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나누어 살펴보는 공병우 세벌식 자판 - 1. 첫 세대 (1940~1950년대)

1. 첫 세대 (1940~1950년대)

  공병우 타자기주1에 관한 첫 특허는 1948년 2월에 ‘쌍촛점 타자기’라는 이름으로 출원되었다. 공병우의 쌍초점 타자기는 공병우 자판의 원조가 된 첫소리를 오른쪽에 둔 세벌식 한글 자판 배열을 바탕으로 하였다. 공병우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에 따르면, 공병우는 1947년 5월에 한글 타자기 연구를 시작한 뒤로 여섯 달이 지나서 타자기로 매끄럽게 글을 칠 수 있는 세벌식 배열을 처음 생각해 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공병우 자판의 틀은 1947년 말에 처음 잡혔던 것 같고, 이 때부터 영문 타자기를 고쳐 만든 공병우식 한글 수동 타자기 견본 기계가 수작업으로 몇 대 만들어진 듯 하다.주2

  1949년에 공병우는 미국에 한글 타자기 특허를 출원하였고, 이 해에 공병우의 견본 기계와 설계도를 받은 미국의 언더우드(Underwood) 타자기 회사가 시제품주3을 내놓았다. 언더우드 회사가 양산품으로 만든 타자기는 6·25 전쟁 중에 군수 원조 물품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군의 행정 업무에 쓰였다.

공병우 타자기 미국 특허 문서에 나온 자판 배열
[그림 1-1] 미국에 출원한 특허 문서에 들어간 공병우 타자기의 자판 배열 그림

  그림 1-1는 미국에 출원한 공병우 타자기의 특허 문서주4에 들어간 타자기 도안과 자판 배열이다. 영문 타자기를 비롯하여 많은 수동 타자기들에는 가늠쇠(33, type bar guide)에 활자 막대(2)에 붙은 활자(3)를 정해진 자리(초점)로 인도하는 안내 홈이 하나가 나 있다. 글쇠를 누르면 활자 막대가 가늠쇠에 난 홈으로 인도되어 활자 막대에 붙은 긴 네모꼴 활자(3)가 먹끈과 종이가 둥글대(12, platen)를 때려 글을 찍는다.

  공병우 타자기의 가장 큰 특징은 가늠쇠의 안내 홈을 두 개로 늘린 쌍초점 방식에 있다.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는 오른쪽 글쇠(10b)에 있는 첫소리와 기호를 칠 때에는 오른쪽 안내 홈(35)으로 활자가 인도되어 종이에 찍혔고, 왼쪽 글쇠(10a)에 있는 가운뎃소리(홀소리)와 끝소리(받침)를 칠 때에는 왼쪽 안내 홈(34)으로 활자가 인도되어 찍혔다. 첫소리와 기호가 있는 오른쪽 글쇠(10b)는 글을 찍은 다음 둥글대가 한 칸 움직이는 '움직글쇠'였고, 가운뎃소리와 끝소리가 있는 왼쪽 글쇠(10a)는 누르면 둥글대가 움직이지 않고 글만 찍히는 '안움직글쇠'였다.주5

  첫소리를 오른쪽에 둔 세벌식 자판을 바탕으로 한 쌍초점 설계로 공병우 타자기는 활자 막대가 서로 엉킬 확률을 줄였고, 글을 치는 이가 사이 띄개 따위를 눌러 글을 찍는 초점을 수동으로 옮기는 불편을 없앴다. 공병우 타자기보다 먼저 나왔던 송기주의 네벌식 타자기는 닿소리가 모두 안움직글쇠에 들어가서 받침을 치고 난 뒤에 꼭 사이 띄개를 눌러야 했으나, 공병우 타자기는 그런 군동작이 없어서 타자기를 쓰는 이가 글을 치는 데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의 자판 배열 ①
[그림 1-2] 초창기 공병우 수동 타자기의 자판 배열 ① (언더우드 제품)
초창기 공병우 수동 타자기의 자판 배열 ②
[그림 1-3] 초창기 공병우 수동 타자기의 자판 배열 ② (언더우드 제품)
  이 글에 자판 배열표에는 첫소리푸른 색, 가운뎃소리(홀소리, 모음)을 갈색, 끝소리(받침)을 빨간 색으로 나타내었다. (겹홀소리에 쓰이는 ㅗ, ㅜ(주황색)는 두째 세대 배열부터 들어갔고, 첫째 세대 배열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림 1-2은 「'가장 과학적인 문자'와 근대 기술의 충돌」(김태호, 한국과학사학회지 2011.12)과 그 발췌문에 실린 타자기(언더우드 생산품) 사진을 참고하여 옮긴 자판 배열표이다. 이 배열을 쓴 타자기는 세종대왕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림 1-3은 2008년에 TV쇼 진품명품(KBS1, 2008.10.5 방송)에 나온 공병우 타자기(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의 1952~1953년 무렵 제품, 공안과 소장품)의 자판 배열이다. 그림 1-2보다 홀소리 자리가 더 정돈되어 있고 $ 기호가 들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6.25 전쟁 중 또는 그 이후에 실무에 쓰인 배열인 듯 하다. 홀소리가 왼손 첫째손가락 자리에 몰려 있는 모습은 다음에 살펴볼 두째/세째 세대 배열의 특징으로 이어졌다.

  홀소리와 받침이 한 글쇠에 들어가 있는 모습은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의 특징이다. 첫소리 ㄲ· ㄸ·ㅆ·ㅃ·ㅉ이 따로 들어가 있어서 된소리 낱자를 더 고르게 찍을 수 있지만, 그 대신에 기호는 많이 들어가지 못했다.

  실제로 쓰인 타자기에는 미국 특허 문서에 나온 배열(그림 1-1)보다 실무에 맞추어 더 고친 배열이 쓰인 것 같다. 미국 특허 문서에 나온 배열(그림 1-1)에는 물음표 ?, 느낌표 !, 손톱묶음 ( ), 빼기 부호 -, 큰따옴표 ", 퍼센트 %, 덧셈 부호 +, 빗금 /, 원화 기호 ₩, 마침표 (.), 쉼표 (,)가 들어 있다. 그림 1-2의 배열에는 겹받침 ㄿ과 +가 빠지고 @와 #가 들어갔다.주6 그림 1-3의 배열에는 겹받침 ㄽ이 빠지고 달러 기호($)가 들어갔다.

정전협정문 서명 부분
[그림 1-4] 6.25 정전협정문 제1권 서명 부분 (위키문헌)
정전협정문 제2권 지도 표지
[그림 1-5] 6.25 정전협정문 제2권 표지 부분 (용산 전쟁기념관 전시물)
  공병우 타자기는 6.25 정전협정문 한글본을 만드는 데에 쓰였다.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의 한글 획은 명조체보다 샘물체나 굴림체 쪽에 가까웠다. 「김진평 교수의 아카이브를 정리하다」(Deutscher Parnass)에서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 글씨를 찍은 더 큰 사진을 볼 수 있다.
차례
  • 5. 다섯째 세대 (1990년대~)
    • (1) 3-89 자판
    • (2) 3-90 자판
      • 1) 순아래 자판
      • 2) 3-93 옛한글 자판
    • (3) 3-91 자판 (공병우 최종 자판)
  • 6. 새로운 시도와 개선안
    • (1) 신세벌식 자판
    • (2) 김국 38 자판 (설계안)
    • (3) 3-90 자판과 3-91 자판의 통합안
    • (4) 3-2011 자판 (3-91 자판 수정안)
    • (5) 3-2012 자판 (3-90 자판 수정안)
  • 7. 맺음말
〈주석〉
  1.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공병우 타자기 회사'가 내놓은 모든 타자기를 공병우 타자기에 넣을 수도 있는데, 공병우 타자기 회사로 볼 수 있는 '유니온'은 공병우 세벌식 배열뿐만 아니라 정부 표준 배열을 쓴 타자기를 만든 적이 있다. 이 글에서는 만든 회사와 관계 없이 '공병우 세벌식'을 따른 자판을 쓴 타자기만을 공병우 타자기로 이른다. back
  2.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88~89쪽 back
  3. 언더우드 회사에서 생산한 시제품은 3대였고 당시 주미 한국 대사로 있던 장면, 연희대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의 언더우드(언더우드 타자기 회사를 세운 이의 아우), 공병우가 각각 한 대씩 받았다. (공병우,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92~93쪽) back
  4. 공병우 (Pyung Woo Kong), 'Korean Typewriter' United States Patent 2625251 (https://www.google.com/patents/US2625251) back
  5. 홀소리와 받침을 안움직글쇠로 찍는 것은 첫 세대 공병우 타자기만의 특징이다. 다음 세대의 공병우 타자기에는 겹홀소리에 들어가는 ㅗ, ㅜ를 뺀 홀소리들이 움직글쇠에 들어갔다. back
  6. 겹받침 ㄿ은 '읊다', '애닲다' 등에 쓰이는데, 이 무렵에는 '애닲다'를 '애닯다'로 적었다. 겹받침 ㄿ까지 들어간 그림 1-1의 배열은 요즘한글에 쓰인 모든 겹받침이 들어간 셈이다. (2017.12.5. 주석 더하고 고침)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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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무엘 2012/09/14 10:02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초창기 배열은 날개셋 프로그램을 10년 넘게 개발하고 공 박사 자서전을 15년 가까이 전부터 봤던 저도 지금까지 접한 적이 없었는데.. 꽤 충격적인 모습이네요.

    지금은 공병우 세벌식에 초성 쌍자음은 따로 배당되지 않는 게 관례입니다만, (두벌식은 음절 구분을 위해 그게 필수)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도 처음에는 그게 따로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좋은 글과 자료에 감사드리며, 다음 시리즈도 기대할게요..!

    • 팥알 2012/09/14 11:47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저도 김태호 교수의 논문에서 움직/안움직 글쇠에 대한 설명이 흔히 알려진 정보와 달라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공병우 타자기 특허 문서들을 살피면서 쌍초점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 박사님의 자서전에 없던 내용이어서 몰랐는데, 그걸 알고 나니 정전협정문의 글씨가 나중에 나온 공병우 타자기의 글씨보다 글짜 간격이 왜 고른지 이해가 됩니다.

      이제 생각해 보면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 자판은 셈틀의 3-89 자판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직 실무에 널리 쓰면서 검토하지 못한 탓에 더 필요한 요소과 덜 필요한 요소를 더 가려야 했고,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얼마 동안만 쓰이다 사라진 것이 비슷합니다.

      첫소리 ㄲ, ㄸ 등이 빠진 다음 세대 타자기들에서는 첫소리 ㄱ,ㄷ을 두 번 쳐서 넣다 보니 틈이 벌어져서 글씨가 고르지 못한 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글씨꼴은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가 가장 나았던 것 같습니다.

  2. 작은연못 2014/04/09 22:14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항상 팥알님의 글의 통하여 많은 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창기 타자기 역사'란 글을 블러그에 올리면서 궁금한것이나 의문나는 것들이 많이 있으나 특히 궁금한것이 있어 여쭈고자합니다.

    특허출허할때 자판으로 이뤄진 공병우타자기가 있다면 현존하는 최초 공병우타자기임이 맞겠으나 현재 그러한 타자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더우드회사에서 최초 시제품 3대 전달시 특허출허의 자판으로 이뤄진 타자기였는지, 아니면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자판(그림 1-2)으로 이뤄진 타자기였는지 알려진 자료가 있는지요?

    두번째는 위 정전협정문서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자판(그림 1-2)으로 작성된 문서였는지
    아니면 (그림 1-3)으로 작성된 문서였는지 알수 있을까요?
    한가지 위에서 설명하신데로 진품명품 출품 공병우타자기는 모델최초생산년도가 1952-1953년으로 그모델 타자기가 생산되어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1953년 7월 협정문서에 사용되었다고 보기에는 시간적으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심지어 1953년 공병우타자기 신문광고에도 진품명품출품 모델타자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 팥알 2014/04/10 00:1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작은연못님, 반갑습니다.

      혹시 공 안과 쪽에라도 자료가 남아 있다면 좋겠지만, 언더우드 회사에서 만든 시제품 3대가 어떤 자판 배열로 되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위의 배열들과 다른 배열일 더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전쟁 통에 실물은 이미 사라졌고 실물 사진이나 배열표가 담긴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습니다.

      1951~1953년에 만들어진 공병우 타자기는 주로 군용품이 많았고, 6·25 전쟁 뒤의 경제 상황을 생각해도 공병우 타자기가 국가 기관이 아닌 곳에 팔리기를 기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또 전쟁이 끝난 뒤에 타자기 수입이 끊겼고 공병우 타자기의 설계 방식이 바뀌어 전쟁 때 쓰인 자판 배열은 오래 가지 못한 듯합니다. 그러니 언더우드 회사에서 만든 것과 같은 종류가 신문 광고에 등장하기 어려웠을 걸로 짐작합니다.

      정전협정문이 작성된 공병우 타자기의 배열도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유엔군의 행정 업무에 쓰였기 때문에 $ 기호는 반드시 들어 갔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진품명품에 나온 공병우 타자기가 1952~1953년에 만들어 것이 맞다면, 정전협정문을 작성할 때에 쓰인 타자기일 확률이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에 만들어진 공병우 타자기는 전시 군납품이었므로 만든 때와 쓰이기 시작한 때가 그리 차이 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또 그 때의 타자기는 비싸고 요긴한 기기여서 특히 군에서는 망가진 타자기라도 고쳐서 오래도록 쓰려고 했을 터이니, 어쩌면 정전협정문을 작성할 무렵에 이미 한 가지가 넘는 공병우 타자기 배열들이 섞여 쓰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3. 작은 연못 2014/04/13 11:11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자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기호가 들어간 문서를 찾을 수 있다면 진품명품출품 타자기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오랬동안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공병우타자기가 최초 공병우타자기인가에 대하여 답안을 찾지 못하였는데 얼마전에 미국에서 1950년도에 미국정부가 한국정부를 대표힌 장면박사(당시 주미대사)에게 '최초 한글타자기(공병우타자기)'를 증여하는 모습이 담겨있는 사진을 어렵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공병우박사 자서전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사진에 실려있는 타자기는 분명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타자기와 모델이나 '공병우' '타자기'란 한글 표기가 동일하고 1953년도 신문광고에 실려있는 타자기와도 100% 일치합니다.
    하지만 타자기 배열은 사진상 확인이 어렵습니다.

    조만간 사진을 비롯하여 자료 정리하여 제 블러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친절하신 답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팥알 2014/04/13 15:0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미국 특허 문서에 보이지 않던 @, #, $ 기호가 나중에 더 들어간 것은 나중에 수요자들의 개선 요구를 받아들인 결과일 겁니다.
      요즈음도 그렇지만 공병우 타자기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이 기호들은 업무 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꼭 필요했습니다. 공병우 선생이 감수한 〈공한글 타자교본〉(박영호 엮음, 1962)에는 @, #, $ 기호의 뜻과 쓰임새를 설명한 글까지 연습 예문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공병우 선생은 전문 사무원이 아니었으므로 '한글' 타자기를 처음 만들 때부터 문서에 많이 쓰일 기호를 미리 알고 챙기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 글에서 공병우 자판들의 세대를 나눈 실마리로 삼은 건 한글 배치이지만, 그 한글 배치에는 특수기호와 영문 로마자가 영향을 미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공병우 선생은 '한글' 타자기와 '한글' 자판 개발에 너무 몰두했는지 기호 배치를 일관성 있게 하는 일을 한글 배열을 고치는 것보다 소홀히 했던 것 같습니다. 흥미롭게도 1991년에 '공병우 최종 자판'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3-91 자판에는 @, #, $가 빠져 있고 오히려 초창기 공병우 자판에 가까운 모습이 엿보입니다. 아마도 공병우 선생은 기호 배열보다 한글 배열을 우선하여 생각하고, 기호 배치은 필요에 따라 변통할 수 있는 요소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달리 생각한다면, 기호 배열이 자주 바뀐 점을 이용하여 공식 기록에 이야기되지 않은 공병우 자판들의 숨은 목적과 허실을 파헤칠 수 있는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 자판은 어느 쪽이 먼저 나왔고 개선판인지 목적을 달리하는 배열인지를 뚜렷이 일러주는 기록이 드물어서 많은 부분을 짐작만 할 수 밖에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요즈음에도 필요한 기호가 더 있으면 입력기 설정을 바꾸거나 아예 새로운 입력기를 만들어서라도 기호를 더 쓰기도 합니다. 타자기도 쓰는 쪽에서 임의로 활자를 바꾼다는지 하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공병우 타자기 가운데 원형과 다르게 임의로 개조된 것이 있을 가능성도 열어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공병우 타자기는 한글 타자기만을 헤아린 완제품이 아니라 이미 나와 있는 언더우드 회사의 영문 타자기 틀을 빌린 완제품이므로, 같은 껍데기를 썼더라도 나온 때의 차이가 크면 글쇠 배열이 서로 다를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공병우 타자기와 함께 등록된 냉장고, 라디오 들이 연구용 견본이나 시제품이 아닌 대량 생산품인 걸 보면, 문화재청은 '첫 제품'보다 '처음으로 국내 시장을 일군 제품군'인 점을 더 많이 주목한 것 같습니다.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제품이어야 시제품도 높이 볼 수는 없으므로, 등록문화재로 올라간 공병우 타자기도 시제품 못지 않은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공병우 타자기 시제품의 글쇠 배치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글쇠 배치는 알 수 없더라도 당시 장면 주미 대사가 공병우 타자기를 증여 받는 사진이 남아 있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공병우 선생의 자서전에 신빙성을 더하고, 한글 타자기의 상세한 역사를 역추적하는 데에 크게 도움될 사진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4. 작은연못 2014/04/30 20:1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장면주미대사가 타자기를 증여받는 사진을 어제서야 블러그에 올렸습니다.
    타자기관련하여 잘못된 설명이 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편하게 지적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기록문화가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자료를 찾다보면서 실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일개 회사가 자신들의 오래전 제품들에 대하여도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과 함께 사진자료를 정리한 책자를 발간해 놓은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웠습니다.

    이제라도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의견 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항상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팥알 2014/05/02 01:43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고맙습니다. 사진 잘 보았습니다.

      저는 그저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에서 장면 주미 대사에게 타자기를 보낸 걸로 단순하게 알고 있었는데, 미국 정부 차원에서 공병우 타자기가 건네졌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언더우드 가문의 인맥 덕분일지 모르지만, 미국 정부가 한글 타자기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은 새겨 둘 만한 일인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기록 문화가 철저하지 못한 것이 저도 많이 아쉽습니다. 공병우 자판에 관한 자료들 가운데도 ISBN 번호가 없는 소책자나 낱장 유인물 배포된 것이 꽤 있는 듯한데, 이런 자료들이 아직 출판물로 엮이지 못하고 목록조차 정리되지 못한 채로 점점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어딘가 숨어 있을 자료들이 모두 공개되어 한글 타자기에 대하여 더욱 진지한 연구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