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아쓰는 수동 타자기 (3~4벌식)

  1969년에 나온 전신 타자기의 표준 두벌식 자판은 모아쓰는 수동 타자기의 바탕 배열이 되기도 하였다. 두벌식 배열을 바탕으로 한 수동 타자기는 받침을 치는 방식에 따라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진윤권 타자기와 이윤온 타자기처럼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를 두벌식 배열로 치고, 그 바깥쪽에 따로 덧붙은 글쇠로 받침을 치는 방식이다. 두째는 최동식의 외솔 타자기처럼 닿소리 글쇠에 아랫글 자리에는 첫소리를 두고 윗글 자리에 끝소리를 둔 방식이다.

  꼼꼼하게 보면 모아쓰는 수동 타자기에 두벌식 자판은 쓰이지 않았다. 두벌식 타자기로 불린 모아쓰는 수동 타자기에 쓰인 자판은 받침이 따로 들어간 세벌식 또는 네벌식 자판이었고, 닿소리 한 벌과 홀소리 한 벌만 들어간 두벌식 자판은 아니었다. 그러나 두벌식 자판과 비슷하게 보이는 자판 배열을 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눈에 두벌식 자판을 쓴 기기로 보일 수 있었다.

  모아쓰는 두벌식 배열형 3~4벌식 타자기(두벌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벌식이 아님)는 이미 나왔던 다른 세벌식/네벌식 타자기보다 자판 배열이 단순하게 보이면서 사람들이 작동법을 더 깨달을 수 있는 점이 매력이다. 그래서 외솔 타자기 등이 시장에서 힘을 얻자 정부는 1969년에 정한 네벌식 수동 타자기 표준 자판을 1983년에 폐기하고 1985년에 외솔 타자기 자판과 비슷한 배열을 수동 타자기 표준 배열로 삼았다. 이 타자기 표준 배열이 밑거름이 되어 동아정공과 경방기계을 비롯한 타자기 회사들이 만든 두벌식 배열형 수동 타자기들이 수동 타자기 시장의 주류 제품이 되었다.

  표준 배열을 쓴 수동 타자기들은 윗글쇠를 걸고 쓰는 받침 글쇠로 썼다. 받침이 나올 때마다 새끼 손가락을 써야 하는 타자법 때문에 오래도록 작업하기 어려웠으므로, 오래지 않아 두벌식 자판을 더 간편하게 쓸 수 있는 전자 기기들에게 힘없이 밀려나야 했다.

  여기에서 살피는 모아쓰는 수동 타자기 자판들은 전자 기기의 힘을 빌어서 참된 두벌식 자판으로 넘어가기 앞서 나온 과도기형 배열이다. 두벌식에 가깝게 보여도 두벌식 자판이 아님을 유의하기 바란다.

※ 여기에서 소개한 타자기들을 두벌식 타자기로 잘못 알려지는 것을 거듭 막고자, 이들이 3~4벌식임을 굵은 글씨로 강조하고 '모아쓰는 두벌식 타자기'를 '모아쓰는 두벌식 배열 호환형 3~4벌식 타자기'로 바꾸어 적었습니다. (2016.4.15.)

 

(1) 진윤권 타자기 (3벌식)

진윤권의 세벌식 한영 타자기 자판

진윤권의 세벌식 한·영 타자기 자판 (「한글 타자기 발전사」, 《한글정보》 제1호, 1992.9)


  진윤권 타자기는 전신 타자기의 표준 두벌식 배열에 받침 글쇠를 오른쪽에 덧붙인 '한·영 겸용 두벌식 배열 호환형 세벌식 타자기'이다. 전신 타자기 자판에 들어간 두벌식 한글 배열로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를 치고, 오른쪽 글쇠에 동그라미로 그려진 글쇠로 끝소리(받침)를 친다.

  이 타자기는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지는 못하였고, 견본이 세종대왕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2) 이윤온 타자기 (3벌식)

이윤온의 3단 한영 타자기 (ONLINE 510)

이윤온의 3단 한·영 타자기 (ON-LINE 510)


  이윤온 타자기도 전신 타자기의 표준 두벌식 배열을 바탕으로 변형하여 만든 '한·영 겸용 두벌식 배열 호환형 세벌식 타자기'이다. 2단 활자를 쓴 ON-LINE 295 제품과 3단 활자를 쓴 ON-LINE 510, 613 제품이 나왔다.

  진윤권 타자기처럼 첫소리와 가운뎃소리는 두벌식 배열 쪽에서 넣고, 왼쪽에 덧붙은 빨간 낱자들이 받침이다. 3단 활자가 들어간 제품은 한글뿐만 아니라 큰 로마자와 작은 로마자까지 넣을 수 있다. 글쇠 가운데에 들어간 겹받침(ㄲ, ㄶ, ㄺ, ㄻ, ㅄ 등)은 오른쪽에 있는 한글/영문 지레를 영문 상태에 두었을 때 넣을 수 있다.

  이윤온 타자기는 공병우 세벌식 타자기처럼 쌍초점 가늠쇠를 써서 움직글쇠에 들어간 첫소리/가운뎃소리는 오른쪽 초점으로 찍고 안움직글쇠에 들어간 받침은 왼쪽 초점으로 찍는다. 이윤온 타자기는 작동 방식이 공병우 타자기와 매우 비슷하지만, 두벌식 배열을 바탕으로 만든 세벌식 자판을 쓴 점이 다르다.


(3) 외솔 타자기 (3벌식)

  외솔 타자기주1는 1980년에 외솔 최현배의 손자인 최동식과 김광성이 개발하였다.주2 주3 1981년에 정음사가 시판하였다.주4

외솔 101 타자기 자판

외솔 101 타자기 자판


외솔 301 타자기 자판

외솔 타자기 자판


  외솔 타자기 자판도 두벌식 전신 타자기 표준 자판의 한글 배열을 바탕으로 하였다. 두벌식 자판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첫소리(푸렁)/가운뎃소리(갈색)/끝소리(빨강) 활자를 한 벌씩 갖춘 '두벌식 배열 호환형 세벌식 타자기'이다. 첫소리와 가운뎃소리가 들어간 아랫글 자리는 움직글쇠로 작동하고, ㅗ/ㅜ 글쇠는 안움직글쇠로 작동한다.

  끝닿소리(받침)을 칠 때에는 윗글쇠와 닿소리 글쇠를 함께 눌러 치고, 첫닿소리와 가운뎃소리(홀소리)는 글쇠를 그냥 눌러 친다. 오른쪽에 주황색으로 들어간 ㅗ, ㅜ는 겹홀소리 ㅘ, ㅝ 등을 칠 때에 쓴다. ㄳ, ㄶ, ㄻ을 비롯한 겹받침들이 홀소리의 윗글 자리에 들어가 있다.

  외솔 타자기에서 윗글쇠를 누르고 있으면 초점이 종이 왼쪽으로 한 칸 되돌아갔다가, 윗글쇠를 놓으면 초점이 제자리로 되돌아간다. 이 동작으로 가운뎃소리(홀소리)가 안움직글쇠에 들어간 것 같은 효과를 내서 끝소리(받침)를 군동작 없이 이어칠 수 있게 하였다. 그 대신에 ㅒ와 윗글 자리에 들어간 기호들을 넣을 때는 치기 앞서와 친 뒤에 사이띄개를 눌러 주어야 한다.

  외솔 타자기는 수동 타자기뿐만 아니라 전동 타자기로도 개발되었다. 수동 타자기에서는 받침이 나올 때마다 윗글쇠를 눌러야 하는 점이 흠으로 꼽힌다.


(4) 개정한 표준 배열을 쓴 두벌식 수동 타자기 (4벌식)

  외솔 타자기 등이 어느 만큼 시장에서 실용성을 인정받고 한글을 지원하는 전자 기기들이 등장하자, 정부는 1983년에 국무총리지시 제21호(행정능률화를 위한 한글 타자기 관련제도의 보완, 1983.8.26)를 통하여 1969년에 네벌식 타자기 자판을 수동 타자기 표준 배열로 삼은 국무총리 훈령 제81호(1969.7.28)를 폐지하기로 예고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1985년에 국무총리 훈령 제205호(한글 기계화 표준 자판 확정에 따른 지시 폐지, 1985.5.30)로 네벌식 타자기 표준 자판을 폐지하였고, 과학기술처가 제안한 타자기 배열(한국기계연구소, 〈한글 타자기 자판 및 기구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 과학기술처, 1985.6)이 기계식 타자기 표준 배열이 되었다.주5

두벌식 수동 타자기 표준 자판

표준 두벌식 수동 타자기 자판 (〈한글타자기 자판 및 기구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 과학기술처)


  새 기계식 타자기 배열을 따라 동아정공과 경방기계를 비롯한 기업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같은 배열을 쓴 타자기를 많이 만들어 냈고, 이로써 두벌식 수동 타자기가 한글 타자기 시장의 주류가 되었다.주6

  위 배열을 쓴 수동 타자기는 '두벌식 타자기'로 불렸지만, 실제로는 4벌 활자(첫소리 1벌, 가운뎃소리 2벌, 끝소리 1벌)를 갖추고 겹받침도 따로 넣은 '두벌식 배열 호환형 네벌식 타자기'였다. 최동식이 고안한 윗글쇠 고정 장치(시프트 록 장치)가 들어갔다.주7 만약 윗글쇠 고정 장치가 없이 4벌식으로 한글을 찍으려면, 받침이 있는 낱내를 칠 때에는 첫소리로 닿소리를 그냥 치고, 윗글쇠를 누른 채로 홀소리를 치고, 다시 윗글쇠를 눌러 받침으로 닿소리를 쳐야 한다. 윗글쇠 고정 장치는 윗글쇠를 두 번 누를 것을 한 번으로 줄여 준다. 첫소리를 치고 나서 윗글쇠를 누르면 고정 상태가 되었다가 가운뎃소리와 끝소리를 치고 나면 저절로 풀리는 방식이다. 받침이 없는 낱내는 윗글쇠를 누르지 않고 그대로 치면 된다.

  이 두벌식 배열 호환형 네벌식 수동 타자기는 받침이 나올 때마다 새끼 손가락으로 윗글쇠(받침 글쇠)를 눌러야 해서 오래 작업하기 어렵다. 작동법이 어려운 옛 표준 네벌식 타자기보다 쉽게 익힐 수 있지만, 숙달하고 나서는 더 느리고 힘들고 번거롭다. 전자 기기에서는 받침 글쇠를 누르는 동작 없이 두벌식 자판을 쓸 수 있으므로, 사무실과 가정에서 전자 기기가 흔히 쓰이게 된 1990년대에 두벌식 수동 타자기는 불편해서 잘 쓰이지 않는 기기가 되었다.

  이 두벌식 배열 호환형 네벌식 수동 타자기의 마지막 제품은 1996년에 경방기기에서 마지막으로 만들었다. 이를 끝으로 한글 수동 타자기 시장도 함께 막을 내렸다.주8

차례
  • 0. 들어가는 말
  • 1. 풀어쓰는 수동 타자기
    • (1) 언더우드의 한글 타자기
    • (2) 송기주의 두벌식 타자기
    • (3) 김준성 타자기
    • (4) 도덩보 타자기
  • 2. 전신 타자기
    • (1) 한당욱·김철수·신한종의 풀어쓰는 전신 타자기
    • (2) 장봉선의 풀어쓰는 전신 타자기
    • (3) 송계범의 모아쓰는 전신 타자기
    • (4) 박영효·송계범의 두벌식 전신 타자기 자판 시안
    • (5) 표준 배열을 쓴 모아쓰는 전신 타자기
  • 3. 모아쓰는 수동 타자기 (3~4벌식)
    • (1) 진윤권 타자기 (3벌식)
    • (2) 이윤온 타자기 (3벌식)
    • (3) 외솔 타자기 (3벌식)
    • (4) 개정한 표준 배열을 쓴 두벌식 수동 타자기 (4벌식)
  • 4. 전자 기기
    • (1) 한국의 '정보 처리용 건반 배열' (KS X 5002)
    • (2) 조선의 '정보기술용 조선글자요소의 건반배렬' (KPS 9256)
    • (3) 문서 전용기 (워드프로세서)
    • (4) 휠 타자기
    • (5) 전화기
  • 5. 맺음말
<주석>
  1. '외솔 타자기'는 한글 학자인 외솔 최현배의 호에서 딴 이름이지만, 외솔 최현배가 개발한 타자기는 아니다. back
  2. 배우기 쉽고 피로 덜한 2벌식 한글 타자기, 《동아일보》, 1980.10.11. back
  3. 「활기 띠는 '한글 기계화' 오랜 연구과제… 어디까지 왔나」, 《경향신문》, 1980.10.9. back
  4. 강신귀, 「정음사 2벌식 한글 타자기 개발」,《매일경제》, 1980.7.30. back
  5. 〈한글타자기 자판 및 기구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에 실린 기계식 타자기 배열은 한국 산업 표준(Korean Industrial Standards, KS)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국무총리 훈령 제205호 「한글 기계화 표준 자판 확정에 따른 지시 폐지」(1985.5.30)에 따라 1990년대까지 한글 타자기 제조사들이 주로 따르는 표준 자판 배열이 되었다.(2016.10.5. 주석 넣고 내용 고침) back
  6. 두벌식 수동 타자기는 마라톤(동아정공)과 크로바(경방기계) 상표가 붙은 제품이 많이 나왔다. 마라톤과 크로바는 오늘날에도 중고품/골동품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자기 상표이다. back
  7. 최동식, 「활자 선별 쉬프트록 장치」(실용신안), 발명자: 김광성, 출원인: 최동식, 출원일: 1984.12.24, 출원번호 1984-0013890, 공개번호 실1986-0007566 back
  8. 개인용 컴퓨터(PC)가 1980년대부터 가정과 사무실에 보급된 뒤에도 한동안은 바로바로 글이 찍어 내는 타자기에 매력이 있었다. 명령어 기반 운영체제인 도스(DOS)에서 프로그램들을 실행할 때 낯선 명령어들을 눌러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도스 환경에서 쓰이는 명령어들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혼자 힘으로 PC에서 글틀(워드프로세서)을 꺼내 쓰기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하지만 1995년부터 나온 윈도 95이 PC에서 쓰이는 주류 운영체제로 자리잡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사람들은 명령어를 넣을 필요 없이 그래픽 화면에 보이는 쪽그림(아이콘)을 마우스로 딸깍하는 것만으로 글틀을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 전자식 한글 타자기는 타자법이 번거롭지 않아서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지만, 받침 글쇠를 자주 눌러야 하는 수동식 한글 타자기는 글을 바로 찍을 수 있는 것만으로 시장에서 더 버틸 수 없었다. (2016.9.27 주석 더하여 넣음) back
2013/05/09 17:13 2013/05/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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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4/08/10 17:0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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