로 갈라진 공세벌식 자판 사용자층을 하나로 묶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타자기에서부터 이어진 입력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면, 한정된 글쇠 자리 때문에 기호와 겹받침은 어느 한 쪽을 더 더 넣으면 다른 쪽을 덜 넣어야 하는 관계에 놓여 있다. 이 문제를 넘지 못하면 널리 쓰이는 공세벌식 자판의 한글 배열을 하나로 합칠 길은 없다.

  숫자 배열도 걸림돌이다. 3-90 자판과 3-2012 자판이 사무용 배열로서 공통점이 있더라도, 3-90 자판의 3줄 숫자 배열을 잘 쓰는 사람은 3-2012 자판의 2줄 숫자 배열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 한글 배열과 숫자 배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쓰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 3-2012 자판만이 아니라 다른 공세벌식 자판들도 안고 있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3-2011 자판과 3-2012 자판은 공세벌식 배열을 만들고 고칠 때의 형편에 따라 자리가 달라지던 한글 낱자 수를 줄여서 문장용/사무용 배열 차이를 좁히고자 했다. 3-9× 자판에서는 ㅒ와 받침 ㅈ · ㅋ 자리가 서로 다른데, 이 낱자들은 기호들의 자리와도 얽혀 있다. 3-2011 / 3-2012 자판에서는 기본 배열에 한글 낱자와 기호가 들어갈 자리를 더 뚜렷이 나누어 놓는 것이 한글 낱자들의 자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다. 기호 확장 배열을 따로 둔 것도 기본 배열을 건드릴 일을 줄이는 방편이었다.

  3-2011 / 3-2012 자판에서는 공세벌식 자판의 한글 배열을 통합하는 일에 다가가려는 뜻은 있었지만, 3-91 / 3-90 자판을 각각 개선하는 것에 그쳐서 공세벌식 자판의 한글 배열을 통합하지는 못했다. 다만 배열 통합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줄이고 다음에 나올지 모를 개선안에서 이어 나갈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였다. ㅒ와 받침 ㅈ · ㅋ이 사무용 배열인지 문장용 배열인지에 따라 자리가 달라져야 할 이치에 맞는 까닭은 없는데, 한글 자판에 꼭 들어가는 한글 낱자들이 합당한 원칙 때문이 아니라 배열 만들 때의 형편 때문에 그때그때 자리가 달라지는 일은 막고자 했다.

  공세벌식 자판의 한 가지 한글 배열로 통합할 수 있으려면, 타자기에서 이어진 공세벌식 자판의 입력 방식을 뛰어넘어 글쇠 자리가 모자란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 실마리가 될 수 있는 방안이 1990년대에 나온 '신세벌식 자판'에 담겨 있었지만,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하는 일에 신세벌식 자판의 원리를 끌어들이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더 흐른 뒤의 일이었다.

〈주석〉
  1. 2000년대에 쓰인 비주류 한글 자판들 가운데 공세벌식 자판의 지위를 무너뜨릴 만큼 위협스러웠던 경쟁안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으며 단숨에 인기를 얻은 컴퓨터용 한글 자판이 있었다면, 비주류 한글 자판들 가운데 으뜸이었던 공세벌식 자판의 지위가 금방 무너져 내렸을 수도 있었다. 공세벌식 자판과 비슷한 점이 많은 신세벌식 자판이 공세벌식 자판의 강력한 대안이 될 가능성은 있었지만, 한글 배열 정비를 마치지 못했고 공세벌식 자판보다 입력기 지원을 얻지 못해서 가능성을 다 드러내지는 못했다. back
  2. 아랫글 자리와 윗글 자리의 움직/안움직 글쇠 동작을 다르게 하는 타자기 제작 기술은 있었지만, 기계 장치가 정교할수록 타자기를 만들기 까다롭고 고장이 잘 나는 문제가 있었다. (https://pat.im/961)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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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벌 2024/01/08 07:5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는 두벌, 390, 최종 써 왔고 다른 것으로 바꿀 생각을 못하고 있네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 젊은 분들이 세벌식 배운다고 하면 여러 세벌식 자판 중 어느 자판을 권하나요?

    • 팥알 2024/01/08 18:5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새로 익히는 때에는 신세벌식 자판 쪽을 권하고 싶습니다.

      2벌식 자판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3벌식 자판은 어떤 종류든 익히기가 수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쉬운 꼴이어야 쓰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더 늘 수 있고, 지난날에 3-90 자판이 일으킨 바람을 다시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신세벌식 자판이 상대적으로 빨리 익힐 수 있는 꼴이고 공세벌식 자판보다 전체적인 편의나 기능이 뒤지지 않으므로, 딱 하나에 집중한다면 신세벌식 쪽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세벌식 자판은 윗글쇠를 쓰지 않고 모아 쓰는 한글을 넣을 수 있어서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습니다.

      글을 잘 끝맺을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지만, 이 글을 더 이어 간다면 신세벌식 자판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다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