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탭을 고를 때 따져볼 점들

접지

  접지는 전기 기기의 접지극을 대지에 있는 접지극에 이어서 기기와 대지의 전위를 같게 하는 것이다.

  접지되지 않는 기기는 기기 안에 전하가 쌓여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는데, 넘치는 전하가 누설 전류가 되어 흘러나갈 때 회로가 상할 수 있다. 사람이 만지면 몸에 전기가 흘러 따끔거릴 수 있고, 누설 전류가 크게 생기면 감전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기기를 접지하면 남아도는 전하가 곧바로 땅으로 흐른다. 누전 차단기가 작동하기 전이라도 누설 전류가 접지선을 통해 땅으로 빠져 나갈 수 있다. 그래서 기기를 접지하면 기기와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

  건물 배선이 잘 되어 있다면 접지극 있는 기기는 벽 콘센트나 접지형 멀티탭에 연결해서 접지할 수 있다. 2000년대에 완공한 건물들은 대체로 법에 따라 접지 배선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일수록 접지 배선이 되지 않은 곳이 많으므로, 접지 배선이 되지 않았다면 접지선을 잇는 배선 공사를 하는 게 좋다.

  접지 배선 공사를 할 수 없다면 임시 방편으로 기기의 외함을 땅과 이어진 금속(수도관. 변압기 외함 등)과 전선으로 연결하여 접지하기도 한다. 다음에 이야기할 전자파 차단 멀티탭으로 접지한 효과를 조금 내기도 한다.

  지금은 시중에서 접지극이 없는 멀티탭을 팔 수 없지만, 과거에 나온 제품이나 개인이나 기술자가 임의로 만든 것은  접지극이 없는 게 꽤 있다. 접지극과 접지선이 없는 멀티탭은 안전을 생각해서 쓰지 말아야 한다.

전자파 차단 기능

  전자파 차단 멀티탭은 낙뢰 방지 회로, 전화선 보호 기능이 들어가기도 하는 점에서 뒤에 이야기할 서지 보호 멀티탭의 성격도 조금 띤다.

  전자파 차단이란 전계(전기장) 성분을 없애는 것을 가리킨다. 전계는 기기 안의 전위차 때문에 생기며, 전위차는 기기에 쌓이는 전하 때문에 생긴다. 전차파 차단 멀티탭은 기기에 쌓인 전하와 극성이 반대인 전하를 일으켜 서로 에낀다. 그렇게 전위차를 없애면 전계도 사라진다.

  접지 배선이 된 곳에서는 일반 접지형 멀티탭을 통해 접지만 해도 전계가 사라지므로, 굳이 전자파 차단 멀티탭을 쓸 필요는 없다. 전자파 차단 멀티탭은 기기들의 전위를 수동으로 조절할 수 있어서(등전위 수동 조절). 접지할 수 없는 곳에서 전계와 따끔거림을 없앨 수 있다. 대신 땅으로 누설 전류를 흘려보내지 못하므로, 많은 누설 전류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전하를 수동으로 조절하는 점 때문에 전자파 차단 멀티탭은 설치할 때마다 전하 조절 장치를 확인해야 한다. 전하 조절을 잘못하면 오히려 전계를 일으키므로 쓰지 않음만 못하다.

  조절 장치는 멀티탭 본체 또는 전선 쪽에 달려 있다. 조절 장치 가까이에는 손을 대는 금속부와 확인용 전구가 있다. 금속부에 손을 대서 전기가 흐르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멀티탭을 설치하고 나서 금속부에 손을 대서 불이 켜지지 않도록 조절 장치를 맞추어야 한다. 만약 아무리 조절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전원이나 기기에서 누전되고 있는 것이므로 빨리 원인을 찾아야 한다.

허용 전류

  전선에는 흐르는 전류(I)의 제곱과 전선의 저항(R)에 비례하는 열이 난다(W = I^2 * R). 전선의 열은 전기 화재 위험을 높이므로, 멀티탭 제조사는 안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허용 전류(또는 허용 전력)를 밝히고 있다. 220V용 멀티탭의 허용 전류는 대개 10~16A이고, 꽂이(구, 소켓) 하나에도 허용치를 두기도 한다.^주1

  기기가 소비하는 전류는 대개 기기에 적힌 규격 딱지나 설명서에 나와 있다. 기기들의 소비 전류 합이 멀티탭 허용 전류보다 넉넉하게 낮아야 좋다. 전선에 흐르는 전류가 적도록 분산해야 안전하며, 멀티탭을 문어발식으로 연장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소비 전력이 큰 냉장고, 에어컨, 전기 난로 등은 다른 기기와 함께 연결하지 않아야 좋다.

전원 차단 방식

  멀티탭의 전원 단추는 한쪽 극(단극)만 끊는 방식과 두 극(양극)을 끊는 방식이 있다.
 
  교류 회로에서 한 쪽 선만 끊으면 끊어진 지점이 축전지(콘덴서)처럼 되어 충전과 방전을 거듭하므로 전기가 조금 흐를 수 있다. (형광등을 껐는데 약한 빛이 계속 깜빡이는 것이 이 때문이다.)

  반면에 두 극을 끊으면 전기를 완전히 끊을 수 있으므로, 대기전력 때문에 생기는 전기 요금을 아낄 수 있다.

과부하 자동 차단 기능

  멀티탭 가운데는 허용 전류를 넘는 부하가 걸리면 전원을 끊어주는 것이 있다. 기기들의 소비 전력 소모가 너무 많거나 누전될 때에 이 기능이 작동하여 전기 화재와 기기 손상을 예방한다.

  접지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멀티탭의 과부하 차단 기능이 제때 작동하지 못할 수 있다. 접지형 멀티탭이데도 일부 꽂이(소켓)가 접지되지 않는 불량품이면 모르고 쓰다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 (http://mycom.kr/810에 그런 사례가 있다.) 그래서 콘센트 검상기(아래 그림)로 접지 불량을 가려내기도 한다. 접지되지 않은 기기 주위에 전계가 생기는 것을 이용해 전기장 측정기로 간접 확인할 수도 있다.


 

회로 보호 기능 (서지 보호 멀티탭)

  서지 보호 멀티탭은 비싸거나 고장나면 타격이 큰 기기들을 보호하기 위한 고급형 제품이다. 그래서 과부하 차단 기능보다도 더 다양하고 강력한 회로 보호 기능이 들어간다. 물론 서지 보호 멀티탭도 접지된 콘센트에 연결해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서지(surge)는 순간에 흐르는 고전압 이상 전류를 가리킨다. 낙뢰나 발전 및 송전 설비 문제, 기기 오작동 등으로 생기는 서지 전류는 기기를 망가뜨리는 원인이 된다. 기기를 쓰는 환경이 다음 조건에 하나라도 들어맞는다면 서지 보호 멀티탭을 쓰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 낙뢰 때문에 기기가 망가진 적이 있다.
• PC나 서버 등 전산 기기를 생계 수단으로 쓰고 있다.
• 값비싼 영상/음향 장비를 쓰고 있다.
• 가끔 규정 전압보다 높은 전압이 들어온다.

  서지 보호 멀티탭도 성능과 용도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므로, 제품 규격에 나오는 다음 사항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허용 전류 또는 전력 : 연결된 기기의 소비 전력을 고려함
• 흡수할 수 있는 전류, 전압, 에너지 한계 : 이 값들이 클수록 보호 범위가 넓고 수명도 오래 감
• 온도 퓨즈 기능 : 감당하지 못할 상태가 되면 퓨즈를 끊어 회로를 보호함
• 보호할 수 있는 선의 종류 : 낙뢰가 들어오기 쉬운 전화선, 랜선, 안테나선 등
• EMI/RFI 정류 범위(고주파 AC 잡음 제거 범위) : 잡음에 민감한 기기를 쓸 때 효과를 볼 수 있음

  서지 보호 멀티탭은 저전압을 보상해 주지 못한다. 저전압 문제는 무정전 전원장치(UPS)를 써야 해결할 수 있다. 무정전 기능이 들어간 멀티탭도 있는데, 아무래도 전문 장비보다는 전기 용량이 작다.

〈주석〉

1. 많은 전류를 보내려면 저항(R)이 적은 전선을 써야 한다. 굵거나 전선 재료의 전도윴이 좋을수록 전선의 저항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