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맞은 준혁과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던 세경은 전날 밤늦게까지 고았던 사골을 전하러 지훈의 병원에 먼저 들른다. 세경에 대해 궁금해 하던 지훈의 동료 의사들은 세경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려 하지만, 진료를 끝내고 사무실로 들어온 지훈은 냉정하게 세경을 돌려보낸다. 동료 의사들이 왜 그러냐며 캐묻자, 지훈은 세경이 자기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라고 밝힌다. 마침 현경의 말을 전하려고 다시 사무실에 온 세경이 지훈의 말을 엿듣게 된다.
지훈의 말에 세경은 눈물을 흘리며 발길을 돌리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지훈이 준 빨간 목도리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된다. 준혁은 세경이 길을 못 찾아 영화관에 늦는다고 생각하여 병원에 뛰어갔다가 목도리를 찾는 세경을 만난다. 그러던 세경은 지훈과 또 마주치고, 둘이 대화하는 것을 지켜본 준혁은 시무룩해진다.
결국 영화도 보지 못하여 언짢은 준혁에게 세경은 생일 선물을 전한다. 하지만 선물은 목도리를 찾는 와중에 이미 깨져 있다. 세경은 준혁과 집으로 돌아가다 악기점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세경은 악기점에서 눈물을 흘리며 준혁에게 이것밖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며 피아노를 연주한다.


생일을 맞은 준혁에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세경 (지붕뚫고 하이킥 87회)
이 피아노 연주 장면는 두 가지 점에서 어리둥절하게 한다. 첫째는 산골에 숨어 살던 시골 소녀가 어떻게 피아노를 칠 수 있으냐고 물음 때문이다. 극중에서 세경은 중학교까지는 다닌 것으로 나오므로, 꼭 도시에서 살지 않더라도 학교나 학원을 통해 피아노를 배웠을 수 있다. 단지 앞선 회에서 세경이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우뢰매'라고 한 게 걸리기는 하지만, 피아노를 전혀 못 치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둘째로 피아노 치는 가정부의 모습을 연출한 점이다. 세경은 앞선 회에서 공 던지기, 격투기 오락 등으로 유연한 운동 신경을 보였지만, 피아노 연주에 비할 만한 건 아니었다.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은 세경이 자란 환경을 엿보게 하는 실마리가 된다. 적어도 부모가 딸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할 수준의 집안에서 자랐거나, 세경 스스로 파이노를 익힐 만큼의 재능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불리한 처지 때문에 식모살이를 하더라도, 스스로의 바탕까지 흔히 생각하는 식모 수준이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스스로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세경이 못 배우고 돈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을 가정부라고 일컫는 것이 누구보다 서러울 수 있다. 게다가 짝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오죽할까. 그 점에서 이 회의 줄거리는 세경에게 매우 슬프게 이어졌다. 그리고 피아노 치는 식모의 모습라는 모습을 통해 미운 오리 새끼를 떠올리게 하는 세경의 심정을 담아냈다. 세경을 가엾어 하고 현실에 맞는 조언을 하는 지훈, 그런 지훈을 짝사랑하지만 자신이 처한 한계를 절감하는 세경, 또 그런 세경을 짝사랑하며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준혁의 이야기가 이 회에 맞물리며 정점에 오른 셈이다.
순재네가 약자이면서 이방인인 세경-신애 자매를 품는다는 설정은 '아기 공룡 둘리'와 비슷하다. 말썽꾸러기 둘리와 그 친구들을 받아준 고길동네처럼 순재네도 연고도 없는 두 자매를 결국은 받아들였다. 순재네 식구들이 서로 많은 문제를 앉고는 있지만, 새로 들어온 두 자매를 가족처럼 흡수하며 보완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 세경이 갈등은 하더라도 절망하고 원망하는 건 분에 넘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서는 있기 힘든 설정이지만, 바로 이런 점이 시트콤인 '지붕뚫고 하이킥'에 진지하게 빠져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