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신세벌식 자판이 나온 지 20돌?

  신세벌식 자판은 대형 PC 통신망인 하이텔의 한글 프로그래밍 동호회에 공개한 자료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 때 올라온 압축 파일에 신세벌식 자판을 설명한 글과 간이 입력기가 들어 있었고, 그 자료 파일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http://bbs.pat.im/viewtopic.php?f=15&t=906)

  신세벌식 자판을 최초로 설명한 글이 작성된 날짜가 1995년 9월 22일입니다. 제 기억에는 그 날짜에 자료가 올라왔던 것 같은데, 그 기억이 틀려서 며칠 오차가 있더라도 올해로 신세벌식 자판이 세상에 나온 지 스무 돌을 맞는 셈입니다.주1

신세벌식 1995 자판 배열
신세벌식 자판이 처음 제안된 글에 나온 자판 배열표 (1995, 신광조)

  1995년에 처음 제안된 신세벌식 자판은 공세벌식(공병우 세벌식) 자판에서 껄끄럽게 느껴졌던 4줄 배열과 겹받침 문제를 깔끔하게 개선한 꼴입니다.

신세벌식 1995 자판과 3-90 자판으로 '있습니다'를 칠 때 글쇠 누르는 차례 비교
신세벌식 1995 자판과 3-90 자판으로 '있습니다'를 칠 때 글쇠 누르는 차례 비교
신세벌식 자판과 공세벌식 자판으로 '있습니다' 치기 비교 (움직그림)
신세벌식 자판과 공세벌식 자판으로 '있습니다' 치기 비교 (움직그림)

  신세벌식 자판은 영문 자판의 숫자열까지 한글이 들어가지 않아서 남자 어른에 비하여 손가락이 짧은 여자와 어린이가 더 쉽게 쓸 수 있는 꼴입니다. 순아래 자판 구실도 겸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ㅆ을 뺀 겹받침을 따로 두지 않아서 자판을 처음 익히는 사람이 느끼는 진입 장벽이 공세벌식 자판보다 훨씬 낮습니다. 입력 방식에서 요령을 좀 부리면 신세벌식 P 자판에서 시도한 것처럼 옛한글 입력을 겸하는 배열로도 쓸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공세벌식 자판의 배열과 입력 방식을 크게 개선한 신세벌식 자판은 공병우 타자기,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 함께 세벌식 자판의 역사에서 길이 기릴 만한 발명품입니다. 하지만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기 때문인지 신세벌식 자판을 지원하는 입력기나 응용 풀그림이 드물었고, 널리 알려지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런 탓에 신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은 공세벌식 자판보다 드뭅니다. 신세벌식 자판을 지금 쓰고 있는 사람들도 공세벌식 자판을 익혔다가 뒤늦게 신세벌식 자판을 알고 바꾸어 쓴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에도 입력기 지원 문제로 신세벌식 자판을 쓰지 못하는 운영체제 환경이 있습니다. 맥 OS X나 iOS 환경이 그러합니다. 이 때문에 신세벌식 자판이 아무리 좋더라도 아무에게나 무턱대고 권하기가 어려운 형편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윈도 환경이라도 신세벌식 자판을 쓰려면 입력기를 따로 깔고 설정해 주어야 하는 점이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

  이미 공세벌식 자판을 익숙하게 쓰는 사람은 신세벌식 자판을 쓰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많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면 때문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세벌식 자판에 한 번 맛들이면 다시 공세벌식 자판으로 되돌아가기는 매우 힘듭니다. 윗글쇠를 거의 쓰지 않고 가벼운 손놀림으로 쓸 수 있는 신세벌식 자판의 매력을 느끼고 나면, 공세벌식 자판을 다시 쓰는 일이 참기 힘든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신세벌식 자판이 공세벌식 자판보다 못한 면도 있습니다. 신세벌식 자판이 같은 글쇠나 같은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가 더 잦고, 왼손 타수가 좀더 많은 것이 큰 것은 흠입니다. 하지만 영문 자판의 숫자 자리를 그대로 쓸 수 있고 손가락을 뻗어 치는 거리가 짧은 것이 그런 흠을 에끼고도 남습니다. 그래서 누가 조금이라도 더 익히기 쉽고 쓰기도 편한 한글 자판을 찾는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세벌식 자판 가운데 신세벌식 자판을 가장 먼저 추천할 것입니다.

〈주석〉
  1. 신세벌식 자판을 담은 최초 자료는 1995.9.22.에 올라온 것이 맞습니다. 다른 자료에 섞여 있던 옛 하이텔 동호회 자료 목록을 뒤져서 확인했습니다. (2016.1.14.)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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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마머꼬 2015/09/30 12:2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세벌식 사용자로서 기념할만한 일이군요...

    현재야 세벌식 3-2015p를 쓰고 있는데

    아직 ㅎ 받침말고는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지만 ㅎ
    받침하나로도 신세벌식 방식의 장점이 확연히 느껴집니다.

    • 팥알 2015/09/30 17:1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뒤늦게 신세벌식 자판의 매력을 깨달았습니다. 신세벌식 자판만 쓴 지가 이제 7달쯤 되었는데, 20해 가까이 쓴 공세벌식 자판을 다시 쓰기가 괴롭게 되었습니다. 왼손 타수가 좀 더 많지만, 손가락을 덜 뻗어도 되고 윗글쇠를 써야 하는 때가 크게 줄어서 너무 좋습니다.

      3-2014, 3-2015P 자판은 신세벌식 자판의 매력을 끌어들여서라도 공세벌식 자판의 틀을 지키려는 뜻에서 마련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배열들은 제가 신세벌식 자판에 적응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