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 - (4) 3-○○ 꼴 이름과 3○○ 꼴 이름

1) 숫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기 쉬운 3-○○ 꼴 이름

  '3-90' 자판처럼 3-○○ 꼴로 나타내면 좋은 점이 있다. '3-89 자판'과 '3-90 자판'이라는 이름이 나란히 있으면, '-' 기호가 숫자를 갈라 주어서 배열이 나온 앞뒤 관계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세벌식 자판'의 이름이고 뒤에 붙은 숫자가 배열이 나온 해를 나타낸다는 것을 안다면, 앞에 붙은 '3'이 '세벌식'을 뜻한다는 것을 눈치로 알 수 있다.

  하지만 '390 자판'이라고 하면 그 이름에 담긴 뜻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공세벌식 자판에 얽힌 내력을 꽤 아는 사람이 아니면, '390'이 '3'과 '90'이 합쳐진 이름임을 바로 알기가 어렵다. 공세벌식 자판에 꾸준히 관심이 두지 않는 사람은 '3'과 '90'으로 이루어진 이름임을 알았더라도 나중에 잊기 쉽다. 모르는 사람에게는 암호명 같은 느낌을 준다.

  공세벌식 자판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기기에 실제로 쓰인 것만 헤아려도 배열 종류가 30가지가 넘는다. 여러 배열들을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언제나 '19○0대에 나온 어떤 배열'이라고 하기는 번거롭다. 그래서 배열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고민해 볼 만 하다. 배열들 하나하나에 정성들여 서로 다른 이름을 짓기는 쉽지 않다. 번호를 매기더라도 아무 뜻없이 매긴 번호는 나중에 떠올리기 어렵다. 그래서 배열들이 나온 때를 모두 안다면, 나온 해를 따서 '3-○○' 꼴이나 '3○○' 꼴로 이름 붙이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 이름 짓기도 편하고, 나온 해가 드러나므로 배열들의 앞뒤 관계를 쉽게 알 수 있고,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도 좋다.

공병우 타자기 미국 특허 문서에 나온 자판 배열
[그림 4-1] 미국에 출원한 특허 문서에 실린 공병우 타자기의 자판 배열 그림

▣ 얽힌 글 : 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https://pat.im/957)

  공개되어 있는 실물 기계나 공식 문헌에 남은 가장 오래된 공세벌식 자판 배열은 1949년에 출원된 공병우 타자기의 미국 특허 문서에 실려 있다.주1 또 공세벌식 자판은 2000년을 넘어서도 개선판이 더 나오고 있다.

  3-○○ 꼴 이름을 쓴다면, 미국 특허 문서에 나온 공병우식 자판 배열은 '3-49 자판'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나온 해를 두 자릿수만 나타내는 이름을 고집한다면, 2049년에 나오는 공세벌식 자판도 1949년에 나온 것과 같이 '3-49 자판'이 된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2000년 문제(Y2K, 밀레니엄 버그)가 공세벌식 자판의 이름에서도 일어나는 셈이다. 이 문제는 2000년 이후에 나오는 공세벌식 자판을 '3-○○○○ 자판'으로 자릿수를 늘려 적으면 피할 수 있다. 그래서 2010년대에 나온 공세벌식 개선 자판안들에 '3-2012', '3-2015' 같은 이름이 붙고 있다.

공한영 301 타자기 자판 (공병우 3단 한영 겸용 타자기)
[그림 4-2] 공한영 301 타자기 자판 (공병우 3단 한영 겸용 타자기)

  1970년대에 나온 공병우 한·영 겸용 타자기 가운데는 3단 활자를 쓴 '공한영 301' 제품과 2단 활자를 쓴 '공한영 201' 제품이 있다.주2 '공한영 201' 타자기에 들어간 자판 배열은 한때 ᄒᆞᆫ글 제품에 '201'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주3 그렇게 보면 '공한영 301' 타자기에 들어간 자판 배열은 '301 자판'으로 부를 수 있고, 격식을 더 차리면 '3-301 자판'으로 부를 수도 있다.

  '3-○○ 자판' 또는 '3○○ 자판' 이름에서 '3'은 '세벌식'을 뜻한다. 하지만 '공한영 301'의 '3'은 '3단 활자'를 뜻한다. 그래서 '3○○ 자판'과 '301 자판'이라는 이름이 나란히 등장하면, '301 자판'이 2001년에 나온 공세벌식 자판처럼 보일 수 있다. '-' 기호를 붙여서 '3-301 자판'으로 적는다면, 적어도 이 자판 배열이 2001년에 나왔다는 오해는 피할 수 있다.주4

  이름 꼴
3-○○ 3-○○○○ 3○○ 3○○○○
만든 해 1990년 3-90 3-1990 390 31990
2090년 3-90 3-2090 390 32090
1949년 3-49 3-1949 349 31949
2049년 3-49 3-2049 349 32049

  19○○년과 20○○년이 겹치지 않게 하려면, 2000년 이후를 나타내는 숫자는 자릿수를 늘릴 필요도 있다. 2016년에 나온 배열을 '316 자판'이나 '32016 자판'이라고 하면, 숫자가 뜻하는 바를 얼른 알아보기 어렵고 '390 자판'보다 먼저 나온 것처럼 보인다. '3-2016 자판'이라고 하면 요즈음 사람들은 대뜸 2016년에 나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3-○○ 또는 3-○○○○ 꼴 이름은 '-' 기호가 붙은 덕분에 배열 이름이 다른 뜻이 담긴 두 숫자(3벌식과 만들어진 해)로 이루어졌음을 알아차리기 쉽다. 만든 해를 나타내는 숫자가 도드라지게 보여서 먼저 나온 것과 나중에 나온 것을 가리기도 쉽다. 이렇게 보면 옛 한글 문화원이 왜 굳이 '390 자판'을 '3-90 자판'으로 적으려고 애썼는지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글을 치는 사람은 '-' 기호를 넣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지만, 읽는 사람은 숫자로 이루어진 배열 이름이 무슨 뜻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 '-' 기호가 별다른 구실을 못하는 군더더기였다면, 보기에 좋으라고 글 제목에 빈칸 넣는 시간조차 아까워 했던 실용주의자이자 빨리빨리주의자 공병우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2) 3-○○ 꼴 이름의 정통성?

  앞의 글에서 본 것처럼 3-89 자판과 3-90 자판이 처음에 공개될 때의 이름은 3-○○ 꼴이었다. 하지만 옛 한글 문화원이 문을 닫은 뒤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3○○ 꼴 이름만 보이고 3-○○ 꼴 이름을 적은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3○○ 꼴 이름도 그 동안 널리 쓰인 점에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한글 문화원이 3-○○ 꼴 배열 이름을 대한 입장을 바꾼 적은 없으므로, 아직도 3-89 자판과 3-90 자판의 공식 이름이 '3-○○ 자판' 꼴인 것은 뒤집히지 않았다. 앞에서 본 정내권의 「한글 입력기 홍두깨」 기사에 '389 자판'이 '3-89 자판'의 약칭임이 밝혀져 있지만, 그 기사는 정내권이 아직 한글 문화원 연구원이 아닐 때에 쓴 글이다. 나중에 옛 한글 문화원이 3○○ 꼴 이름을 단체 차원에서 공식 이름으로 인정한 배포 자료를 내놓지 않았다면, 3○○ 꼴 배열 이름은 정식으로 쓰인 이름이 아니라 정내권 또는 한글 문화원 연구원들 가운데 누군가가 제안하여 쓰이기 시작한 약칭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주5

한글 문화원이 배포한 유인물 자료들
[그림 4-3] 한글 문화원이 배포한 유인물 자료들

  옛 한글 문화원은 사설 단체였지만, 단체의 활동 내용과 공식 입장을 알리는 일은 짜임새 있게 이루어졌다. 연구 과정은 공개하지 않더라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정보들은 때때로 낱장 유인물이나 소책자에 담아서 알렸다. 그 문서들을 본 사람들은 한글 문화원이 어떤 뜻으로 어떻게 활동을 펼치는지 알 수 있었고, 인쇄물마다 적힌 연락처(주소, 전화번호)로 한글 문화원에 의견을 밝히거나 궁금한 것을 물어 볼 수 있었다. 그런 한글 문화원이 배열 이름을 바꾸어 부를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종이 문서와 PC 통신망 게시물 등으로 알리면서 사람들이 배열 이름을 바꾸어 부르도록 단체 차원에서 이끌었을 것이다.

  옛 한글 문화원이 한글 자판에 관하여 내린 판단과 결정이 모두 옳기만 했을 수는 없다. 한때 좋았던 기술이 더 나은 기술 때문에 쓸모가 없어지기도 하고 몰랐던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들이 한글 자판에 바라는 바도 한결같지 않다. 시대 흐름과 새로운 수요에 맞추려면, 이미 내린 결정을 번복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내세워야 할 때도 있다. 요즈음에 '공병우 자판'이 꼭 '공병우가 만든 자판'만 뜻하지는 않는 것처럼, 옛 한글 문화원이 부른 자판 배열 이름도 오늘의 상황에 맞게 고쳐 부르면 좋은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3○○ 꼴 이름은 3-○○ 꼴 이름의 좋은 대안이 아니다. 3-○○ 꼴 이름을 쓴 목적은 사람들이 먼저 나온 배열과 뒤에 나온 배열을 쉽게 알게 하는 것에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공세벌식 자판의 내력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3○○ 꼴 이름보다 3-○○ 꼴 이름이 이름의 뜻과 배열이 나온 앞뒤 관계를 알아차리기에 좋다. 굳이 정통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실용성에서 3-○○ 꼴 이름이 낫다. 그러므로 3-○○ 꼴 이름에 관하여는 옛 한글 문화원의 고집을 이해하고 전통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3-○○ 자판' 꼴 이름은 그 자체가 정식 이름이기는 하지만, '표준 세벌식 자판' 같은 종착점으로 다가가려는 과정에서 쓰인 임시 이름 성격도 짙다. 정식 제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개발판에 붙이는 암호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공세벌식 자판은 표준화를 이루지 못했고, 뚜렷한 대표 배열이 아직도 없고, 개선안은 더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공세벌식 자판의 숫자 이름은 어쩔 수 없이 오래 쓸 수밖에 없는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암호처럼 뜻을 알기 어려운 이름보다 뜻이 잘 드러나는 이름을 쓸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앞에서 본 '393 옛한글 자판'과 뒤에서 살필 '387 자판' 등은 '3-93 옛한글 자판'과 '3-87 자판'으로 바꾸어 부를 필요가 있다. '387'이나 '390' 같은 3○○ 꼴 이름은 공세벌식 자판을 잘 아는 사람끼리는 친숙한 이름이겠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암호나 은어처럼 보일 수 있다. 사사로운 자리에서는 3○○ 꼴 이름을 쓰더라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는 공식 자료에는 3-○○ 꼴 이름을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3) '3-90 자판'과 '390 자판'을 읽는 문제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IBM 계열 PC 기종들에는 한때 286, 386, 486처럼 숫자로 된 상표가 널리 쓰인 적이 있다.주6 한국에서 이들은 한자 숫자인 이팔륙, 삼팔륙, 사팔륙으로 읽히곤 하였다. 3-90 자판을 390 자판으로 적고 '삼구공 자판'으로 읽었던 것에는 이러한 숫자 상표들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주7

  390 자판은 '삼구공 자판'이라고 읽을 수도 있지만,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 아래처럼 생각해 보면, '390 자판'을 읽는 방법이 매우 많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 흔히 숫자 0을 '공'이나 '빵'으로 읽기도 하지만, 본래는 '영'으로 읽어야 맞음
  • '3벌식'을 '삼벌식'이 아니라 '세벌식'으로 읽도록 권장하는 것에 비추면, '세벌식'을 나타내는 390의 3을 '삼'으로 읽는 것은 일관성이 없음
  • '삼구공'이 아니라 '삼백구십'으로 읽을 수도 있음
  • '삼백구십'은 '삼백아흔'으로 읽기도 함
  • '삼구영'이 아니라 '셋아홉영'으로 읽을 수도 있음

  얼핏 보면 억지스럽거나 쓸데없는 생각 같아 보일지도 모르지만, 잘 따져 보면 여기에서 우리말의 모순이 크게 드러난다. 우리말에 쓰이는 셈씨(수사) 또는 셈말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둘/셋으로 시작하는 토박이 셈말과 함께 일/이/삼으로 시작하는 한자(漢字) 셈말이 함께 쓰인다. 우리말에서 토박이 셈말과 한자 셈말은 때에 따라 일관성 없이 엇갈려 쓰이고 있어서, 어느 쪽 셈말을 써야 하는지 가리기 애매한 때가 많다. 이를테면 '30개'를 어떤 사람은 '서른 개'로 읽고 다른 어떤 사람은 '삼십 개'로 읽는다. 또 어떤 사람은 때에 따라 '서른 개'로도 읽고 '삼십 개'로도 읽기도 한다.

  3-○○ 또는 3-○○○○ 꼴 이름 읽을 때에도 그런 문제에 부딛힌다. '3'을 '셋'으로 읽을지 '삼'으로 읽을지부터 갈등 거리가 될 수 있다. '세벌식'을 뜻하니 앞 숫자를 토박이말 '셋'으로 읽자고 했다면, 그 다음 숫자를 읽기가 막막해진다. '3-90 자판'의 '90'은 '아흔'으로 읽을 수 있지만, '3-2012 자판'은 '2012'을 한자 셈말 '이천십이'가 아닌 토박이 셈말로 읽는 방법이 규범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글쓴이는 '3-90 자판'을 '셋 아흔 자판'으로 읽고, '3-2012 자판'은 '셋 두 즈믄 열둘 자판'으로 읽곤 한다. 하지만 '온'(100)이나 '즈믄'(1000)을 쓰는 숫자 세기는 아직 말 규범으로 약속된 것이 없다. 그래서 이런 읽기는 글쓴이의 혼자 생각에 따른 것이지 규범과 전례에 바탕한 것이 아니고, 만(萬)이나 억(億) 단위 이상의 큰 숫자를 토박이말로 세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은 한계가 있다.주8

  '-' 기호를 읽는 방법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답이 없다. '~의'나 '~에'로 읽을 수도 있고, 숫자를 끊는 기호로 보고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이음표', '붙임표', '줄표' 등으로 읽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빼기'로 읽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3-○○'의 '3'이 세벌식을 뜻하는 특수한 경우이므로, '세벌식 ○○'으로 읽을 만도 하다. 이렇다 보니 '3-90 자판'과 '390 자판' 모두 읽는 방법이 아주 많을 수밖에 없다.

  숫자 읽기는 초등 교육 과정에서 길을 잡아야 맞다. 하지만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한자 셈말로 구구단은 열심히 외게 하지만, 다양한 경우에 나오는 숫자들을 토박이 셈말로 어떻게 읽을지를 학생들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과 수학을 전공한 석학들까지도 토박이 셈말을 쓰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심하면 겨우 '열아홉(19)'을 넘는 숫자는 한자 셈말로만 세는 사람도 더러 볼 수 있다.주9 그렇다고 하여 교육 현장이나 교육 관계자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함부로 탓할 수도 없다. 한자 셈말(일, 이, 삼, …)은 일관성과 연속성을 잘 갖추어서 수학을 비롯한 학문들에서 쓰기 좋지만, 토박이 셈말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교육계를 다그치기만 하면, 그나마 살아 있는 토박이 셈말마저 아예 쓰지 않아야 좋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평소에 우리말을 바르게 쓰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토박이 셈말로 숫자 세기는 거의 무릎을 꿇을 만한 주제이다. 차라리 토박이 셈말을 잘 쓸 수 있게 길을 닦는 것보다 노벨 수학상을 타는 일이 쉬울지 모른다.주10 토박이 셈말만으로는 겨우 아흔아홉(99)까지 세는 방법만 널리 약속되어 있어서 고급 학문은커녕 일상 생활도 하기 어렵다.주11 '3벌식'을 '세벌식'으로 읽도록 안내하는 것은 겉으로 쉬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참으로 골치 아픈 모순이 끼어 있다.주12

〈주석〉
  1. 미국 특허 문서에 나온 배열(그림 4-1)이 시판된 타자기에 그대로 쓰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공세벌식 자판 배열이 개발 단계에서 시제품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있다. back
  2. 많은 한글 타자기들에는 흔한 영문 타자기들처럼 납 활자 한 조각에 글짜 2개가 들어가는 2단 활자가 들어갔다. back
  3. ᄒᆞᆫ글 1.2의 환경 설정(CONFIG.EXE)에서 '201.KBD'라는 파일을 불러서 쓸 수 있었다. back
  4. '공한영 301' 상표를 달고 나온 타자기 제품에 들어간 자판 배열은 모두 똑같지는 않았고, 조금 다른 자판 배열이 둘 이상 있었다. 공한영 301 타자기에 쓰인 조금씩 다른 자판 배열들이 나온 때를 안다면, '3-○○-301' 같은 꼴로 배열 이름을 늘려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back
  5. 3○○ 꼴 이름이 언제부터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는지를 정확히 밝히려면 한글 문화원에서 활동한 사람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back
  6. 80286, 80386, 80486이 정식 이름인 마이크로프로세서(또는 CPU)에서 비룻한 이름이다. 이들을 쓴 컴퓨터들이 80이 빠진 꼴로 '286 컴퓨터', '386 컴퓨터' 등으로 불리곤 했다. back
  7. 80○○○ CPU의 이름에 영향을 받아 나온 말 가운데 '386 세대'(삼팔륙 세대)가 있다. 언론 매체에서 흔히 쓰인 '386 세대'는 "1990년대 중반 즈음에 30대였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현미, 「‘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신동아》, 2003.12.) 하지만 '386 세대'가 언제나 한 가지 뜻으로만 쓰이지는 않았다. 386 PC 기종이 나중에 나온 486이나 586(펜티엄) 기종보다 성능에서 뒤지는 것을 사람에 빗대어 비꼬는 말로 쓰이기도 하였다. back
  8. 지금은 억(億)이 만(萬, 10000)의 만 배를 뜻하지만, 옛적에는 억(億)이 만(萬)의 10배를 가리키는 말(10만)로도 쓰였다고 한다. 더 큰 수를 세려고 필요에 따라 수를 세는 쳬계를 바꾼 셈이다. 이에 비추어 보면, 토박이 셈말도 더 큰 숫자를 나타낼 필요에 따라 수를 세는 말 규범을 새로 약속하여 갖추어 나갈 수 있다고 볼 수는 있다. back
  9. 수를 급히 셀 때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입에 익은 토박이 셈말 "하나, 둘, 셋, …"으로 세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흔아홉'까지 이를 수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쭉 세다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이십', '삼십, '사십', '오십' 같은 한자 셈말이 입에서 튀어 나오곤 한다. '오십 하나'처럼 큰 숫자는 한자 셈말을 쓰고 작은 숫자는 토박이 셈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back
  10. 실은 노벨상 가운데 수학상은 없다. 노벨 수학상을 타려면 없던 상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수학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혼자 힘으로는 당장 노벨 수학상을 탈 수 없다. 마찬가지로 토박이말로 숫자를 잘 읽게 하는 일도 좋은 방안을 마련하고 그 방안을 여러 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데에 이르러야 뜻이 있다. back
  11. 당장 99원(아흔아홉 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갑자기 옛적에 쓰인 낱말로나 알려져 있는 온(백, 100)이나 즈믄(천, 1000)을 입에 올려 물건값을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사람이나 이방인으로 비치기 딱 좋다. back
  12. 이 모순은 "하나, 둘, 셋, …"으로 매우 큰 수까지 셀 수 있게 애쓰지 않은 우리 조상들의 잘못으로 벌어졌다. 하지만 백(百, 100)도 안 되는 수마저 토박이 셈말로 잘 세지 못하는 것은 오늘의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에서 이미 익혔어야 할 숫자 세기를 소홀히 하는 탓이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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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세기 2016/10/30 20: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이렇게 자세히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3-90과 390을 혼용해서 쓰다가 314 유출안 이후로 390을 주로 쓰곤 했었는데, 올려주신 글을 읽어보니 3-90이란 이름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블로그의 글들도 390이라 쓰여 있는 글들을 3-90으로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팥알 2016/11/01 22:0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맙습니다.

      실은 314 자판안 제안문에 나온 3○○ 꼴 이름이 너무 어지럽게 보여서 배열 이름 문제를 글로 다루어야겠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떻게 잘 알릴지를 따지는 문제이니 '우리끼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비치는지에 더 좋은 답을 가리는 기준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