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존법(壓尊法)

  한국어에서는 듣는 이가 말하는 이보다 나이, 항렬, 지위 등에서 높으면 도움토씨(보조사) '-요', 뒷가지(접미사) '님', 임자자리토씨(주격조사) '-께서', 높임 안맺음씨끝(존칭 선어말어미) '-시-' 따위를 붙여 높인다. 한국어는 높임법(존대법)이 다른 어느 말보다도 번거롭고 까다로운데, 높임법 가운데서도 압존법(壓尊法)은 그 까다로움을 대표한다.

  압존법은 문장의 주체를 낮추어 듣는 사람을 대우하는 어법이어서 청자 높임법(들을이 높임법)에 속한다. 말하는 이가 문장의 주체보다 낮다면 문장의 주체를 높여야 하겠지만, 듣는 이가 문장의 주체보다 더 높은 사람이면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것이 듣는 이에게 거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말하는 이는 듣는 이의 입장에 맞추어 문장의 주체를 높이지 않을 수 있다. 이를 압존(壓尊)이라 한다.

  다음은 압존법을 적용했을 때(ㄱ-1, ㄴ-1)적용하지 않았을 때(ㄱ-2, ㄴ-2)의 예이다.

 ㄱ-1. 할아버지, 아버지가 돌아왔습니다.
 ㄱ-2. 할아버지, 아버지께서 돌아오셨습니다.

 ㄴ-1. 여러분, 홍길동 교수가 발표하겠습니다.
 ㄴ-2. 여러분, 홍길동 교수님께서 발표하시겠습니다.

 ㄴ-3. 여러분, 홍길동 교수님이 발표하겠습니다.

  ㄱ-1는 압존법에 따라 말하는 이의 아버지를 높이지 않은 문장이고, 이야기를 듣는 할아버지의 입장에서 높임법을 적용하였다. ㄱ-2은 말하는 이(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를 높인 문장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ㄱ-1가 예의에 맞는 표현으로 가르치지만, 할아버지는 부모를 예우하게 하려는 교육 차원에서 손자에게 ㄱ-2 문장처럼 쓰는 것을 권할 수 있다.

  ㄴ은 사회자가 다수인 청중에게 이야기하는 경우이다.

  ㄴ-1는 압존법에 따라 교수를 높이지 않음으로써 청중을 대우한 문장이다. 불특정 다수인 청중에게 이야기할 때는 ㄴ-1처럼 교수를 높이지 아니하여서 청중을 우대하는 것이 적절하다.

  ㄴ-2은 압존법을 따르지 않고, '-님'과 '-시-'를 붙여 교수를 아주 높였다. 청중을 대우하지 않은 표현이다. 청중이 교수를 모두 존대하는 처지이거나, 모임이나 강연이 교수의 권위를 빌어 주최되었다면 나올 법한 표현이다. 하지만 교수를 지나치게 높여서 사회자가 청중을 대우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ㄴ-3은 문장의 주체에 '-님'만 붙여서 문장의 주체를 조금 높인 문장이다. 압존법을 조금 따라서 교수와 청중 모두를 적당히 대우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때와 장소를 잘 가려야 하는 압존법은 애매하고 까다로워서 자로 재듯 이야기하기 어렵다. 압존은 듣는 이에게 예의를 차리는 것이므로, 말하는 이의 심리 상태나 언어 습관에 따라 다른 표현을 할 수 있음을 참작해야 한다. 요즈음 방송이나 모임에서 ㄴ-2처럼 압존법을 따르지 않고 문장 주체를 높이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으나, 듣는 이가 불특정 다수이면 문장 주체의 지위가 높더라도 듣는 이를 더 예우하는 게 민주 사회의 예의에 맞다.

2009/06/15 23:12 2009/06/15 23:12
얽힌 글타래
<한말글> 글갈래의 다른 글
글 걸기 주소 : 이 글에 다른 글을 걸 수 없습니다

덧글을 달아 주세요

  1. 깨몽 2011/04/21 23: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햐~ 신기한 일입니다.
    저도 우리말 높임법을 두고 글을 하나 썼는데, 얽힌 거리를 찾다보니 이 글이 있네요...^^
    요즘(민주주의 사회)에는 직책이 높아도 뭇사람을 높이는 것이 도리인 듯하다는 내용도 비슷하고...^^
    http://2dreamy.tumblr.com/post/4805694472

    그리고 우리말 높임법을 두고 이런 글도 있는데 한번 봐 주시고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http://2dreamy.tumblr.com/post/4805765783

    • 팥빙산 2011/04/22 08:1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위의 보기와 같은 상황에도 스승은 높여야 한다, 여러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말하고 듣는 사람의 지위가 어떻다 등등 걸리는 게 많죠.
      상대와 상황까지 살피면서 적당히 높인다는 건 너무 까다습니다.
      높임말에 신경 쓰자니 말할 내용에 집중하기커녕 말 붙이기도 어려울 때가 자주 생깁니다.
      솔직히 저는 밥이 빨리 꺼질 만큼 번거로운 우리말이 불만스럽습니다.
      거기다가 요새는 방송 언어에서 압존법을 따르지 않을 때가 많아서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근데 tumblr(텀블? 텀블러?)이 흔히 쓰는 블로그와 달라서 어렵네요.
      제가 몰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덧글 달기가 다르고 글을 걸지도 못하네요.
      사용 설명서(?) 구해서 연구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