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글 문화원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공세벌식 자판 연구

  공세벌식 자판을 쓴 수동식 공병우 타자기는 1950년대부터 공공 기관의 업무에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6·25 동란을 거치며 어려웠던 경제 상황, 문서 만드는 관행, 기계식 수동 타자기의 묵직한 특성 때문에 한글 타자기가 요즈음의 컴퓨터처럼 흔히 쓰이는 기기는 되기 어려웠다.

  지난날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타자기는 개인들이 흔히 쓸 수 있는 기기가 아니었고, 관공서나 기업이 주된 수요처였다. 경제 원조를 받아야 할 만큼 궁핍했던 1950년대의 한국에서는 한글 타자기 시장에서 관공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컸다. 그렇다 보니 민간에서 한글 타자기를 만져 본 사람이 드물었고, 많은 사람들이 한글 타자기를 누구나 다룰 만 한 기기가 아니라 잘 훈련된 몇몇 사람이 다루는 전문 기기로 여길 수 있었다. 가로쓰기를 하는 한글 타자기가 널리 쓰일 수 있으려면, 문서에 한자를 섞고 글을 세로로 쓰는 관행부터 바꾸어 나가야 했다. 또한 수동 타자기는 글쇠를 어느 만큼 깊고 강하게 눌러야 해서 손가락힘이 매우 약한 사람은 쓰기 어렵고, 활자를 종이가 때리는 소리가 대체로 커서 쓰는 장소를 가려야 한다.주1

  이런 제약들이 있었음에도 공병우 타자기는 1960년대까지 한글 타자기 시장을 과점하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했고, 수동 타자기 배열을 변형한 배열을 쓴 공병우식 전신 타자기도 실용화하였다. 여러 기기에서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공세벌식 배열을 쓸 수 있는 것은 그 무렵에 작지 않은 매력이었다. 반면에 사람들이 더 간편하게 여기는 두벌식 자판은 풀어쓰기를 하지 않는다면 전자식으로 한글 처리를 해야 하지만, 아직 전자 회로의 성능이 낮아서 두벌식 자판이 널리 편하게 쓰이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런 상황이 좀 더 이어진다면 공세벌식 자판은 시장 경쟁을 통하여 점점 더 많은 한글 타자기가 보급됨에 따라 가장 많이 쓰이는 한글 자판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국무총리 훈령 제81호 - 한글기계화 표준자판 확정에 따른 지시 (1968.7.28.)

[그림 9-1] 국무총리 훈령 제81호 - 한글 기계화 표준자판 확정에 따른 지시 (1968.7.28.)

그림 :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에서 본 한글 자판 (https://pat.im/1130)

  그러나 1969년 이후의 박정희 정부가 벌인 한글 타자기 자판 표준화 정책에 가로막혀 공병우 타자기와 공세벌식 자판은 주류 자리에서 밀려났다. 1969년에 과학기술처는 4벌 기계식 타자기와 2벌 전신 타자기에서 쓸 한글 자판을 마련했고, 이들이 국무총리 훈령 제81호를 통하여 표준 자판으로 공표되었다. 그 뒤에 정부는 공공 기관에서 표준 자판을 쓴 한글 타자기만 쓰게 하였다. 그리고 정부 부처들을 움직여 네벌식 표준 자판을 쓰지 않는 한글 타자기를 쓰지도 가르치지도 못하도록 교육 기관과 민간 시장을 압박하였다. 그 통에 김동훈 타자기를 비롯한 민간 발명가들이 만든 한글 타자기들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공병우 타자기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한·영 겸용 제품을 선보이며 더 나은 타자 능률과 기능을 내세운 끝에 정부의 불공정한 시장 개입에 맞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공병우 타자기는 시장을 과점하던 지난날과 달리 비표준·비주류 제품으로서 민간 시장에 기대어 어렵고 외롭게 명맥을 잇는 처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한글 타자기를 통하여 공세벌식 자판을 접한 사람은 드물었다.

공병우 세종 한영 타자기 (UNION 71)

[그림 9-2] 공병우 세종 한영 타자기

  하지만 1980년대에는 공세벌식 자판이 컴퓨터를 통하여 정부 정책, 시장 상황, 개개인의 신체·체력 문제 등에 덜 얽매이며 쓰일 길이 열렸다. 컴퓨터 보급 초기에는 컴퓨터의 처리 성능이 느리고 한글 지원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아서 컴퓨터로 한글을 넣고 찍는 일이 수월하지 않았다. 영문 환경에 맞추어진 컴퓨터의 기본 프로그램 환경에 한글 입출력 기능을 덧붙인다면, 컴퓨터의 처리 성능과 기억 공간을 많이 희생해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주2 하지만 1990년대에는 기능과 처리 효율이 뛰어난 한글 지원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고, 한글 처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컴퓨터의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기억 공간도 커졌다. 또한 컴퓨터에서는 수동 타자기보다 글쇠 누르는 힘이 훨씬 덜 드는 글쇠판을 쓸 수 있다. 이 덕분에 사람들은 타자기를 쓸 때보다 쾌적한 한글 입력 환경에서 실무 작업과 연습을 함께 하며 한글 타자 실력을 갈고닦을 수 있게 되었다. 타자기는 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썼지만, 컴퓨터가 널리 쓰인 뒤에는 어린이나 전업 주부처럼 직업 활동에 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글 자판을 능숙히 다루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한글 문화원 3-90 자판(390 자판) 딱지(스티커)가 붙은 글쇠판

[그림 9-3] 3-90 자판 딱지가 붙은 글쇠판

그림 : 국립한글박물관 기획전 『디지털 세상의 새 이름_코드명 D55C AE00』에서 본 한글 자판 (https://pat.im/1130)

  공병우는 아직 한글 문화원을 세우지 않은 1980년대 초반부터 한글 지원 프로그램 개발자들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개발자들이 개량된 공세벌식 자판을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도록 이끌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무렵에는 공세벌식 자판의 입출력 원리를 잘 아는 프로그램 개발자가 드물었지만, 공세벌식 자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하나둘씩 나오면서 한글 지원 프로그램들이 표준 두벌식 자판만 지원하던 분위기가 차츰 공세벌식 자판도 함께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이 활동은 한글 문화원이 세워진 뒤에 효과가 더 두드러졌다. 특히 문서 편집 프로그램인 'ᄒᆞᆫ글'(아래아한글), 타자 연습 프로그램인 '한메타자교사', 통신 프로그램 '이야기' 등이 공세벌식 자판이 널리 쓰이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컴퓨터에서 일반 사용자들이 공세벌식 자판을 쓸 수 있는 기반 환경이 갖추어진 덕분에 한글 문화원의 세벌식 자판 보급 운동은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컴퓨터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의 수는 타자기에서 쓰던 사람들을 금방 압도했고,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의 직업·나이·성별·지역에 얽힌 성향도 훨씬 다양해졌다. 문인들의 수요에 맞춘 공병우 문장용 타자기와 시각 장애인을 위한 공병우 점자 타자기가 나왔던 것처럼, 쓰는 사람이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수요에 맞추어 배열을 바꾼 응용 배열들이 나왔다. '안종혁 순아래 자판'과 '3-93 옛한글 자판'이 그런 사례였다.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3-90 자판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한글 낱자를 윗글쇠를 쓰지 않고 넣을 수 있게 바꾼 배열인데, 손이 불편한 사람들의 절박한 필요를 알린 점이 한글 자판 연구자들에게 두고두고 귀감이 되었다. 3-93 옛한글 자판도 옛한글 입력이라는 특수한 목적에 맞춘 응용 배열이다.

3-90 자판

[그림 9-4] 3-90 자판 (일반 보급용)

안종혁 순아래 자판 (1990)

[그림 9-5] 안종혁 순아래 자판 (3-90 응용)

3-93 옛한글 자판

[그림 9-6] 3-93 옛한글 자판 (3-90 응용)

  안종혁 순아래 자판과 3-93 옛한글 자판은 일반 보급용 배열인 3-90 자판을 고쳐 만든 응용 배열이다. 이처럼 일반 보급용 공세벌식 자판의 응용 배열이 나오고 쓰인 사례는 있었지만, 한글 문화원이 아닌 주체가 새로운 일반 보급용 공세벌식 자판을 만들어 꾸준히 보급한 사례는 없었다. 그 까닭을 이렇게 추려 볼 수 있다.

  • 아직 공세벌식 자판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이 적음
  •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새로운 익히는 배열(3-90 또는 공병우 최종)에 적응하는 단계에 있었음
  • 공세벌식 자판의 세밀한 문제를 논의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음
  • 한글 문화원이 배포하는 자료 이외에 비교·검토에 참고할 자료를 접하기 어려움
  • 다른 주체가 한글 문화원만큼 주도면밀한 활동을 펼치며 공세벌식 자판 홍보·보급의 주도권을 쥐기 어려움
  • 한글 문화원의 활동에 끼어드는 것에 대한 명분상 도의상 부담이 큼

  1990년대 초반은 젊은 사람들도 컴퓨터 환경에서 갑작스럽게 한글 자판에 적응하느라 벅찼던 때였다. 한글 타자기를 먼저 다루어 본 사람이 적었고, 컴퓨터를 다루면서 한글 자판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 많았다. 1982년에 표준이 된 두벌식 자판이 컴퓨터 시장에 보급되고 있었지만, 쓸모 있게 나온 한글 지원 프로그램이 많아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작업은 문서 작성보다 프로그램 개발 쪽에 무게가 더 쏠려 있었다. 타자 연습 프로그램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때였으므로,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한글 자판으로 손글씨보다 빠르게 한글을 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흔하지 않았다.

  그 무렵에 한글 자판 연구가들과 언론 매체들은 한글 자판 문제를 다룰 때에 주로 두벌식·세벌식처럼 굵직한 짜임새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한글 문화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에도 공세벌식 자판을 익힌 사람들은 거의가 표준 두벌식 자판을 먼저 쓴 경험이 있었다. 입력 체계가 다른 한글 자판을 둘 이상 써 본 경험은 한글 자판을 비교하고 연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글 자판을 새로 익히는 단계에 있는 사람이 자판 배열 세세한 요소들에 문제 의식을 바로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을 막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세부 배열에 의문을 품고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할 방안을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설령 공세벌식 자판에 관한 문제 의식을 느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토론할 공간이 마땅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에는 아직 웹(web)이 널리 쓰이지 않았고, 널리 쓸 수 있는 정보 통신 매체는 대체로 유료로 운영되고 전화 회선을 통하여 접속할 수 있었던 대형 PC 통신망들이었다. PC 통신망에는 요즈음의 블로그처럼 유명인이 아닌 개인이 글과 자료를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게시판 공간이 거의 없었고,주3 대형 PC 통신망들은 요즈음의 포털 게시판과 비슷한 전체 게시판과 요즈음의 카페와 비슷한 동호회 등을 갖추어 정보를 널리 나누는 창구가 되었다. 하지만 PC 통신망들은 여러 운영사들이 따로 운영했고, 요즈음의 웹과 달리 다른 PC 통신망과 직접 소통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어느 PC 통신망에 올라온 자료가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려면, 다른 통신망을 쓰는 사람들이 자료를 퍼나르거나 출판물 같은 다른 매체를 함께 이용해야 했다.

  그래서 옛 한글 문화원은 세벌식 자판(공세벌식 자판)을 알리는 일에 정보 통신 매체를 이용하면서도 소책자 배포, 간행물 기고, 강연과 같은 오프라인 활동을 함께 했다. 공세벌식 자판 배열이 담긴 글쇠판 딱지를 만들어 나누어 준 일은 사소해 보일 수 있더라도 꾸준히 이어 나가기는 쉽지 않은 활동이었다. 프로그램 개발자들을 설득하여 공세벌식 자판을 지원하게 하는 일도 한글 문화원의 활동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 한글 문화원을 이끈 사람이 다름아닌 공세벌식 자판을 창안하고 가꾸어 온 공병우였고, 공세벌식 자판을 가꾸고 알리는 데에 꾸준히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공병우나 한글 문화원과 인연이 있었다. 그래서 활동 역량을 따지든 명분이나 도의를 따지든 '공병우 세벌식'에 관한 일은 한글 문화원이 결정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길 수 있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더 좋은 공세벌식 배열안을 만들 수 있더라도, 한글 문화원의 권위와 추진력 없이 새 배열안을 널리 빠르게 보급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보급하면 보급용 배열이 여렷으로 나뉘어 세벌식 자판 보급 운동의 힘이 빠질 수 있음을 걱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무렵에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마땅한 대안이 있든 없든 한글 문화원의 활동과 입장을 존중하고 따르려는 생각이 컸고, 독자 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2) '공병우 최종 자판' 보급을 둘러싼 조용한 갈등(?)

  1990년대에 한글 문화원은 '세벌식 자판'에 관하여 대표성을 널리 인정 받던 단체였고, '공병우'는 그런 한글 문화원을 떠받치는 귄위자였다. 하지만 공병우와 한글 문화원이 세벌식 자판 또는 공세벌식 자판에 관한 일을 언제나 뜻하는 대로 이루었던 것은 아니다. 앞의 글에서도 살핀 공병우 최종 자판이 그러한 예였다. 아래의 두 가지 한글 문화원 안내문을 살피며 공병우 최종 자판에 얽힌 속사정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주4

[그림 9-7] 한글 문화원 안내문 ① - 「3벌식 최종 자판에 관하여....」 (오한중)

[그림 9-7] 한글 문화원 안내문 ① - 「3벌식 최종 자판에 관하여····」 (오한중)

  안내문 ①(글쓴이: 오한중)는 글이 작성된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에서도 본 《정보시대》 1992년 10월호 기사 「2벌식과 3벌식, 그 논쟁의 끝은」(그림 6-7)이 참고 문헌으로 나온 것으로 미루어서 1992년 말~1993년에 공개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의 배열표를 함께 나와 있는데, 이 배열표에 참고표는 들어 있지 않다. 가운뎃점(·)이 아래아(ㆍ)로 들어가 있다.

  제목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3벌식 최종 자판'이라고 일컬었고, IBM-PC 호환 기종에서 쓰이던 3벌식 자판(3-90 자판)을 '390 자판'이라고 하였다.주5 3-90 자판을 주도하여 만든 '박흥호'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고, "공병우 박사님이 이 자판을 만들 당시 “프로그램을 짤 때 사용되는 자판과 가급적 같게 하는 편이 좋겠다”는 IBM 프로그래머의 말에 따라 영문 자판의 숫자와 기호 배치를 고려하여 한들을 배치했"다고 하였다. 공병우 최종 자판이 숫자와 기호가 영문 자판보다 능률적으로 배치되었고, 한글과 숫자가 섞인 문장을 칠 때에 능률적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390 자판' 대신에 '공병우 최종자판'으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였다.

  안내문 ①에 참고 자료로 나온 월간 《정보시대》에 실린 「2벌식과 3벌식, 그 논쟁의 끝은」에서는 숫자 비율이 다른 4가지 자료(한글 과학화에 대한 글, 설문응답 종합 통계표, 전국 주소록, '전국 주소록'에 대한 결과표)를 넣을 때에 윗글쇠를 누르는 잦기를 비교하여 숫자의 비율이 높아질수록 3벌식 자판(공병우 최종 자판)이 운지 거리와 양손 부담률이 나아지는 것을 근거로 영문 자판과 같은 2벌식 자판의 숫자 배치보다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병우 최종 자판의 기호 배치 효율이 높음을 밝히는 비교·분석 내용은 기사에 나와 있지 않았다.

  글에 숫자가 많이 들어갈수록 공병우 최종 자판을 비롯한 공세벌식 자판의 운지 거리와 오른손 분담률이 줄어드는 것은 맞다. 하지만 영문 자판의 숫자 배열은 두 손을 모두 쓸 수 있는데, 공세벌식 자판은 왼손으로 윗글쇠를 누른 채로 오른손을 움직여 숫자를 넣어야 한다. 숫자 배열에 숙달했을 때에는 한 손만 움직이는 숫자 배열보다 두 손을 모두 쓰는 숫자 배열이 빨리 치기 좋으므로, 운지 거리와 오른손 분담률만을 근거로 공병우 최종 자판의 숫자 배치가 더 효율적이라고 하는 것은 옳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영문자판은 숫자의 배치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숫자의 입력을 위해 키보드의 오른쪽에 숫자판을 따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 것도 영문 자판의 숫자 배열을 익숙하게 잘 쓰는 사람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이다.

 

한글 문화원 안내문 ② - 「'공병우 최종 자판'과 '390 자판'」 (이란희, 1993.4.27.)

[그림 9-8] 한글 문화원 안내문 ② - 「'공병우 최종 자판'과 '390 자판'」 (이란희, 1993.4.27.)

  안내문 ②(글쓴이: 이란희)에서는 공병우 최종 자판이 1991년에 공개되었음을 알리면서, 공병우 최종 자판이 3-90 자판(390 자판)과 견주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였다. 공병우 최종 자판과 3-90 자판이 서로 다른 목적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앞뒤 사정이 안내문 ①보다 자세히 나와 있다.주6 안내문 ①와 같이 3-90 자판 대신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쓸 것을 권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을 '최종자판'으로 줄여 적기도 하였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1992년에 한글 문화원이 개발한 공병우 직결식 글꼴 및 입력 스크립트와 엘렉스 컴퓨터가 한글 문화원의 의뢰를 받아 개발한 매킨토시 입력기 '세벌식 입력'을 통하여 쓸 수 있었다. 1993년 초까지는 IBM 호환 기종 PC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정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없었는데, 두 안내문에는 한글 문화원이 매킨토시가 아닌 IBM 호환 기종에도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려고 한 정황이 보인다.

  IBM 호환 기종에서도 ᄒᆞᆫ글처럼 사용자 정의 자판 기능이 있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쓸 수 길은 열려 있었다. 하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은 익숙하게 쓰는 사람도 배열 정보를 틀린 데 없이 옮기기 어려울 만큼 겹받침·기호 배열이 복잡하다. 그래서 IBM 기종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이 많이 나오려면, 프로그램 개발사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이 때에는 한글 문화원의 연구원을 지내며 공세벌식 자판과 매킨토시 한글 입출력 시스템 개발에 참여한 박흥호·정내권 등이 한글 문화원을 떠나 널리 쓰인 문서 편집 프로그램 ᄒᆞᆫ글을 만드는 '한글과컴퓨터'에 몸담고 있었다. 그림 8-13에서 본 기사에도 나왔듯이 한글과컴퓨터에는 공병우와 인연이 있거나 서로 영향을 받아서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직원들이 꽤 있었다. 만약 이들이 협조했다면, 공병우 최종 자판이 일찌감치 IBM 호환 기종 컴퓨터에 수월하게 보급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의 국내 프로그램 개발사들과 개발자들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려는 한글 문화원의 움직임에 호응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드러나지 않은 어려움과 갈등이 끼어 있었던 것 같다.

  공병우는 한글과컴퓨터, 한컴퓨터연구소 같은 기업과 '한글코드 개정 추진 협의회', 한국과학기술청년회 같은 단체·모임에 한글 문화원이 있는 건물의 사무실을 빌려주며 활동을 지원한 적이 있다.주7 개발자를 고용하거나 개발사에게 의뢰하여 한글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 공병우는 프로그램 개발 업계에서 한글 전산화에 관한 문제에 조언해 줄 수 있는 스승이자 조력자이면서 고객이기도 했다. 이런 인연들이 더해져서 한글 관련 프로그램 개발자들 가운데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한글 관련 프로그램 업계에서 공병우의 뜻이 존중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표준이 아니었던 공세벌식 자판이 1990년대에 나온 많은 프로그램들에서 표준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을 지원하려고 3-90 자판에 대한 프로그램 지원을 줄이거나 끊는 일은 3-90 자판을 쓰는 개발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공병우 최종 자판이 만족스러웠다면, 3-90 자판을 쓰던 개발자들이 공병우 최종 자판을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는 일에 발벗고 나섰을 수 있다. 하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은 한글 배열에 개선된 면이 있더라도, 기호 배열의 불편함이 더 컸다. 공세벌식 자판을 더 빠르게 보급하려면 한글·기호 배열이 조금이라도 더 쉬워야 유리하므로, 공세벌식 자판을 널리 보급하려는 대의를 생각하더라도 잘 보급되고 있던 3-90 자판을 버리고 공병우 최종 자판을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규모가 있는 개발사라면, 원작자의 요청 및 개발자들의 의견과 함께 다른 명분도 살펴야 했다. 정식 표준으로 인정 받는다거나 프로그램 사용자들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것이 개발사가 필요로 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무렵에 공병우 최종 자판은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표준이 될 수 없고, 많지 않은 공병우 최종 자판 사용자들이 프로그램 개발사에 요청하는 것도 바라기 어려웠다.

  위의 두 안내문에서는 3-90 자판의 기호 배치가 IBM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이 쓰기 편한 배치이고, 공병우 최종 자판의 배치가 글을 많이 쓰는 일반인들에게 효율이 더 높거나 더 편리할 것이라고 하였다. 안내문 ①에서는 "일부 프로그래의 편리함보다는 온 국민이 한글을 더욱 능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한글 과학화의 지름길이라는 생각에 자판을 개량하게 시작했"다고 하였고, 안내문 ②에서는 3-90 자판을 "전자 게시판에서 여러 프로그래머들과 상의하여 배열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맥을 잘 짚은 이야기가 아니고, 오히려 IBM 호환 기종을 쓰던 사람들의 실제 성향을 왜곡했다고 할 수 있다.

  위 안내문들의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한글 자판에 관하여 특이한 성향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3-90 자판이 나온 무렵에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프로그램 개발자(프로그래머)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것은 맞다. 일반 사용자들 가운데도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 쓰기 좋게 나온 응용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서 컴퓨터를 처음 배우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부터 익히는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전문 프로그램 개발자로 활동하지 않았고, 전문 프로그램 개발자도 프로그램이 아닌 한글 문서를 만들어야 하는 때가 있다. @·#·$ 같은 기호들은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업무 문서를 만들 때에도 쓰이므로, 컴퓨터 자판에 이 기호들이 있다고 하여 개발자용 자판이라고 한 것이 오히려 특이한 관점이었다.

  특정한 쓰임새에 집중하는 한글 자판과 달리, 여러 사람에게 두루 쓰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한글 자판은 배열 요소들의 균형이 중요하다. 초창기의 수동식 공병우 타자기에는 한글 겹받침이 꽤 많이 들어갔지만, 나중에는 겹받침이 줄고 기호가 더 들어가는 쪽으로 배열이 바뀌었다. 이는 공병우 타자기를 쓰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꼭 필요하지 않은 한글 낱자를 줄여서 문서 작성에 필요한 기호를 늘리는 쪽으로 배열을 바꾸어 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1950년대에 더 개량된 공병우 타자기에는 @·#·$처럼 공병우 최종 자판의 기본 배열에 없는 기호들도 들어갔다.

  공병우 최종 자판에서 ㄽ·ㄾ·ㄿ처럼 드물게 쓰이는 겹받침까지 담긴 것은 직결식 한글 처리를 편하게 하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하지만 한글 배열을 너무 우선하는 바람에 기호를 둘 자리가 줄었고, 그나마도 참고표(※)와 열고 닫는 큰따옴표(“ ”)가 들어가고 마침표와 쉼표가 두 자리씩 차지하는 바람에 영문 자판의 기호들이 많이 들어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공병우 최종 자판은 문서를 만들 때 필요한 기호들을 잘 갖추지 못하여 누구나 무난하게 쓰기 어려운 꼴이 되고 말았다.

  3-90 자판은 한글 배열에 아쉬움은 있어도 한글과 기호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않았다. 어느 한 가지 목적에 너무 집중하지 않고 실무에 필요한 배열 요소들을 고루 챙긴 덕분에, 사무용 공병우 타자기에서 선보인 공세벌식 자판의 강점이 컴퓨터 환경에서도 3-90 자판을 통하여 이어질 수 있었다.

  만약 한글 문화원이 3-90 자판을 버리고 공병우 최종 자판을 앞세웠다면, 취지는 좋더라도 익히는 사람의 고충 때문에 3-90 자판만큼의 보급 성과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3-90 자판을 몸소 쓰던 개발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에 반대하는 뜻을 드러내기는 마땅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창구가 마땅하지 않았고, 공병우와 한글 문화원에 반기를 드는 모양새로 비치는 것도 피해야 했다.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작은 흠결을 비난하기보다는 좋은 면을 찾아 격려하며 힘을 보태고 한데 모으려는 마음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공병우는 젊은 사람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열정이 넘쳤지만, 아흔에 가까운 나이 때문에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거나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일에 어쩔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다.

붙임. 글쓴이가 기억하는 공병우 박사

  글쓴이가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1984년쯤에 한국일보 미국판 신문 기사에서 공병우 박사 기사를 보았다. 애플 회사의 매킨토시 컴퓨터에서 한글을 쓸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한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 기사를 보고 당장 연락하여 프로그램을 받았고, 미국에 살면서 매킨토시에서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한글 타자를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던 공병우 박사는 그 때부터 글쓴이에게 개인 편지와 세벌식 자판 관련 홍보물을 엄청나게 많이 보내 오기 시작했다. 글쓴이는 관심을 가지고 그의 글을 자세히 읽어 보았고, 또 자세한 답장을 보냈다. 이렇게 하여 공병우 박사와의 토론이 시작되었고, 전화 통화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85년쯤인가 공 박사가 비행기표를 보내 줄 테니 방학 때 필라델피아에 있는 자기 집으로 한 번 오라고 하였다. 와서 먹고 자면서 토론을 하자는 것이었다. 비행기표 값이 그 때 250달러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필라델피아로 갈 때, 조그만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는 동안 비행기가 너무 심하게 흔들려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 혼자 사는 집에 갔으니 제대로 밥을 먹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은 자판에 대하여 열심히 토론했다.

  글쓴이의 전공이 컴퓨터였기 때문에 공박사는 그 때 컴퓨터에 대해서 많이 물어 보았다. 특히 프로그램을 배워서 자기도 프로그램도 하고, 한글 자판 프로그램도 짜겠다고 하였다. 글쓴이는 공 박사에게, "프로그램 배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지만, 워낙 배우고 싶어하기에 간단한 프로그램을 가르쳐 드렸다. 그런데 두어 시간 프로그램을 배워 보시더니 도저히 배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프로그램 배우겠다는 말을 안 하였다. 그 때 아마 나흘쯤 머물렀던 것 같다.

김경석, 「컴퓨터 시대에 살펴본 공병우 세벌식 자판」, 《나라사랑》 제112집, 2006.9.

  필자는 작년에 공병우 박사의 한 강연에 참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분을 뵈었다.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매우 늙었고(기억이 맞다면 90세가 된) 육체는 자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중략)…

  강연의 끝무렵이었다. 한 여자가 비명을 지르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좋은 3벌식이 왜 정부의 공식적인 표준으로 자리하지 못하는가? 모든 사람이 칭찬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보아 우열은 분명한데. 왜? 외압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표현할 수 없는, 숨겨야만 하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인가?"

  필자가 느끼기에 그 중년의 여자는 아마도 너무나 우수하면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3벌식에 대한 답답함을 표현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늙어 버린 육체를 끌고 온 공박사는 그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엉뚱한 대답만 했었다. 그것마저도 모인 모든 이의 마음을 뜨겁게 했고, 그의 육체가 싱싱하지 못한 것에 대해 모두가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었다.

윤태근, 「전태일, 공한체 그리고 3벌식」, 《헬로우 PC》 1996.1.

  공병우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만들 무렵에 거리낌 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3-90 자판을 만들 때에 박흥호가 연구를 주도했고 공병우의 검토를 받았던 사실이 알려진 것과 달리, 공병우 최종 자판은 만들 때에 공병우 이외에 연구에 깊이 관여한 사람이 있었는지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리고 만든이 스스로가 자판 배열 이름에 '최종'을 붙임으로써 자판 배열을 더 고치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못박았으므로, 다른 사람들은 아쉬운 점이 있어도 더 낫게 고쳐 줄 것을 요청하기 껄끄러웠다.

  3-90 자판을 쓰던 개발자들은 공병우 최종 자판이 나온 사실을 알아차린 때가 저마다 달랐고, 공병우 최종 자판의 실체를 알아차린 것에도 시차가 있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에 문제 의식을 느꼈더라도 예의와 명분에서 걸리는 문제들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과 일목요연한 논리 없이 드러나게 반대하기 곤란했다. 한국의 이름난 고집쟁이로 꼽히던 공병우를 직접 만나 설득하는 것은 더욱 막막한 일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공병우 최종 자판을 알았던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에 굳이 공병우 최종 자판을 넣으려고 애쓰지 않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공병우와 한글 문화원에 뜻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초·중반에 자체 한글 처리 기능을 갖춘 응용 프로그램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공병우 최종 자판을 지원하지 않은 것이 이 때문이었을 수 있다.

  그림 6-1 등에서 본 1994년의 한글 문화원 안내문들을 함께 살피면, 공병우는 IBM 호환 기종에도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여론이 바뀌기를 기다렸던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에 윈도 운영체제(1993년에 개발된 한글판 윈도 3.1)에 공병우 최종 자판이 3-90 자판과 함께 들어간 성과가 있었다. 이 일이 나중에 3-90 자판이 몰락하고 공병우 최종 자판이 대표로 떠오르는 요인이 되었지만, 아직 윈도보다 도스가 많이 쓰인 때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한 사건이었다. 1993년 무렵에 IBM 호환 기종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려던 일은 뜻을 내비친 것에 그쳤고, 1994년에는 IBM 호환 기종에는 3-90 자판을 보급하고 공병우 최종 자판은 매킨토시 기종에 보급하는 것으로 한글 문화원의 입장이 정리되었다.

  IBM 호환 기종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려는 일이 한때나마 관련 개발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여 가로막힌 것은 '공병우 세벌식'을 창안한 '공병우'라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을 내세우지 못하면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 배열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때가 왔음을 알린 사례였다. 하지만 이 일이 공개 토론을 통하지 않고 조용히 가로막혔기 때문에, 나중에 사람들이 기억하고 참고할 수 있는 사례로 남지 못했다. 그래서 공병우 최종 자판의 문제점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나중에 윈도 운영체제를 통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최종'이 강조된 이름으로 알려진 공병우 최종 자판에 홀리는 불씨로 남았다.

  공병우는 IBM 호환 기종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는 일은 단념했지만, 한글 문화원을 통하여 애플 계열 기종인 매킨토시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보급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IBM 호환 기종에서는 번거로움과 제약이 있어도 사용자 정의 자판 기능이 있는 ᄒᆞᆫ글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쓸 수는 있었지만, 매킨토시에서는 3-90 자판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림 8-9 ~ 8-10에서 본 3-90 자판을 지원한 매킨토시용 입력 스크립트에서 볼 수 있듯이,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쓰려는 수요도 있었다. 하지만 한글 문화원은 이러한 자료를 공식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매킨토시에서 3-90 자판을 쓰려면 이미 나와 있는 것과 다른 글꼴 및 한글 부호계를 써야 하는 제약을 안아야 했다.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들은 매킨토시만 쓰는 경우보다 IBM 호환 기종을 함께 쓰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1990년대 초·중반에 컴퓨터용 공세벌식 자판이 통일되지 않은 것은 매킨토시에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에게 크게 와닿을 수 있는 모순이었다.

「3벌식 자판 여행기」, (김창용, 1990.12.6.)

[그림 9-9] 「3벌식 자판 여행기」, (김창용, 1990.12.6.)

  위의 '3벌식 자판 여행기'는 공세벌식 자판 사용자 김창용이 PC 통신망(하이텔) 게시판에 남긴 글을 한글 문화원이 편집하여 공개한 것이다.주8 이 글을 쓴 김창용은 나중에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절충한 '3벌식 개선 제안안'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1980년대만 해도 한글 타자기 시장은 꽤 오래 이어질 것 같아 보였지만, 1990년대에는 급격히 커지는 컴퓨터 시장에 밀려 생각보다 빨리 힘을 잃었다. 3-90 자판은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컴퓨터 환경에 알맞은 기호 배열을 내세움으로써 3-89 자판을 쓰던 사람들의 마음을 꽤 빠르게 휘어잡을 수 있었다. 그림 2-1 ~ 2-2 등의 광고에서 본 것처럼 한글 문화원은 관련 개발사들의 3-90 자판에 대한 프로그램 지원을 빨리 이끌어 냈고, 사용자들도 3-90 자판에서 나아진 점에 공감하여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다만 위 글에 나온 것처럼 3-90 자판은 ㅈ·ㄵ 같은 받침을 넣기 불편한 문제가 있었으므로, 이 약점을 잘 보완하는 것이 3-90 자판에 대한 개선안을 마련하고 보급하는 일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은 3-90 자판보다 한글 배열이 개선된 면이 있었다. 하지만 기호 배열은 공감을 얻기 어려운 꼴이었고, 3-90 자판과 다른 숫자 배열은 쓰는 사람에 따라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이 엇갈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공병우 최종 자판은 순탄히 보급되더라도 3-90 자판을 쓰던 사람들을 모두 끌어안을 수는 없었다. 그렇더라도 공병우 최종 자판은 '공병우 세벌식'을 창안한 권위자 '공병우'가 손수 만든 공세벌식 자판 배열안이어서, 만든 이(공병우)나 한글 문화원이 배열안을 철회하거나 다른 개선안을 마련하려는 뜻을 밝히지 않으면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대표 지위를 오래도록 그대로 띨 수 있었다. 이런 점들이 얽히면서 공세벌식 자판의 '기종간 통일'을 목표로 나온 공병우 최종 자판은 도리어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가 둘로 나뉘는 결과를 불렸다.

  1990년대 초·중반의 3-90 자판은 표준 두벌식 자판 다음으로 많은 사용자 집단을 거느린 한글 자판이었다. 이 때에 3-90 자판을 쓰던 사람들은 대체로 둘 이상의 한글 자판을 써 본 경험이 있었고, 한글 자판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PC 통신망 게시판을 통하여 3-89 자판을 쓰던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3-90 자판과 달리, 공병우 최종 자판은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의 의견을 잘 헤아리지 못한 채로 나왔다. 공병우 최종 자판이 개발 단계에서 공개된 적은 있었지만,주9 매킨토시용으로 소개된 데다가 널리 볼 수 있는 매체에 실리지 않아서 IBM 호환 기종을 쓰던 사람들은 그 내용에 주목하기 어려웠다.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은 좋은 면과 함께 아쉬운 면이 서로 엇갈려 있었으므로, 두 공세벌식 자판을 모두 써 본 사람들은 둘의 장점을 띤 개선안이 나오기를 바랄 만 했다.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은 공세벌식 자판 개선 연구의 끝이 아니었고, 공세벌식 자판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어떻게 조율하고 통일할지가 숙제로 남았다.

 

3) 김창용의 공세벌식 자판 개선안

  1995년에는 공세벌식 자판에 얽힌 일들의 동향이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1995년 1월에 공병우는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였고, 이 때부터 공병우가 이끌던 사설 문화 단체 '한글 문화원'의 운영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공병우는 1995년 3월 7일에 세상을 떠났다. 얼마 뒤에 공병우와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힘을 모아 다시 한글 문화원(원장: 임종철)주10을 다시 열었다.주11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막 나온 무렵에 비하면, 1995년에는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더 불어나 있었고, 한글 자판을 쓴 시간이 쌓이면서 사람들의 눈높이도 높아져 있었다. 점점 짙어져 가는 두벌식·세벌식 한글 자판 사용자들의 보수성을 생각하면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하고 통합하는 일이 시급했고, 이를 위해서는 매력 있는 개선안과 더욱 강력한 보급 활동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병우 없는 한글 문화원이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에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 여러 한글 지원 프로그램들에서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 가운데 하나 이상이 지원되고 있었고, 윈도 운영체제가 두 자판 배열을 모두 지원한 덕분에 이미 쓰이던 공세벌식 자판에 대한 프로그램 지원은 끊기지 않았다. 하지만 단체 차원의 지원이 사라진 것은 공세벌식 자판의 미래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일이었다.

  1995년은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에게 슬픈 해였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나중보다 제약을 덜 받으며 공세벌식 자판에 관한 문제들을 풀어 나갈 수 있었던 때이기도 했다. 아직 공병우 최종 자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개선안을 마련할 때에 공병우 최종 자판에 얽힌 요구가 크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공세벌식 자판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일반 사용자들은 공세벌식 자판의 문제들을 다른 누구에게 기대지 못하고 스스로 풀어 나가야 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안게 되었다. 이 무렵에는 공세벌식 자판을 몇 해 동안 쓰며 경험이 쌓인 사람들이 꽤 있었으므로, 공세벌식 자판의 배열을 연구하는 일은 더 이상 몇몇 전문가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공병우가 한글 문화원을 이끈 때에는 연구 능력, 추진력, 명분, 도의 등에서 걸리는 제약 때문에 한글 문화원 밖의 다른 주체가 공세벌식 자판을 개선하는 연구에 끼어들기 껄끄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1995년 이후에는 한글 문화원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웠고, 이 상황에서 개인 연구자들이 나서서 의견과 배열안을 내지 않으면 나중에 다른 주체가 더 나은 배열안이 마련하도록 자극할 길이 마땅하지 않았다. 한글 자판을 쓰는 사람들도 그 동안 경험이 쌓이고 눈높이가 높아졌기에, 공세벌식 자판이 아쉬운 면을 더 보완하지 않고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에 주저앉아서는 예전처럼 좋은 평판을 얻기 어려웠다. 실용성과 완성도에서 공세벌식 자판이 한글 자판들 가운데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면, 새로 공세벌식 자판을 익히려는 줄어서 공세벌식 자판의 사용자층이 엷어질 수 있다. 이는 입력기 지원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이 절박함을 느낄 수 있는 문제였다. 그래서 1995년 이후에는 공세벌식 자판 배열을 제안한 연구자들이 이미 쓰이던 공세벌식 배열을 응용하여 쓰임새를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반 보급용으로 내세울 대표 배열을 고치는 것까지 진지하게 시도하기 시작했다.

  「3벌식 자판 여행기」(그림 9-9)를 쓰기도 한 소설가 김창용은 1995년에 3월에 공병우 최종 자판의 한글 배치를 따르면서 숫자·기호 배열은 3-90 자판에 가깝게 따른 '3벌식 개선 제안안'을 PC 통신망 '하이텔'의 매킨토시 동호회에 공개하였다.주12 주13 이 배열안은 설명 문서 및 매킨토시에서 쓸 수 있는 입력 스크립트와 함께 공개되었다.

공병우 3벌식 개선 자판안 (김창용, 1995)

[그림 9-10] 김창용의 공병우 3벌식 개선 자판안 (1995)

  그림 3-6 ~ 3-7에서 본 1994년의 이수호의 글에서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3-90 자판을 매킨토시에서 쓰이는 공병우 최종 자판으로 대체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이야기하였다. 김창용도 공세벌식 자판을 통일해야 한다는 뜻과 공병우 최종 자판의 한글 배열이 3-90 자판보다 나은 점이 있음에 공감했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의 숫자·기호 배열에 큰 흠이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김창용은 제안문에서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의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주14

  • 두 컴퓨터 기종(IBM 호환 기종, 매킨토시 기종)의 공세벌식 자판이 통일되어 있지 않음
  • 공병우 최종 자판은 한글 문서만 찍을 때 편리함
    (모든 사람이 컴퓨터로 한글 문서만 작성하지는 않음)
    • 3-90 자판은 단독으로 찍을 수 없는 복자음(겹받침)이 5개 있음
    • 공병우 최종 자판은 모든 겹받침을 단독으로 찍을 수 있음
  • 공병우 최종 자판은 끝소리 배열이 3-90 자판보다 합리적으로 설계됨
    • 공병우 최종 자판은 자주 쓰이는 끝소리가 기준 자리에서 가까운 곳에 있음
      → 받침 ㅈ이 3-90 자판은 <shift+1> 지점에 있으나 공병우 최종 자판은 <shift+3>에 있음
  • 많은 홍보를 벌였음에도 공병우 최종 자판이 IBM 환경 사용자들에게 외면당함
    • 공병우 최종 자판은 차라리 두벌식 자판을 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만큼 불만스러운 점이 있음
    • 숫자와 기호 배열의 비합리적인 요인에 원인이 있음
    • 제안자(김창용)는 3-89 자판을 개선하여 3-90 자판이 나왔을 때 신속히 받아들이고 환영했으나, 공병우 최종 자판은 비합적인 면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 없었음
  • 3-90 자판의 숫자 배열
    • 일반 글쇠판 오른쪽에 붙어 있는 숫자 글쇠판(뉴메릭 키패드)와 일치함
    • 기본 자리를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새끼 손가락을 쓰지 않고 칠 수 있어서 효율적임
    • 소형 전자 계산기, 금전 등록기 등에 쓰이는 숫자 배열과 호환성이 있음
  • 기호 배열
    • 기호 자리는 영문 자판의 제4열(숫자가 있는 자리)에 있는 10개 기호들을 그 자리에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좋음
      → 개선안에는 @, #, $, %를 뺀 나머지 기호들을 영문 자판과 같은 자리로 되돌림
    • 공병우 최종 자판은 느낌표(!)와 물음표(?)가 3-90 자판과 반대 자리에 있음
    • 3-90 자판의 !, ? 자리는 영문 및 2벌식 자판과 호환됨
      → !, ?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쓰이는지 가리기 어려우므로 영문 및 두벌식 자판과의 호환성을 따지는 것이 바람직함
    • 공병우 최종 자판에는 열고 닫는 겹따옴표가 있으나 컴퓨터에서는 이런 방식이 필요하지 않음
      → 절대 다수의 워드프로세서가 smart quotes 옵션을 지원함
김창용의 3벌식 개선 자판안 제안문 일부

[그림 9-11] 김창용의 3벌식 개선 자판안 제안문 일부

  김창용은 표준 두벌식 자판, 3-89 자판, 3-90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을 능숙하게 써 본 경험자였다. 제안문에 따르면 1990년부터 1994년 초까지 3-90 자판을 썼는데, 1994년에 매킨토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알게 시작했다. 하지만 기호·숫자 배열의 불편함이 커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지 못하고 한 해 넘게 두벝식 자판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가 소설 집필에 집중하면서 타자 동작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3벌식 자판(공세벌식 자판)을 쓸 필요를 느꼈으나, 공병우 최종 자판이 불합리한 점 때문에 그대로 쓸 수 없어서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절충한 개선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숫자·기호 배열 때문에 매킨토시에서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지 않고 2벌식 자판을 썼다는 김창용의 경험담는 나중에 윈도 운영체제에 힘입어 공병우 최종 자판이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로 떠오른 뒤에 벌어질 일의 예고편과 같았다. 이 무렵만 해도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이 드물어서 위와 같은 배열이 IBM 계열 기종 사용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킨토시에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은 한동안 매킨토시 환경에서 3-90 자판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에 공병우 최종 자판의 기호·숫자 배열 문제가 크게 와닿을 수 있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 (3-91 )

[그림 9-12] 공병우 최종 자판 (3-91 자판)

공병우 3벌식 개선 자판안 (김창용, 1995)

[그림 9-13] 김창용 개선 자판안 (1995)

  김창용의 개선안은 한글 배열은 공병우 최종 자판을 따르고, 숫자 배열은 3-90 자판을 따랐다. 기호 배열은 똑같지는 않더라도 영문 자판과 기호 자리를 같게 맞추고자 한 3-90 자판의 취지를 따랐다. 3-87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이 그랬던 것처럼 매킨토시 환경에서 선택 글쇠(option key)를 함께 눌러 넣는 확장 배열을 함께 두었다. 공병우 최종 자판의 기본·배열에 없던 @, #, $ 같은 기호들과 백분율 기호(%), 참고표(※), 열고 닫는 따옴표(“ ”)가 확장 배열에 들어 갔다. 다만 가운뎃점(·)은 기본 배열에 남았다.

김창용 개선 자판안의 확장 배열 (1995) (clarisWorks 화면)

[그림 9-14] 김창용 개선 자판안의 확장 배열 (1995) (클라리스웍스 화면)

  공병우 최종 자판이 기호 배열 때문에 널리 쓰이기 어려운 꼴이었다면, 김창용의 개선 자판안은 3-90 자판에서 개선된 면을 끌어들여 공병우 최종 자판의 기호 배열 문제를 많이 보완하였다. 하지만 아쉬운 면도 있다. 영문 자판의 기호들을 모두 담지 못했고, 백분율 기호(%)가 기본 배열에 없다. 그래서 3-90 자판과의 통합을 꾀하려면 기호 배열을 더 보완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김창용은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 배열이 둘로 나뉜 상황에 놓인 공세벌식 자판 사용자가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무엇을 바랄 수 있는지를 글로 정리하고, 개선 자판안을 만들어 개선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김창용의 개선 자판안은 아쉬운 점은 있더라도 '3-95 자판'이라고 불려도 될 만큼 개선된 면이 있었다.

  하지만 PC 통신망에 올라온 김창용의 제안안은 단체 차원의 홍보 지원을 등에 업지 못했고, 개인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못하여 딱히 널리 불리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널리 알려졌더라도 1995년에는 3-90 자판을 쓰는 사람이 많고 공병우 최종 자판을 아는 사람이 드물어서,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을 절충하고자 한 김창용의 개선 방향을 그 무렵에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이 절실히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1990년대 후반 이후에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는 사람의 비율이 꽤 늘어난 뒤에야 김창용이 제안한 개선 방향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늘 수 있었고, 2010년대에 김창용이 생각한 것과 비슷한 공세벌식 자판 개선 절충안들이 다시 제안되었다.주15

 

3) 신광조의 '신 3벌식 자판' (신세벌식 자판)

신세벌식 자판 원안 배열표 (1995, 신광조)

[그림 9-15] 신세벌식 자판 원안 배열표 (1995, 신광조)

  1995년 9월에는 PC 통신망 하이텔의 한글 프로그래밍 동호회의 자료실에 신광조의 '신 3벌식 자판'(신광조 세벌식 자판, 신세벌식 자판)이 공개되었다.주16 이른바 '신세벌식 자판'으로 불리는 이 세벌식 자판은 공세벌식 자판과 비슷한 배열 방식을 따르면서 '첫가끝 갈마들이'라는 독특한 입력 방식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신세벌식 자판의 원리를 알린 《마이컴》 기사 (신광조, 「한글 자판에 대한 새로운 시도 '신 3벌식 자판', 《마이컴》, 1995.10.」

[그림 9-16] 신세벌식 자판의 원리를 알린 《마이컴》 기사

  실은 PC 통신망에 공개된 신세벌식 자판 제안문은 요약문으로 볼 수 있다. 원문으로 볼 수 있는 글은 월간 《마이컴》 1995년 10월호에 실렸다. 신광조는 《마이컴》에 기고한 기사(신광조, 「한글 자판에 대한 새로운 시도 : 신 3벌식 자판」, 민컴, 《마이컴》 1995년10월호 (통권144호), 1995.9.25.)에서 신세벌식 자판을 구상한 동기와 신세벌식 자판의 입력 원리를 설명하고, 어셈블리로 짠 간이 입력 프로그램의 바탕 내용을 함께 공개하였다.주17 주18

신세벌식 자판 입력 원리를 구현한 어셈블리 프로그램 바탕 앞머리

[그림 9-17] 신세벌식 자판 입력 원리를 구현한 어셈블리 프로그램 바탕 앞머리

  《마이컴》 기사에서 신광조는 공세벌식 자판이 빠르고 정확하게 글을 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는데도 외면 당한 까닭으로 이런 문제들을 꼬집었다.

  • (한글 배열을 익힐 때에) 외워야 할 글쇠 자리가 너무 많음
  • 숫자와 특수문자(기호)의 자리가 달라 외워야 할 글쇠 자리가 늘어남
  • (한글을 넣을 때) 영문 자판에서 숫자가 있는 글쇠 자리를 써야 함
    • 손이 작은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부담이 됨
    • 사무실에서 문서 작업을 하는 사람 가운데 손이 작은 여자가 많음
  • 오타를 내기 쉬운 특성
    • ㅠ·ㅑ·ㅖ와 첫소리 ㅋ의 자리가 멀어서 오타를 일으키기 쉬움
    • 드물게 쓰이는 종성(받침)을 시프트(윗글쇠)를 누르고 넣어야 해서 오타가 나기 쉬움
    • 빈도가 낮은 글(자주 쓰이지 않는 낱자)을 넣을 때 사용자가 불안감을 느끼게 됨

  흔히 쓰이는 두벌식 자판은 한글 낱자가 26개 글쇠에 들어 있는데, 공세벌식 자판은 한글 낱자가 39~44개 글쇠에 들어 있다. (3-90 자판은 39개, 공병우 최종 자판 44개) 한글 낱자가 30개 넘는 글쇠를 차지하므로, 4줄에 걸친 글쇠들을 한글 낱자가 차지하는 것이 공세벌식 자판의 당연하면서 어쩔 수 없는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많은 글쇠를 쓰면 한글 낱자를 둘 수 있는 폭이 넓어서 손가락 피로도를 줄이는 한글 배열을 만들기 좋다. 하지만 처음 익히려는 사람에게 어렵게 비칠 수 있고, 실제로도 익히기 어려운 요인이 될 수 있다.

  신광조는 대체로 남자들보다 손이 작은 편인 여자들도 문서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 현실을 함께 꼬집었다. 타자기가 쓰인 때에도 한글 타자기를 쓰는 여성 사무원의 비중이 가볍지 않았고, 컴퓨터 시대에는 어린이가 한글 자판을 쓰는 모습까지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손이 작은 사람일수록 여러 줄에 있는 글쇠들을 치려면 손을 많이 움직여야 하므로, 4줄 한글 배열로 된 공세벌식 자판에 느끼는 마음의 부담이 더 클 수 있다.

  공세벌식 자판은 실사용자들 사이에서 다른 한글 자판들보다 손가락 피로가 적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손가락을 너무 뻗지 않는 타자법을 따를 때의 이야기이다. 손이 꽤 큰 사람은 요령껏 손목을 바닥에 붙이고 손가락만 뻗어 치는 타자법을 쓸 수도 있지만, 손이 크지 않은 사람은 손을 함께 움직이지 않고 손가락만 뻗어서는 4줄에 걸친 글쇠들을 손가락의 무리 없이 치기 어렵다. 3줄 한글 배열에 익숙한 사람들은 손 전체를 더 움직여 4줄 글쇠를 치는 것에 피로와 부담을 크게 느낄 수 있다. 첫소리 ㅋ과 ㅛ·ㅠ·ㅑ·ㅖ가 놓인 글쇠 자리는 바탕 자리에서 거리가 멀어서 어느 손가락으로 쳐야 좋은지에 애매한 구석이 있다. 이는 공세벌식 자판을 익숙하게 쓰는 사람들에게도 불만 거리가 되곤 한다.

  영문 자판과 숫자·기호 배열이 다른 것도 공세벌식 자판을 익힐 때에 넘어야 할 산이다. 공세벌식 자판은 아라비아 숫자 10개 자리를 영문 자판과 똑같게 맞출 수 없고, 영문 자판과 기호 자리를 비슷하게 맞춘 3-90 자판도 기호 6개(! / < > ' ;)의 자리는 영문 자판과 다르다. 그래도 3-90 자판은 낫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은 영문 자판과 기호 자리가 너무 달라서 영문 자판 상태에서 기호를 넣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세벌식 자판은 표준 두벌식 자판보다 윗글쇠를 조금 덜 누르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 사람들은 한글을 넣을 때 윗글쇠를 조금 덜 누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윗글쇠를 누르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바라므로, 윗글쇠 누르는 잦기를 공세벌식 자판의 좋은 점으로 내세우기는 어정쩡하다. 오히려 공세벌식 자판이 윗글쇠를 눌러 넣는 낱자 수가 많고 유형이 다양한 것이 사람들에게 어렵게 와닿을 수 있다. 공세벌식 자판을 잘 쓰는 사람들도 '믿', '잊', '몇', '녘', '맡', '싶'처럼 윗글쇠를 눌러 넣는 받침이 들어가는 말이 자꾸 나오면 알게 모르게 마음이 오그라들곤 한다.

  업계 전문가로서 월간 《마이컴》에 컬럼을 연재하던 유경희는 컬럼 기사에서 PC-Serve주19의 동호회 '21세기 마을'에서 열린 한글 부호계와 한글 자판에 관한 토론회를 소개하며 한글 자판의 윗글쇠 누르는 것에 얽힌 바람을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자판을 '2벌식으로 할 것이냐 3벌식으로 할 것이냐'에 대한 토론은 그야말로 열띤 공방전이었다. 지금 현재 한글 자판은 텔렉스는 체신부에서, 타자기는 국무총리실(과학기술저), 컴퓨터 자판은 공업 진흥청(KS) 소관으로 자판 배열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자판의 통일 논쟁은 사실상 불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필자가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자판도 KSC-5715에서 정해진 이른바 2벌식. 최근에 정해진 타자기 자판도 2벌식이라고 하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컴퓨터 자판도 쉬프트키와 함께 쳐야 하는 것은 모든 받침 글자가 다 그렇단다. 그리고 필자는 이른바 3벌식을 써본 경험이 없어서 좋다 나쁘다고 평가할 자격도 없지만 현재 자판에서 가장 오타가 많이 생기는 원인은 된소리(쉬프트) 때문이며 특히 빈도가 높은 쌍시옷인 경우는 매번 눈으로 확인해야 할 정도이다. 영타도 소문자 2벌에 대문자 2벌, 합계 4벌이지만 영타인 경우는 2벌을 포기하여도 못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일본도 JIS로 정한 일본글자 자판(50자)을 90% 이상이 무시하고 로마자입력-카나변환이라는 방식으로 쓰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것은 바로 '쉬프트키'의 복잡성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새끼 손가락(쉬프트)의 부담이 너무 많아서 이것을 엄지손가락으로 기능 재배치를 했을까… 스페이스바를 4등분해서 안쪽 2개를 쉬프트키로 삼아서 만든 새로운 워드프로세서를 왜 만들어야 했으며 이것이 일본에 새바람을 일으킨 이유를 한글 타자를 위해 자판을 두르려 본 사람이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필자는 적어도 한글입력만을 위해서는 '쉬프트키'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2벌시이든 3벌식이든 쉬프트키를 쓰는 것은 반대한다는 뜻이다. 결국 쉬프트키를 쓰는 현 2벌식은 개정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필자는 모음은 왼쪽에, 자음은 오른쪽에 재배치하자는 공병우 박사의 의견에 동의하며, 한글 글쇠의 숫자는 30개 내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프트키를 치지 않더라도 한글입력은 모두 가능해야 한다. 그러면 한글 모아쓰기 오토마타가 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경희 컬럼 3」, 《마이컴》 1990년 6월호)

  얼핏 생각하면 쉬울 것도 같지만, 한글 낱자가 30개 이내 글쇠에 들어가면서 윗글쇠를 쓰지 않고 한글을 넣을 수 있는 한글 자판을 만드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홑낱자를 모두 1타에 치는 조건에서 세벌식으로 요즘한글을 조합하려면 적어도 36개 낱자(첫소리 14개, 가운뎃소리 8개, 끝소리 14개)주20는 갖추어야 한다. 36개 이상의 낱자들을 윗글쇠를 쓰지 않고 30개 이내 글쇠로 넣으려면, 전환 글쇠를 두어서 확장 배열을 부르거나 예외 낱자 조합을 글쇠에 따로 넣지 못하는 낱자를 넣는 방안이 필요하다. 전환 글쇠나 예외 낱자 조합을 쓰면 배열이나 입력 방법이 더 복잡해지는 문제가 뒤따를 수 있다.

《마이컴》 기사에 실린 신세벌식 자판 배열표

[그림 9-18] 《마이컴》 기사에 실린 신세벌식 자판 배열표

  신세벌식 자판은 유경희가 제시한 조건들에 들어맞는 한글 자판이다. 처음 제안된 신세벌식 자판은 첫닿소리를 오른쪽에 두는 공세벌식 자판인 3-90 자판의 배열 짜임새를 꽤 비슷하게 따랐고,주21 한글 낱자들을 3줄에 걸친 29개 글쇠에 담았다. 윗글쇠를 쓰지 않고 모아쓰는 한글을 모두 넣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배열을 확장하기 위한 전환 글쇠를 따로 쓰지도 않는다.

  이 혁신의 비결은 '첫가끝 갈마들이'에 있다. '첫가끝 갈마들이'는 한글 낱자를 넣는 차례(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에 따라 글쇠 자리 하나에 벌이 다른 한글 낱자를 짝지어 담는 입력 방식이다.주22 이를테면 쿼티 자판 기준으로 D 자리 글쇠는 첫소리만 들어왔을 때에 홀소리 ㅣ를 넣는 구실을 하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받침 ㅎ을 넣는 구실을 한다. 첫가끝 갈마들이 덕분에 한글 낱자를 넣는 차례에 따라 글쇠 기능이 알아서 전환되어, 마치 전환 글쇠를 따로 쓰는 것처럼 글쇠 자리를 늘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컴퓨터 환경에서 공세벌식 자판의 오른쪽 ㅗ·ㅜ는 타자 동작을 매끄럽게 하는 구실을 하지만, 한글을 조합하기 위해 꼭 있어야 하는 요소는 아니다. 하지만 신세벌식 자판은 조합용 ㅗ·ㅜ가 따로 있어야 ㅘ·ㅝ 같은 겹홀소리들을 윗글쇠를 누르지 않고 넣을 수 있다. 'ㅣ+ㅏ→ㅑ'나 'ㅏ+ㅏ→ㅑ' 같은 조합을 쓸 수도 없다. 첫가끝 갈마들이를 쓰기 때문에 생기는 제약들이다.

신세벌식 자판(1995 원안)과 3-90  자판으로 '있습니다' 넣기

[그림 9-19] 신세벌식 자판(1995 원안)과 3-90 자판으로 '있습니다' 넣기

그림 : 1995년에 처음 제안된 신세벌식 자판의 배열 방식과 입력 규칙 (https://pat.im/1104)

  공세벌식 자판에 ㄶ·ㅄ 같은 겹받침들이 따로 들어간 것은 기계식 타자기를 쓸 때 군동작이 끼는 것을 줄이기 위함이었고, 나중에 직결식 한글 처리를 쉽게 하려는 목적이 더해졌다. 공세벌식 자판을 익숙하게 쓰는 사람들은 왼손 부담과 오타를 줄이는 구실을 할 수 있는 점 때문에 윗글쇠를 눌러 겹받침을 넣는 타자 동작을 아주 나쁘지는 않게 보기도 한다.주23 하지만 따로 들어가는 겹받침이 많을수록 익혀야 할 낱자 수가 늘고 배열이 복잡하게 보여서 처음 익히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

  신세벌식 자판은 ㅆ만 남고 겹받침들이 빠져서 더 깔끔하고 익히기 더 쉬운 배열이 되었다. 첫가끝 갈마들이를 통하여 홑받침 ㄷ·ㅈ·ㅊ·ㅋ·ㅌ·ㅍ까지 윗글쇠를 누르지 않고 넣을 수 있어서, 안종혁 순아래 자판처럼 손이 불편한 사람도 쓰기 좋은 순아래 자판 구실을 할 수 있다. 다만 안종혁 순아래 자판은 모든 한글 낱자를 윗글쇠를 누르지 않고 넣을 수 있는데, 신세벌식 자판은 홀소리만 따로 넣을 때에 윗글쇠를 눌러야 한다.

  3-90 자판과 공병우 최종 자판은 서로 다른 숫자 배열이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 배열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이지만, 신세벌식 자판의 숫자 배열은 영문 자판과 같으므로, 숫자 배열을 달리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영문 자판과 자리가 다른 기호는 3-90 자판이 6개(! / < > ' ;)인데, 신세벌식 자판은 3개(/ ' ;)로 줄었다. 그러므로 신세벌식 자판이 영문 자판과의 호환에 무게를 둔 3-90 자판의 설계 목표에 더 다가간 꼴이다.

  하지만 신세벌식 자판은 공세벌식 자판에 견주어 이런 약점들이 있다.

  • 같은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와 같은 글쇠를 거듭 누르는 때가 더 많음
  • 거듭치기에 따른 왼손 2째 손가락(집게 손가락)의 부담이 큼
  • 공세벌식 자판보다 입력 처리가 복잡함 (공세벌식보다 입력기 개발이 어려움)

  같은 손가락을 거듭 쓰는 문제는 신광조의 제안문에서도 짤막하게나마 심각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공세벌식 자판은 다른 한글 자판들과 견주어서 왼손가락 거듭치기가 유난히 적다.주24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을 오래 쓴 사람은 퇴화되었다고 해도 될 만큼 왼손가락의 힘과 날렵함이 떨어져 있을 수 있다. 반면에 신세벌식 자판은 왼손 타자 동작의 유형이 더 복잡하고 거듭치기가 더 많다.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을 오래 쓰던 사람일수록 신세벌식 자판의 왼손 타자 동작을 더 어렵게 느낄 수 있다.

  신세벌식 자판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손가락은 왼손 2째 손가락(집게 손가락)이다. 공세벌식 자판은 왼손 2째 손가락의 타수 분담률이 꽤 높지만, 이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가 거의 없어서 타수에 비하여 피로가 작다. 하지만 신세벌식 자판은 손가락의 타수 분담률이 높을수록 거듭치기가 함께 늘기 쉬운 짜임새여서, 타수 분담률이 높은 왼손 2째 손가락에 피로가 몰리기 쉽다.

  신세벌식 자판은 공세벌식 자판과 배열이 꽤 비슷하여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이 따로 연습하지 않고 바로 실무에 쓰기도 할 만큼 빠르게 적응하기 좋다. 신세벌식 자판이 공세벌식 자판의 배열을 많이 따라간 것은 어쩔 수 없었던 면이 크다. 공세벌식 자판은 대체로 자주 쓰이는 홀소리들과 자주 쓰이는 받침들이 다른 손가락 자리에 있다.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의 기본 배열을 많이 살리더라도 첫가끝 갈마들이를 쓸 때에 같은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가 적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신광조는 처음에 2벌식을 기준으로 신세벌식 자판을 만들었다가 같은 손가락 거듭치기에 따른 문제를 겪고 공세벌식 자판을 많이 따르는 쪽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세벌식과 배열이 꽤 비슷하더라도 달라진 요소의 거북함은 크든 작든 신세벌식 자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 될 수 있었다. 어떤 배열이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에게 편한지도 시각차가 있을 수 있으므로, 신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이 늘수록 공세벌식 자판을 쓰던 사람들의 편의나 취향에 맞춘 수정안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었다. 2000년대에 신세벌식 자판 원안보다 더 알려지고 더 많이 쓰인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이 그 본보기였고, 2010년대에도 배열이나 입력 방식을 바꾼 신세벌식 자판이 더 나오고 있다.주25

박경남 신세벌식 자판 (그림 만든 이: Yes0song, 고친 이: 팥알)

[그림 9-20] 박경남 신세벌식 자판 (그림 만든 이: Yes0song, 고친 이: 팥알)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 (그림 만든 이: 임갈밤)

[그림 9-21]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 (그림 만든 이: 임갈밤)

그림 9-20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KB_Sinsebeolsik_PKN.svg

그림 9-21 : 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EC%88%98%EC%A0%95%EC%8B%A0%EC%84%B8%EB%B2%8C%EC%8B%9Dgblim.png

  신세벌식 자판도 김창용의 개선안처럼 막 나온 무렵에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한때나마 한글 문화원이라는 단체가 보급에 앞장선 공세벌식 자판과 달리, 신세벌식 자판은 단체 차원의 도움 없이 개인끼리의 정보 교류로 알려졌다. 월간 《마이컴》에 실린 기사가 널리 알려지지 못하여 신세벌식 자판을 창안한 '신광조'는 꽤 오랜 동안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PC 통신망의 동호회 자료실에 올라온 제안문의 내용이 주로 공세벌식 자판을 쓰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히 알려졌고, 첫가끝 갈마들이 입력 방식과 3줄 한글 배열이 신세벌식 자판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세벌식 자판을 접한 사람들은 당장 쓰지는 않더라도 신세벌식 자판의 가능성을 눈여겨 보았다. 1990년대에는 신세벌식 자판을 정식으로 지원하는 한글 입력기가 나오지 못했지만, 2000년대에는 날개셋 한글 입력기와 3beol판 libhangul 등을 통하여 신세벌식 자판이 널리 쓰일 수 있는 입력기 환경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신세벌식 자판은 드물게나마 꾸준히 쓰이는 한글 자판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1995년 무렵에 속기사들은 공병우식이 아닌 세벌식 자판을 쓰고 있었지만, 컴퓨터를 쓰는 사람들에게 공세벌식이 아닌 세벌식 자판은 대체로 생소했다. 공세벌식 자판처럼 타자기와 컴퓨터에서 오래 쓰이며 널리 알려진 세벌식 자판이 없었기에, '3벌식 자판'이 공세벌식 자판을 가리키는 말처럼 쓰일 수 있었다. 그런데 신세벌식 자판처럼 공세벌식과 다른 세벌식 자판이 널리 알려진다면, 공세벌식 자판(공병우 세벌식 자판)을 가리키는 뜻으로 '3벌식 자판'으로 일컫는 관행을 고칠 필요가 있었다. 다만 신세벌식 자판의 배열이 공세벌식 자판에 뿌리를 두고 변형한 것이므로, 넓게 보면 신세벌식 자판도 공세벌식 자판을 응용하여 만들어진 한글 자판에 넣을 수 있다.

  '신 3벌식 자판'의 '신'은 새로울 신(新)을 떠올리게 하므로, 공병우 최종 자판의 '최종'처럼 객관성 있는 판단을 가로막는 이름일 수 있다. 하지만 창안한 사람의 성(姓)인 신(申)에서 딴 것이기에 그런 이름을 쓸 수 있는 명분은 있었고, 신세벌식 자판은 운영체제 차원의 입력 지원을 받지 못하여 불합리한 까닭으로 먼저 자리잡은 공세벌식 자판의 지위를 흔들지 못했다. 다만 사람들의 관심이 공세벌식 자판보다 더 비주류인 신세벌식 자판에 더 가게 하는 효과는 누렸다. 또한 '신세벌식 자판'이라는 이름은 공병우 계열 세벌식 자판이 그 맞선꼴인 '공세벌식 자판'으로 불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김창용의 개선안과 1995년판 신세벌식 자판 원안은 글쓴이(팥알)가 수정판으로 공개하고 있는 '온라인 한글 입력기'(http://ohi.pat.im)(원저작자: 이호석)로 써 볼 수 있다.

  이외에도 3-87 자판, 3-89 자판, 3-90, 3-91(공병우 최종) 자판, 3-93 옛한글 자판, 안종혁 순아래 자판,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 등도 온라인 한글 입력기에서 항목을 골라서 써 볼 수 있다.

  김창용의 개선안은 본래 매킨토시 환경에서 선택 글쇠(option key) 함께 누른 상태에서 기호 확장 배열의 기호들을 넣을 수 있었지만, 온라인 한글 입력기에서는 오른쪽 ㅗ 자리 글쇠(영문 쿼티 기준 / 자리 글쇠)을 친 다음에 다른 일반 글쇠를 치는 방법으로 기호 확장 배열을 쓸 수 있다.


※ '갈마들이'를 '첫가끝 갈마들이'로 바꾸었습니다. (2018.5.30.)

※ "한글 문화원이 보급한 세벌식 자판"이라는 제목으로 올리는 글은 제1부로서 이 글로 매듭짓습니다. "표준이 된 세벌식?"(https://pat.im/1150)에서는 제2부로서 '한글 부호계'로 이야깃거리를 바꾸어 글을 이어 갑니다. 이어지는 글은 제3부에서 끝맺으려고 합니다. (2018.12.6.)

〈주석〉
  1. 의회나 법원 등에서는 회의나 재판을 방해하지 않도록 글쇠 누르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 속기 자판 제품이 쓰인다. 타자기는 타속보다도 소음 때문에 대화를 나누거나 강의를 하는 곳에서 쓰기에는 알맞지 않다. back
  2. 요즈음은 CPU와 그래픽 카드의 처리 성능이 좋아서 느끼기 어렵지만, 1980년대의 컴퓨터 환경에서는 한글 입출력 기능만 띄워도 화면 갱신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한글 글꼴과 부호 정보를 담으려고 더 차지하는 메모리 공간도 큰 짐이 되었다. 이 때문에 IBM 호환 기종 PC에서는 ISA 확장 슬롯에 한글 카드(이른바 '한글 바이오스')를 따로 붙여 쓰는 일이 흔했다. 한글 처리기와 메모리 칩이 담긴 한글 카드는 CPU의 처리 부담과 한글 처리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기본 메모리 공간을 줄이는 구실을 했다. 지난 글에서 살핀 공병우 직결식 한글 처리는 매킨토시 환경에서 한글 카드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CPU와 메모리를 매우 적게 써서 한글을 나타낼 수 있는 방안이었다. back
  3. 한때 무료로 운영되던 PC 통신망 키텔(KiTEL)에서 개인 게시판 기능을 선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키텔의 게시판은 웹 환경에 비하면 닫힌 공간이었고, 키텔은 접속 속도가 들쭉날쭉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사라졌다. back
  4. 여기에 올린 한글 문화원의 두 안내문은 ᄒᆞᆫ글 2.1 파일(HWP)로 저장된 파일 내용을 옮긴 것이다. 두 안내문 파일은 한글 문화원이나 한글 문화원의 활동을 지켜 본 사람이 추린 것으로 보이는 한글 문화원 구성원들과 일반 사용자들의 글을 담은 HWP 파일들과 함께 묶여 있었다. 한글 문화원이 편집하여 소개한 글도 있고, PC 통신 게시판에 올라온 것을 그대로 갈무리한 것도 있다. PC 통신 자료실에 압축 파일로 묶여 올라왔던 것을 글쓴이가 받았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언제 어떻게 얻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안내문을 담은 ᄒᆞᆫ글 파일들이 저장된 때는 1994년이었다. 매킨토시에서 쓰인 '세벌식 입력'처럼 가운뎃점(·)이 KS C 5601 호환 자모 아래아(ㆍ)로 들어갔다. back
  5. 만약 안내문 ①가 마이크로소프트 한국 지사에 전달되었다면, 윈도 95에 '3벌식 최종'과 '3벌식 390'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문헌 근거가 되었을 수도 있다. back
  6. 공병우 최종 자판이 1991년에 나온 것과 3-90 자판이 만들어진 속사정은 어느 만큼 알려져 있었지만, 그 정보들을 뒷받침할 근거 기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어쩌면 안내문 ②이 두 공세벌식 자판에 관하여 풍문처럼 돌던 이야기의 근거 자료였는지도 모르겠다. back
  7. 안대혁, 「그 분을 그리며 ― 공 박사님, 우리들의 공 박사님」, 국립국어원, 《새국어생활》 제24권 제2호, 2014.7.31.) back
  8. 이 사용기가 담긴 파일은 앞에서 본 한글 문화원의 두 안내문 파일과 같은 형식으로 함께 묶여 있었다. back
  9. 한글문화원의 자료실에서 1991년 9월 4일에 개발 단계에서 공개된 공병우 자판 배열표를 볼 수 있는데, (http://moonhwawon.ye.ro/zboard/zboard.php?id=01_kongbw&no=15) 공병우 최종 자판과 ㄳ과 ㄻ의 자리가 다르다. back
  10. 임종철은 한글 문화원이 세워지기 전부터 상업계 학교의 교과서로 쓰인 타자 교본들을 비롯하여 자판 배열, 타자기, 문서 편집 등에 얽힌 주제들을 다룬 자료들을 꾸준히 발간하였다. 1990년대 초에는 한글 문화원의 명예 부원장으로서 공병우와 함께 PC 통신망 게시판이나 간행물에 글을 올려 세벌식 자판과 한글 관련 문제를 알리는 활동을 펼쳤다. 《나라사랑》 제112집에 실린 「한글 기계화에 집념한 공병우 박사님」에 글쓴이인 임종철이 '제2대 한글문화원장'으로 소개되었다. back
  11. 한글 문화원은 법인이 아닌 사설 단체였으므로, 다시 문을 연 한글 문화원이 단체로서 법률에 바탕하여 공병우가 이끈 한글 문화원의 모든 지위와 권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공병우가 이끈 한글 문화원에 몸담았던 구성원들과 공병우 또는 한글 문화원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 다시 모여 활동을 이어 간 것에 뜻을 둘 수 있을 것이다. back
  12. 김창용, 「3벌식 표준/통일 제안 및 스크립트」, 하이텔 매킨토시 동호회 자료실, 1995.3.19. (사본 : https://bbs.pat.im/viewtopic.php?f=15&t=931) back
  13. 김창용의 제안문은 클라리스웍스(clarisWorks)로 작성되었고, 매킨토시에서 쓸 수 있는 입력 스크립트가 제안문과 함께 묶여 있었다. back
  14. 그림 9-9의 「3벌식 자판 여행기에 3-90 자판 등이 '3-○○ 자판'으로 적혀 있다. 1995년의 김창용의 자판안 제안문에는 3-90 자판이 3○○ 꼴 이름인 '390 자판'으로 적혀 있고, 공병우 최종 자판은 주로 '최종 자판'으로 일컬었다. 제안문 중간에 '매킨토시용 공병우 세벌식 최종자판'이라고 밝히며 '공자판'이라고 약칭하겠다고 하였지만, '공자판'과 '매킨토시용 공병우 세벌식 최종자판'이라는 이름은 한 번씩만 언급되고 더 쓰이지 않았다. back
  15. 김창용의 개선안과 취지가 비슷한 2010년대의 개선안은 '3번타자'가 제안한 '세벌식 통합안'(http://cafe.daum.net/3bulsik/JOK2/60)과 글쓴이(팥알)이 제안한 3-2011 자판(https://pat.im/855) 등이 있다. back
  16. https://bbs.pat.im/viewtopic.php?f=15&t=906에서 하이텔을 통하여 공개된 신세벌식 자판 제안문을 볼 수 있다. back
  17. 어셈블리어로 만들어진 간이 입력 프로그램은 독립해서 쓸 수 있는 입력 프로그램은 아니고, KS C 5715(KS X 5002)을 따르는 표준 두벌식 자판을 쓸 수 있는 프로그램 상태에서 신세벌식 자판을 쓸 때에 맞는 입력값으로 바꾸어 주는 구실을 했다. back
  18. 신세벌식 자판에 관한 정보는 주로 하이텔에 공개된 자료를 통하여 일반에 알려졌고, 신세벌식 자판을 소개한 월간 《마이컴》 1995년 10월호 기사는 2010년대 중반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back
  19. PC-Serve는 데이콤이 운영한 PC 통신망이다. 1992년에 문자 정보 서비스인 '천리안 Ⅱ'과 함께 '천리안'으로 통합되었다. back
  20. 첫소리 ㄱ~ㅎ, 홀소리 ㅏ·ㅐ·ㅓ·ㅔ·ㅗ·ㅜ·ㅡ·ㅣ, 끝소리 ㄱ~ㅎ back
  21. 신세벌식 자판이 처음 제안된 때에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3벌식 최종'으로 알린 윈도 95 한글판이 아직 출시되지 않았고, 도스를 운영체제로 쓰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한글 자판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에게도 공병우 최종 자판은 거의 알려지지 못했고, 도스에서 흔히 쓰인 프로그램들(ᄒᆞᆫ글, 한메타자교사, 이야기 등)에서 '한글 3벌식'으로 지원한 3-90 자판이 공세벌식 자판의 대표로 참고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신세벌식 자판 창안자 신광조의 덧글(https://pat.im/1104?commentId=92700#comment92700)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back
  22. 신세벌식 자판의 한글 입력 방식을 가리키는 '첫가끝 갈마들이'는 글쓴이가 2014년에 '갈마들이 타자법'으로 제안했고,(http://cafe.daum.net/3bulsik/JMKX/7) 2018년에 '첫가끝 갈마들이'로 고쳐 제안했다. '갈마들이'는 '갈마들다'의 이름씨꼴이고, '갈마들다'는 '번갈아들다'와 뜻이 같다. back
  23. 공세벌식 자판은 윗글쇠를 눌러 넣어야 하는 받침들이 꽤 있는데, 받침을 넣을 때 윗글쇠를 누르는 동작 때문에 같은 손가락을 거듭 쓰는 때가 줄고 타자 동작에 제동이 걸려 쉴 틈이 생긴다. 또한 오른쪽 윗글쇠를 누르고 난 뒤에 자주 치는 첫소리들이 바탕 자리(home position) 글쇠들에 모여 있다. 그래서 공세벌식 자판의 왼손 피로도가 낮을 수 있고, 공세벌식 자판을 익숙하게 쓰는 사람들이 윗글쇠를 누르는 타자 동작을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덜 불편하게 여길 수 있다. 이에 관한 내용을 「수동 타자기 타자 동작에 얽힌 공병우 세벌식 자판의 설계 원리 몇 가지」(https://pat.im/1127)에서 이야기하였다. back
  24. 객관성 있는 자료로 내세우기에는 모자람이 있지만, 공병우 최종 자판과 여러 두벌식 자판들의 거듭치기(연타)를 견준 통계값을 https://pat.im/849에서 볼 수 있다. back
  25. 박경남이 제안한 신세벌식 자판은 두 가지가 있다. '박경남 신세벌식 자판'은 느낌표(!)와 물음표(?) 자리를 바꾸고 참고표(※)와 가운뎃점(·) 넣었는데, 이는 공병우 최종 자판을 쓰던 사람들의 취향에 맞춘 꼴이다.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은 기호 배열을 원안과 비슷하게 되돌리고 한글 배열은 '박경남 신세벌식 자판'을 따른 수정안인데, 비어 있던 글쇠 자리 4개를 채워서 열고 닫는 따옴표 4개를 담았다.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이 주로 알려지고 쓰인 정황은 세벌식 사랑 모임(http://cafe.daum.net/3bulsik)과 신세벌식 카페(http://cafe.daum.net/3bulsikmini0A0)에서 어느 만큼 살필 수 있다. 박경남이 제안한 두 가지 신세벌식 자판은 자판 배열이 배열표와 날개셋 설정 파일을 통하여 알려져 있고, 박경남 수정 신세벌식 자판이 2003년에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볼 수 있는 박경남 신세벌식 자판 배열표 등은 원본 자료를 보고 나중에 다른 연구자들이 다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는 박경남이 제안한 신세벌식 자판들이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보지 못했다. back
2018/03/07 00:48 2018/03/0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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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벌 2018/03/07 16:3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오늘 3월 7일은 공병우 박사님 돌아가신 날.
    오랜만에 올라온 팥알 님 글 잘 읽고 갑니다.

    • 팥알 2018/03/07 19:2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리 계획하고 날짜를 맞춘 건 아니었는데, 글 쓰는 형편이 어려워서 지난해에 올리려 한 글을 이제야 올렸습니다. 본래 계획은 이번 글로 끝맺으려 했는데, 새로 확인한 내용이 더 늘어나는 바람에 2회쯤 더 올리고 글을 맺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